00216 소제목 추후 결정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아이두의 캐주얼 버전을 만들어 동지마트에 보급하겠다 그 말인가?”
“네. 사장님.”
각 지점을 대상으로 전격적인 리뉴얼을 하면서 탁아소를 위한 공간은 이미 마련해뒀다. 원래라면 윤 스포츠센터의 허락을 먼저 구했어야 했지만, 서둘러 일을 진행하는 바람에 논의할 시간을 놓쳤다.
윤 스포츠센터와 협의를 마무리한 다음 리뉴얼을 진행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촉박했고, 그렇다고 나중에 탁아소 공간 확보를 위해 리뉴얼을 한 번 더 하는 건 너무 비효율적이었다. 원래는 이런 식으로 일을 진행하면 안 되지만, 솔직히 윤 사장님을 설득할 자신이 있었다.
“쯧! 마 팀장. 원래 아이두 아이디어는 자네가 생각해낸 거야. 그러니 굳이 내게 허락을 받을 일은 아닌 것 같은데.”
이건 허락이 아니다. 네가 알아서 해라. 대신 우리는 관여하지 않겠다는 의미이다.
당연히 그럴 수 없다. 탁아소 즉 어린이집 사업이야 하려면 못할 게 뭐가 있는가? 그냥 마트에 공간을 만들고 보육교사 몇 명을 고용해 아이들을 돌보게 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그래서는 별다른 경쟁력을 얻기 힘들다. 아이들 부모로 하여금 우리 동지마트가 운영하는 탁아소에 반드시 아이를 맡기고 싶게끔 만들어야 한다. 그러려면 지금 강남을 중심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아이두를 이용하는 게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지금 현재 아이두의 인기는 상상을 초월한다. 자녀 한 명을 아이두에 넣기 위해 할아버지 할머니는 물론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까지 온가족이 총동원되어 윤 스포츠센터나 D&Y피트니스 클럽에 회원으로 가입하는 건 이제 흔한 풍경이 되어버렸다.
인기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외부 압박 또한 거세졌다. 처음부터 강남의 부자들이 주 타깃층이었던 만큼, 탈락한 사람들의 사회적 지위도 상당했다. 그들은 다양한 경로를 통해 윤 스포츠센터에 압박을 가했다.
소수였다면 윤 스포츠센터도 신경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모집정원보다 아이두에 들어오고 싶어하는 희망자가 훨씬 많은 상황. 아무리 우리나라 최고의 스포츠센터라고 해도 강남에 살며 목에 힘깨나 주는 사람들의 집단 반발을 무시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결국, 외부의 압박에 못 이긴 윤 스포츠센터는 정원을 늘리기 위해 공간을 확보하고, 전문 인력 수급을 위한 교육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 과정에서 개발된 스포츠 육아 프로그램은 국제적으로도 주목을 받으며, 세계 시장에 ‘윤’이라는 브랜드 네임을 서서히 알리기 시작했다.
“별로 내키지 않으신가 봅니다?”
“내가 환영할 이유는 없지. 마 팀장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우리 윤 스포츠센터의 이름은 시장바닥에 늘려 있는 싸구려가 아니야. 동지마트 지점만 10개라면서? 제대로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갑자기 10개나 되는 탁아소를 운영하는 게 쉬운 일이라고 생각해? 성공은커녕 우리 윤 스포츠센터의 이름에 먹칠이나 안 하면 다행이지.”
윤 사장님은 한 번도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지적하셨다. 충분히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급하게 먹는 음식이 체하듯 제대로 준비를 하지 않고 사업을 진행한다면 오히려 동지마트의 이미지만 갉아먹을 수도 있다.
맞는 말씀이었지만, 그렇다고 인제 와서 물러설 수는 없다. 가칭 아이두 캐주얼은 다른 대형 할인 마트와 차별화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카드였다. 이 계획이 어그러진다면 시작부터 단추를 잘못 끼운 거나 마찬가지가 된다.
“사장님 말씀에 동감합니다.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서둘러 사업을 진행하면 역효과만 불러일으키겠죠. 그렇지만 윤 스포츠센터는 자체적으로 강사 교육시스템까지 완비한 우리나라 유일의 스포츠센터 아닙니까? 이미 아이두 사업 확장을 위해 교육생을 모집해 훈련 중이니 인원 확보는 어려운 일이 아니죠.”
“그건 안 되네. 방금 자네가 말했지 않은가? 아이두 사업 확장을 위한 교육생이라고. 우리 사업을 위해서 모집한 인원을 동지마트에 넘겨줄 수는 없지. 그리고 그 인원을 우리가 넘겨 준다고 해도 10개 지점을 커버하기에는 불가능해.”
“전 지점에서 동시 오픈한다고 말씀드린 적 없습니다.”
원래는 10개 지점에서 동시 오픈할 생각이었지만, 뻔뻔하게 오리발을 내밀었다.
“그럼?”
“서울에 있는 행당점과 송파점에서 우선 석 달 정도 시범 케이스로 운영할 계획입니다. 그 사이 윤 스포츠센터에서 운영하는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새로운 인력을 수급하면 됩니다. 지원자격은 보육교사 자격증이 있거나 아니면 트레이닝 자격증이 있는 사람들이니 3개월 정도 교육과정을 거치면 충분히 우리가 원하는 인력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든지 말든지. 그건 동지마트 사정이고.”
“사장님.”
“왜 그러나? 아니지. 됐네. 또 무슨 궤변을 늘어놓으려고. 이미 말했지. 우리가 쓸 인원이라고.”
윤 사장님이 손사래를 쳤지만, ‘네. 알겠습니다.’라며 돌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내가 하는 말이면 일단 구박부터 하고 보는 분이라 이정도 반응으로 기죽진 않았다.
“사장님. 특별함은 왜 특별한지 아십니까?”
“…”
“보통과 구별되게 다름. 이게 특별의 사전적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보통과 구별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제가 생각할 때 가장 중요한 건 차별성과 희귀성입니다. 어떻게 보면 평범한 사람들보다 더 열기 힘든 게 부자들의 지갑입니다. 하지만 보통 사람과 다른 차별화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면 기꺼이 비싼 돈을 지불할 수 있는 것도 부자들입니다.”
“…”
“그런데 레어(rare)한 줄 알았던 아이두가 더 이상 레어하지 않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내가 뭐라고 해도 윤 사장님은 계속 못 들은 척이었다. 그러니 어쩌겠나? 속을 긁어서라도 관심을 유발할 수밖에.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뭔가?”
“아이두는 지금 황금알을 낳는 거위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모집정원을 늘리면 그건 거위의 배를 가르는 것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정말 어리석기 짝이 없는 행동이죠.”
“뭐? 이봐. 마 팀장. 지금 나보고 어리석다고 했어?”
“당연히 아니죠. 제가 아는 사장님이라면 그런 어리석은 판단을 하셨을 리가 없죠. 정원을 늘리라는 압박 따위에 흔들릴 분도 아니고요. 웬만하면 실무자들의 판단을 존중해주는 사장님의 판단 정말 존경합니다. 하지만 이번 일은 실무자들이 잘못 판단한 겁니다.”
“그 친구들도 충분한 분석을 했어. 내가 봐도 수입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안이었다고 생각해.”
“실무자들이 왜 그런 실수를 했는지 모르겠지만, 경제학에서 나오는 가장 기초적인 상식을 그 사람들이 간과했습니다. 아이두는 냉정하게 따져 사치품입니다. 사치품을 일반 제품처럼 생각해서 공급을 늘리면 큰 낭패를 보게 됩니다. 물론 정원을 늘리면 당장은 수입이 늘어나니 좋겠죠. 하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는 오히려 매출이 줄어들 가능성이 높습니다. 정원이 늘어난다면 아이두에 가입하기 위해 온 가족이 총출동해 회원 가입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니까요.”
“그렇게까지 정원을 늘릴 계획은 없네.”
“한번이 어렵지 두 번 세 번은 쉽습니다. 처음부터 원칙을 지켰다면, 한 번 무너진 원칙은 누구도 지키려고 하지 않을 겁니다. 압박 때문에 물러나 정원을 늘리면, 방법이 통했으니 사람들은 앞으로도 계속 떼를 쓰겠죠.”
처음부터 규칙을 내세워 안 된다고 하면 항의하던 사람도 결국 납득하게 된다. 그러나 과거에 그런 전력이 있으면 ‘그때는 됐는데, 왜 지금은 안 되느냐.’며 사람 차별한다는 식의 강력한 반발을 사게 된다. 원칙이 그래서 중요하다.
“틀린 말은 아니군, 그래.”
됐다.
드디어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제 결정적인 한 방을 날리면 된다.
“특별함이 평범함으로 전락하는 순간 사람들은 더 이상 아이두에 열광하지 않게 될 겁니다. ”
“크흠...”
“솔직히 아이두의 일 년 연회비는 원래 가치에 비해 굉장히 비쌉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기꺼이 지갑을 여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바로 특별함입니다. 다른 사람은 누릴 수 없는 차별화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죠.”
“D&Y피트니스 클럽도 그렇고 우리도 그렇고 전국적으로 몇 개의 지점을 더 세울 계획이야. 그런데 자네가 말하는 특별함을 생각해서 아이두는 입점하면 안 된다는 소린가?”
“그건 아닙니다. 시장이 다르니까요. 제주도에 사는 사람이 아무리 부자라고 해도 서울 강남에 있는 아이두에 아이를 다니게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서로 다른 독립적인 시장일 때는 상관이 없습니다. 대신 네임 벨류를 떨어뜨려서는 안 됩니다. 한쪽에서는 고급 이미지인데, 다른 한쪽에서는 저급 이미지라면 결국은 둘 다 저급 이미지로 떨어지겠죠.”
“지점은 늘리더라도 정원은 늘리면 안 된다?”
“네. 레어를 노멀로 만들 바에는 차라리 유니크하게 가는 게 나을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가격을 올려버리면 됩니다. 어디까지나 강남이나 서초지점에만 해당하는 이야기입니다. 지금 두 지점의 아이두 연회비가 6개월에 1,500만 원, 1년에 2,800만 원입니다. 그걸 6개월에 2,000만 원, 1년에 3,500만 원으로 올리는 겁니다.”
“샤넬이 했던 고가전략을 그대로 따라 하겠다는 거군.”
“그렇습니다. 특별함 속에 차별성을 둬 그들의 자기 만족감을 극대화 시키는 겁니다.”
“허허.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자네는 은근히 악독해.”
“악독하다니요. 돈이 많은 사람들이지 않습니까? 그 사람들은 절대 가격이 올랐다고 투덜거리지 않을 겁니다. 물론 거기에 맞춰서 몇 가지 고급 교육 프로그램을 추가해야겠지만요.”
이를테면 아이두 강남 스타일 버전, 아이두 서초 스페셜 에디션 버전이라고 할까? 몇 가지 옵션을 추가하면서 가격은 대폭 올려버리는 조금은 치사한 상술이다. 어쨌든, 우리는 돈을 벌어 좋고,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자부심을 느껴 좋다. 이게 바로 일석이조다.
“그렇게 되면 아이두 캐주얼 버전 또한 문제가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평범한 사람들도 자신들과 비슷한 서비스를 받는다고 생각할 테니까.”
만세!
윤 사장님이 드디어 아이두 캐주얼 버전에 관심을 가졌다.
============================ 작품 후기 ============================
아이두 캐주얼 부분에 대해 고민이 많아서 조금 늦었습니다. 밤 12시에 한 편 더 올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