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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가 전부는 아니야-221화 (221/424)

00221  소제목 추후 결정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

동지그룹 본사 도착 30분 전, 현호의 차 안.

“작은 아버지일 가능성이 높지만 확실한 건 아니지?”

“네. 빼도 박도 못할 증거가 나온 건 아니기 때문에 부회장님이 100% 배후라고 장담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럼 일단 작전을 짜자.”

“작전을요? 어떤 작전요?”

“내가 작은아버지를 흔들 테니까 마 팀장은 우리가 대화하는 것만 유심히 바라봐. 물론 표정을 살펴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작은아버지겠지?”

“부회장님을요? 이인자라고는 해도 회장님을 보필해 동지그룹을 재계서열 5위로 올려놓은, 산전수전 다 겪은 노련한 경영자입니다. 섣불리 도발했다가는 오히려 역효과만 볼 겁니다.”

현호의 이야기에 동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니 작전을 잘 짜야지. 마 팀장이 말한 것처럼 동지그룹 이사 자격으로 그룹 부회장님과 대화를 나누는 거라면 이빨도 안 들어가겠지. 하지만 조카로서 작은아버지와 대화를 나누는 거라면 방법을 만들 수 있어. 무례하다고 느껴질 만큼 단도직입적으로 도발해볼 생각이거든.”

“아! 그런 방법이라면 효과를 볼 수도 있겠군요. 아무리 포커페이스로 유명하신 분이라도 조카가 사적으로 대화를 나누자고 하면 단단하게 치고 있던 방어벽이 조금 얇아질 것 같기도 합니다.”

“그렇지? 우리에게는 시간을 두고 차분하게 비자금에 대해 조사할 시간이 없잖아. 꼼수에 가깝지만 어쩔 수 없지.”

“그런데 제가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별걱정을 다한다. 마 팀장처럼 눈치 빠른 사람이 어디 있다고. 작은아버지 얼굴만 보면 분명 볼 수 있을 거야. 내가 대화를 이끌어가는 도중에 확신이 든다 싶으면 오른손으로 턱을 살짝 만져. 그리고 실패한다고 해도 너무 걱정하지 말고. 큰형이면 몰라도 작은아버지라면 크게 문제 삼지 않으실 거야. 할 수 있지?”

“무조건 해봐야죠. 이사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그리 많지는 않으니까요.”

***

“압니다. 그래서 저도 조용히 작은아버지를 찾아왔지 않습니까?”

“흠…. 그렇군. 그래서 공식적이 아니라 사적으로 이야기를 나누자고 한 모양이구나. 잘 생각했다. 비자금은 보통 일이 아니니 그룹 최고위직이 아니면 모르게 하는 게 낫지. 그럼 내가 어떻게 도와주면 되는 거냐?”

억지 가면을 쓴 듯 굳어있던 고진성 부회장의 얼굴에 짧지만 처음으로 감정이 드러났다. 내가 볼 때 그건 안도의 한숨이었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그가 이번 비자금 사태의 배후임을 확신했다. 나는 조용히 오른손을 들어 가볍게 턱을 쓰다듬었다. 언뜻 나를 보던 고현호 이사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어렵지 않습니다. 작은아버지가 동지마트를 이용해 조성한 비자금 전액을 돌려주시면 됩니다.”

“뭐? 너 지금 뭐라고 했어?”

고현호 이사는 나조차 예상 못 한 엄청난 돌직구를 시원하게 날려버렸다. 그리고 그의 돌직구는 미세한 균열을 보이던 고진성 부회장의 표정을 그대로 무너뜨려 버렸다.

“작은아버지께서 동지마트를 이용해 조성한 비자금을 전액 돌려달라고 했습니다. 한 번 더 말씀 드릴까요?”

“현호 너, 지금 날 놀리는 거야?”

“제 성격은 작은아버지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이런 걸로 농담 따먹기나 하려고 부회장실에 들를 제가 아닙니다.”

“그럼 대체 왜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이는 거야?”

“설마 제가 아무런 근거도 없이 작은아버지에게 누명을 씌우겠습니까? 마 팀장. 준비해온 것 보여드려.”

고진성 부회장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노려봤지만, 고현호 이사가 너무 큰 사고를 쳐서 그런지 맹수같은 그의 눈빛에도 더 이상 떨리지 않았다. 지금 이 상황에서 고현호 이사의 측근으로 알려진 내가 고진성 부회장에게 잘 보여봐야 아무 소용없다는 사실이 내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었다. 자포자기의 심정이라고나 할까?

“알겠습니다. 이사님. 이런 자리에서 뵙게 되어 죄송합니다. 부회장님. 제가 동지마트에 발령받아서 고현호 이사님으로부터 많은 권한을 부여받고 가장 먼저 시행한 것이 회계감사였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총무팀 팀원의 제보로 생각지도 못한 비자금에 대한 정보를 얻었고, 본격적인 조사에 들어갔습니다.”

“그래. 지금이라도 그 사실이 밝혀져서 다행이야. 그런데 그 비자금 경로에 이름표라도 붙었단 말인가? 어떻게 현호가 비자금의 배후가 나라고 저렇게 자신하는 건가?”

고현호 이사의 돌발 발언에 흔들렸지만, 금세 얼굴색을 회복한 고진성 부회장이 차분하게 물었다.

“물론 돈에는 사람 이름이 적혀있지 않았죠. 하지만 그게 아니라도 확인할 방법은 얼마든지 많습니다. 설마 저와 이사님이 아무런 준비도 방문했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러니 증거를 내보라는 것 아닌가?”

“혹시 대광실업 이태준 사장이라는 사람을 아십니까?”

“누구?”

“대.광.실.업.의 이태준 사장이라고 했습니다.”

“누구야? 그 사람이? 내가 알아야 할 사람인가?”

같은 부대를 나왔고, 함께 등산까지 다니던 사람을 모른다? 이건 스스로 ‘내가 비자금의 배후다.’라고 고백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 이태준 사장이라는 사람이 이번 비자금 사태의 행동대장이라고 할 수 있는 총무팀장과 잦은 만남을 가졌습니다. 이 USB에는 두 사람이 한정식 식당에서 함께 드나드는 장면이 찍힌 CCTV 영상입니다.”

“그래서?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인데?”

내가 USB를 꺼내지만, 여전히 태연했다.

‘언제까지 그렇게 태연할지 두고 보겠습니다.’

나는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며 서라씨가 구해온 문제의 그 설악산 대청봉 기념사진을 꺼내 고진성 회장 앞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지금 보시는 사진은 10여 년 전 부회장님과 이태준 사장이 함께 등산 가서 찍은 사진입니다. 앞에 두 남자가 들고 있는 플래카드 오른쪽에 있는 상어마크. 해병대 1사단 수색대 X중대를 상징합니다. 그런데도 이태준 사장을 모른다고 하시겠습니까?”

“흠...”

“설마 함께 동고동락했던 해병대 전우를 모른다고 부정할 생각이십니까?”

결정적인 사진증거까지 보여줬는데 함께 군 생활을 했던 사람을 모르는 사람으로 취급한다? 해병대 출신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고진성 부회장이라면 절대 그럴 수 없다.

“아는 사람 맞아. 그래서? 내 군대 후배가 동지마트 총무팀장인지 뭔지를 만났다고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인가? 아까도 말했지. 이런 정황 말고, 내가 비자금 배후라는 증거를 가져오라고.”

그의 말이 맞다. 솔직히 이렇게 배 째라는 식으로 나오면 나로서는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

“그럼 경찰에 수사 의뢰할 수밖에요.”

내가 잠시 고민을 하고 있자 고현호 이사가 끼어들었다.

“현호야. 너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그게 무슨 뜻인지는 알아?”

“제가 왜 모르겠습니까? 하지만 이대로 두면 동지마트는 망합니다. 그럼 저도 끝입니다. 비자금 때문에 대외적으로 동지그룹이 구설수에 오르내리든 말든 저부터 살아야죠. 그게 아니라면 마 팀장이 가져온 증거를 아버지에게 가져다 드리는 방법도 있겠군요.”

“어허. 이 녀석이 점점.”

“아버지에게는 정황증거면 충분하죠. 작은아버지가 해병대를 각별하게 생각하는 건 아버지도 잘 아시잖아요. 그런 해병대 후배, 특히 같이 산악회를 만들어 함께 등산할 정도로 친분이 있는 후배가 비자금 행동책인 동지마트 총무팀장과 자주 만남을 가졌다? 아버지가 이걸 우연으로 생각하실까요? 전적으로 믿었던 동생이, 당신께서 그토록 정상화하려고 노력했던 동지마트를 이용해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어떤 반응을 보이실까요?”

“이 녀석아! 그건 형님이 동지마트에 완전히 관심을 끊으신 다음이야.”

내가 동지마트 행당점 지점장을 압박할 때 사용하던 ‘회장님 카드’를 고현호 이사가 그대로 사용했다. 역시 효과는 탁월했다. 동지그룹의 이인자인 고진성 부회장마저 평정심을 잃을 정도로 회장님은 무서운 존재였다.

“압니다. 작은아버지께서 동지그룹을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지. 그리고 개인적인 부귀영화 때문에 비자금을 조성할 만큼 돈 욕심이 많은 분이 아니라는 것도 잘 압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렇게 생각 안 하시겠죠. 믿었던 도끼에 발등을 찍혔다고 생각하실 겁니다. 웬만하면 눈감아 드리고 싶지만, 제 코가 석 자라서요.”

“휴우…. 그래서 내가 어떻게 하길 바라?”

“파악한 금액만 200억 원이 넘습니다. 가져가신 비자금을 전부 돌려주십시오.”

“한꺼번에 그런 큰 금액을 돌려주긴 어려워.”

“그리고 제가 조만간 동지마트 회생을 위해 추가 지원을 요청할 계획입니다. 작은아버지께서 그 지원안을 통과시켜 주십시오. 그럼 비자금 회수기간에 여유를 드리죠.”

“그거면 충분해?”

“물론입니다. 지금 제 목표는 동지마트를 살리는 것 단 하나뿐입니다. 작은아버지가 그 일만 도와주시면 이번 비자금 문제는 눈감아드리겠습니다.”

“좋아. 현호 너는 한 입으로 두말할 녀석은 아니니 믿어보마. 동지마트 추가 지원안은 분명 반대에 부딪히겠지만 임원들에 대한 설득은 내가 하마. 요즘 용역비리 해결 등으로 분위기가 살아나고 있기 때문에 그들도 완전히 모른척하기는 어려울 거야.”

“감사합니다. 작은아버지. 그리고 작은아버지가 동지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잘 아는데, 이런 식으로 버릇없이 협박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 작품 후기 ============================

일이 있어 이틀 연재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지금 한 편 올리고, 이따 밤에 한 편 더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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