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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가 전부는 아니야-222화 (222/424)

00222  소제목 추후 결정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어땠어? 나 잘한 것 같아?”

무표정한 얼굴로 부회장실을 나섰던 고현호 이사는, 동지마트로 돌아가는 차에 앉아서야 비로소 표정을 풀었다.

“원하던 건 모두 얻어냈으니 잘한 거 맞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경찰에 수사 의뢰하겠다는 말씀에는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진짜 같아 보였거든요.”

“진심이었어. 이판사판이라고나 할까? 동지마트가 망하면 난 갈 곳 없는 신세라고. 그런데 그 순간 마 팀장이 행당점 지점장에게 했던 협박이 떠오르는 거야. 아버지는 검찰이나 경찰이 아니기 때문에 정황증거만 있으면 충분하다는 그 말. 왠지 그걸 그대로 작은아버지에게 사용해도 통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작은아버지에게 아버지는 절대적 존재니까.”

“지켜보는 제 입장에서는 조마조마했습니다. 그래도 원하는 걸 얻을 수 있어서 정말 다행입니다. 비자금을 회수하고 본사로부터 추가 지원금까지 받으면 총알은 넉넉해지게 됩니다. 진짜는 이제부터죠. 여기서 동지마트를 살리지 못하면 이사님이나 저나 동지그룹에서는 명함을 내밀기 힘들 테니까요.”

“실패하면 포장마차라도 할까?”

“하하하. 재벌 2세가 하는 포장마차라…. 재벌 친구분들이 종종 놀러 오면 장사는 될 것 같은데요.”

고현호 이사와 이런저런 수다를 떠는 동안 우리가 탄 자동차는 한남대교에 도착했다. 고개를 돌려 물끄러미 창밖을 내다봤다. 일몰이 가까운 시간. 강물이 저물어져 가는 태양에 반사되어 황금빛으로 반짝반짝 빛났다.

***

현호와 동수가 나가자 고진성 부회장은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Rrrr

- 그래.

“형님. 방금 현호가 다녀갔습니다.”

- 뭐라고 그래?

“비자금 행방을 알아냈습니다. 저를 배후로 지목하면서 전부 돌려달라고 하더군요.”

- 오호. 동지마트로 발령난지 얼마나 됐다고? 알아내기 쉽지 않았을 텐데.

“녀석도 100% 확신을 가지고 온 건 아니었습니다. 혹시나 하고 저를 한번 떠보려고 한 것 같더군요.”

- 그래서?

“하는 짓이 귀엽기도 하고, 정황 증거도 꽤 정확해서 적당히 넘어가 줬습니다. 언론에 그 사실을 공개해버리거나 형님에게 보고해버린다고 협박을 하더군요.”

언제 현호와 언성을 높였느냐는 듯 고진성 부회장은 얼굴에 편안한 웃음까지 띠며 통화를 하고 있었다.

- 그 녀석이? 하하하. 별일이군. 제 작은아버지를 상대로 그런 협박을 할 줄 알고 제법이야. 조금 성장하고 있는 건가?

“아직 독기가 부족한 것 같긴 합니다만 예전에 비한다면 확실히 나아진 것 같습니다.”

- 네 생각에는 어떤 면이 부족해 보였는데?

“제가 비자금의 배후라는 것을 이실직고했음에도 불구하고 요구 조건이 너무 약하더군요. 비자금 회수와 동지마트 추가지원 요청이 전부더군요. 초반에는 제가 녀석의 작은아버지라 마음 편하게 몰아붙였지만, 나중에는 그 사실이 오히려 발목을 잡았습니다. 그룹 부회장의 약점을 잡았으면 독한 마음을 먹고 뜯어낼 수 있을 때까지 뜯어냈어야 했는데 그게 좀 아쉬웠습니다.”

- 그 정도 조건만 들어줘도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아니고?

“물론 그런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형님이 항상 말씀하셨지 않습니까? 상대의 약점을 잡았으면 뼈째로 발라먹을 때까지 놓아주면 안 된다고요.”

- 그렇지. 확실히 현호 녀석은 정에 약해. 작은아버지가 아니라 아버지도 필요하면 단칼에 잘라낼 수 있는 독기가 필요한데 말이야. 그게 부족해.

“그게 약점이지만 한편으론 장점이기도 합니다. 동지랜드를 보면 쉽게 알 수 있지 않습니까? 그곳 독신자 숙소에서 먹고 자면서 직원들과 어울렸고, 그런 가식 없는 모습 덕분에 서로 똘똘 뭉쳐 동지랜드를 살려냈으니 말입니다.”

- 허허. 우리 부회장께서는 현호가 마음에 드나 보지?

“마음에 든다기보다는, 현호가 셋 중에 가장 형수님을 닮아서 그런 것 같습니다. 정호는 평상시에는 참 괜찮은 녀석인데 너무 호기를 부리고 여자를 좋아합니다. 특히 여자문제는 그룹을 이끌어가는 데 있어 심각한 결격사유가 될 수 있습니다.”

- 그러게 말이야. 너나 나나 계집질은 별로 안 좋아하는데 그놈은 누굴 닮아 저러는지 몰라. 쯧쯧.

“누구긴 누굴 닮았습니까? 당연히 아버지를 닮았죠. 어머니께서 아버지 때문에 얼마나 맘고생을 했는지 벌써 잊으셨습니까?”

- 어떻게 잊겠어. 여기저기 싸질러 놓은 덕분에 경영권까지 위태로울 뻔한 적도 있는데. 그러고 보면 생긴 것도 나보다는 제 할아버지를 많이 닮았어.

“저도 정호를 볼 때마다 아버지를 보는 것 같아 흠칫할 때가 있습니다. 생긴 것만 닮았으면 좋은데….”

- 정호는 여자가 문제고. 그렇다면 평호는?

“솔직히 평호야 말로 형님을 가장 많이 닮았죠. 그래서 문제입니다. 지금 우리 그룹이 직면한 문제를 평호가 풀어낼 수 있을까요? 녀석이 가능했다면 형님도 가능했겠죠. 그랬으면 지금처럼 골머리를 앓고 있을 일은 없었을 겁니다.”

- 그러니까 말이야. 아들이라고 셋이나 있는데 어떻게 내 마음에 쏙 드는 녀석이 한 명도 없을까? 정말이지 아쉬워.

“형님!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욕먹으십니다. 주변의 다른 그룹 오너들과 이야기를 나눠 보십시오. 형님처럼 자식 농사를 잘 지은 사람이 있나.”

- 흠. 마음 같아서는 셋을 합쳤으면 좋겠는데, 그게 참 아쉬워. 나를 능가할 재능을 세 녀석이 나눠 가지는 바람에 죽도 밥도 안 된 꼴이 된 것 같아.

“부족한 부분이 있어 아쉽긴 하지만, 그건 가르치면 됩니다. 현호를 봐도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저를 찾아와 흥정할 정도의 깡은 생겼지 않습니까. 정호도 최근에는 크게 여자 문제를 일으킨 적이 없고, 평호는 신경질적인 부분이 많이 사라진 덕분에 주변 평판이 좋아지고 있습니다. 그것만 봐도 저마다 성장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현호가 두 녀석에 비해 조금 더 마음에 들지만 누가 차기 그룹 리더로 적합할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건 형님이 결정해야 할 일이죠.”

자신의 의견을 내놓긴 하지만 모든 결정은 자신의 형에게 전적으로 맡기는 고진성 부회장. 그가 지금까지 아무런 구설수 없이 무사히 이인자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것도 이렇듯 철저하게 자신이 지켜야 할 선을 지킨 덕분이었다.

- 그런데 과연 현호가 동지마트를 살릴 수 있을까?

“형님도 실패했던 일입니다. 아무래도 힘들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만에 하나라도 성공한다면 현호에 대한 평가는 완전히 달라지겠죠. 녀석을 지지하는 임원들의 숫자도 늘어날 테고요. 그리고 동지마트만 살아나면 정체되어 있는 우리 동지그룹에 새로운 활력소가 될 수 있을 겁니다.”

- 두고 보면 알겠지. 그건 그렇고 요즘 현호와 같이 다니는 놈이 하나 있다던데 어떤 녀석이지?

“아! 마동수 팀장을 말씀하시는 건가 보군요. 제가 봤을 땐 썩 괜찮아 보이는 인재였습니다. 머리도 잘 돌아가고 심지도 굳고, 이리저리 현호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 같은 해병대 출신이라고 감싸드는 건 아니고?

“하하하. 그것도 알고 계셨습니까?”

- 안 그러려고 해도 핏줄은 어쩔 수 없어. 나도 아버지더라. 자식 놈들 신변에는 자꾸 눈이 가. 쓸데없는 똥파리들이 꼬이는 건 아닌지 걱정도 되고.

“그건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더군다나 저는 결혼 안 한 딸이 두 명이나 있지 않습니까? 놈팡이 같은 남자를 만나지는 않을까 항상 노심초사합니다. 아 참! 형님. 장희랑 마동수 팀장이랑 대학 동창인 건 아십니까? 보고받기에는 꽤 친한 사이였다고 합니다.”

- 뭐? 우리 막내랑?

“네. 한국에서 대학을 다닐 때 친하게 지냈다가 장희가 미국으로 떠나면서 연락이 끊겼는데, 동지랜드에서 다시 만났다고 하더군요.”

- 음…. 설마 남녀사이는 아니지?

“물론 아닙니다. 그냥 친한 친구 사이입니다. 그리고 그 친구는 결혼은 안 했지만, 약혼은 했더군요. 사실 임자 없으면 우리 막내랑 이어주고 싶었는데 아쉬웠습니다.”

- 그 녀석이 그 정도로 네 마음에 들었단 말이야?

“왜 지난해 미 대사 부부까지 초청했던 어린이날 행사 있지 않습니까?

- 알지. 미 대사 부인의 살신성인 모습 때문에 많은 이슈가 되기도 했으니

“그 행사를 기획한 사람이 마동수 팀장입니다. 현호를 도와 동지랜드를 되살리기도 했고, 특히 D&Y피트니스 클럽이 지금처럼 인기를 얻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 그래? 그렇게 괜찮은 녀석이면 임자가 있든 말든 막내랑 이어주지 그랬어?

“약혼한 여자가 윤 스포츠센터의 여식입니다. 공부도 잘하고 얼굴도 예뻐서 대학만 들어가면 며느리 삼겠다고 여러 집안에서 눈독 들이던 아이였죠. 더군다나 무남독녀라서 결혼만 하면 알짜배기 계열사를 공짜로 하나 얻는 거나 마찬가지라서 물밑 경쟁도 치열했습니다. 결국은 전부 닭 쫓던 개 신세가 됐지만 말입니다.”

- 윤 스포츠센터라…. D&Y피트니스 클럽을 생각해서라도 이어주긴 어려웠겠군. 그런데 윤 스포츠센터 예비 사위면 D&Y피트니스 클럽 업무를 계속 맡겼어야 했지 않아? 왜 갑자기 동지마트로 간 거야. 현호가 자기 사람이라고 데려간 건가?

“그건 아닙니다. 정호가 D&Y피트니스 클럽 프로젝트에 눈독을 들여서 마 팀장을 밀어냈습니다. 제대로 된 끈이 없어 지리산 연수원으로 밀려날 뻔한 마 팀장을 동지마트로 데려온 게 현호였습니다.

- 쯧쯧. 정호 그 녀석은 마 팀장이 윤 스포츠센터랑 무슨 사이인지도 제대로 안 알아보고 그런 일을 저지른 거야? D&Y피트니스 클럽이 성공하려면 윤 스포츠센터와의 협조가 절대적일 텐데, 그놈의 성급한 성격은 아직도 안 나아졌구먼.

“원상 복귀할까요?”

- 아니야. 됐어. 윤 스포츠센터도 생각이 있으면 비협조적으로 나오지는 않겠지. 세계 시장에 진출하는 건 우리만큼이나 그들에게도 중요한 일이니까. 그리고 애들끼리의 경쟁에 내가 끼는 일은 없어. 나는 그냥 방관자 역할만 할 거야. 경쟁 끝에 최후에 남는 녀석에게 경영권을 넘길 생각이야. 그래도 궁금하긴 하군. 최근 들어 우리 동지그룹의 가장 큰 성과가 동지랜드와 D&Y피트니스 클럽인데, 그 두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던 사람이 마동수 팀장이라 이거지? 한번 두고 보자고. 동지마트는 어떻게 될지. 정호의 성급함이 현호에게 날개를 달아준 꼴이 된다면 그것도 재미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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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후기 ============================

연재주기가 들쭉 날쭉해서 죄송합니다. 바쁜 일이 마무리되면 연재주기를 맞출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떡밥을 던질때는 좋았는데, 그걸 회수하는 게 쉽지 않네요. ㅜㅠ 앞으로는 조심조심하며 던져야겠다 후회 중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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