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25 소제목 추후 결정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지난해 3-마트 매장은 총 160개. 매출은 약 10조 원이었다. 매장마다 매출은 다르다. 우리나라 가장 장사가 잘 되는 3-마트 은평점의 경우 단독 매출만 2,000억 원에 이른다. 이 정도 금액이면 웬만한 중소기업은 감히 명함도 내밀기 어려울 정도로 엄청난 금액이다.
산술적으로 매장당 평균 625억 원 정도의 매출이 발생한다. 이런 수치는 2위인 엘마트나 3위인 포에버마트도 대동소이하다. 4위인 대박마트의 경우도 평균 500억 원 정도 매출은 기록 중이다.
그러나 동지마트는 고작 평균 300억 원. 각 지역에서 최고의 명당자리만 차지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정말이지 참담한 성적이 아닐 수 없다. 10개 매장을 합쳐야 3,000억 원이고, 그건 3-마트의 가장 잘나가는 두 개 매장의 매출을 합친 것보다 안 좋은 성적이었다.
“뭐라고? 다시 한 번 말해줄래, 마 팀장.”
“지난달 동지마트 총 매출이 350억 원이라고 합니다.”
평상시 동지마트 월 총매출은 250억 원이다. 그런데 지난달 매출이 무려 40%나 상승했다. 갑자기 많은 손님들이 몰려 기대를 하긴 했지만 매출액이 이렇게까지 엄청나게 상승할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얼마라고? 다시 한 번 말해줄래?”
“이사님! 들으셔 놓고 왜 자꾸 물으십니까.”
“까칠하기는. 믿기지 않으니까 자꾸 물어보는 거잖아. 그러니 한 번 만 더 이야기해주라?”
“지난달 동지마트 총 매출이 삼.백.오.십.억. 원이라고 합니다. 됐습니까?”
“하하하. 350억 원이란 말이지? 대박이다. 대박. 그지, 마 팀장아?”
“흠…. 대박이긴 한데 설마 여기에서 만족하시려는 건 아니죠? 그래 봐야 매장당 월평균 35억 밖에 안 됩니다. 3-마트, 엘마트, 포에버마트는 매장당 월평균이 52억 원이 넘습니다. 대박마트도 매장당 월평균 42억 원이 넘고요. 아직 한참 멀었습니다.”
고현호 이사는 박장대소를 하면서 좋아했지만, 지금 내 입장에서는 드러내놓고 좋아하기는 어려웠다. 일시적인 효과일 뿐이고, 아직 부족하다. 입지조건을 생각하면 최소 월평균 60억 원 정도는 되어야 기본은 한다고 할 수 있다.
너무 많은 걸 바란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3-마트 매출 순위 상위 30% 매장의 월평균 매출액이 100억 원이 넘는 걸 감안하면 목표인 60억 원도 그리 큰 금액은 아니다.
“그래도 좋은 건 좋은 거잖아. 이럴 땐 좀 기뻐해도 돼. 좀 웃어라, 마 팀장.”
“하. 하. 하. 웃었습니다.”
“쯧쯧. 재미없는 친구 같으니라고. 그러니 직원들이 마 팀장만 보면 무서워서 얼굴이 창백하게 질리는 거야. 저승사자 보는 눈빛이라니까.”
“아이고. 인기 많으셔서 좋으시겠습니다. 요즘은 사인 연습도 하신다면서요? 그러다 연예인병 걸리십니다.”
고현호 이사와 나는 하루에 한 번은 무조건 송파점과 행당점 지점을 방문해 매장 전체를 한 바퀴 둘러본다. 가끔은 경기도에 있는 매장도 들른다. 마음 같아서는 전국 매장도 매일같이 돌아보고 싶지만 거리상으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그러지 못하는 게 아쉬울 따름이다.
그런데 메스컴을 통해 유명해진 고현호 이사가 지나가면 방문객이나 심지어 직원들까지 다가와 사인을 요청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럴 때마다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하나도 빼놓지 않고 전부 사인을 해준다. 그러다 한 번은 사인만 한 시간 이상 하는 바람에 중요한 미팅에 늦을 뻔한 적도 있었다.
처음에는 생각 없이 본인의 결재용 서명을 사인으로 해주길래 깜짝 놀라 말렸었다. 그래서 일단은 ‘고현호’라는 이름 세 글자를 사인 대신으로 하다가 얼마 전에 새로운 사인을 만들었다. 바빠서 서류결재를 받기 위해 찾아갔더니 내가 온 줄도 모르고 열심히 사인 연습에 열중하고 있는 모습을 보며 이런 사람을 위해 열심히 일해야 하는지 의구심이 잠깐 들기도 했었다.
“뭐야. 아직도 삐친 거야? 내가 설명했잖아. 이게 전부 동지마트를 위해서라고. 내가 방문객들을 만나 재수 없게 대해봐. 사람들이 얼마나 실망하겠어. 그리고 소문도 금방 돌걸? ‘비정규직 직원들을 위한다던 고현호 이사, 알고 보니 냉정하고 싸가지 없더라. 난 앞으로 다시는 동지마트에 안 가련다.’ 이런 식의 이야기도 오갈 수 있으니 친절하게 대해야지.”
“그럼요. 잘하셨습니다. 단! 그런 사소한 일은 회사가 아니라 집에서 하세요. 안 그럼 정말 삐칩니다.”
억지인 걸 알면서도 괜한 심술을 부렸다. 인기 있는 고현호 이사를 보면 솔직히 부럽다. 부러운 것도 부러운 거지만 고현호 이사의 말처럼, 나만 보면 소스라치게 놀라는 직원들을 보면 마음이 우울해진다.
사실 착한 놈 나쁜 놈 작전은 내가 고안해낸 아이디어였다. 나는 직원들에게 무섭게 대하고, 나에게 갖은 핍박(?)을 받은 직원들을 감싸 안는 역할은 고현호 이사가 하기로 했다.
그런데 내가 역할극에 너무 심취한 것이 문제였을까? 직원들이 정말 나를 저승사자처럼 대하기 시작했다. 물론 몇몇 짜증 나는 인간들을 구속까지 시켜버렸으니 무서워할 만하긴 하다. 하지만 알고 보면 진짜 나쁜 놈들만 구속했지 개선의 여지가 보이는 사람들은 일단 내버려 두고 있다.
그런 내 마음은 몰라주고 자꾸 슬금슬금 피하다 보니 화장실조차 가기가 쉽지 않다. 볼일을 보다가도 나를 보면 놀라서 소변을 끊고 나가는 직원들을 보면 그들이 내 눈치를 보는 건지 내가 그들 눈치를 봐야하는 건지 헷갈릴 지경까지 이르렀다.
“에이. 왜 그래. 그래도 요즘은 새로운 별명이 생겼잖아. 마법사 마동수. 하하하하하.”
“그게 웃기세요?”
“그럼 웃기지. 그냥 마법사도 아니고 동정 마법사라잖아. 큭큭큭. 아! 미안. 정말 안 웃고 싶은데 자꾸 웃음이 나와.”
고현호 이사가 또다시 깔깔거렸지만, 이럴 때 발끈하면 계속 놀림거리만 된다. 그냥 화제를 돌리는 게 상책.
“그런데 이제 슬슬 탁아소 운영을 시작해야 할 시기입니다. 이사님이나 시연이의 인기로 매출을 올리는 대는 한계가 있으니까요.”
“그렇긴 하지. 이번에 새로 런칭할 탁아소 이름이 ‘아이좋아’라고 했지?”
“네. 윤 스포츠센터 협상 담당자가 이름을 그렇게 하고 싶다고 해서요.”
“윤 스포츠센터 협상 담당자가 시연씨라면서. 협상 진행은 잘 마무리된 거야?”
“말도 마십시오.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협상이었습니다.”
“응? 아니 왜? 그래도 약혼녀인데 설마 까다롭게 굴었어?”
우리 시연이가 당연히 그럴 리가 없다.
“아니요. 그냥 딱 한마디만 했습니다. ‘동수씨 알아서 하세요. 저는 동수씨 믿어요.’ 라고 말이죠.”
“오! 역시 우리 제수씨다워. 그런데 뭐가 문제야?”
“제가 만약 동지마트에 유리한 조건으로 계약을 마무리하면 그 계약서를 보신 윤 사장님께서 어떤 생각을 하실 것 같으세요?”
“흐음. 글쎄. 아마도 약혼녀까지 등쳐먹는 나쁜 예비사위?”
“잘 아시면서 뭐하러 물어요. 이사님 생각이 맞습니다. 그렇다고 한시가 급한 동지마트를 두고 윤 스포츠센터에 유리하도록 진행할 수도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래서 어쩌겠습니까. 그냥 머리에서 쥐나 나도록 열심히 고민해서 두 회사가 만족할 수 있는 조건으로 계약서를 만들었죠. 조만간 윤 사장님과 만나서 계약서에 사인하시면 됩니다. 그전에, 계약서는 여기 있으니 이사님께서 검토하고 수정할 내용 있으면 체크해 주세요.”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며칠을 고생해서 만든 계약서 원본을 고현호 이사에게 건넸다.
“수고했어. 이제 아이좋아만 성공적으로 런칭하면 동지마트는 정상궤도에 오를 수 있는 건가?”
“정상궤도까지는 몰라도 며칠 전 김학수 부장님이 말했던 충성심 높은 슈퍼팬을 다수 확보할 수는 있을 겁니다. 거기에 문화센터만 제대로 운영할 수 있으면 완전히 안정권에 들어설 수 있겠죠.”
“그게 좀 아쉽긴 하다. 윤 스포츠센터나 D&Y피트니스 클럽 캐주얼 버전을 만들 수 있다면 훨씬 큰 도움이 될 텐데 말이야.”
원래 계획 중 하나였던 중급 스포츠센터는 공간 확보가 어려워 결국 포기했다. 아무리 윤 스포츠센터나 D&Y피트니스 클럽의 명성을 빌린다고 해도, 성인 대상의 스포츠센터는 강사의 퀄리티 이상으로 시설 또한 중요하다. 하지만 급히 공간을 확보해서 만들기에는 비용이나 시간 모든 면에서 비효율적이라는 의견에 결국 포기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대신 요가나 필라테스처럼 큰 공간이 필요하지 않은 GX 프로그램과 백화점 문화센터 이상의 퀄리티가 있는 여러 교양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로 결정했다. 대형 할인 마트가 문화센터를 운영한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굉장한 모험수다. 그래서 주변에 큰 백화점이 없어서 꽤 경쟁력이 있을 것 같은 지점만 특별히 선정했다.
이번 모험이 성공한다면 해당 지역과 완전히 동화되어 고객들의 교육에 대한 갈증을 풀어줄 수 있는 문화의 장으로 변모하게 된다. 단순히 물건을 사러 오는 곳이 아니라 놀고, 즐기고, 배울 수 있는 신개념의 고객 친화형 대형 할인 마트로 거듭날 수 있다.
“오히려 잘 된 일입니다. 윤 스포츠센터에 너무 의존하는 것도 안 좋은 일입니다. 그리고 스포츠 전문보다는 여러 가지 분야를 다양하게 배울 수 있는 문화공간으로 특성화하는 것이 경쟁력 확보에는 더 나을 수도 있습니다. 주변에 스포츠센터는 많아도 문화센터는 별로 없으니까요.”
“그건 그래. 그런데 문화센터는 정말 강사의 질이 중요해. 그러니 다른 것보다 훌륭한 강사진을 확보할 수 있도록 신경을 써야 할 거야.”
“알겠습니다. 그 부분을 특별히 신경 써서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