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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가 전부는 아니야-226화 (226/424)

00226  소제목 추후 결정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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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박하나. 나이는 서른다섯이고 다정다감한 남편과 토끼 같은 네 살배기 딸이 있는 워킹 맘이다.

지금은 남편과 함께 송파에서 살고 있지만, 우리 친정은 강남에 있었다. 넉넉한 가정형편 덕분에 부족함 없이 자랐고 덕분에 나도 한때 된장녀 소리 좀 듣고 살았다.

그렇다고 내 과거가 딱히 부끄럽지는 않다. 원래 된장녀는 경제적 능력이 없으면서 부모님이나 남자에 의존해 해외 명품 소비를 선호하고 고급 커피를 즐겨 마시는 족속을 이르는 말이다. 걔네들은 내가 생각해도 한심해 보인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스타벅스에서 커피만 마셔도 된장녀 취급하는 못난 남자들이 늘어났다. 그런 못난 남자들이 나를 된장녀라고 부르든 말든 그건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니다.

물론 나도 스타벅스를 자주 가고 명품 좋아한다. 하지만 직장을 다니며 받은 월급으로 애용하지 남자들에게 의존한 적은 없다. 살짝 허세는 있어도 거지는 아니다.

스타벅스에 가서 매일 5,000원짜리 커피를 마시면 한 달에 15만 원이다. 그리고 나는 담배를 피는 것도 아니고, 술을 좋아하지도 않는다. 한 번 술 마시기 시작하면 하룻밤에 10만 원은 쉽게 쓰는 남자들이 고작 5,000원짜리 커피를 마신다고 된장녀라고 매도하다니, 정말 웃기지도 않는 일이다.

솔직히 만약 내가 진짜 된장녀였으면 남편과 결혼하지도 않았을 거다. 우리 신랑이 훈남에 능력도 있지만 집안 형편상 경제적으로 넉넉한 편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나는 그런 사실에 아랑곳하지 않고 결혼에 골인했다.

나는 꽤 좋은 조건의 구애자들을 놔두고 지금 남편과 결혼을 결정하자 몇몇 친구들은 후회할 거라며 다시 생각해보라고 충고 아닌 충고를 했었다. 나야 당연히 들은 척도 안 했다. 내겐 돈보다는 사랑이 먼저다. 한 번밖에 살지 못하는 인생인데 당연히 사랑하는 사람과 살아야 한다는 게 내 인생의 지론이었다.

이제 결혼생활도 어느덧 5년 차고 우리에게는 예쁜 아기도 생겼다. 남부러울 것 없는 삶이지만 한 가지 고민이 바로 아이의 육아였다. 2년 동안 직장을 쉬면서 아이만 돌봤지만, 나도 내 삶이 있기 때문에 언제까지 집안일만 하고 살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남편 월급만으로 아파트 대출금과 육아비까지 감당하려니 보통 힘든 게 아니라 나를 위해서나 집안을 위해서나 직장생활은 반드시 필요했다.

재취업을 결정하면서 가장 마음에 걸렸던 게 바로 육아였다. 우리 귀염둥이를 믿고 맡길 사람이 필요한데 그런 곳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남들은 시댁이나 친정에 아이를 맡긴다고 하는데 우리는 그러기도 힘들었다.

시댁은 지방에 있고, 우리 엄마는 절대 손주를 봐주실 분이 아니다. 내가 남자에 의존하지 않고 독립적인 여성으로 자랄 수 있었던 건 엄마의 영향이 컸지만, 지금처럼 육아 문제가 생기자 남들처럼 평범한 엄마였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운 생각이 들기도 했다.

울며 겨자 먹기로 주변에 괜찮은 어린이집을 찾아서 아이를 맡기고 있지만 목에 가시가 걸린 듯 항상 마음이 불편했다.

그런데 우연히 친구를 따라 윤 스포츠센터 강남점을 방문하면서 나를 불편하게 했던 가시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곳에 있는 ‘아이두’라는 곳은 우리 아이가 다니고 있는 어린이집과는 차원이 다른 곳이었다. 시설뿐만 아니라 애정 가득한 눈빛으로 체계적으로 유아들을 가르치는 강사의 성실한 모습을 보며 이곳이라면 내가 진짜 마음 놓고 딸을 맡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년에 무려 2,300만 원이라는 엄청난 연회비에도 그런 마음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아이 앞에서는 나도 역시 허영기 가득한 다른 엄마들과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친정에 가서 그 이야기를 했더니 아빠가 대뜸 아파트 하나 구해준다고 강남으로 이사를 오라고 하셨다. 지금까지 한 번도 그 말에 혹한 적이 없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그 말이 솔깃하게 들렸다. 그러나 그 이야기를 우리 남편에게 옮길 수는 없다. 나를 위해주는 착한 남자라 내가 조르면 어쩔 수 없이 들어주겠지만, 나 좋자고 그이의 자존심에 생채기를 내는 건 싫다.

사람의 마음이란 참 간사하다. 몰랐을 땐 만족스럽지 않아도 어떻게든 살 수 있었는데, 아이두를 보고 난 뒤에는 계속 그곳이 생각나 내 머릿속을 괴롭혔다. 남편에게 말을 할까 벙어리 냉가슴 앓듯 혼자서 그렇게 결론도 나지 않는 고민을 계속 했다.

그리고 오늘 아침. 문밖에 놓인 신문을 가지고 들어오는데 신문에서 전단지 한 장이 툭 떨어졌다. 오늘도 쓸데없는 광고가 들어왔겠구나 싶어 재활용 폐지함에 넣어두려고 집어 드는데 눈에 확 띄는 문구가 나를 사로잡았다.

[아이두를 탄생시킨 동지그룹과 윤 스포츠센터가 손을 잡고 새롭게 선보이는 ‘아이좋아’가 선진 보육문화를 이끌어 갑니다. 올 12월까지 함께 할 무료 원생을 모집하니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이걸 보는 순간 내 마음은 이미 ‘이건 꼭 등록해야 해.’라며 속삭였다.

다른 곳도 아니고 아이두를 탄생시킨 동지그룹과 윤 스포츠센터가 합작해서 새롭게 만든 탁아소다. 기름기를 빼서 가격을 현실화했다는 것 자체가 마음에 들었다. 6개월에 600만 원, 1년에 1,000만 원이 저렴하지는 않지만 연회비가 2,800만 원인 아이두를 생각하면 비싸다고 하기 어렵다. 그리고 윤 스포츠센터 강남점과 서초점은 몇몇 프로그램을 추가해서 연회비를 1,000만 원 가까이 올린다는 소문을 생각하면, 아이좋아의 가격은 저렴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거기다 아이두에서 진행하는 여러 가지 프로그램 중 알짜배기만 뽑아서 새로운 보육 시스템을 만들었고, 우리나라 재계서열 5위인 동지그룹이 보증한다고 하니 믿음도 갔다.

10월부터 12월까지 무료로 운영하는 것도 대박인데, 2011년 신규 모집을 할 때 동지마트 VVIP 회원에게는 50%를 할인해준다고 한다. 더군다나 VVIP 회원은 아이좋아 등록 우선권까지 준다고 하니 무조건 VVIP 회원부터 되고 봐야 했다.

회사를 출근해도 그 문구가 계속 신경 쓰여 제대로 업무를 보기 힘들 정도였다. 그래서 부장님에게 부탁해 재빨리 반차를 내고 곧바로 집 근처에 있는 동지마트로 달려갔다. 신문에 함께 들어있던 전단지를 나만 본 게 아니었는지, 멤버십 카드를 만들어주는 고객지원 데스크는 내 또래의 여자들로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다행히 보안요원들이 적극적으로 인원통제를 해서 혼잡함은 줄일 수 있었지만, 그래도 내 순서가 오기까지 3시간 가까운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평상시 같으면 분명 항의를 했을 거다. 하지만 지금 이곳에 온 사람들 대부분의 목적은 ‘아이좋아’였고, 그래서 우리는 갑이지만 을 같은 상황이라 항의는 꿈도 꾸지 못했다. 괜히 처음부터 미운털을 박혀 혹시라도 불이익을 당하면 나만 손해라는 생각을 모두가 하고 있었던 것 같다.

“박하나 고객님. 멤버십 카드 여기 있습니다. 이 카드는 동지마트 뿐만 아니라 동지그룹 계열사의 모든 매장에서 제품을 구매할 때는 언제든 사용 가능한 통합형이니 많은 이용 해주세요. 저희 동지마트를 방문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드디어 내 순서가 되었고 기다리면서 미리 작성해놓은 가입신청서를 제출하자, 직원은 익숙한 솜씨로 재빨리 멤버십 카드를 만들어 내게 건넸다.

“그럼 동지그룹 계열사의 다른 매장에 들러 제품을 구매해도 아이좋아 포인트가 올라가는 건가요?”

“아! 아이좋아에 관심이 있는 고객이셨군요. 동지마트에서 제품을 구매하면 1,000원 당 1포인트가 올라갑니다. 그리고 다른 계열사의 매장인 경우에는 0.5포인트만 올라가세요.”

“동지마트에서 동지그룹 제품을 사면요?”

“그렇게 되면 1.5포인트가 올라갑니다. 고객님. 아이좋아의 원생은 VVIP 고객 중 70%, 일반고객 중 30% 비율로 뽑을 예정입니다. 그리고 연회비 50% 할인은, 물론 VVIP 고객님에게만 해당됩니다.”

“일반 고객 중에서도 뽑는다고요? 떨어진 VVIP 고객들은 어떡하고요?”

“죄송하지만 VVIP 고객이 되는 조건이 조금 까다롭습니다. 일단은 70%라고 했지만, 실제로 원생으로 등록할 수 있는 VVIP 고객님들의 숫자는 대략 50% 정도라고 예상하고 있습니다.”

까다롭다는 건 결국 동지마트에서 많은 돈을 써야 한다는 의미다. 노골적인 장삿속인 게 훤히 보이지만 내 딸을 아이좋아에 등록할 수만 있다면 충분히 넘어가 줄 용의가 있었다. 지금 우리 형편에 동지마트 VVIP 고객이 되는 건 불가능하지만, 내게는 그걸 가능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든든한 카드가 있었다.

“혹시요. 포인트 적립은 카드로만 할 수 있나요? 다른 가족이 물건을 사도 제 카드로 적립할 수 있나 싶어서요.”

“물론 가능합니다. 제품을 구매하고 멤버십 카드 대신에 고객님의 전화번호를 불러주시면, 박하나 고객님 앞으로 포인트가 적립됩니다. 그리고 윤 스포츠센터를 이용해도 포인트는 적립됩니다.”

“어머. 윤 스포츠센터까지 된다고요? 생각도 못 하고 있었는데 고마워요.”

역시 된다. 그게 가능하면 조금 미안하지만, 엄마 아빠에게 부탁하면 된다. 필요없는 돈을 쓰는 게 아니라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고, 비슷한 제품을 구매할 때 이왕이면 동지그룹 제품을 이용해달라는 게 크게 무리한 부탁은 아닐 거라 믿는다.

특히 윤 스포츠센터가 된다는 사실은 내겐 정말 희소식이다. 지금 엄마 아빠는 아는 사람 부탁으로 대박 스포츠센터를 이용 중인데, 서비스가 불만족스럽다며 윤 스포츠센터로 옮기고 싶어 하셨다. 스포츠센터를 옮기면서 컨트리클럽까지 같이 등록하면, 순식간에 한 사람당 1억 이상을 사용하는 셈이 된다.

동지마트를 이용하는 건 아니기 때문에 0.5 포인트만 적립된다고 해도 2억 원이면 10만 포인트다. 이 정도면 충분히 VVIP 고객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아! 생각만 해도 벌써 행복해진다.

Rrrr

직원에게 상세한 설명까지 들은 나는 고객지원 센터에서 나오면서 곧장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런 부탁은 역시 아빠가 훨씬 잘 들어준다.

- 여보세요. 하나니?

“응, 아빠. 아빠! 있지. 대박 소식이 있어요. 엄청나게 무리한 건 아니니까 아빠가 꼭 들어줬으면 좋겠어.”

- 뭔데 우리 딸이 이렇게 애교까지 부릴까?

“호호호. 그냥 먼저 들어준다고 약속해주면 안 될까? 응, 아빠?”

- 그래? 알았어. 우리 딸이 아빠를 곤란하게 만들 부탁을 할 리는 없으니, 믿고 약속하마.

“아빠 고마워. 있지. 내가 오늘 동지마트에 가서 멤버십 카드를 만들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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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후기 ============================

이런 캐릭터, 혹시 약간 재수없게 느껴지나요?

물론 이번 에피소드에서만 등장하고 사라질 캐릭터지만, 요즘 제가 만든 여자 인물들이 독자님들에게 미움 받는 일이 많아서 그런지 궁금증이 생깁니다.

제 나름대로는 얄밉지만 싫지않고 귀여운 캐릭터로 만들어 본 건데, 독자님들은 어떻게 느껴지는지 간단한 코멘트라도 남겨주시면 새로운 조연급 인물이나 차기작 여성캐릭터를 만드는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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