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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가 전부는 아니야-229화 (229/424)

00229  소제목 추후 결정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까도 까도 계속 나오니 이제 좀 무섭습니다. 마트를 팔려고 태업을 지시하지를 않나? 비자금, 용역비리, 납품비리에 직원들은 회사에 손톱만큼의 애사심도 없고. 그래도 용을 써서 조금씩 고쳐놨더니, 더 큰 문제가 튀어나와 사람 속을 뒤집어 놓으니까요. 이럴 거면 D&Y피트니스 센터처럼 완전히 백지에서 시작하는 게 훨씬 나을 뻔했습니다.”

“그래도 조금만 더 고생해보자. 지금까지 노력한 게 아깝잖아.”

“그러게요. 지금까지 고생한 게 아까워서라도 여기서 물러날 수는 없죠. 그래서 말인데요. 이사님.”

“왜? 괜찮은 생각이라도 있어?”

“만약 협상하다가 계속 비협조적으로 나오는 동지 계열사가 있으면 과감하게 그 회사 제품 전체를 빼버리죠.”

“뭐라고? 마 팀장아. 아무리 그래도 그건 좀 아니지 않아?”

내 제안이 뜬금없다고 느꼈는지 고현호 이사의 반응이 처음부터 부정적이었다.

“물론 최대한 협상을 해볼 생각입니다. 그런데 이사님도 아시겠지만, 무슨 일이든 거기에 정치적 논리가 개입되면 비상식이 상식이 되어버립니다. 같은 동지 계열사를 오히려 차별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대권 경쟁 논리가 들어가면 차별이 당연한 게 되는 거죠. 그러니 최악의 경우까지 생각하고 협상에 임하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그 최악의 경우가 동지 계열사 제품을 전부 빼버리는 거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너무 극단적인 결정 같은데.”

“동지 계열사 제품을 전부 빼버리는 게 아니라, 끝까지 비협조적으로 나오는 계열사의 제품만 빼자는 겁니다. 솔직히 그쪽이 배짱을 부릴 수 있는 이유가 뭐겠습니까? ‘설마 같은 계열사인데 우리 제품을 빼진 않겠지.’라는 믿음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기들이 먼저 같은 계열사인 동지마트를 개똥 취급 하는데 우리라고 계속 의리를 지킬 필요가 뭐 있겠습니까?”

어쩌면 객기를 부리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으나, 이것 또한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모두 고려해 내가 생각해낸 최후의 수단이었다.

“설마 안 빼겠지라는 믿음도 믿음이지만, 10개 매장밖에 없으니 더더욱 배짱을 부리는 거겠지.”

“물론 그렇습니다. 그게 동지마트의 가장 큰 약점이니까요. 아무리 물건을 많이 팔아도 3-마트처럼 전국에 있는 160개 지점에서 판매하는 건 절대 따라잡을 수 없죠.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대형 할인 마트 10개 지점이 절대 작은 건 아닙니다. 지금처럼 빠르게 정상궤도에 오르고 있는 상황이라면 하루에 동지마트 전 지점이 소화할 수 있는 물량은 절대 무시할 수량이 아닙니다.”

“흠…. 그래서?”

“100개를 팔다가 90개밖에 팔지 못하면 사라진 10개가 아쉬운 게 사람 심리입니다. 특히 회사 영업팀의 경우 그 10개가 자신들의 1년 목표량을 채우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에 큰 영향을 줄 수도 있습니다. 1년 매출 계획을 세울 때 우리 동지마트 판매량도 당연히 집어넣었을 테니까요.”

영업팀으로 발령 난 입사 동기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다음 해 매출 목표는 항상 아슬아슬하게 잡는 편이다. 그래서 가끔은 10개 아니라 1개가 아쉬울 때도 있다고 한다. 이제 슬슬 연말이 다가오고 있는 시점이니 여기서 갑자기 물건을 빼버리면, 그들 입장에서도 꽤 당황스러운 일일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물건을 전부 빼버리면 자기들도 아쉬울 거다?”

“네. 지금까지는 동지마트가 감히 자기들의 물건을 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겁니다. 그러니 이번에 제대로 보여주는 겁니다. 읍참마속의 심정이라고 해도 좋고, 그냥 단순한 객기라고 해도 좋습니다. 어쨌든, 우리가 갑자기 동지 계열사의 물건을 빼버리면 다른 회사들이 어떻게 생각할 것 같습니까?”

“같은 계열사도 빼버렸으니 다른 회사 물건을 빼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경각심을 가지려나?”

“네.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게다가 동지 계열사의 라이벌 업체와 협상할 땐 꽤 유리한 고지를 점령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너희 제품을 독점 판매해주겠으니 공급가격을 조정해달라. 이렇게요.”

“라이벌 업체 입장에서는 웬 떡이냐 하겠군. 거절할 이유도 없겠고. 그런데 대형 할인 마트의 장점 중 하나가 다양성인데 일부 제품이라고 해도 독점 판매를 하면 소비자들이 싫어할 텐데. 그건 어떻게 생각해?”

“그것도 물론 고려했습니다. 다행히 우리에게는 석 달 정도의 시간이 있습니다.”

“무슨 시간?”

“제가 방금 말한 똥배짱을 부릴 수 있는 시간요. 일단 용역비리 척결로 이사님의 인기가 높아졌고, 시연이의 광고 출연 효과도 매우 좋습니다. 여기에 내년 1월에는 아이좋아 신규회원을 모집합니다. 아이두 덕분에 아이좋아까지 엄청난 관심을 받고 있으니, 최소 10, 11, 12월은 동지마트를 이용하려는 고객이 계속 늘어날 겁니다.”

“아! 그러니까 그 시간을 이용해 동지 계열사들의 버릇을 고치고, 가격 경쟁력까지 확보하자?”

“네. 3개월 정도 동지 계열사 제품을 받아주지 않으면, 정치적 논리 따위는 저만치 사라지고 없을 겁니다. 같은 계열사인 동지마트 때문에 라이벌 업체에 밀려 매출액이 감소하면 그룹 내에서도 꽤 큰 이슈가 되겠죠. 하지만 명분은 우리에게 있습니다. 처음부터 계열사 간의 편의를 봐주지 않은 쪽은 동지마트가 아니니 비난은 우리가 아니라 동지 바이오나 동지 오피스의 사장이 받을 겁니다.”

물론 이슈가 안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나에게는 든든한 지원군인 김학수 부장이 있다. 그가 도와준다면 그룹 내에 재미난 이슈거리를 만드는 건 일도 아니다.

동지마트가 동지 계열사의 물건을 취급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그룹 내에 퍼지기만 하면 그때부터는 가만히 놔둬도 소문은 알아서 퍼질 것이다. 결국, 모든 책임은 우리를 찬밥 취급했던 계열사 사장들이 져야 한다.

“거기에 개인의 사리사욕 때문에 동지마트에 비협조적이었다며 두 형님까지 곤란한 지경에 빠질 수도 있겠군. 인제 보니 아까 와서 두렵다니 어쩌니 한 건 전부 쑈였군. 이렇게 확실한 해결책을 가져와 놓고 엄살부리기가 있어? 난 마 팀장이 진짜 힘들다고 하소연하는 줄 알고 얼마나 마음 졸였는데.”

“진짜 힘든 거 맞거든요. 이렇게까지 했는데, 또 다른 일이 터지면 그땐 정말 사표를 쓸지도 모릅니다. 이러다가 정말 머리털이 빠질 지도 몰라요.”

“내가 전문가를 초빙해 매주 최고급 두피 캐어를 받을 수 있도록 조치를 해줄게.”

“에이. 농담도 잘하십니다.”

“농담 아니야. 나도 요즘 머리카락이 점점 빠지는 것 같아 고민이었거든. 그러니 같이 받아 보자.”

“여기 사무실에서요?”

“못할 것도 없지.”

“흠…. 이사님이 받는 거면 엄청 비싸고 좋은 거겠죠?”

“당연하지. 마 팀장은 가끔 잊어버리는 것 같은데 나 재벌 2세거든. 두피 캐어 따위는 최고급으로 받을 능력 있는 남자라고.”

“그럼 저도 사양은 하지 않겠습니다. 그런데 이사님.”

“왜? 또 할 말이 남았어?”

“지금 제가 하고 있는 모든 해결책은 전부 단기적인 전략일 뿐입니다. 그건 아시죠?”

아무리 좋은 방법을 많이 고안한다고 해도 박리다매를 이기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우리 동지마트에서만 판매하는 특별한 재화가 여럿 존재하지 않는 이상, 소비자들은 결국 가격이 싼 곳을 찾아간다.

앞으로 6개월. 길어야 1년이다. 그 안에 근본적인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면 결국 동지마트는 과거의 무기력한 모습으로 돌아갈지도 모른다.

“알지. 물량에 장사가 없다는 건 경영학의 기본 중의 기본이잖아.”

“확실히 해결책이 있으신 거죠?”

“나도 지금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있어. 조금만 기다려 봐. 조만간 마 팀장에게도 이야기해 줄 테니까. 그러니 그때까지만 더 고생해줘.”

“네.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이사님만 믿고 계열사와의 협상을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

동지 바이오는 화장품과 생리대, 샴푸, 섬유유연제 같은 생활용품들을 판매하는 회사이며 우리나라 매출 순위에서 2위를 차지할 만큼 꽤 잘나가고 있다. 더군다나 작년부터는 해외 수출 실적이 경쟁업체보다 한발 앞서고 있어 수출을 포함한 총 매출액으로는 1위 기업에 등극했다.

동지 바이오의 성장은 3년 전 부임한 현(現) 사장의 공이 크다는 평을 받고 있다. 그만큼 능력을 인정받고 있고, 능력만큼 야망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 그가 선택한 사람이 바로 동지그룹 회장의 첫째 아들인 고정호 전무였다.

“안녕하십니까. 부장님. 동지마트의 TF팀을 맡고있는 마동수 팀장이라고 합니다.”

“어서 오시게. 갑자기 연락이 와서 찾아오라고 하긴 했네만, 그래 무슨 일로 나를 보자고 한 건가?”

가격 협상을 위해 내가 가장 먼저 방문한 곳은 동지 바이오 영업부였다. 영업부 부장의 이름은 배운규. 능력도 있고 아부도 잘하는, 좋게 말해 융통성이 있다는 평을 듣는 사람이었다. 사장이 새롭게 부임한 이후 계속해서 영업부를 책임지고 있고, 성과도 괜찮은 걸 보면 위에서 꽤 신임받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지금 동지마트가 대대적인 조직 개편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당분간 동지 바이오와의 거래를 제가 맡게 되어 인사차 들렀습니다.”

“흠…. 그렇군. 그런 일이라면 저녁에 와서 술 한잔 사면서 하는 게 예의지.”

가장 큰 단점이 과하게 애주가인 점이라더니 시작부터 술 이야기다. 그렇게 마음에 드는 위인은 아니었다.

“아! 술을 좋아하시나 보군요. 죄송합니다. 뉴스를 보셨는지 모르겠지만, 요즘 우리 동지마트가 여러 가지로 정신이 없습니다. 그래서 일단은 인사부터 드리는 게 순서 같아 이렇게 빈손으로 찾아왔습니다. 서운하셨다면 죄송합니다. 술은 제가 조만간 다시 자리를 마련하겠습니다. 이사님에게 꽤 넉넉하게 활동비를 지급 받았으니 기대해 주십시오.”

“오호. 빈손으로 와서 생각이 없는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예의는 아는 사람이었군. 서서 이럴 게 아니라 일단 자리에 앉아서 이야기하자고.”

퉁명스러웠던 배운규 부장은, 나중에 술자리를 마련하겠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웃음을 지으며 나를 소파에 앉혔다.

“감사합니다.”

“듣자하니 요즘 동지마트 분위가가 어수선한 이유가 전부 마 팀장 때문이라던데.”

“네? 그런 소문이 돌고 있습니까?”

“허허. 모른척하기는. 벌써 소문이 자자하다네. 젊은 친구 한 명이 동지마트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다고. 어떤 사람은 고현호 이사님이 천둥벌거숭이에게 시퍼런 칼을 쥐여준 꼴이라고 수군거리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영업 때문에 동지마트에 몇 번 들렀지만 확실히 변화가 필요한 곳이었거든.”

“그렇게 생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공사가 다망한 분께서 나를 찾아왔다는 건 뭔가 내게 할 말이 있다는 의미겠지? 바쁜 사람들끼리 말을 빙빙 돌려 뭐하겠나?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속 시원하게 말하게. 들어줄 수 있는 일이면 들어주고, 아니면 말면 되지 않겠나?”

배운규 부장은 내가 자리에 앉자마자 단도직입적으로 질문을 던졌다. 잘나가고 있는 동지 바이오의 영업부장인 만큼 역시 그렇게 호락호락한 인물은 아니었다.

============================ 작품 후기 ============================

최근에 제가 올린 글을 보니 진행이 좀 늘어지네요. 안 그러려고 하는데, 쉽지가 않습니다.최대한 빨리 빨리 진행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목표는 다음달까지 완결인데, 과연 성공할 수 있을지 ㅠㅜ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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