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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가 전부는 아니야-230화 (230/424)

00230  소제목 추후 결정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 정도로 흔들릴 내가 아니다. 그동안 엿 같았던 직장 상사들 덕분에 이런 돌발 상황은 인이 박여 있을 정도로 자주 경험했다. 또한 윤 스포츠센터의 윤 사장님이나 고현호 이사처럼 말발 좋은 사람과 자주 대화하다 보니 웬만한 꼬장(?)은 웃으며 넘길 수 있을 정도로 익숙하다.

“말씀하는 걸 보니 제가 왜 왔는지 대충 아시나 보군요.”

“그걸 내가 어떻게 아나? 마 팀장 머릿속을 들어갔다 온 것도 아닌데.”

“모르신다니 다행이군요. 혹시라도 알고 한 행동이라면 동지 바이오에 큰 실망을 할 뻔했습니다.”

“실망? 무슨 일인데 마 팀장이 우리 동지 바이오에 실망할 일이 생긴단 말인가?”

“제 동생이 예전에 여행을 가기 위해 돈을 모으겠다고 군고구마를 판 적이 있었습니다.”

나는 배운규 부장의 질문을 못 들은 척 엉뚱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학생 때였다면 기특한 일이군. 부모에게 의존하지 않고 혼자 해결하려는 자세가 요즘 젊은이들에게서는 쉽게 보기 힘들거든. 우리 부서에서 마마보이같은 녀석이 들어와서 고생을 해봤기 때문에 내가 잘 알지. 지각하면 어머니가 대신 전화하는 황당한 집안이라 속을 좀 많이 끓였지.”

“네. 제 동생이지만 정말 믿음직하고 기특한 녀석입니다. 동생이 학생일 당시 군고구마 가격은 3개 2,000원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찾아가면 항상 개당 3,000원을 받곤 했습니다.”

“마 팀장이 직장인이라 일부러 많이 받았나 보군. 용돈 대신해서 적당히 사주지 그랬어.”

“당연히 그렇게 했습니다. 가면 항상 5,000원어치를 사서 혼자 먹곤 했죠. 그런데 이 녀석이 사촌 동생이 왔는데도 저랑 같은 가격을 받는 겁니다. 참고로 사촌 동생은 고등학교 2학년이었습니다. 저야 직장인이니까 괜찮지만 사촌 동생에게까지 그러는 건 정말 과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저런. 동생이 좀 알뜰한 성격인가 보군. 그래도 너무하긴 했네. 고등학생이면 돈도 별로 없을 텐데, 사촌 형이 되어 가지고 공짜로 주지도 못할망정 오히려 바가지를 씌우다니 말일세.”

“제 말이 그겁니다. 게다가 동생의 군고구마가 맛있기로 소문이 나서 인근에서 꽤 인기가 있었습니다. 장사가 잘 돼서 그렇게까지 짜게 굴지 않아도 충분히 해외여행을 갈 수 있을 만큼 돈을 모은 상황이었죠. 그런데도 욕심을 부리더군요. 그때 그 모습을 보며 저는 동생에게 약간 실망을 했었습니다.”

“쯧쯧. 어린 나이에 돈맛을 알았나 보군. 어릴 때 갑자기 많은 돈을 벌면, 거기에 너무 심하게 빠져 주변을 돌아보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지. 뒤늦게 후회를 하고 돌아보면 주변에는 아무도 안 남게 되지.”

“그러게 말입니다. 남남도 아니고 사촌 동생인데···. 그런데 그런 비슷한 일이 동지그룹에서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나는 빙빙 이야기를 돌려 이제야 본론을 꺼냈다.

“응? 우리 동지그룹에? 고정호 전무님처럼 대범하신 분이 그럴 리는 없고 혹시 고평호 상무님이 친천들이나 고현호 이사에게 서운하게 행동했나?”

“아니요. 그분들이 아니라 동지 바이오가 동지마트를 서운하게 대해서 말입니다.”

“흠···. 그, 그게 갑자기 무슨 말인가?”

이에는 이, 돌직구에서는 돌직구.

동생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동지 바이오를 끄집어내자 배운규 부장은 당황한 듯 얼굴을 굳혔다.

“그동안 동지 바이오가 다른 대형 할인 마트와 비교하면 비싼 가격으로 동지마트에 제품을 공급했더라고요. 안 그래도 동지마트의 경영 상태가 여러 가지로 부실한데, 잘나가는 동지 바이오가 도와줘도 시원찮을 판에 오히려 남보다 더 비싸게 물건을 팔다니요. 부장님처럼 상식적인 분이 계신 영업팀에서 일부러 그랬을 리는 없고, 뭔가 착오가 있었던 거겠죠?”

“크흠. 그, 그런 일이 있었나?”

“네. 안타깝게도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이건 지금 현재 동지 바이오가 동지마트에 공급하고 있는 50여 개 상품의 대형 할인 마트별 판매가격입니다. 보시는 것처럼 제품마다 100원 이상 나는 경우가 꽤 많습니다. 몇십 원의 가격 차이에도 예민하게 구는 게 요즘 소비자들입니다. 이런 시대에 100원 이상 차이가 난다는 건 물건을 팔지 말라는 소리나 마찬가지입니다.”

“이건 소비자가격이 아닌가? 그럼 동지마트가 비싸게 파는 거겠지. 우리가 공급하는 제품 가격은 비슷할 걸세.”

내가 건넨 비교표를 한참 동안 보던 배운규 부장의 대답이 가관이었다. 이런 식의 변명은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다.

“그럴 리가요. 우리 동지마트는 같은 동지 계열사의 제품이라고 이윤도 거의 남기지 않은 가격으로 제품을 판매하고 있는데요. 다른 대형 마트가 손해를 보고 팔지 않는 이상 소비자 가격이 이렇게 차이가 날 리가 없습니다.”

“그건 마 팀장이 이 바닥을 잘 몰라서 하는 소리야. 가끔은 손해를 보더라도 전략적으로 싸게 파는 경우가 있어. 그리고 재고가 쌓이는 경우에도 손해를 보며 팔곤 하지.”

“동지 바이오 제품이 모두 싸구려입니까?”

“그럴 리가 있겠는가? 품질은 우리나라 어느 회사에 견주어도 떨어지지 않는다네.”

내 말에 배운규 부장이 펄쩍 뛰며 대답했다.

“그런데 어떻게 50여 개 품목 전체를 우리보다 싸게 팝니까? 불량품이 아닌 이상 그런 식으로 손해를 보며 팔 이유가 없지 않을까요?”

“그건 모를 일이야. 아무튼 우리가 동지마트를 다른 대형 할인 마트보다 비싸게 받고 제품을 공급할 이유는 없네.”

“휴···. 부장님. 우리가 공급가를 확인할 길이 없다고 이렇게 거짓말을 하시는 모양인데, 동지마트 책임자가 고현호 이사님입니다. 동지그룹 지주회사인 주식회사 동지의 등기이사이기도 하죠. 지주회사 등기 이사의 자격으로 동지 바이오의 내부자료를 요구하면 영업부에서는 각 대형 할인 마트의 공급가격을 밝히셔야 합니다. 자꾸 아니라고 하면 저는 이사님에게 보고해 감사권 발동을 요청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보게 마 팀장. 내 말은 그게 아니야. 자네가 아는지 모르겠지만, 영업부 부장이 각 대형 할인 마트의 공급가격까지 꿰고 있을 수는 없어.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니 아니라고 했는데, 혹시 착오가 있다면 될 수 있으면 공급가격을 재조정하도록 하겠네. 이 정도면 답변이 되었나?”

“정말이십니까? 정말 공급가격 조정이 가능합니까?”

“확답은 어렵네. 일단 사실관계부터 확인을 해봐야지. 조사를 해보고 차이가 있으면 그때 가서 협의를 다시 하면 되겠지.”

확답을 원했지만 역시나 두루뭉술 넘어가려고 했다. 하지만 동생 이야기로 꼼수를 부려 이 정도로 몰아붙였으면 됐다. 여기서 더 가봐야 역효과만 날 뿐이다. 동지마트 공급가 문제를 동지 바이오에 공식화했다는 것만으로도 첫 미팅은 성공적이다.

“알겠습니다. 아 참! 욕심은 부렸던 제 동생은 어떻게 됐는지 아십니까?”

“글쎄.”

“짠돌이라고 생각했던 동생이 여행을 다녀오면서 사촌 동생을 위해 멋진 선물을 사왔습니다. 사촌이 당시 AC밀란 팬이었는데 유명 축구 선수인 말디니의 유니폼을 사서 선물을 주더군요. 그 모습이 어찌나 기특하던지. 제가 동생을 오해했더군요. 지금은 저보다 일찍 결혼해서 딸까지 낳아서 잘살고 있습니다. 역시 사람은 착한 일을 해야 복을 받나 봅니다.”

“하하하. 그래. 무슨 말인지 알겠네. 내 참고하지.”

“시건방지게 느끼셨다면 죄송합니다.”

“아닐세. 아니야. 마 팀장을 오늘 보니 동지마트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킬 만하군. 결과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응원함세.”

“감사합니다. 부장님.”

***

“쯧쯧. 이봐. 배 부장.”

“네. 사장님.”

동지 바이오 조강재 사장은 동지마트 건으로 보고를 온 배운규 부장을 보며 못마땅한 표정으로 혀를 찼다.

“그래서 그런 애송이에게 휘둘려 이런 쓸데없는 보고까지 하러 올라온 건가?”

“하하하. 죄송합니다. 사장님. 애송이라고는 하지만 꽤 노련했습니다. 순식간에 저를 바보로 만들어 버리는데 요즘 동지그룹에서 가장 핫한 인물 중 하나라는 평이 거짓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판단입니다만 이럴 때 마동수 팀장 같은 사람에게 신세를 지어두면 나중에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겁니다.”

사장의 구박에도 배운규 부장은 전혀 개의치 않고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두 사람은 이런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을 만큼 각별한 사이였다.

“불가. 내가 배 부장 판단을 못 믿는 건 아닌데, 자네도 그럴 수 없다는 건 잘 알잖아. 안 그래도 지금 동지마트에 시선이 집중되고 있어. 만에 하나라도 동지마트가 살아난다면 대권 경쟁에서 고현호 이사의 표가 확 늘어날걸?”

“천하의 회장님도 실패한 일을 성공하면 당연히 그렇겠죠.”

“나는 고정호 전무와 협력하기로 약속한 사이라고. 그런데 동지마트가 잘 되는 일을 도울 수는 없지 않겠어?”

“대승적 차원에서 돕자고 하면 싫어하시겠죠?”

“당연하지. 절대 그럴 순 없지. 돕고 싶어도 못 도와. 우리가 동지마트의 부탁을 들어줬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전무님 측근들이 가만히 있겠어. 길길이 날뛸걸? 그러니 그냥 불가도 아니고 절대 불가야. 무슨 말인지 알겠어?”

“알겠습니다. 아쉽지만 동지마트와는 완전히 등을 돌려야겠군요.”

“별일이군. 자네가 그렇게 마음에 들어 하는 인물이 다 있고. 좀처럼 없는 일이잖아.”

“그냥 느낌이 좋았는데, 어쩔 수 없죠. 마음에 든다고 모든 사람과 친하게 지낼 수는 없으니까요.”

============================ 작품 후기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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