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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가 전부는 아니야-232화 (232/424)

00232  소제목 추후 결정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띠링!

[나 동지 바이오의 배 부장이네. 우리 동지 바이오의 경우 주문 물량에 따라 할인율에 차등을 두네. 아무리 거래 업체가 같은 그룹 계열사인 동지마트라고 해도 그 원칙을 깰 수 없다는 게 우리 동지 바이오의 공식 입장이네. 따라서 주문 물량을 늘리지 않는 이상 공급 가격 조정은 어려워.

여기까지는 공적인 통보고, 사적으로는 이번 일에 대해 매우 안타깝게 생각해. 요즘처럼 동지마트의 인지도가 높아지고 있을 때 제대로 가격 경쟁력을 갖춘다면 아무리 우리나라 3대 대형 할인 마트라도 해볼만 했을 텐데 말이야.

도움을 줄 수 없어서 아쉬워. 마 팀장도 알겠지만, 세상일이 항상 상식대로 돌아가는 건 아니잖아. 이윤을 추구해야 할 기업에서 정치적 논리가 또 다른 잣대가 되는 게 썩 내키진 않아. 그래도 어쩌겠어. 월급쟁이인데.

마 팀장과 동지마트의 건승을 기원하겠네.]

얼마 전 미팅을 했던 동지 바이오 배운규 영업 부장의 메시지였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가격 조정 요청은 실패였다. 나에 대한 개인적인 호감 때문인지 아니면 웬만해서는 적을 만들지 않는 영업부의 수장다운 노련함 때문인지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것에 대해 꽤 미안해했다.

그렇지만 그 또한 우리 동지마트가 실패할 거라고 믿는 것 같았다. 아마 내가 동지 바이오와 거래를 끊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하는 모양이다. 조만간 제대로 뒤통수를 쳐도 지금처럼 대할지 모르겠지만, 호감을 보여줬으니 나도 예의를 지키는 게 인지상정이다.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죠. 개인적으로라도 이렇게 응원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동지마트가 살아남으려고 발버둥 치다가 동지 바이오와 어긋날 수도 있겠지만, 제게 보여주신 호의는 잊지 않겠습니다.]

가격 조정 요청에 비협조적으로 나온 건 비단 동지 바이오뿐만이 아니었다. 동지 오피스 또한 처음 예상한 것처럼 우리의 요청을 거절했다. 동지 바이오와 다른 점이 있다면 표현이 훨씬 단호했다는 것.

이유야 어쨌든 두 회사 모두 동지마트에 등을 돌렸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마음에 드는 여자가 있어 프러포즈를 했는데 그 여자가 단호하게 거절하든 돌려서 거절하든 거절한 건 마찬가지다. 돌려 말했다고 혹시나 모를 희망을 가지고 질척거린다면 그것만큼이나 바보같은 짓은 없다. 이럴 땐 그냥 쿨하게 잊는 게 최고다.

시연이의 사랑을 받으며 한껏 콧대가 높아지긴 했지만 솔직히 내가 그렇게 잘난 남자는 아니다. 키가 좀 큰 것 말고는 거의 모든 면에서 평범했던 나다. 그러니 연애가 항상 성공하는 건 아니었고, 짝사랑도 몇 번 했었다.

그중에 한번은, 지금 생각해보면 참 바보 같았고 어떻게 보면 지독할 정도로 한심한 짝사랑이었다. 나의 고백을 오해사기 좋게끔 돌려서 거절했던 그녀는, 그 감정을 이용해 내게 참 여러 가지 부탁을 했었다.

한번은 바쁘다고 도와달라고 해서 내가 해야 할 일까지 내팽개치고 레포트를 대신 써줬던 적이 있었다. 이런 도움에 혹시라도 감동을 받고 나를 바라봐주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내가 바보같이 레포트를 쓰는 있던 시간에 그녀는 남자친구와 데이트를 즐기고 있었다. 그때 느꼈던 배신감과 모멸감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하지만 그녀를 찾아가 내게 왜 그랬냐고 따질 수는 없었다. 그냥 그녀는 에둘러 투정만 부렸고,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먼저 도와주겠다고 한 건 나였으니까.

나는 그때부터 단호한 거절이든 돌려서 말하는 거절이든 다 똑같다고 믿게 되었다. 차라리 기분 나쁘게 거절하더라도 미련이 생기지 않게 단호하게 거절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하고, 나에게 좋아한다고 고백했던 사람에게 냉정하게 대하곤 했었다.

몇 번의 짝사랑을 해본 결과, 짝사랑을 거절당했을 때 자존심이 상해 어떻게든 복수를 하고 싶다면 방법은 딱 하나다. 그 여자가 아쉬운 마음이 들도록 보란 듯이 성공하는 것.

가격 조정 요청이 짝사랑과 조금은 다르지만, 어쨌든 그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복수는 그들이 아쉬운 마음이 들도록 성공하는 것이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긴 하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동지 푸드쿡은 우리의 요청을 받아줬다는 사실이었다.

우리가 지적하기 전까지 동지 푸드쿡 측에서는 다른 대형 할인 마트와 우리를 차별하는 줄도 몰랐다는 게 좀 씁쓸하긴 했다. 악플보다 더 나쁜 게 무플이라고 그들에게 동지마트는 있으나 마나 한 존재였으니 말이다.

“정말 괜찮겠지?”

동지 바이오 그리고 동지 오피스의 반응을 보고하고 두 회사와의 거래를 끊기 위한 최종 승인을 요청하자 고현호 이사가 나를 물었다. 질문은 의문문이었으나 그의 눈빛에 불안감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충분히 설명했고 이미 서로 공감을 했던 부분이다.

“불안하면 안 하셔도 됩니다. 이대로 주저앉아버리죠. 뭐.”

“큭. 우리 마 팀장이 언제쯤 살가워질지. 윗사람이 응석을 부리면 아랫사람은 응당 그걸 받아주는 게 예의라고.”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은 법입니다.”

“재미없는 녀석 같으니라고. 그래! 인제 와서 어쩌겠어. 되든 안 되든 동지 바이오와 동지 오피스 뒤통수는 제대로 한 대 때릴 수 있겠지. 거래 중단 공문 보내면 그놈들 놀래 나자빠지겠지?”

“예상 못 했던 일이니까 그렇겠죠. 계열사 간 계약이라 반품이 가능한 게 정말 다행입니다. 아니었으면 손해를 보고 반값에라도 팔아버렸어야 했을 텐데 말이죠.”

대형 할인 마트와 공급자 사이의 거래는 형태가 매우 다양하다. 싸게 주는 대신 불량이 아니면 반품이 절대 불가인 경우도 있고, 일정 기간의 이내의 제품만 반품을 허용하는 곳도 있다. 신선함이 생명인 우유나 달걀 등은 유통기한이 지나도 안 팔릴 경우 무조건 반품 처리가 되기도 한다.

제품이 다양한 만큼, 업체의 상황이나 파워에 따라 납품과 반품 계약 또한 다양하게 존재한다. 그리고 동지마트의 경우는 그중에서도 납품과 반품이 굉장히 자유로운 편이었다. 거래를 끊으면서 재고 걱정을 할 필요가 없으니 그것만 해도 정말 다행이었다.

그동안 매출로 잡아놨던 제품들이 전부 반품되면 동지 바이오나 동지 오피스 입장에서는 당황스럽겠지만 그걸 배려해줄 만큼 우리가 여유가 넘치는 게 아니다.

“그러게. 그거 분명 장부 조작을 원활하게 하려고 입출을 자유롭게 해놓은 것 같은데 우리에겐 땡큐지. 비자금 때문에 고마워할 일이 생길 줄이야. 하하하.”

“자금 회수와 동시에 추가지원까지 받게 되었으니 전화위복이라고 할 수 있죠. 그 돈을 제대로 활용해야 할 텐데, 아직 어디다 투자해야 할지 그게 좀 막막합니다. 혹시 좋은 생각 없으십니까?”

“아니. 그건 마 팀장이 알아서 하겠지. 내가 고민할 일은 아니잖아.”

“쩝. 가끔 저를 너무 믿는 것 같은데, 그러다 제가 투자금 횡령해서 외국으로 튀면 어쩌려고 그러십니까? 걱정 안 되세요?”

“아니. 전혀. 다른 건 몰라도 마 팀장에게는 시연씨가 있잖아. 투자금이 얼마든 시연씨 가치보다 크진 않을 것 아니야. 그냥 주관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객관적으로만 봐도 윤 스포츠센터의 유일한 상속자라고. 그 가치만 따져도 어마어마한데 설마? 그런데도 투자금을 들고 튀면 그건 마 팀장이 바보인 거지. 내가 아는 마 팀장은 그렇게 어리석을 리가 없잖아.”

“뭔가 칭찬 같은데 그리 썩 유쾌하진 않군요. 꼭 올가미에 꽁꽁 묶여서 옴짝달싹 못 하는 기분입니다.”

“잘 봤어. 마 팀장은 완전히 내게 낚였거든. 앞으로도 고생해줘. 마 팀장. 하하하.”

***

“부장님. 큰일 났습니다.”

“무슨 일인데 그래?”

수출 호조에 힘을 입어 국내 내수시장 매출까지 늘어나고 있는 동지 바이오. 덕분에 영업부 또한 아무 문제 없이 잘 돌아가고 있었다. 지금 추세면 내년이 지나기 전에 국내 매출에서도 무난히 1위에 오를 수 있다는 예측까지 조심스레 나오는 상황이었다. 국내 시장에서 1위에 등극하면 영업부의 수장인 배운규 부장의 이사 승진은 떼어 놓은 당상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얼굴이 하얗게 변해 호들갑을 떨며 들어오는 영업 1과장의 모습을 보며, 배운규 부장은 왠지 모를 불안함을 느꼈다.

‘내가 그동안 너무 평화로움에 익숙해졌나 보군.’

영업부는 항상 전쟁터다. 돌발상황은 항상 존재하기 마련인데, 배운규 부장은 고작 부하직원의 호들갑에 불안감을 느낀 자신이 어이가 없었다.

“동지마트가 사고를 쳤습니다.”

“동지마트가? 알아듣게 자세히 설명해봐.”

잠깐의 만남이었지만 그가 본 마동수는 꽤 걸물이었다. 딱히 뭐라고 설명하기 어려웠으나 20년 가까이 영업부에서 일해온 그의 경험이 그렇게 말해주고 있었다. 왠지 조용히 물러날 것 같지는 않아서 최대한 반감을 가지지 않도록 장문의 문자까지 보냈는데 별로 효과가 없었던 모양이었다.

“동지마트가 동지 바이오와의 모든 거래를 전면 중단한답니다.”

“뭐? 뭐가 어쩌고 어째?”

“그게 끝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납품한 제품을 일주일 안에 모두 회수하라고 합니다. 일주일 안에 회수하지 않으면 법정 보관료를 산정해서 비용청구 하겠다고 합니다.”

“미친. 그 자식 그거 보통 놈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을 저지를 줄이야. 당장 동지마트에 연락을 넣어.”

“저도 연락을 해봤는데 지금 마동수 팀장이 부재중이라 나중에 연락을 주겠다는 답변만 받았습니다.”

“하는 수 없군. 내가 직접 찾아가는 수밖에. 지금 당장 동지마트 본사로 갈 채비를 해.”

“네? 아, 알겠습니다. 지금 당장 준비하겠습니다.”

============================ 작품 후기 ============================

동수의 반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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