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33 소제목 추후 결정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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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마트 본사로 향하는 차 안에서 배운규 부장은 혼자 생각에 잠겼다.
‘그 참. 어이가 없군. 어떻게 그런 생각을 다 할 수 있지. 아니지. 아니야. 같은 계열사이면서도 공급가를 비싸게 받았는데, 동지마트라고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거래 중단에 전 품목 반품 조치는 너무 하잖아. 우리가 먼저 등을 돌렸으니 뭐라고 하기도 그렇고. 쯧쯧쯧.’
“부장님. 동지마트 이거 완전 미친 놈들 아닙니까? 어떻게 같은 계열사 제품을 안 팔겠다고 배짱을 부릴 수 있습니까? 안 그렇습니까?”
운전을 하던 영업 1과의 도상기 과장이 배운규 부장을 보며 답답하다는 얼굴로 불평을 털어놓았다.
“이봐. 도 과장. 그럼 너는 왜 그동안 동지마트에 물건을 비싸게 납품했는데?”
“네? 그, 그거야 당연히 우리 동지 바이오의 규정 때문이죠. 주문 수량에 따른 차등 할인율 적용. 그동안 영업부가 반드시 지켰던 원칙 아닙니까?”
“동지마트에 다른 대형 할인 마트보다 비싸게 공급하는 업체와는 거래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있다면?”
“네? 그런 원칙이 동지마트에 있었습니까?”
“아이고. 저 화상. 내가 너 같은 놈을 믿고 그동안 영업부를 이끌고 왔다니···. 그냥 말이 그렇다는 거야, 말이. 우리라고 반드시 그 원칙을 지킨 줄 알아?”
“어. 안 지킨 적도 있습니까?”
“당연하지. 프로모션이 걸리면 할인율은 훨씬 많이 내려가잖아. 예를 들어 1+1 행사를 할 때를 생각해봐. 1개 사면 1개 더 주는 거니까, 정확하게 따지면 할인율이 50%나 적용된 거라고. 그게 아니라도 2+1 행사나 경품 행사 같은 것도 원래 할인율보다 더 많이 적용됐으면 적용됐지 적게 적용되지는 않았잖아. 그런데도 무조건 원칙이 지켜졌다고 할 수 있겠어?”
“아! 그렇군요.”
도상기 과장은 그제야 이해가 갔는지 감탄사를 터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원칙은 주문량에 따른 할인율 적용이지만 편의를 봐주려면 방법은 얼마든지 있었다고. 그런데 같은 계열사임에도 그런 편의를 외면한 건 우리가 먼저지.”
“그럼 우리가 동지마트보고 뭐라고 할 처지는 아니군요.”
“그렇지. 극단적인 결정이긴 해도 우리가 비난할 입장은 아니야.”
“아무래 그래도 우리 동지 바이오는 업계 2위 업체입니다. 브랜드 파워라는 게 있지 않습니까? 소비자들이 분명 우리 제품을 찾을 텐데 무슨 배짱인지 모르겠습니다.”
“예전의 동지마트가 아니잖아.”
“네? 그게 무슨 말씀인지?”
“예전과 달리 동지마트가 엄청나게 유명해졌잖아. 고현호 이사의 선행 덕분에 명성도 올라갔고, 새롭게 투입한 모델 효과도 톡톡히 보고 있으니 말이야. 요즘은 아이좋아 효과도 엄청나다고 하더군. 우리 제품에 대한 충성심 높은 소비자가 아니고는 그냥 다른 비슷한 제품을 찾고 말 거야.”
“아 맞다! 그 엄청나게 예쁜 모델. 혹시 들으셨습니까? 그 모델 남자친구, 아니지 약혼했다고 했으니 약혼자지. 아무튼, 그 모델 약혼자가 마동수 팀장이라는 거 아셨습니까?”
“뭐? 그 모델 약혼자가 마동수 팀장이었어? 정말이야?”
“네. 안 그래도 그 소문이 동지마트에 자자합니다. 저도 얼마 전에 동지마트 담당 녀석에게 그 이야기를 듣고 얼마나 부러워했는지. 며칠 전에 온 거 보니까 키 큰 거 말고는 그리 내세울 것도 없어 보이던데 어떻게 그런 미인을 차지했는지 모르겠어요. 혹시 광고에 나오게 해준다고 꼬드긴 건 아니겠죠?”
“설마 그렇기야 하겠어? 하지만 기든 아니든 자기 약혼녀를 광고에 출연시키는 건 좀 그러네.”
배운규 부장이 인상을 찌푸림 호응을 하자 도상기 과장은 더욱 신이 나서 이야기를 계속 이었다.
“그렇죠? 계속 비협조적으로 나오면 그걸 문제 삼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부장님. 아무리 동지마트가 어처구니없이 나온다고 해도, 거기랑 우리랑 급이 다른데 부장님이 직접 찾아가야 합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닌 것 같습니다.”
“일하는 데 급이 어디 있어? 답답한 놈이 찾아가야지. 넌 영업부 과장이라는 녀석이 아직도 그런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어서 어쩌려고 그래? 내가 항상 강조하던 영업강령 두 번째가 뭐야? 읊어봐.”
“영업 강령 둘. 작은 고객이 큰 고객이 될지 모른다. 고객을 대하는 데 있어 항상 최선을 다해라.”
“아는 녀석이 급이니 어쩌니 그따구 말을 해? 안 되겠다. 요즘 우리 영업부가 너무 일이 편했나 보다. 이번 주에 푸닥거리 한 번 해야겠어.”
“헉. 부, 부장님. 죄송합니다. 그것만은 제발···.”
도상기 과장이 얼굴이 하얗게 질려 만류했으나 배운규 부장의 얼굴은 단호했다. 영업부는 다른 부서와 달리 군기가 상당히 센 집단이다. 배운규 부장이 책임자가 되면서 서열문화가 많이 사라졌지만, 그 또한 영업으로 잔뼈가 굵은 인물이다. 정말 아니다 싶으면 이전 책임자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직원들을 무섭게 몰아친다.
“넌 이제부터 닥치고 운전이나 해. 이 자식이 빠져가지고.”
“아, 알겠습니다. 부장님.”
“운전하면서 잘 들어. 우리가 동지마트와 거래하는 품목이 약 100여 개야. 주문하는 단위는 보통 한 번에 5,000박스. 제품마다 다르겠지만 박스 당 평균 공급가를 5만 원이라고 잡으면, 한 제품 단위당 매출이 2억 5천만 원이야. 거래하는 품목이 100여 개니까, 250억 원이야. 그것도 최근에 주문이 들어왔었기 때문에 매출로 잡힌 250억 원 대부분이 다시 마이너스로 잡힌다고. 이게 무슨 의미인지 알아? 우리 영업부가 올해 안으로 추가로 250억 원을 판매하지 않는 이상 매출목표 달성은 어렵다는 뜻이야. 그럼 승진 고과는 물론이고 상여금도 모두 날아가겠지.”
“생각이 짧았습니다.”
“그걸로 끝이 아니야. 우리가 빼앗긴 250억 원만큼 우리 라이벌 회사들이 나눠 가지겠지. 그리고 그 대부분은 오즈생활환경이 가져갈 거야. 결국, 동지마트를 잃으면서 오즈와 우리는 순식간에 500여억 원의 차이가 생겨. 그런데도 급이 다르다고 무시할 거야?”
“아, 아닙니다.”
Rrrr
화가 난 배운규 부장이 도상기 과장을 몰아붙이고 있을 때, 배운규 부장의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네. 사징님.”
- 차 돌려서 돌아와.
“네? 아니 사장님!”
- 잔소리하지 말고 차 돌려.
“어떻게 아셨는지 모르겠지만, 동지마트와 거래가 끊기면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다시 한 번 생각해 주십시오.”
- 안돼! 손해를 보더라도 어쩔 수 없어. 지금 내게는 고정호 전무와의 관계가 더 중요해. 원래 언제 망할지 모를 회사였어. 결과가 다르긴 해도 언제 거래가 끊길지 모를 회사였잖아. 지금 반짝한다고 해서 그 상승세가 계속 이어지는 건 어려울 거야. 그래 봐야 지점이 10개인 반쪽짜리 대형 할인 마트라고. 그러니 신경 꺼.
조강재 사장이 직접 전화를 해서 만류하는데, 배운규 부장도 자신의 의견을 고집하기 어려웠다.
“휴우···. 알겠습니다. 어쩔 수 없죠. 사장님. 우리는 장사꾼입니다. 장사는 무조건 많이 파는 게 장땡입니다. 거기에 이데올로기가 들어가고 정치적 논리가 들어가버리면 그건 장사가 아니라 광대놀음밖에 안 됩니다.”
- 알아. 나도. 이번 한 번 만이야. 그러니 배 부장도 나를 좀 이해해줘.
“네. 자세한 이야기는 돌아가서 하도록 하죠. 끊겠습니다. 도 과장. 차 돌려. 회사로 돌아간다.”
배운규 부장은 그 말을 끝으로 좌석 등받이 깊숙이 몸을 파묻고는 말없이 창밖만 내다봤다.
***
“정말 그럴 수 있습니까? 동지마트와 동지 바이오는 같은 계열사 아닙니까?”
오즈생활환경의 영업부 수장인 송재윤 부장은 믿기지 않는지 내 말을 재차 확인하려 들었다.
“물론입니다. 이미 거래 중지 공문을 발송했고, 재고들은 전부 반품조치 될 겁니다. 어치파 며칠 후면 전부 밝혀질 일인데 제가 뭐하러 부장님을 속이겠습니까?”
“쉽게 믿어지지 않아서 그럽니다. 그러니까 동지 바이오뿐만 아니라 우리와 제품이 겹치는 모든 업체와 거래를 중단하고 독점권을 주겠다 이 말씀이죠?”
“네. 대신 3-마트나 엘마트보다 더 싸게 물건을 공급해주셔야죠. 많이도 바라지 않습니다. 경쟁업체보다 5%만 더 낮춰 주십시오. 그럼 됩니다. 참고로 부장님께서 우리 조건을 받아주시면 일단 초도물량으로 100억 원 정도의 제품을 주문할 계획입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임시주문이고, 추후에 비슷한 물량으로 한 번 더 주문이 들어갈 겁니다.”
“정말 좋은 조건이긴 한데, 이걸 대체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이는 그의 마음은 이해가 간다. 동지마트가 동지 바이오를 깠다(?)는 것부터가 이해가 가지 않을 테니, 내가 제시한 조건을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믿어지지 않으면 그 사항에 대해 계약서를 남겨드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냥 망설이는 거라면 시간을 많이 드릴 수 없습니다. 아쉽긴 해도 우리에겐 예경이 있습니다. 거기라면 더 나은 조건으로 협상할 수 있겠죠. 내키지 않는다면 저는 그만 일어나겠습니다.”
예경은 생활용품으로는 우리나라 3위에 해당하는 업체였다. 한때는 오즈에 이어 2위 업체였지만, 동지 바이오에 밀려 3위까지 내려앉았다. 어떻게든 2위 재탈환을 노리고 있는 상황이니 내 제안에 솔깃할 가능성이 높았다.
“아, 아닙니다. 1시간. 딱 1시간만 생각할 시간을 주십시오. 최대한 빨리 영업부 회의를 하고 마 팀장의 제안을 받아들일지 결정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딱 1시간입니다. 좋은 결과가 나오길 기다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