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38 소제목 추후 결정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어머! 그 아저씨 정말 안 되겠군요. 하지만 화는 안 낼래요. 우리 동수씨라면 분명 그 이상으로 혼내줬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렇죠?”
내 이야기를 신뢰 가득한 눈으로 듣고 있던 그녀는 이기적 대리가 했던 말을 그대로 옮겼을 때조차도 입가에 짓고 있던 다정한 미소를 지우지 않았다.
“그럼! 그 녀석 죽다 살아났을걸? 내가 좀 무지막지하게 화를 냈거든.”
“그래도 어디 심하게 다치게 하고 그런 건 아니죠? 저를 생각해서라도 절대 그러면 안 돼요.”
“당연하지! 멱살을 살짝 잡기는 했지만 폭력은 안 쓰고 그냥 말로 혼냈어. 괜히 사람 다치게 해서 나만 곤란해지는 거 잘 알아. 우리 시연이처럼 예쁜 약혼녀를 두고 사고를 칠 수는 없지. 안 그래?”
단순히 멱살을 잡고 흔든 게 아니라 죽일 듯한 기세로 집어 올려 목까지 조였던 게 폭력인지 아닌지 헷갈렸지만, 굳이 그것까지 이야기하지는 않았다.
“제가 예뻐요?”
‘나를 얼마만큼 사랑해?’, ‘나 예뻐?’ 이런 질문은 연애를 하다보면 애인에게 무수히 많이 듣는 질문이다. ‘나를 얼마만큼 사랑해?’라는 질문이야 ‘세상에서 제일 사랑해.’라고 얼마든지 해줄 수 있다. 그러나 ‘나 예뻐’, ‘내가 얼마만큼 예뻐?’ 이런 식의 질문은 나를 비롯한 상당수의 남자들을 멘붕상태에 빠트린다.
‘아니 왜? 그냥 세상에서 제일 사랑해 라고 대답한 것처럼 그냥 세상에서 제일 예뻐 라고 대답하면 되잖아.’라는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하지만 직관적인 성격이 강한 남자들의 특성상 ‘세상에서 제일 예뻐’라는 대답은 본인 스스로 거짓말이라고 느끼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래서 ‘세상에서 제일 예뻐’라는 대답보다는 ‘세상에서 제일 사랑스러워.’라는 식으로 은근슬쩍 말을 돌리기도 한다.
그냥 두 눈 꼭 감고 ‘네가 제일 예뻐’라고 대답하면 편안할 수 있는데, 그 대답을 망설이던 내 모습은 지금 생각해도 희한하다. 그런데 이제는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거짓말을 잘할 수 있게 된 게 아니라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제일 예쁘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렇게 대답하자 시연이의 얼굴이 환하게 빛났다.
“헤헤. 고마워요.”
“그런데 시연아. 이젠 너도 좀 알지 않아?”
“뭐를요?”
내 질문에 시연이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네가 사실은 엄청난 미녀라는 거?”
“어머 말도 안 돼요. 솔직히 전 아직도 실감이 안 나요. 남들이 예쁘다고 해주니 그런가 보다 고맙게 생각하긴 하는데 저보다 훨씬 예쁜 사람들도 많거든요. 전 그냥 예쁘장하게 생긴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사람들 눈이 이상한 것 같아요.”
그냥 예쁘장하게 생긴 정도라니! 남들이 들었으면 거품을 물며 화를 낼지도 모를 말이었다. 그러나 시연이의 표정은 거짓 하나 없이 진지했다.
“너보다 훨씬 예쁜 사람들이 대체 누군데?”
“많아요. 일단 연서 언니.”
연서 형수님은 내 생명의 은인인 우찬 형님의 연인이다. 한때 바텐더로 일하는 그녀를 미인계로 쓰려고 했을 만큼 성숙하고 아름다운 외모를 자랑한다. 하지만 이제 한창 꽃피기 시작한 시연이보다 예쁘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눈이 돌아갈 만큼 미인인 건 확실하다.
“형수님이 시연이 너보다 예쁜 건 아닌 것 같지만 그래도 미녀는 미녀니 일단 인정. 그리고 또?”
“그리고 장희 언니도 예쁘잖아요!”
“뭐? 누··· 누구?”
“고장희 언니요.”
“혹시 내가 아는 그 고장희? 키 작고 통통한?”
“통통하다니요! 요즘 말로 베이글녀라고요. 그리고 언니가 얼마나 귀여운데 그런 말을 해요. 저는 정말 언니처럼 귀여운 여자가 제일 부러워요.”
키가 큰 편인 시연이가 귀여운 여자들을 동경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고장희는 정말 정말 아니다.
역시! 이래서 내가 여자가 해주는 소개팅에는 절대 안 나갔다.
‘눈이 정말 예쁜 친구야.’
하지만 쌍꺼풀이 짙어 눈만 부리부리해 보이는 무섭게 생긴 여자였다.
‘통통하고 정말 귀여운 여자야.’
아! 미안하지만 통통이 아니라 뚱뚱이었다.
‘내가 정말 부러워하는 날씬한 친구야. 몸매 짱!’
날씬한 몸매는 무슨. 나는 정말 뼈다귀가 걸어다니는 줄 알았다.
이런 식으로 몇 번 당하고 나서는 절대 여자가 판단하는 여자는 믿지 않았다. 시연이는 다를 줄 알았는데, 역시 그녀도 어쩔 수 없는 여자인가 보다.
“하하하. 그래. 사람마다 취향은 다르니까.”
내가 시연이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의 대답이었다.
“그런데 골치 아프다는 건 좀 괜찮아졌어요?”
“뭐? 아! 그러네. 두통까지 있었는데 우리 시연이랑 대화를 해서 그런가 훨씬 나아졌어.”
“다행이에요. 그리고 동수씨.”
“응?”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하든 말든 우리 그런 거 신경 쓰지 마세요. 우리만 서로에게 진심이면 되잖아요. 그리고 혹시라도 제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절대 그럴 필요도 없어요. 물론 제가 이 일을 하는 건 동수씨가 좋아서, 그리고 제 경력에 도움이 되기도 해서에요. 하지만 다른 이유도 있어요.”
“그게 뭔데?”
“제가 아빠 딸이기 때문이에요. 동지마트가 하는 일, 특히 ‘아이좋아’는 아빠와 윤 스포츠센터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프로젝트잖아요. 그리고 동수씨에게 모든 걸 일임하기는 했지만 아빠가 임명한 윤 스포츠센터 협상 대표는 저였어요. 동지마트가 잘 되면 윤 스포츠센터에도 분명히 큰 도움이 돼요. 그래서 제가 돕는 거예요. 마동수라는 사람의 약혼녀라는 사적인 위치가 아니라 윤 스포츠센터의 ‘아이좋아’ 프로젝트 대표라는 공식적인 위치로 말이죠. 당당한 비즈니스 관계인데 뭐가 마음에 걸려요? 안 그래요?”
***
"쯧. 동지마트가 살아나고 있다면서? 그럼 곤란한데. 회장님이 아닌 척하지만, 은근히 기대하시는 눈치야"
고정호 전무 측근들만 모이는 월례회의에서 고정호 전무가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마동수를 그렇게 낙마시키는 게 아니었습니다."
"마동수? 그게 누구지?"
"권희태 과장을 밀어주려고 원래 있던 D&Y 피트니스 클럽 담당팀에 있던 대리 하나를 지리산으로 발령내버린 적이 있습니다.“
권희태 과장은 고정호 전무가 꽤 아끼는 인재다. 그런 그를 밀어주기 위해 고정호 전무의 측근들은 성공이 확실시되는 D&Y 피트니스 클럽 필리핀 프로젝트에 동수를 빼고 권희태 과장을 밀어 넣었다.
"지리산 연수원? 거기면 귀향 간 거나 다름없잖아. 그런 사람 이야기가 갑자기 왜 여기서 나와"
그룹 내 쓸모 없는 직원을 내쫓는 방법으로 많이 이용되는 곳이 지리산 연수원이다. 혹시나 다시 연락이 올까 오지에서 참고 견딘 사람도 있었지만 한 번도 다시 부름을 받은 사람이 없어서 함흥차사라고도 불리고 있다.
로열패밀리의 적장자인 고정호 전무까지 알 정도로 지리산 연수원은 악명이 자자한 곳이다. 그런데 그곳에 발령 났다는 사람 이름이 왜 갑자기 회의에서 튀어나오는지 의아했다.
“사실 그 친구가 예전에 동지랜드에 발령이 난 적이 있는데 거기서 고현호 이사를 만났습니다.”
“그래서?”
“우연한 일치인지 마동수가 그곳으로 발령 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동지랜드가 거짓말처럼 살아났습니다. 그전에 어린이날 행사도 미 대사부부까지 잘 활용해 성공적으로 마무리 지은 적이 있는 걸 봐서는 능력은 어느 정도 있는 친구였습니다.”
“현호가 동지랜드를 살렸다고 해서 의외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일이 있었어? 그런데 잠깐. D&Y 피트니스 클럽 프로젝트에도 마동수라는 친구가 참여했단 말이야? 그럼 거기서도 설마?”
“네. 다른 프로젝트는 제대로 확인할 길이 없었지만, D&Y 피트니스 클럽 프로젝트만은 그 친구가 가장 큰 공을 세운 게 확실합니다.”
“흠···. 능력이 꽤 있나 보군. 동지랜드에 이어 D&Y 피트니스 클럽 프로젝트에서까지 큰 공을 세웠다면 말이야. 우리 쪽으로 스카우트를 시도해보지 그랬어?”
“동지랜드에서 고현호 이사와 함께 일하면서 그때 이미 회유가 된 것 같아 별도의 스카우트 시도는 하지 않았습니다. 괜히 이중 스파이가 될 수도 있으니까요.”
한 측근의 설명에 고정호 전무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렇군.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믿을 수 있는 사람이 가장 중요하니까. 그래서 지리산 연수원으로 발령을 내버린 건가?”
“네. 우리가 쓰지 못할 인재라면 폐기하는 게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그런데 고현호 이사가 그 친구를 꽤 아꼈는지 회장님과 딜을 한 것 같았습니다.”
“그래? 녀석이 꽤 과감할 때도 있군. 하긴 지리산 연수원으로 한 번 발령이 나면 회장님이 아니고서는 아무도 그곳에서 빼줄 수 없으니까. 현호가 뜬금없이 동지마트를 왜 맡았나 했더니 그런 이유가 있었군, 그래.”
“몇 가지 사소한 이유도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마동수 때문이 맞는 것 같습니다.”
“어리석은 녀석. 아버지와의 딜을 고작 평사원이나 다름없는 직원을 위해 사용하다니. 쯧쯧. 과감하긴 해도 현호는 역시 너무 여려. 포기할 건 포기할 줄 알아야 좋은 경영자인데 말이야.”
“사실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했을 겁니다. 그런데 정말 아무도 예상한 일이 정말 동지마트에서 일어나고 있으니 문제입니다.”
“무슨 말인지 이제야 알겠군. 괜히 일 잘하는 마동수를 권희태 과장 때문에 내쳤는데, 그 친구가 변수가 되어 지금 우리 발목을 잡고 있는 형상이군 그래. 그것참. 역시 사람 일은 마음먹은 대로 되지가 않아.”
“네. 정말 죄송합니다. 동지마트가 살아날 수 있을 거라고는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마동수 그 친구 능력이 괜찮은 건 알았지만, 동지마트는 무리일 거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 친구를 너무 과소평가한 것 같습니다.”
“아니야. 아버지도 실패한 일을 동지그룹에서 그 누가 성공하리라 생각했겠어. 권희태 과장이 잘 크면 그만큼 우리에게 도움이 되니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어. 문제는 동지마트를 그냥 이대로 내버려 두면 안 된다는 거야. 그렇다고 회장님이 관심을 가지고 계신 데 노골적으로 방해할 수는 없고. 뭔가 좋은 아이디어 있는 사람 없어?”
“혹시 윤시연이라고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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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건 아주 예전에 던져놓은 떡밥과 콜라보(?)입니다.
아직은 단서가 너무 적은데 설마 예상하시는 분이 있진 않겠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