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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가 전부는 아니야-240화 (24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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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Rrrr

“네. 마동수입니다.”

“안녕하십니까. 마동수 팀장님. 저 시민은행 박 차장입니다.”

“아. 박 차장님. 급히 투자 결정을 해야할 일이라도 생긴 건가요?”

회사 일을 마치고 집에 오자 밤 10시였다. 시연이와 통화를 끝내고 샤워를 한 후 자려고 누웠는데 시민은행 박 차장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항상 일과 시간에만 전화를 해오던 사람이 늦은 시간에 갑자기 전화를 해오니 투자가 잘못된 건 아닌지 걱정이 들었다.

“아닙니다. 자산 관리는 잘 되고 있으니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특히 동지마트 주식을 산 건 지금 생각해도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습니다.”

1,300원까지 떨어졌던 동지마트 주가는 지금 현재 4,000원까지 올랐다. 박 차장을 통해 약 400만 주의 주식을 샀던 나는 몇 달 사이 백억 원이라는 거금을 벌었다. 동지마트 주식을 사는 걸 보고 혹시나 싶어 따라 했던 박 차장도 상당한 재미를 봤다며 내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었다.

“자산 관리에 이상이 없다니 다행이군요. 그럼 무슨 일로 이 시간에 전화를 하신 겁니까?”

“누가 마 팀장님 뒷조사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려서요.”

“저를요? 누가요?”

“그것까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확실한 건 누군가가 지속적으로 마 팀장님 계좌를 조회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박 차장의 설명을 듣는 순간 문득 며칠 전 이기적 대리가 내게 했던 이야기 떠올랐다.

[어··· 엄살이 아니고. 진짜 죽을 것 같아서 그랬어. 마 팀장. 내··· 내가 잘못했어. 그냥 요즘 그룹 내에서 고현호 이사와 관련해서 그런 소문이 돌고 있었거든. 그래서 내가 생각 없이 내뱉었어. 진짜 미안해. 할 말이 있고, 안 할 말이 있는데 내가 심했어. 용서해줘.]

나와 시연이가 그룹 내에서 조금씩 이슈가 되고 있다는 말이었다. 사실 그 동안 이기적 대리의 그 말이 왠지 모르게 찜찜했었는데, 지금에서야 그 찜찜함의 정체가 뭔지 알 수 있었다.

망해가는 동지마트.

최고의 추진력과 카리스마를 자랑하던 한국 재계의 살아있는 전설이라고도 할 수 있는 고대성 회장조차도 살려내지 못하고 포기한 비운의 계열사.

그런데 후계 다툼에서 가장 가능성이 낮다고 평가받던 고현호 이사에 의해 동지마트가 살아날 기미를 보이고 있다?

최소한 동지 그룹 안에서는 확실히 이슈가 될 수밖에 없는 대단한 사건이다. 누가 예상이나 했겠나? 다른 사람도 아니고 고현호 이사가 동지마트를 살려낼 거라고.

동지랜드와 달리 대놓고 동지마트를 살리겠다고 TF팀까지 만들어 그곳 팀장으로 발령이 난 사람이 바로 나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내가 동지마트를 살린 숨은 주역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니 고현호 이사만큼이나 그룹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고현호 이사와 경쟁 관계인 고정호 전무나 고평호 상무 측에서는 내가 눈엣가시처럼 거슬렸을 것이다. 양지선 팀장에게 잘못 보여 동지랜드로 쫓겨나기도 했고, 내 의지와 전혀 상관없었던 납치 사건으로 회사에 누를 끼쳤다며 지리산 연수원으로 발령까지 받았던 나다.

그런데 이전까지 겪었던 고난은 워밍업 수준도 되지 않는, 피 튀기는 살육의 현장과 다를 바 없는 후계자 경쟁이라는 전쟁터에서 나에 대한 견제가 없을 리 없다.

이런 상황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누군가가 나의 계좌를 추적하고 있다?

이건 고정호 전무 또는 고평호 상무 측의 소행일 가능성이 거의 90% 이상이라고 보면 된다. 다행히 내게는 혹시나 싶어 이런 날을 대비해 만들어 놓은 비장의 카드가 한 장 있다.

바로 아이두 로열티 계약금 3억 원.

처음엔 별다른 고민 없이 윤 사장님 주시는 계약금을 덥석 받았지만,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훗날 문제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입금 근거가 남아있기 때문에 완전히 없던 일로 만들기는 어려운 일, 고민 끝에 계약금을 나와 시연이 이름으로 기부를 해버렸다. 그리고 실제로 받게 되는 로열티는 모두 시연이가 받을 수 있도록 조치를 해두었다.

물론 ‘아이두’에 관련된 아이디어는 모두 내 머릿속에서 나왔지만, 그 과정에서 시연에게 많은 도움을 받은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니 그녀의 권한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어차피 결혼까지 약속한 사이니 내가 받든 그녀가 받든 상관없다는 생각에 로열티 권한을 넘긴 게 정말 신의 한 수였다.

올 초 시연이는 아이두에 대한 로열티로 생각보다 많은 돈이 들어오자 일정 금액을 기부하는 게 어떨까 내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솔직히 말해 나는 그동안 기부에 대해 조금은 부정적이었다. 기부 자체를 싫어한다기보다는 과연 그 돈이 정말 필요한 곳에 제대로 사용될지 항상 그게 의문이었다.

그런데 돈을 많이 벌면서 마음에 여유가 생기다 보니 그러한 나의 선입견이 많이 희석되었다. 정말 기부할 마음이 있었다면 기부금액을 투명하게 사용하는 단체를 찾으면 된다. 그동안 나는 그런 노력도 하지 않고 ‘기부 안 해. 해봤자 엉뚱한 놈들 배만 채우는 건데 누구 좋으라고 기부를 해.’라며, 기부에 관심 없는 나 자신을 합리화했던 것 같았다.

게다가 어차피 그 돈에 대한 활용은 전적으로 시연이에게 맡겼기 때문에 그 돈으로 뭘하든 그건 시연이 마음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매년 꾸준하게 기부를 하자고 약속을 하고 올 3월에 5,000만 원을 따로 마련했고, 그 이야기를 들은 윤 사장님이 기특한 일을 한다며 5,000만 원을 보태 주셔서 총 1억 원의 돈을 나와 시연이의 이름으로 기부할 수 있었다.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역시 시연이는 내게 복덩어리다. 의도한 부분도 있고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었지만, 이 정도면 만반의 준비를 끝내놓은 셈이다.

“제 계좌를 추적한다고요? 설마 조사한다고 제 모든 계좌가 드러나고 그런 건 아니겠죠?”

“물론입니다. 그런 건 절대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계좌에 락을 걸어뒀기 때문에 영장 없이 계좌조회는 어렵습니다. 엄청나게 뛰어난 해커를 동원한다고 해도 우리 시민은행이 관리하는 VIP 고객들의 계좌를 조회하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계좌에 락을 걸어둔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안전하다고 하니 일단 안심이었다.

“그럼 일부 계좌만 노출할 수 있나요? 저를 조사하는 사람이 누군지 알 것 같은데, 그걸 역이용해보고 싶거든요.”

“아! 그러십니까? 충분히 가능합니다. 어떤 계좌를 풀어둘까요?”

“예전에 윤 스포츠센터에서 제게 3억 원을 입금한 통장이 있을 겁니다. 기억나십니까?”

“물론입니다. 다시 돌려줬던 것으로 기억합니다만?”

“맞습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돌려준 게 아니라 그 돈을 좋은 곳에 기부했습니다. 그런데 아마 그 통장에는 제가 3억 원을 인출했다는 근거만 있고 기부했다는 사실은 나와 있지 않을 겁니다.”

“그럼 그 통장을 노출해서 마동수 팀장님이 3억 원을 개인적으로 사용했다고 그들이 믿게 하고 싶으신 겁니까?”

“네. 가능하겠죠.”

“어렵지 않은 일입니다. 그냥 그 계좌에 대한 락만 풀어두면 시민은행의 모든 창구에서 조회가 가능합니다.”

“다행이네요. 그럼 그렇게 해주세요. 정말 좋은 정보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냥 모르고 당했다면 크게 곤욕을 치를 뻔했습니다.”

“하하하. 아닙니다. 제가 그동안 마 팀장님 덕을 얼마나 많이 봤는데요. 항상 감사한 마음입니다. 다행히 이 소식이 도움이 되었다니 저로서도 정말 안심입니다.”

“앞으로도 이런 일이 있으면 언제든 시간 개의치 말고 연락해주십시오.”

“알겠습니다. 그럼 늦었는데 쉬십시오.”

Rrrr

나는 박 차장과 통화를 끝내고 곧바로 시연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동수씨. 아직 안 잤어요?”

그녀는 아까보다 더욱 활기찬 목소리로 나를 반겼다. 잔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던 내가 다시 전화를 하니 반가웠던 모양이다.

“뭐했어?”

“동수씨 생각이요. 헤헤.”

“뭐? 조금 전까지 전화했잖아.”

“저야 항상 동수씨 생각하는 걸요. 동수씨는 안 그래요?”

“나? 다··· 당연히 나도 그렇지. 하하하.”

“그런데 무슨 일로 전화한 거예요?”

“일이 있어야 전화하나. 자려는데 갑자기 네 목소리가 듣고 싶어 전화한 거야.”

“알아요. 그런데 다른 일도 있는 거죠?”

“아니야. 정말 목소리가 듣고 싶어 전화한 거야.”

내 나이가 이제 서른하나. 동네 소꿉친구부터 시작해서 정말 많은 종류의 여자를 알아왔지만 여전히 어려운 게 그네들의 언어구사법이다. 좋은 게 좋은 게 아니고 싫은 게 싫은 게 아닌 오묘하고 미스테리한 여성들의 세계.

그런 불가해의 세상을 험난하게 거쳐왔더니 이젠 거의 조건반사적으로 여자들이 원하는 대답이 나온다.

‘네가 보고 싶어서.’

‘네 목소리가 듣고 싶어서.’

‘그 옷 정말 잘 어울려.’

‘그 색깔 정말 좋은데.’

‘하나도 안 뚱뚱해 보여. 완전 날씬해 보여.’

‘나이 들어 보이다니 누가 그래. 원래 나이보다 10살은 어려 보이거든!’

누르면 나오는 자동판매기도 아니고 연애 시 대답해야 할 정답을 알려주는 학원을 다닌 것도 아니다. 이건 거의 생존본능 같은 거라고 할 수 있다.

“히히히. 동수씨.”

“응? 왜?”

“귀여워서요.”

“뭐? 시연아 아무리 네 눈에 콩깍지가 씌어도 나를 보고 귀엽다니. 누가 들으면 욕해. 그러지 마.”

“뭐 어때요. 동수씨가 귀여운 건 사실인데요. 그런데 저한텐 안 그래도 돼요. 진짜 무슨 일 때문에 전화한 거예요?”

헉!

눈치 빠른 시연이는 내가 용무가 있어 전화했다는 걸 눈치챘나 보다. 이럴 땐 꼬랑지를 내리고 어서 사실 고백을 하는 수밖에 없다.

“사실은 조만간 시연이 너나 나에 대해 안 좋은 이야기가 나올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전화했어.”

“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에요?”

“전에 내가 동지그룹 후계구도에 관해서 설명한 적 있지?”

“네. 고현호 이사님과 그 위에 두 분 형님들 사이에 후계자 경쟁이 있다고 했어요.”

“내가 이제 완전히 고현호 이사님 측 사람이 됐잖아. 동지마트가 살아날 조짐이 보이니까 상대 측에서 견제가 들어오려고 하는 것 같아. 그 첫 번째 타깃이 너랑 내가 될 것 같고.”

지금 내가 처한 상황과 박 차장이 알려준 정보에 대해 시연이에게 모두 설명했다. 그녀도 소문의 당사자 중 하나이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정확하게 알아야 할 것 같았다.

“와! 그럼 동수씨는 이런 일이 있을 걸 대비해서 그때 그 계약금을 기부하자고 한 거예요?”

“그렇다고 온전히 꼼수를 부리려고 기부한 건 아니야. 내가 그동안 복권을 비롯해 금전 운이 계속 따라서 베풀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어.”

“그래도 정말 대단해요. 만약 그 돈을 그대로 받고 있었다면 지금 동수씨는 매우 곤란한 상황에 빠질 수도 있었잖아요.”

“그럴 수도 있었겠지. 아! 그리고 올 3월에 네 권유로 아버님과 함께 1억 원을 기부한 것도 이용할 생각이야. 괜찮지?”

사실 어려운 사람을 돕는 기부행위로 생색을 내려니 좀 민망하긴 했다. 하지만 어차피 언론을 통해 알려질 이야긴데 시연이 모르게 진행하는 건 아닌 것 같아 솔직히 다 털어놓았다.

“그럼요. 저는 사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라는 말을 별로 안 좋아해요. 베푸는 건 널리 널리 알려져서 많은 사람이 동참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리고 그게 동수씨에게 도움이 된다면 정말 금상첨화겠죠.”

“이해해줘서 고마워.”

꿈보다 해몽이 좋은 걸까? 시연이는 내가 뭘해도 좋게 보이나 보다. 언제나 그렇듯 시연이와 대화를 하면 마음이 든든해진다.

============================ 작품 후기 ============================

억지스럽지 않죠?

연재 시간으로 거의 2년 전에 투척했던 떡밥을 이제야 회수합니다. ㅠㅜ

너무 오래되어서 기억못하시는 분도 계실 것 같아서 약간의 설명은 곁들여 놓았으니 글을 읽는데는 큰 지장이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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