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47 소제목 추후 결정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시연이의 기부관련 기사가 나가기 전 김학수 부장이 소개해준 기자와 간단한 인터뷰 시간을 가졌다. 기사가 나가는 것도 부담스러운데 인터뷰까지 하면 너무 요란을 떠는 게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그런 역효과가 나지 않도록 잘 컨트롤 하겠으니 염려하지 말라는 김학수 부장의 말에 인터뷰를 수락했다.
“작년에 3억 원을 기부한 것도 대단한데, 올 초에 1억 원 그리고 얼마 전에 CF 출연료로 받은 돈에서 5,000만 원을 기부했습니다. 20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그런 생각을 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요?”
응? 출연료에서 5,000만 원을 또 기부했다고? 그건 나도 몰랐던 사실이다.
“저는 정말 운이 좋은 사람이에요. 집안이 넉넉해서 돈 걱정 없이 살았고, 몸은 튼튼해서 잔병치레 한번 하지 않고 자랐어요. 어릴 때 제 단짝 친구 중 한 명이 몸이 약했어요. 그래서 자주 앓았고, 한 달에 몇 번은 아파서 결석을 했죠. 당시 학교 다니는 걸 그렇게 좋아하지 않던 저는 아파서 결석하는 친구가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어요. 심지어 난 왜 이렇게 아픈 곳이 없는지 튼튼한 제 몸을 원망하기도 했어요. 아빠에게 그 이야기를 했다가 정말 눈물이 쏙 빠지도록 혼났었죠.”
“저런. 아버님이 정말 많이 화가 나셨나 보군요.”
“네. 태어나서 지금까지 아빠가 그렇게 화를 내는 모습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어요. 화가 난 아빠 얼굴을 보며 저는 다시는 그런 말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어요. 하지만 아빠가 무서워서 그런 약속을 했지, 제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지는 이해가 가지 않았어요. 그런 바보 같은 생각은 제가 대학에 입학해서도 그렇게 변하지 않았어요. 제게 건강은 너무 당연한 거라서 소중함을 몰랐던 것 같아요. 그런데 동수씨가 희귀난치병 어린이들에게 기부를···”
“동수씨라면 윤시연 작가가 쓴 ‘그에게 내 마음을 담아 보낸다.’에서 ‘그’의 주인공이죠?”
“네. 맞아요.”
기자의 질문에 시연이가 수줍은 듯 얼굴을 붉히며 대답했다. 나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저렇게 좋아하는 그녀를 보자 멀쩡하던 심장이 갑자기 미친 듯이 뛰었다.
“누군지 몰라도 윤시연 작가처럼 아름답고 능력 있는 사람을 약혼녀로 뒀으니 엄청난 행운아겠군요. 부럽습니다. 하하하.”
“그렇지 않아요. 그건 기자님이 우리 동수씨를 잘 몰라서 하시는 말씀이에요. 진짜 행운아는 저라고 생각해요. 그는 제 약혼자이기도 하지만 저의 롤모델이기도 하거든요.”
“롤모델요? 자신의 배우자를 롤모델로 삼는 건 흔한 일이 아닌데요.”
“그만큼 멋진 남자니까요. 제가 아는 사람 중에 가장 가슴이 따뜻한 남자거든요. 아까 말하다 말았지만 제가 희귀난치병 어린이를 처음 만난 것도 동수씨 덕분이었어요. 우리는 그때 기부는 하고 싶은데 적당한 곳을 찾지 못하고 있었어요. 한참을 고민하다가 그가 그랬어요. 직접 가보고 결정하자고. 그래서 처음 찾아간 곳이 희귀난치병 어린이돕기센터였어요. 거길 찾아갈 때만 해도 저는 호기심이 더 컸어요. 정말 철부지였죠. 그런데 그곳에서 직접 천사 같은 아이들을 만나는 순간 제가 그동안 얼마나 바보 같고 어리석게 살아왔는지 깨달았어요.”
그동안 나도 몰랐던 시연이의 속마음을 듣게 되자 가슴이 뭉클했다. 아마 내가 여기 있는지 모르는 모양이었다. 그렇다고 인제 와서 내가 왔다는 걸 알리면 지금 분위기가 깨질 것 같아 조용히 두 사람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어떤 깨달음이었나요?”
“어릴 때 자주 아픈 친구가 부럽다고 했을 때 아빠가 왜 그렇게 화를 냈는지 진심으로 이해하게 되었어요. 아파서 어쩔 수 없이 하루종일 병실에만 갇혀 지내는 아이들도 있는데 저는 그것도 모르고 아픈 친구를 부러워한 거잖아요. 멍청했던 저 자신이 얼마나 부끄러웠던지 센터에서 얼굴을 제대로 들고 있지도 못했어요. 그런 모습을 보면서 동수씨는 제가 이곳을 그리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나 봐요. 저보고 ‘불편하면 다른 곳으로 갈까?’라고 다정하게 묻는데 그 말이 왜 그렇게 아프게 들리는지 그의 팔을 붙잡고 펑펑 울었어요.”
“약혼자가 많이 당황했겠군요.”
“그건 모르겠어요. 그냥 따뜻하게 저를 안아주면서 그냥 말없이 제 등을 토닥여줬거든요. 그게 제겐 큰 위로가 되었어요. 그리고 저도 동수씨처럼 넓은 가슴으로 아이들을 품어주고 싶다 다짐을 하게 되었죠.”
“듣고 있으니 정말 멋진 커플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저는 아니고 동수씨가 그렇죠. 아무튼. 저는 그때부터 자주는 아니더라도 시간이 날 때면 아이들을 찾아갔어요.”
“그때부터 봉사활동을 시작한 거군요.”
“봉사활동요? 아니요. 전 제가 봉사활동을 하러 갔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아이들을 돕는다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거든요. 죽는다는 게 뭔지도 모르는 천사같은 아이들이에요. 정말 작고 예뻐요. 그런 작고 여린 아이들이 태어나서 병원에서만 생활한다고 생각해보세요. 제가 가서 세상 이야기를 해주면 아이들이 정말 좋아해요. 예쁜 누나, 언니가 왔다면서 해맑게 웃는 모습을 보면 제가 그 아이들을 도와주는 건지 아니면 제가 오히려 힐링을 받는 건지 헷갈릴 때조차 있어요. 저는 가서 아이들과 놀고 오는 게 전부에요. 그리고 해맑은 미소로 나를 반겨주는 그 아이들을 보면서 오히려 제가 치유를 받았죠. 그러니 이건 절대 봉사활동이 아니에요.”
시연이는 아이들을 생각하는 것만으로 기쁘면서도 슬픈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면서 눈가는 촉촉해졌다.
“아! 이건 제가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천사 같은 아이들을 만나 오히려 치유를 받는다. 어쩌면 우리가 지향해야 할 봉사활동의 궁극적인 모습이 아닐까 생각이 드는군요.”
“글쎄요. 방금 하신 말씀은 제가 감당하기 어려운 말이에요. 솔직히 저는 봉사활동이 뭔지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확실한 건 사람마다 그들이 생각하는 봉사활동의 모습이 다르다는 거예요. 그러니 어떤 건 맞고 어떤 건 틀렸다고 단정 짓는 건 큰 실례라고 생각해요. 어떤 생각으로 남을 돕던, 남을 돕는 일은 그 자체만으로 의미가 있어요. 만 원을 기부하든 1억 원을 기부하든 자기 형편에 맞게 기부하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해요. 거기에 가치판단이 들어가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이런. 제가 실수를 했군요. 윤 작가님의 말이 맞습니다. 남을 돕는 일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죠. 제가 오늘 인터뷰를 하러 왔다가 많이 배우고 갑니다. 제가 인터뷰를 많이 해봤지만, 오늘처럼 가슴 뭉클한 인터뷰는 정말 오랜만입니다. 훌륭하다고 해서 만나러 갔다가 실망하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소중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인터뷰 기자는 오늘 만남이 진심으로 마음에 들었는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시연이에게 악수를 건넸다.
“저··· 저는 그냥 아무것도 모르는 학생일 뿐인데요.”
“하하하. 그래서 더 좋아 보입니다. 윤 작가님 나잇대의 대부분 학생은 취직 준비를 하거나, 술 마시며 생각 없이 놀거나 둘 중 하나인 경우가 많거든요.”
“아···. 그··· 그게.”
“인터뷰 끝났어?”
기자의 극찬에 몸 둘 바를 모르며 쩔쩔매는 시연이의 모습이 안 돼 보여 얼른 말을 걸었다.
“어! 동수씨! 언제 왔어요?”
내가 나타나자 시연이는 활짝 웃으며 나를 반겼다.
“조금 전에. 인터뷰 잘했어?”
“네. 잘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무사히 끝난 건 맞아요.”
“안녕하십니까. 마동수 팀장입니다. 김학수 부장님에게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아! 마동수 팀장님. 대체 어떤 분인가 궁금했는데 이렇게 만나게 되네요. 반갑습니다. 심광훈 기자입니다.”
시연이와의 인터뷰가 좋아서 그런지 심광훈 기자는 내게도 굉장히 호의적이었다.
“시연이가 인터뷰를 잘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일이 처음이라 걱정을 많이 했거든요.”
“정말 잘했습니다. 진심이 드러나는 순수한 인터뷰는 정말 오랜만이라 김학수 부장님의 말씀을 듣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말 멋진 약혼녀를 두신 것 같습니다.”
“그렇죠? 제가 좀 운이 좋습니다. 하하하.”
“그런데 혹시 언제 시간 좀 내주실 수 있으십니까?”
“네? 저요?”
“네. 마 팀장님에게 드린 말씀입니다.”
“심 기자님이 원하신다면 없는 시간이라도 만들어야죠. 그런데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시는지···.”
시연이를 극찬하던 심광훈 기자가 갑자기 나에게 관심을 보였다.
“당연히 인터뷰하려고 하는 거죠.”
“네에? 저··· 저를요? 왜요?”
엉뚱한 요청에 당황했는지 내 대답도 엉뚱하게 튀어나왔다.
이 사람도 꽤 유명한 인터뷰 전문 기자라고 들었는데 왜 나 같은 사람과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하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모르셨습니까? 요즘 증권가를 중심으로 마동수 팀장님이 꽤 많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제가요? 제가 뭘 했다고요?”
“하하하. 뭘 했다니요? 정말 모르셔서 그렇게 말씀하시는 겁니까? 이런···. 정말 모르시는가 보군요. 혹시 미다스의 손이라는 말은 들어보셨습니까?”
“아! 예. 좀 어이없긴 하지만 몇몇 사람들이 저를 그렇게 부른다더군요.”
“몇몇 사람들이 아니라 증권가와 헤드헌팅 업체를 중심으로 공공연하게 그렇게 불리고 있습니다. 마 팀장님이 모든 사람이 실패할 거라고 생각했던 동지마트마저 살려내는 모습을 보며 더욱 유명해졌고요.”
“그럼 뭐합니까? 실속이 있어야죠.”
고진성 부회장님에게 잠깐 듣기는 했지만, 기자에게마저 이 이야기를 들으니 괜히 우쭐해지는 마음이 생겼다.
“하하하. 마 팀장님이 고현호 이사의 측근이라 다들 조심하는 겁니다. 아무리 미다스의 손으로 유명하다고 해도 재벌 2세가 제안한 조건 이상을 제시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니까요.”
“아무 조건이 없는데요.”
“네?”
“그냥 회사에서 받는 월급이 전부라고요. 그러니 혹시 헤드헌팅 관계자를 만나면 저를 어려워하지 말라고 전해주십시오.”
“이런. 진심이십니까?”
“진심 반 농담 반입니다. 요즘 제가 이사님으로부터 혹사를 당하고 있거든요. 힘들어서 안 되겠습니다.”
“헤드헌팅 관계자들은 힘들고, 학수 선배를 만나면 꼭 전해드리죠.”
“네? 설마 학수 선배라는 사람이 김학수 부장님을 가리키는 건 아니죠?”
“왜 아니겠습니까?”
“하하하. 농담입니다. 농담. 저 같은 사람 뭐 볼게 있다고 인터뷰를 하고 싶어 하시는지 모르겠지만 필요하다면 언제든 시간을 내겠습니다.”
“약속하셨습니다.”
“물론입니다.”
============================ 작품 후기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