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49 소제목 추후 결정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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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그룹 회장실.
동지그룹의 주인인 고대성 회장의 집무실은 겉치레를 싫어하는 그의 성격처럼 소박하게 꾸며져 있었다. 개인 사무실이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책장조차 없어 어떻게 보면 소박하다 못해 휑한 느낌이 들 정도로 단출했다.
“이번에 재미있는 일이 있었다더구나.”
“임시 이사회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회장님.”
“그놈의 회장님 소리는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어? 우리 둘이 있을 땐 그냥 ‘형’이라고 불러.”
“회사에서 그럴 수야 없죠. 지킬 건 지켜야 합니다.”
고대성 회장이 호칭을 가지고 뭐라고 했지만, 고진성 부회장의 대답은 단호했다.
“하여간 고지식한 녀석. 그래. 그러니까 내가 너를 더 믿는 거겠지. 그래도 이제는 같이 늙어가는 처진데 살갑게 좀 지내면 좀 좋아?”
“늙다니요. 회장님. 앞으로 최소 10년은 거뜬합니다.”
“쯧쯧. 앞으로 10년이 더 해먹으려고?”
“앞으로 10년은 더 회장님을 보필해야죠.”
“차라리 벽에 똥 처바를 때까지 있으라고 하지? 안 그래도 주변에서 말이 많아. 애들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회장 자리를 차지하고 물러날 생각을 하지 않느냐고.”
회사에서는 항상 카리스마 넘치는 회장이었지만, 그래도 동생 앞에선 인간적인 모습을 드러냈다. 고진성 부회장 입장에서는 자신을 편안하게 생각하는 고대성 회장이 반가우면서도 한 편으로는 예전의 강인한 모습이 조금 꺾인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다.
“수렴청정도 있습니다.”
“됐어. 넘기면 그걸로 끝이지 무슨 미련이 남는다고 수렴청정이야. 안 그래도 영조처럼 자식 먼저 앞세우고 손자에게 자리를 넘길 인간이라는 소리까지 들어서 마음이 편하진 않아.”
“아니. 형님! 왜 그렇게 약한 말씀을 하십니까.”
“허허. 녀석도. 이제야 형님 소리가 나오네. 걱정하지 마. 말이 그렇다는 거지. 지금 당장 뒷방 늙은이로 물러날 생각은 없어.”
“당연히 그러셔야죠. 회장님.”
“그건 그렇고 임시 이사회는 완전히 코미디가 따로 없었다면서?”
“어떻게 보면 코미디라고도 할 수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출사표의 자리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 말에 무심히 차를 마시려던 고대성 회장이 찻잔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누군가라는 건 혹시 현호를 말하는 건가?”
“현호밖에 더 있습니까. 정호는 망신을 당했고, 평호는 꿔다 놓은 보릿자루 신세였습니다. 현호 혼자만 이리저리 빛나던 자리였습니다.”
“그래? 우리 막내가 조금 독해졌나 보군.”
“독해졌다면 독해졌다고 볼 수 있죠. 단단히 준비하고 왔더라고요.”
“쯧쯧쯧. 정호 욕심이 과했어.”
“그건 저도 동감입니다. 동지마트가 완전히 살아난다고 해도 현호가 정호나 평호에 비해 앞서나간다고 말하긴 어려우니까요. 그제야 겨우 두 형과 경쟁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자격을 갖췄다고 해야 할 정도죠. 동지 에너지나 동지 중공업을 10년 넘게 경영하면서 꽤 훌륭하게 발전시킨 공로를 무시하긴 어렵지 않습니까?”
“그렇지. 미국에서 자기 공부만 하느라 한국에 귀국한 지 2년밖에 안 된 녀석을 너무 경계했어. 장남이라면 좀 마음을 넓게 가지고 느긋하게 지켜봐도 좋았을 텐데. 이제 조금 자라려고 하는 막냇동생을 밟으려고 무리해가며 임시 이사회까지 여는 꼴이라니···.”
고대성 회장은 첫째 아들의 속좁은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아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그러면서 소파에 얹은 오른쪽 검지를 신경질적으로 두들겼다. 못마땅할 때 자주 하는 그의 버릇이었다.
“저는 그런 고 전무의 마음이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갑니다.”
“정호 행동이 이해 간다고? 항상 말하지만 진성이 너는 너무 마음이 약해.”
합리적이고 정확하게 동지그룹 살림을 맡아온 고진성 부회장이다. 그런 그의 모습에 냉철하다는 주변 평가가 많았다. 그러나 고대성 회장의 생각은 달랐다. 어쩌면 가족이라서 보는 눈이 다를 수도 있었다.
“독기는 없어도 누구보다 똑똑했던 아이가 현호입니다. 정호나 평호도 현호가 자신들보다 명석하다는 건 인정할 정도였죠. 그런 녀석이 갑자기 하던 공부를 중단하고 경영학으로 전공을 바꿨습니다. 경계심이 생길 수밖에 없죠. 거기다 한국에 와서의 모습도 짧지만 강렬한 행보를 보이고 있지 않습니까? 폐업 직전이던 동지랜드를 살려낸 것도 솔직히 대단한 겁니다.”
“고작 놀이공원일 뿐이야.”
“놀이공원이라고 해도 사업은 사업입니다. 쟁쟁한 라이벌이 이미 시장을 완전히 장악한 상황에서 틈새시장을 공략한다는 게 보통 일은 아닙니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라 동지마트까지 살려내고 있으니 정호와 평호 입장에서는 당연히 눈에 거슬렸겠죠.”
“형이 되어서 막내가 좀 잘해보겠다는 데 그걸 속 깊게 못 봐주나.”
“그게 바로 회장님의 가르침 아닙니까? 라이벌이라고 생각된다면 새싹이 자라기 전부터 밟아버려야 한다. 그래서 다시는 일어날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정호와 평호에게 그렇게 가르쳤으니 형제간에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겠죠.”
“허허허. 그래 틀린 이야긴 아니군. 그런데 밟으려면 제대로 밟았어야지. 완벽하게 준비를 해서 절대 일어설 수 없도록 말이야. 나는 그렇게 가르쳤다고. 그런데 이번 일 봐. 오히려 현호에게 큰 기회만 준 셈이 되었잖아. 라이벌이 될 새싹은 밟지 못하고, 이제 자라나는 동생이나 밟으려는 못난 형이 되었으니 이리저리 손해가 커.”
“그동안 중립적인 입장을 고수하던 이사진 중에 현호에게 호감을 가진 이들이 몇몇 되는 것 같습니다.”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던 이사진들도 각기 저마다 사정이 있었다. 고대성 회장에 대한 충성심이 절대적이라서 후계자라고 해도 다른 누군가를 지지할 생각이 전혀 없는 사람. 고정호 전무나 고평호 상무가 그렇게 마음에 들지 않아서 독자적인 노선을 걷는 사람. 무능력해서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중립을 지키는 사람. 이리저리 눈치만 보며 확실해질 때 가담하려는 사람.
첫 번째와 두 번째 경우에 해당하는 이사진들이 가장 많은데, 그중 고정호 전무와 고평호 상무가 눈에 차지 않았던 두 번째 경우의 이사진들이 고현호 이사에게 많은 관심을 보였다. 이들은 다른 이사진들과 비교해서 상당히 합리적인 편이며 업무 능력 또한 무척 높이 평가받고 있는 편이다.
숫자로 따지면 고정호 전무나 고평호 상무를 지지하는 세력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지만, 개개인이 지닌 능력을 생각하면 고현호 이사에게는 천군만마나 다름없는 사람들이었다.
“권력 욕심보다는 회사 일에만 관심이 있는 일벌레들일 가능성이 높겠군그래.”
고대성 회장은 본인에게 절대적 충성심을 보이는 첫 번째 이사진들보다 두 번째 이사진들을 더 높이 평가했다.
두 아들에게 붙은 이사들을 돼지, 첫 번째 이사들을 밥벌레, 마지막으로 눈치만 보고 있는 이사들을 박쥐라고 부르는 걸 생각하면 일벌레는 굉장히 긍정적인 표현이었다. 물론 무능력해서 아무도 받아주는 사람이 없는 이사들은 고대성 회장 또한 전혀 관심이 없었다.
“네. 정호나 평호가 동지 에너지와 동지 중공업을 키운 것에는 굉장히 야박하게 평가하던 사람들이었는데, 이상하게 현호에게는 호의적입니다.”
“유유상종이잖아. 비슷한 것들끼리 서로 알아본 거지. 그리고 만약 현호가 동지마트를 완전히 살려낸다면 정호나 평호보다 더 어려운 일을 해낸 건 사실이지.”
“동지 에너지와 동지 중공업을 업계 1위로 키운 건 전적으로 두 사람의 공입니다.”
“알아. 알지. 그런데 두 녀석이 가기 전에도 1위와 그렇게 큰 격차가 없는 2위 업체였어. 그런 회사를 10년간 맡아서 경영했는데 1위를 못 만들면 후계자 경쟁에 끼어들 자격조차 없는 거지.”
지금까지 동지그룹을 비롯해 한국에서 내로라하는 수많은 재벌가의 자녀들이 부모의 큰 기대를 받고 경영전선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그중에서 자신이 맡은 기업을 더욱 발전시킨 경우는 거의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그냥 실패하지 않고 무난하게 경영하는 경우도 그리 많지 않았고, 대부분은 예전보다 오히려 상황을 어렵게 만들거나 심지어는 시쳇말로 말아먹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이런 상황과는 달리 동지그룹의 두 아들은 아버지에게서 받은 기업을 예전보다 더욱 크게 성장시켰다. 그러나 고대성 회장의 그들에 대한 평가는 그리 높지 않았다.
“2위에서 1위를 만드는 것도 충분히 칭찬할만합니다.”
“그걸 부정할 생각은 없어. 단지 나조차 실패했던 동지마트가 살아나고 있는 게 의외라서 그래. 그냥도 아니고 비자금이다 뭐다 해서 만신창이가 된 회사였잖아. 그걸 다시 살려내고 있어. 아니지. 다시 살려낸다는 말은 여기에 맞지 않지. 살아난 적이 한 번도 없었으니까. 일벌레들도 거기에 주목하고 있는 걸 거야.”
“아직 확실히 살아난 건 아닙니다. 완전히 자생하려면 단기간에 지점 숫자를 지금보다 몇 배 더 늘려야 합니다. 과연 그걸 현호가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아무래도 방법은 기업합병밖에 없겠지?”
“네. 그것도 4위인 대박마트 따위를 합병해봤자 별로 이득도 없습니다. 3-마트, 엘마트, 포에버마트 이렇게 세 곳 중 한 곳과 합병을 해야 하는데···. 다윗이 골리앗을 잡아먹는 게 어려운 일이죠. 셋 다 잘 나가고 있어서 팔 이유도 없고요.”
“그래. 팔 이유를 만들어야 하는데 과연 그걸 해낼 수 있을까? 궁금하긴 하군.”
대형할인마트는 유통업의 최종 단계이다. 이것만 제대로 운영해도 그룹이 생산하는 물량을 별 어려움 없이 소화할 수 있다. 바보가 아닌 이상 흑자를 내고 있는 마트를 팔 이유는 없었다.
“그래서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회장님이 말씀하신 일벌레들이 현호에게 마음을 두고도 지켜보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가능성이 있는 곳이라도 있나?”
“아무래도 3-마트는 불가능합니다. 워낙 막강하니까요. 재계서열 1위 그룹이 모기업으로 있는데 아쉬울 게 뭐가 있겠습니까?”
“남는 건 엘마트와 포에버마트 두 곳이군. 거기도 만만한 곳은 아니니 쉽지는 않겠어.”
“요즘의 현호라면 뭔가 방법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확실히 예전과는 많이 달라진 모습이라 기대가 되는 건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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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하셨듯 결국은 기업합병밖에 방법이 없습니다. 문제는 엘마트냐 포에버마트냐 그게 문제겠죠. 저도 많이 고민을 했는데 과연... ㅠㅜ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