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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가 전부는 아니야-253화 (253/424)

00253  소제목 추후 결정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급히 상의할 일이 있다는 말에 곧장 고현호 이사의 방으로 향했다. 안에는 고현호 이사뿐만 아니라 김학수 부장도 함께 있었다.

“아. 부장님도 계셨네요. 뭔가 중요한 일이 생겼나 보군요.”

“어서 와요. 마 팀장. 그러고 보니 아직 팀장 승진한 것 축하도 못 해줬네요. 정말 진심으로 축하해요. 동지그룹 역사상 거의 찾아보기 힘든 케이스라고 하던데.”

“감사합니다. 그래도 어디 부장님만 하겠습니까? 하하하.”

올해 나이 서른일곱. 부장으로 발령 났을 때가 서른여섯 초반이었다. 본사급 부장이니 과장급인 나보다 아직 2직급이나 높다.

물론 나처럼 신입으로 들어와 평사원부터 시작한 건 아니었다. 김학수 부장은 하버드대학을 졸업하고 경영대학원에서 미디어 마케팅까지 전공한 수재였다. 동지그룹에 입사할 때부터 이미 팀장급으로 스카우트되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서른여섯에 동지그룹 부장은 엄청나게 빠른 진급 속도였다.

“글쎄요. 지금 속도라면 마동수 팀장이 나를 추월할 것 같은데요.”

“헉! 말씀만이라도 감사합니다. 그런데 이사님. 저는 무슨 일로 부르신 건가요?”

“이야. 마동수 팀장. 팀장이 되더니 이젠 내가 눈에 안 들어오나 봐. 김 부장이랑 먼저 인사 나누고 말이야.”

“나 원 참. 이사님은 오늘만 해도 두 번이나 뵀지 않습니까?”

“그런가? 내가 요즘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기억이 가물가물해.”

“누가 들으면 이사님 나이가 마흔은 넘은 줄 알겠습니다. 아직 팔팔한 삼십 대가 할 말씀은 아니죠.”

“그럼 우리 같은 삼십 대인데 맞먹을까?”

“싫습니다. 여섯 살이나 많은 노땅하고 친구 먹으면 제가 손해지 않습니까?”

누가 보면 버릇없다고 눈살을 찌푸릴 상황이지만, 고현호 이사는 변태(?) 끼가 있는지 이런 내 반응을 은근히 즐긴다.

“하하하. 노땅? 학수야. 저 녀석이 우리보고 노땅이란다.”

“마 팀장. 이거 서운하네요. 뭐. 하긴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닙니다. 열 살이나 어린 이십 대 초반의 여자친구가 있으니 우리처럼 30대 여성과 사귀는 남자들과는 어울리기 싫겠죠. 이사님이 이해하셔야 합니다.”

“흠···. 그럼 지금이라도 마 팀장과 친구 먹으려면 우리 자기랑 헤어져야 하는 건가? 이제 슬슬 귀국할 때가 되었는데, 인제 와서 헤어지기에는 그동안 독수공방하면서 기다린 게 좀 억울해서 말이야.”

“아서세요. 그나마 이사님의 가장 강점이 효령씨인데, 그분이랑 헤어지면 그땐 빛 좋은 개살구는커녕 빛 안 좋은 땡감이 될지도 모릅니다.”

고현호 이사의 약혼녀인 강효령.

나도 그녀의 정확한 정체는 잘 모른다. 그냥 동지그룹 오너의 셋째 아들이 밑진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대단한 집안의 여식이라는 이야기만 들었다.

두 사람이 사귈 당시에는 고현호 이사가 동지그룹 후계자 자리에 전혀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그런 평가를 받았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강효령씨의 집안이 어마어마한 집안이라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며느리는 자기보다 처지는 집안에서 데려와야 한다는 원칙을 철저히 지켰던 고대성 회장 때문에 첫째와 둘째 며느리가 재계 서열 50위 권 정도 되는 집안의 출신이었다. 하지만 당차게 고현호 이사를 쫓아다니며 사랑을 쟁취한 강효령씨의 집안은 그네들보다 막강하다고 알려졌다.

사실 이것도 100% 정확하다고 하기는 어렵다. 이런 이야기를 내가 고현호 이사에게 직접 물어볼 수는 없는 노릇. 나 또한 그룹 소문에 밝았던 조지훈 팀장에게 들은 믿거나 말거나 정도의, 완전히 신뢰하기에는 애매한 정보다.

그런데 김학수 부장의 말투를 보니 아주 틀린 이야기는 아니었나 보다.

“농담이야. 농담. 내가 우리 자기 말고 다른 여자를 어떻게 생각해. 하하하. 그런데 마 팀장아!”

“네. 이사님.”

“우리 큰일 났다.”

“네?”

“내가 큰소리 떵떵 친 동지마트를 살릴 방안. 실패했어. 나도 많이 공을 들였고 반응도 괜찮아서 은근히 기대했는데, 결국에는 거절하더라고.”

“혹시 합병을 실패한 겁니까?”

“뭐? 아니. 합병도 생각을 안 한 건 아닌데, 솔직히 3-마트, 엘마트, 포에버마트 이 세 곳 모두 잘 나가는데 우리에게 팔 이유가 없잖아. 모기업들도 다 짱짱하고. 그래서···. 마 팀장도 들어봤을 거야. 요즘 세계적으로 잘 나가는 기업이니까. 월드 베리어스 클럽(World Various Club)이라고.”

“아! 당연히 알고 있습니다. 요즘 들어 북미와 유럽 쪽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대형 할인 마트 아닙니까? 그럼 설마 거기랑 합작을 시도한 겁니까? 그건 정말 예상도 못 했습니다.”

역시 미국물을 먹고 온 사람은 다른가 보다. 나는 그냥 국내 합병만 생각했지 세계적인 기업과 합작은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월드 베리어스 클럽(World Various Club)은 그냥 단순히 대형 할인 마트가 아니다. 명품을 비롯한 각종 유명 아울렛 매장이 함께 있는 그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만물상이라고 할 수 있다.

별것 아닌 사소한 아이디어 같지만, 마트와 명품을 포함한 아울렛 매장의 결합은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얻으며 월드 베리어스 클럽(World Various Club)을 단숨에 세계 1위의 대형 할인 마트로 자리매김하게 만들었다. 명품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한국을 생각했을 때, 만약 성공만 했다면 다른 업체와의 합병보다 훨씬 효과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 뭐하는가. 그래 봐야 실패인데.

사실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던 상황이라 실망감이 컸다. 그것만 믿고 달려왔는데, 막다른 벽에 다다른 느낌도 들었다. 그렇지만 나보다 고현호 이사의 실망감이 더 클 것 같아 차마 내색은 하지 못했다.

“보기 좋게 차였는데, 예상을 못 했으면 뭐해.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어. 뭐부터 들어볼래?”

“허···. 그럼 월드 베리어스 클럽(World Various Club)과 합작이 실패한 게 나쁜 소식이 아니었단 말입니까? 나쁜 소식은 듣기 두려워지는데요. 좋은 소식부터 듣겠습니다.”

“월드 베리어스 클럽(World Various Club)이 D&Y 피트니스 클럽과의 합작을 제안했어. 그들은 한국 시장이 아니라 중국 시장을 훨씬 매력적으로 생각하더라. 그런데 그런 중국을 공략하기 위한 선봉장으로 D&Y 피트니스 클럽,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아이 두(I DO)를 내세우고 싶어 해.”

나쁘지 않다. 중국도 한국만큼이나 교육열이 치열한 곳이다. 한류열풍이 꽤 거센 것까지 생각하면 마케팅 여부에 따라 아이 두(I DO)는 충분히 통할 가능성이 높다.

개인적으로도 좋다. 매장당 1년 로열티가 1억 원이다. 시연이 통장으로 들어간다고 해도 그녀 돈이 내 돈인 상황. 도시 인구가 500만이 넘는 대도시가 50개가 넘는 중국에, 도시마다 하나씩만 아이 두(I DO)를 설립한다고 가정하면 1년에 무려 50억 원이라는 어마어마한 거액이 들어온다.

중경, 상해, 북경은 2,000만이 넘거나 거의 육박하는 도시고, 그 밖에도 1,000만이 넘는 도시가 10개나 된다. 그런 도시들에 두 개씩만 지점을 설립한다고 해도 50억 원에 추가적으로 10억 원 정도를 더 기대할 수 있다.

그러니 내게는 정말 어마어마하게 좋은 소식임에는 분명하다.

“확실히 반가운 소식이군요. 그런데 이사님. 지금 우리가 D&Y 피트니스 클럽 해외진출 프로젝트를 맡고 있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지금 월드 베리어스 클럽(World Various Club)과 합작을 하면 남 좋은 일만 하는 꼴인데, 마냥 좋아하기는 어려울 것 같은데요.”

“그래. 그게 나쁜 소식이야.”

아! 이 상황에서도 위트를 잊지 않는 고현호 이사를 존경해야 하는 걸까?

“그래서 이제 어쩌시려고요? 월드 베리어스 클럽(World Various Club)과의 합작도 날아가고 합병은 고려도 안 했고. 그냥 이대로 동지마트의 자생력을 키우는 방향으로 가실 겁니까?”

“아니. 그럴 수는 없지. 그래서 미안하게도 마 팀장을 부른 거야. 지금 내가 믿을 사람이 마 팀장밖에 없잖아. 지금 당장은 쉽지 않다는 거 알아. 들리는 소식에 의하면 D&Y 피트니스 클럽 필리핀 프로젝트가 난항을 겪고 있는 것 같아. 자네 대신 들어갔던 권희태 과장이 너무 쉽게 생각하다가 현지인들의 반발을 겪고 있다고 하더라. 만약 지금 위기만 잘 넘기면 회장님에게 이야기해서 D&Y 피트니스 클럽 프로젝트를 받아올 거야.”

“그렇게만 되면 월드 베리어스 클럽(World Various Club)이 제안한 D&Y 피트니스 클럽과의 합작이 엄청난 천운이 될 수 있겠군요. 필리핀 시장을 포기하고 월드 베리어스 클럽(World Various Club)과 연합해서 곧바로 중국 시장에 진출하면 되니까요. 중국에서만 성공적으로 안착한다면 화교들이 많은 동남아 국가로의 진출도 쉬워질 테고, 문제는 지금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느냐는 건데···.”

“그래. 동지마트에 D&Y 피트니스 클럽의 해외 진출까지 성공하면 후계자 경쟁에서도 엄청나게 유리해질 거야.”

말은 좋다. 그런데 무슨 수로 지금 위기를 넘긴단 말인가. 내가 아무리 꼼수 부리는 걸 좋아한다고 해도 이건 스케일부터가 다르다.

“그러려면 이미 틀어진 월드 베리어스 클럽(World Various Club)과의 합작을 다시 이끌어내거나, 아니면 다른 대형 할인 마트와의 합병을 추진해야 합니다. 솔직히 말씀드려 이건 제 깜냥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쉽지 않다는 거 알아. 하지만 이대로 포기하기에는 너무 아깝잖아. 나도 방법을 찾아볼 테니까, 마 팀장도 일단 고민은 해줘 봐 줘.”

“하라고 하시니 고민은 해보겠습니다만 기대는 하지 말아 주십시오. 그런데 만약 다른 할인 마트와 합병을 한다고 하면 어마어마한 자금이 틀어갈 텐데 동지그룹에서 그 돈을 지원해줄 수는 있는 건가요?”

지금 고현호 이사가 내게 주는 임무는 말 그대로 미션 임파서블이다. 그런데 정말 운이 좋아 그 임무를 무사히 수행했는데, 결국에는 돈이 없어 합병하지 못한다면 그건 정말 억울할 것 같았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하지 않는데 김칫국물부터 마시는 꼴이지만 그래도 확인은 하고 싶었다.

“물론. 말도 안 되는 돈만 아니라면 모기업에서도 지원해주겠다고 이미 약속이 되어 있어.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쉽게 약속했는지 모르겠지만, 회장님이 한 번 내뱉은 말은 지킬 분이지.”

“휴···. 일단 정말 고민만 해보겠습니다. 그런데 한 달이 될지 두 달이 될지 그건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그냥 기대하지 말고 지금 당장은 동지마트 안정화에 먼저 신경 써주십시오.”

============================ 작품 후기 ============================

동수를 돋보이려고 하다보니 고현호 이사를 너무 무능력하게 그리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요즘 와서 동수를 너무 무려먹는 것 같습니다.

세 아들 중 가장 명석하다고 제가 설명했는데, 아직 그런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것 같아 약간 민망합니다. 차차 나오겠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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