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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가 전부는 아니야-254화 (254/424)

00254  소제목 추후 결정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일단 고민은 해보겠다고 말했지만, 내가 뭘 할 수 있을지 막막하기만 했다. 월드 베리어스 클럽(World Various Club)과의 합작이 물 건너간 상황에서 이제 남은 방법은 다른 대형 할인 마트와 합병을 추진하는 일밖에 없다.

그것도 큰 회사가 작은 회사를 인수하는 게 아니라 고작 매장이 10개밖에 없는 동지마트가 최소 100개 이상이 되는 다른 업체를 먹어치워야 한다. 따지고 보면 지금까지 그런 일이 아주 없었던 건 아니다. 그리고 동지그룹이라는 든든한 모기업이 버티고 있기 때문에 어떻게든 방법만 찾으면 정말로 다윗이 골리앗을 이기는 상황을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식의 합병은 대부분 모기업 간에 교감이 오가면서 전격적으로 이뤄진 경우가 많다. 그게 아니라도 기업에서 힘깨나 쓰는 거물들이 나서서 해결했지 고작 계열사 팀장 따위가 나서서 이런 일을 성사시킨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대체 고현호 이사는 내게 뭐를 바라고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을 부탁하는 걸까?

인사를 하고 그의 방에서 나와 우리 팀 사무실로 향하는 내 발걸음이 천근만근처럼 무겁게 느껴졌다. 과연 팀원들에게 이 이야기를 하면 그들은 무슨 반응을 보일지, 말도 안 된다며 욕부터 할지도 모를 상황이다.

아니지. 따지고 보면 우리 팀원 중에 평범한 사람들은 없으니 어쩌면 별일 아니라고 치부해버릴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 골치가 아팠다. 다들 독특하고 개성이 넘치긴 하지만 100% 믿고 의지할 사람은 없었다.

그래도 그나마 의지할 사람을 꼽자면 새롭게 뽑은 신당봉 대리였다.

나이 45살. 그는 전문대를 나와서 동지마트의 계약직부터 시작했던 사람이다. 그래서 그런지 동지마트에 대해서는 모르는 게 없을 정도로 현장경험이 많았다.

45살에 대리라는 직급이 낮아 보이지만, 비정규직에서 꾸준하고 성실하게 일해 대리까지 진급하는 게 절대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이리저리 사람들과 잘 지내는 융통성과 항상 웃음을 띤 긍정적인 마인드가 마음에 들어, 나보다 나이가 많다는 부담을 안고 TF 팀의 마지막 팀원으로 뽑았다.

“제가 신당봉 대리님보다 나이가 많이 어립니다. 당연히 예의는 지킬 생각입니다만 그래도 부담스럽지 않습니까?”

나보다 14살이나 많은 사람을 부하 직원이라는 이유로 막 대할 생각은 전혀 없다. 나는 나이보다 내게 필요한지 아닌지가 중요했다. 그러나 상대의 입장은 나와 다를 수 있다.

한국에서 나이는 굉장히 민감하다. 고작 한 살이 많아도 형 대접, 선배 대접을 받으려는 사람들이 꽤 많다. 솔직히 말해 나 또한 나보다 어린 김수현 과장이나 최종현 대리가 나보다 직급이 높을 때 뭔가 목에 가시가 박힌 듯 마음이 불편했었다. 아무리 아니 척하려고 해도 이미 익숙해진 나이 서열문화 때문인지 그게 내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

혹시라도 신당봉 대리 또한 나처럼 나이 어린 상사를 모시는 일에 스트레스를 받으면 곤란했기 때문에 합격 통보를 하기 전 그것부터 물었다.

“전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솔직히 제가 일하던 지점에서 저보다 나이는 어려도 직급이 높은 분들은 꽤 있었습니다. 그런 일로 스트레스를 받았다면 제대로 직장생활을 하지 못했겠죠. 그중에는 다짜고짜 반말부터 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팀장님께서는 제게 예의를 지켜주신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이 정도면 천국입니다. 하하하.”

하여간 세상에는 개자식들이 많다.

고작 한두 살 많은 걸 가지고 위세를 떠는 인간도 별로지만, 직급이 높다며 나이 많은 사람들에게 함부로 하는 인간은 더 싫다. 사람 간에 지켜야 할 최소한의 예의라는 게 있는데 그것조차 망각하는 인간들이었다.

“누굽니까. 그런 인간들이?”

“네?”

“신당봉 대리님에게 그렇게 함부로 하는 인간들이 누굽니까?”

“아···. 그냥 그런 경우도 있다고 말씀드린 거니 너무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런 사람이 생기면 언제든 제게 말씀하십시오. 동지그룹 전체라면 모를까 동지마트에서 너보다 어리면서 직급이 높은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니 제가 가서 그대로 복수해드리겠습니다.”

“하하하. 말씀만으로도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언제든 말하라는 건 혹시 제가 합격이라는 뜻입니까?”

“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신당봉 대리님.”

“아! 정말 감사합니다. 앞으로 정말, 정말 열심히 하겠습니다.”

경험이 많고 성실한 사람인 만큼 동지마트를 파악하는 데 그동안 신당봉 대리의 도움을 정말 많이 받았다. 보디가드 역할이 가장 중요한 윤권이나 아직도 내가 가르칠 게 많은 미래씨는 그리고 약간 4차원 성향이 강한 서라씨에 비하면 확실히 듬직했고, 업무도 능숙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신당봉 대리의 능력은 거기까지다.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기보다는 지금까지 축적한 경험으로 노련하게 우리 팀의 일을 돕는 게 그의 임무다. 행정업무 보다는 현장 경험이 많은 그에게 다른 마트와 합병할 수 있는 방안을 기대하는 건 무리가 있다.

“자! 모두 회의실로 모이세요.”

일단은 직원들을 모두 모았다. 어쨌든 그들도 알 건 알아야 했다.

“방금 고현호 이사님을 만나고 왔습니다. 그런데 그 양반께서 제게 터무니없는 일을 맡기셨습니다.”

“터무니없는 일요?”

“네. 동지마트 지점의 숫자를 지금보다 10배 이상 늘릴 방안을 연구해보랍니다.”

“그냥 전국 각지에 지점을 세우면 되는 건가요?”

내 말의 요지를 파악하지 못한 미래씨가 엉뚱한 질문을 했다. 물론 충분히 예상했던 질문이었다.

“그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닙니다. 미래씨. 우리나라에 있는 괜찮은 상권은 이미 다른 대형 할인 마트들이 선점했습니다. 후발 주자인 우리가 지점을 늘리고 싶어도 자리가 없는 상황입니다. 그러니 무작정 지점을 늘릴 수는 없어요.”

“아! 그렇구나. 그럼 어떡하죠? 팀장님.”

“방법은 하나밖에 없네요. 합병 등을 통해 다른 대형 마트 지점을 우리가 대신 사용 방법. 그런데 4위인 대박마트를 인수한다고 해도 100개에는 터무니없이 부족한데 어쩌시려고요? 설마 3-마트, 엘마트, 포에버마트 셋 중 하나와 합병을 연구하라는 말씀은 아니죠?”

명석한 서라씨는 문제점을 제대로 파악했다.

“안타깝지만 방법이 그것밖에 없네요. 혹시 그것 말고 좋은 상권에 자리한 지점을 10배로 늘릴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주저하지 말고 말씀해주세요.”

“잘 찾아보면 상권이 괜찮은데 아직 선점하지 않은 곳이 분명 있을 겁니다. 특히 신도시 지역이나 재개발 지역 등을 찾아보면 많지는 않아도 지점 몇 개는 늘릴 수 있습니다.”

그래도 신당봉 대리는 현실적인 방안을 제시했다. 합병도 중요하지만 그런 식으로 지점을 늘리는 것도 중요하다.

“괜찮은 지역이 있을까요?”

“지금 마포에 있는 공덕역에서 용산의 효창공원역 사이 용마루 고개 지역에 재개발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습니다. 정말 어마어마하게 많은 아파트들이 들어서고 있는데 정작 대형 할인 마트는 하나도 없습니다. 가까운 곳이 서울역의 엘마트와 용산역의 3-마트입니다. 그러니 상권 하나는 확실하죠.”

“흠···. 공덕동 지역이라. 저도 얼마 전까지 거길 살아서 그곳 사정은 잘 알고 있었는데, 등잔 밑이 어둡다고 그건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군요. 그밖에 추천할만한 다른 지역도 있습니까?”

“직접 가봐야 확실해지지 않겠습니까? 제가 신도시나 재개발지역을 주변으로 전국을 한 번 돌아다녀 볼까요?”

큰 기대는 하지 않았는데, 신당봉 대리가 의외로 적극적으로 나왔다.

“힘들지 않으시겠습니까?”

“힘들어도 누군가는 해야 할 일입니다. 미래씨나 서라씨에게 이런 일을 맡길 수도 없고, 윤권씨는 팀장님 수행하는 일도 많이 하는 편이니 그 일을 할 사람은 저밖에 없지 않습니까? 그리고 제가 약간 방랑벽이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걸 좋아합니다.”

“그래도 하루 이틀 걸릴 일이 아닐 수도 있는데···.”

“제가 이 팀에 지원한 가장 큰 이유가 동지마트를 정말로 우리나라 최고의 대형 할인 마트로 키워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요즘 들어 동지마트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좋아져서 그런지 아주 황당한 꿈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저를 잘 아는데 조금 전에 서라씨가 말한 합병? 그건 제 머리로는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얼른 제가 잘할 수 있는 일을 맡아서 골치 아픈 일에서는 빠지고 싶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알겠습니다. 혹시라도 합병에 실패한다고 해도 지점을 늘리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마포지역은 제가 알아볼 테니, 나머지는 신 대리님께서 후보군을 선택해주세요. 너무 많이는 힘들고, 지금 우리 동지마트 예산을 생각하면 마포를 제외하고 3개 지점 정도는 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러니 가장 알짜배기 지역으로 부탁드립니다. 대신 출장비는 넉넉하게 챙겨드릴게요.”

비자금 문제로 고진성 부회장과 협상을 했을 때 그룹 차원에서 동지마트에 대한 추가 투자를 하기로 했다. 그리고 빼돌린 비자금도 모두 돌려놓기로 약속했다. 합병이야 그룹차원에서 지원예정이기 때문에, 고진성 부회장이 약속한 돈에 담보까지 받으면 지점 몇 개는 추가적으로 세울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새로운 지점 몇 개를 새운다고 동지마트가 다른 3사의 대형 할인 마트처럼 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역시 합병이다. 그걸 해결하지 않고는 동지마트가 진정한 대형 할인 마트로 거듭나긴 어렵다.

============================ 작품 후기 ============================

저도 고민이 많습니다.

해결책은 생각해뒀는데 이게 과연 현실성이 있을지 없을지. ㅠㅜ

그리고 이번달에 무슨 일이 있나요? 제 글이 정말 오랜만에 원고료 베스트 순위에 들었습니다. 와! 아직 초기라서 그렇겠지만 잠깐이라도 이런 즐거움을 느끼게 해주셔서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ㅠㅜ더욱 열심히 써야겠습니다.

읽여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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