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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가 전부는 아니야-255화 (255/424)

00255  소제목 추후 결정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아무리 나라고 해도 꼼수가 공장에서 찍어내듯 마구마구 시도 새도 없이 튀어나오는 건 아니었다. 며칠을 머리를 싸매고 고민해봤지만, 머릿속은 그냥 새하얀 백지장처럼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서라씨에게 지시해서 엘마트와 포에버마트에 대해 최대한 자세히 조사하도록 했다. 3-마트는 시작 전부터 배제했다. 그곳은 우리나라 재계서열 1위 기업이 운영하고 있는, 대형 할인 마트 업계에서 독보적으로 1위인 기업이다. 일말의 가능성도 없는 곳에 시간을 낭비하느니 그래도 1% 정도의 가능성은 있을 것 같은 다른 두 곳에 집중하는 게 낫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서라씨의 대략적인 보고서를 보는 순간 합병의 가능성은 1%가 아니라 0.1%도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알고는 있었지만, 두 대형 마트 모두 모기업의 강력한 서포트를 받으며 어떻게든 3-마트를 따라잡기 위해 절치부심 노력 중이었다.

그러니 하늘이 두 쪽 나지 않는 이상 자신들이 보유하고 있는 마트를 우리에게 팔 일은 없어 보였다.

“어휴···. 마음 같아서는 엘마트 본사에 찾아가 거기 사장 멱살 잡고 합병 계약서에 사인하라며 목이라도 흔들고 싶다.”

Rrrr

하다 하다 말도 안 되는 망상까지 하던 도중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네. 마동수입니다.”

“마동수씨 맞나요?”

“네. 제가 마동수입니다. 말씀하세요.”

약간은 조심스러운 기색이 담긴 중년 여성의 목소리였다.

“저···. 기억하실지 모르겠네요. 예전에 시연이 약혼식 날 잠깐 만났거든요. 시연이 둘째 작은 엄마예요.”

시연이 아버지인 윤승태 사장님에게는 두 명의 남동생이 있었다. 한 명은 예전에 주폭 3인방 때문에 알게 된 서초경찰서장. 그리고 다른 한 명은 강남에서 꽤 잘나가는 피부과병원 원장.

듣기로 그리 넉넉하지 않은 살림임에도 불구하고 윤 사장님이 직접 두 동생이 공부할 수 있도록 뒷바라지를 해줬다고 했다. 그런 형의 노력 덕분인지 두 사람 모두 열심히 공부해 자기 분야에서는 꽤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었다.

열심히 뒷바라지해서 그런지 우리 약혼식에서도 두 사람은 윤 사장님에게 정말 깍듯하고 공손했다. 형을 대하는 느낌이 아니라 아버지를 대하는 느낌이 강했다.

하지만 시연이의 작은 엄마들은 약간 달랐다.

첫째 동생인 윤승호 경찰서장의 부인은 과거 경찰생활을 해서 그런지 우리 엄마처럼 호탕한 대장부 스타일이었다. 시연이 어머님보다 나이도 한 살 많고 활발한 성격 때문인지 전형적인 맏며느리 모습이었다.

둘째 동생인 윤승룡 원장의 부인은 누가 봐도 새침데기 같아 보였다. 올해로 44살인 8살이나 어린 36살. 꽤 미인이긴 하지만, 그녀보다 9살 많으면서도 더 어리고 예뻐 보이는 시연이 어머님에게 은근히 질투심을 느끼는 것 같았다.

솔직히 나는 시연이의 둘째 작은어머니가 별로였다. 새침데기 같은 모습도 시연이 어머님에게 질투하는 모습도 그리 좋아보이진 않았지만, 결정적으로 보기 그랬던 건 아들에 대한 유세가 보기 싫을 정도로 유난했기 때문이다.

아들만 셋이었던 윤 사장님 집안. 그러나 윤 사장님이나 윤승호 서장의 슬하에는 딸밖에 없었다. 오직 윤승룡 원장에게만 12살 난 아들이 하나 있었다.

작년이면 11살. 고작 4학년인 아들일 데리고 이 집안의 장손이니 어쩌니 하며 약혼식에 참석한 사람에게 자랑하는데, 시연이 어머님이나 첫째 작은어머니는 아무리 아닌 척하려고 해도 불편한 기색을 완전히 감추지는 못했었다.

그런 그녀가 갑자기 내게 전화를 할 일이 뭐가 있는지 좀 의아했다.

“아! 그럼요. 당연히 기억합니다. 약혼식 끝나고 따로 인사를 드렸어야 했는데 제가 경황이 없어서 죄송합니다.”

“그러게요. 다른 집도 아니고 우리 윤씨 문중 장손이 있는 곳인데 인사를 왔으면 좋을 뻔했죠?”

조심스럽게 전화를 하길래 안 어울린다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예전 약혼식에서 봤던 예의 없는 모습을 그대로 내보였다.

“죄송합니다. 제가 좀 회사 일로 바빠서 정신이 없었습니다. 나중에 시간이 되면 시연이와 함께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나중에 언제요?”

“네?”

“나중에 언제 찾아올 거냐고요.”

결혼하기 전까지는 찾아갈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내가 뱉은 말이 있고, 어쨌든 시연이 집안의 어른이라 예의는 지켰다.

하지만 이 여자 생각 이상으로 집요했다. 눈치가 없는 건지 보통 나중에 보자고 하면 알았다고 대화를 마무리하는데 시연이 둘째 작은어머니는 당장에라도 약속을 잡기를 원하는 것 같았다.

“그건 시연이와 먼저 이야기를 나눈 다음에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럴 것 없어요. 시연이랑 이야기할 것 없이 저랑 잠깐 얼굴 보시죠?”

“네?”

헐. 이건 또 무슨 소린지?

“젊은 사람이 왜 그렇게 말귀를 못 알아들어요. 잠깐 할 이야기가 있으니 오늘 저랑 잠깐 보자고요. 그 정도 짬도 못 낼 정도로 바쁜가요?”

갈수록 정이 안 가는 사람이었다. 저랑 나랑 고작 5살밖에 차이가 안 나면서 젊은 사람 운운하는 말투도 짜증이 났다.

“오늘요? 무슨 하실 말씀이라도 계신 건가요?”

“그러니까 제가 전화를 했겠죠. 바쁘면 제가 근무하는 회사 근처로 가죠. 동지그룹 본사에서 일한다고 했죠?”

“아닙니다. 제가 손아랫사람인데 그럴 수는 없습니다. 제가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어디가 편하십니까?”

“그래도 아주 예의가 없는 사람은 아니네요. 그럼 도산공원 쪽에 픽처스라는 카페가 있어요. 거기서 7시 괜찮으세요?”

“알겠습니다. 그럼 이따 찾아뵙겠습니다.”

“그래요. 약속 시각은 꼭 지켜주세요. 저 그렇게 한가한 사람 아니니까. 아! 그리고 시연이에게 저 만나는 건 말하지 말고요. 그 정도 분간은 할 수 있으시죠?”

“네. 늦지 않게 도착하겠습니다.”

그녀와의 전화를 끊자 욱하는 마음에 들고 있던 전화기를 ‘쾅’ 소리가 나도록 내려찍고 싶은 충동이 느껴졌다. 시연이에게 전화를 해서 네 둘째 작은어머니가 내게 전화를 했는데 무슨 일인지 아느냐고 물어보려다가 일단은 두고 보자는 생각에 마음을 진정시켰다.

대체 무슨 일 때문에 나를 보자고 했을까? 당장 해결해야 할 난제가 나를 괴롭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여자가 나를 보자고 한 이유가 생각하느라 회사 일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첫째 나의 훌륭한 외모에 반해서?

잘생긴 얼굴은 아니지만 한 덩치는 하는 편이다. 그래서 젊은 여자들보다는 농익은 30대 중반 이후의 여자들에게 인기가 좀 있었다. 물론 그녀의 말투에 끈적임은커녕 다짜고짜 싸가지없이 틱틱 거리는 걸 봐서는 그런 의도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둘째 시연이 아버님인 윤 사장님의 사주를 받고?

시연이 어머님은 물론 나를 좋아하셨고, 호탕한 성격인 시연이 첫째 작은어머니도 덩치가 커서 듬직하다면서 내게 꽤 호감을 보이셨다. 그러니 내게 안 좋은 말을 할 사람은 둘째 작은어머니밖에 없다.

하지만 윤 사장님의 성격상 불만이 있으면 내게 대놓고 하시지 누군가를 통해서 말을 전하시지는 않는다. 솔직히 이건 나 혼자만의 망상이다.

셋째 그렇게 유난을 떨던 장손 문제 때문에?

그냥 느낌인데 시연이 둘째 작은어머니는 나를 경계하는 것 같았다. 약혼식에서도 자기 아들이 장손이라며 앞으로 윤씨 문중을 이끌어갈 유일한 사람이라고 자랑하는 모습에서, 가문이 아니라 윤 사장님의 재산에 관심이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의문이 살짝 들었었다.

윤 사장님의 두 동생도 나름대로 성공한 인생을 살고 있지만, 윤 사장님은 급이 다르다. 맨손으로 시작한 동네 헬스장 같은 조그만 사업장을 가지고 대한민국 최고의 스포츠센터를 만들었다. 그런 신화적인 성공 스토리는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었고 특히 스포츠 사업 관련 종사자들에게는 엄청난 존경의 대상이었다.

재산 또한 어마어마해서 윤 스포츠센터가 보유하고 있는 스포츠센터나 컨트리클럽의 땅값과 건물매매가만 따져도 수천억 원이 될 정도다. 당연히 재산이 그게 끝이 아니다. 윤 스포츠센터의 브랜드가치만 해도 엄청나고, 그밖에 D&Y 피트니스 클럽을 비롯한 여러 사업체에 대한 지분 가치도 천문학적이다. 만약 주식시장에 상장한다면 웬만한 기업은 명함을 내밀기 힘들 거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이다.

매번 장손 어쩌고 하는 게 아들이라는 이유로 윤 사장님의 재산이 자기 아들의 몫이라고 생각할 가능성도 있었다.

어쨌든, 그녀의 아들이 시연이 집안 어른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는 건 사실이니까.

설마 그런 이유로 나를 부르는 건 아니길 바랐지만, 역시 사람 일은 내 뜻대로 되지 않는 모양이다.

============================ 작품 후기 ============================

동수가 척척 해결사도 아니고 미션이 주어지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막 해결하면 좀 그렇죠? 그래서 그리 길지 않은 에피소드를 하나 넣었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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