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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가 전부는 아니야-257화 (257/424)

00257  소제목 추후 결정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아들을 낳았다는 자부심 아닌 자부심으로 노하원에게 잘난척하고 싶은 마음이 전부였다. 그러나 윤승태 사장이 운영하던 헬스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더니 언젠가부터는 돈 좀 있다는 그녀의 집안도 감히 쳐다볼 수 없을 정도의 위치로 올라서 버렸다.

임자령의 아버지도 윤승태 사장의 덕을 보기 시작하자 쓸데없는 분란을 일으키지 말고 큰 동서와 트러블 없이 지내라며 강요했다. 당연히 자신의 편이어야 할 아버지까지 그런 모습을 보이자 그녀의 내면 깊숙이 숨어있던 열등감이 폭발하고 말았다.

임자령의 진상짓(?)은 그때부터 점점 더 노골적으로 변했다.

“어머! 당신이나 제가 왜 나설 일이 아니에요? 당신은 시연이 작은 아빠고, 저는 작은 엄만데. 그리고 우리 도현이 윤씨 집안 장손이잖아요.”

“그게 뭐 어떻다고? 도현이가 있다고 해서 당신에게 큰 형수님이나 작은 형수님을 무시할 수 있는 권한이 준 건 아니라고.”

윤승룡은 자꾸 변해가는 아내의 모습에 답답함을 느꼈다. 그에게 윤승태 사장은 형인 동시에 아버지 같은 존재였다. 그리고 큰 형수님 또한 자신이 아무 걱정 없이 공부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 도와준 고마운 분이었다. 그에게 그렇게 소중한 사람들이니 아내도 두 사람을 존중해줬으면 좋으련만 갈수록 까칠해져 가는 그녀 때문에 고민이 많았다.

“무시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좀 더 존중을 받아야 한다는 말이에요. 어쨌거나 두 분 형님은 아들을 낳지 못했잖아요.”

“여보! 자꾸 그런 소리 할래? 요즘 세상에 아들딸 그런 게 뭐가 중요하다고 말끝마다 아들이야.”

“요즘 세상엔 안 중요할지 모르지만, 당신 어머니에게는 중요하잖아요. 고모님도 그렇고요.”

이게 바로 임자령이 기세등등한 이유다. 윤승룡의 어머니는 옛날 사람이라 그런지 남아선호사상이 강한 편이다. 노골적으로 편애는 못 해도 누가 봐도 장손인 도현을 아끼는 걸 알 수 있을 정도로 지극정성이기도 하다. 게다가 고모의 경우는 대놓고 아들 못 낳은 맏며느리와 둘째 며느리를 구박하면서, 아들을 낳은 임자령은 금이야 옥이야 애지중지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였다.

“큭···. 두 분은 옛날 사람이잖아.”

“그래서 제가 옛날 사람이라고 두 분을 무시했으면 좋겠어요? 그건 아니잖아요. 그리고 어쨌든 간에 제가 아들을 낳아서 얼마나 다행이에요. 우리가 안 그랬으면 어머님이나 고모님이 윤씨 가문 대 끊긴다고 얼마나 속상해하셨겠어요. 안 그래요?”

“그··· 그건 그렇지만. 어쨌든 마 서방 일은 당신이 나서지 마. 결혼은 형님과 형수님이 결정하실 일이야. 나랑 당신은 그냥 두 분이 결정하시면 그 결정은 마음속으로 응원해주면 된다고.”

“그래요. 저도 개념 없이 결혼에 대해 뭐라고 할 생각은 없어요. 그러니 그 동수라는 사람 연락처 좀 줘봐요.”

“당신이 왜 마 서방 연락처가 필요해?”

“제가 설마 엉뚱한 일이라도 벌일 것 같아서 그래요? 안 그래요. 그냥 물어볼 것도 있고, 약혼을 했으면 예비 사위잖아요. 한 식구나 마찬가지인데 우리 집안 경조사 날짜 같은 것도 알려주면 좀 좋아요? 아주버님이나 형님이 그런 걸 알려주실 분이 아니잖아요. 예비 사위 부담 줄까 봐 그냥 넘어가실 가능성이 높다고요. 다른 날짜는 몰라도 어머님이나 고모님 생일은 알아야죠. 안 그래요?”

“흠···. 그건 그렇군. 있어봐. 휴대폰에 번호 저장해둔 게 있으니까. 여기 있네. 010 – 90XX - 4XXX.”

“네. 적었어요.”

“정말 마 서방 불러서 쓸데없는 말 할 생각은 아니지?”

“이이가 정말! 절 그렇게 못 믿어요?”

“알았어. 어머니 생신이 한 달 정도밖에 안 남았으니 마 서방이 알아두는 것도 좋겠지. 그건 당신이 알아서 하라고. 난 출근 할게.”

***

동지마트 본사가 있는 가락시장역에서 도산공원은 거리상으론 그리 멀지 않지만 퇴근 시간에 맞물리면 엄청나게 밀려 오도 가도 못하는 교통체증 구간이 많다. 혹시라도 늦을까 외근이 있다며 둘러대고 약속 장소로 일찍 출발했다.

서두른 덕분에 다행히 퇴근길을 피할 수 있어서 약속 시각에 늦지 않게 픽처스에 도착했다. 일반적인 커피숍이 아니라 타인의 방해 없이 조용히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꾸며진 조금 특이한 구조의 카페였다.

이름을 대니 종업원이 예약된 자리로 나를 안내했다. 그런데 자리에는 시연이 작은 어머님뿐만 아니라 시연이 고모할머니까지 함께 나와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길래 저런 노인분까지 함께 나왔는지 알 수 없었지만, 우선은 공손하게 인사드렸다.

“안녕하십니까. 고모할머님까지 나와계신 줄은 몰랐습니다. 약혼식 끝나고 처음으로 인사드리네요.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그러게 말이네. 옛날에는 약혼이 결혼만큼 큰 의미를 가졌는데 요즘은 아닌 모양이야. 어떻게 어른이 먼저 연락할 때까지 코빼기도 한 번 안 내비칠 수 있어.”

“죄송합니다. 시연이가 아직 어려서 저희 부모님과 시연이 부모님끼리, 결혼 전에는 집안 행사를 챙기지 말자고 약속을 하셔서요.”

“어른 찾아뵙는 게 집안 행사는 아니지 않은가?”

다짜고짜 짜증을 부리셨지만, 워낙 나이 차가 많은 분이라 공손하게 사과를 드렸다.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앞으로 주의하겠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일찍 왔네요. 일이 한가한가 봐요?”

“바쁩니다. 시연이 작은 어머님이 부르셔서 일부러 시간을 내서 일찍 나왔습니다.”

고모할머니에게 사과를 하는 데 시연이 작은어머니가 얄밉게 끼어들었다.

약속시각에 맞춰서 도착해도 시비다. 아무리 봐도 내게 좋은 의도를 가지고 연락을 한 건 아닌 것 같았다. 그래서 내 말투도 퉁명하게 튀어나왔다.

“그러셨구나. 제가 바쁜 사람 오래 붙잡고 있을 수는 없으니 용무만 간단히 말할게요. 그전에 시연이에게 저 만난다는 이야기는 안 하셨죠?”

“물론입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저를 보자고 하셨는지요?”

“이거 먼저 받으세요.”

내 질문에 그녀는 가방에 있는 서류봉투를 꺼내 내 앞으로 밀었다.

“이게 뭡니까?”

“열어보면 아세요.”

“알겠습니다. 상속포기각서? 본인은 윤승태 사장과 윤 스포츠센터와 관련된 그 어떤 상속권에 대한 일체의 권리를 포기하고, 향후 본 건과 관련하여 어떠한 이의제기도 하지 않을 것이며 이를 각서하기 위해 아래와 같이 날인합니다. 이걸 갑자기 제게 주는 이유가 뭡니까?”

서류봉투를 꺼내보자 그 안에는 ‘상속포기각서’라고 적힌 황당한 서류가 들어있었다. 시연이 작은 어머니에게 연락이 왔을 때 이런 비슷한 일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했지만, 직접 당하고 보니 속에서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누굴 거지로 아는 것도 아니고!

“아직 두 사람이 결혼을 한 건 아니라서 그쪽에게 상속권은 없어요. 하지만 결국은 결혼할 거잖아요. 바보가 아니라면 시연이 같은 조건의 여자를 포기할 리는 없으니까요.”

“그래서요?”

“막내 아가. 그렇게 다짜고짜 서류만 건네면 누가 기분 좋게 받아들이겠누? 자네 기분이 어떨지는 알겠지만 그래도 필요한 일이라서 내가 나섰네.”

“필요한 일이라는 게 어떤 건지요?”

“자네도 알다시피 우리 승태가 엄청나게 큰 스포츠센터를 운영해. 재산이 어마어마하지. 그래서 재산을 노리는 사람도 많아.”

“윤 스포츠센터와 우리 동지그룹이 합작해서 일하고 있어서 그런 건 저도 잘 압니다. 그런데 제가 아버님의 재산을 노리는 사람 중 하나라는 말씀입니까?”

“아니지. 아닌 걸 알지만 사람 일이라는 게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지 않은가. 그래서 확실히 해두자는 걸세. 자네가 우리 승태의 재산에 관심이 없다면 이 서류에 서류를 해도 상관이 없지 않은가?”

나는 한 번도 시연이 집안에 재산에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다. 그런데 저들의 말투는 마치 내가 재산을 보고 시연이와 약혼한 것처럼 몰고가는 느낌이었다.

“물론 재산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사인하면 되네. 어려울 일도 아니지.”

“그런데 궁금한 게 있습니다.”

“뭔가?”

“어차피 윤 스포츠센터의 유일한 상속녀는 시연이입니다. 제가 그녀와 이혼하지 않는 이상 이런 상속포기각서는 무용지물에 지나지 않습니다. 혹시 결혼도 하기 전에 우리 두 사람이 이혼하길 바라시는 겁니까?”

“만약을 위해서야. 만약. 나중에 이혼하게 되면 위자료니 어쩌니 하면서 논쟁이 생기면 경영권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거든. 승태는 사람이 물러서 자네에게 이런 말을 못 꺼내니 내가 나서서 해결하려고 막내 아가를 시켜 자네를 부른 거네.”

“그런데 누가 윤 스포츠센터의 유일한 상속자라는 말씀이죠?”

나와 고모할머니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시연이 작은어머니가 또다시 끼어들었다.

“시연이요. 당연한 거 아닙니까? 시연이 집에 다른 형제가 있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어머! 뭘 아직 모르시네. 윤씨 문중의 장손이 바로 우리 장남인 윤도현이에요. 시연이는 시집가면 그만인데, 앞으로 윤 스포츠센터는 집안 장손이 물려받아야 하는 것 아니겠어요?”

“네?”

이제야 본색이 나왔다.

윤 스포츠센터가 가족 사업체가 아닌 윤 사장님 개인이 혼자 힘으로 일으킨 회사다. 문중에는 아무런 권한도 없다. 대체 어쩌다 저런 망상을 꿈꾸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저 정도면 거의 정신병 수준이다.

“출가외인이라는 말도 있잖아요.”

“하죠. 합니다. 여기 서류에 서명하면 됩니까?”

나는 더 이상 이곳에서 두 사람과 입씨름하기 싫었다. 그래서 서류에 곧장 사인을 하고 봉투에 담아 그녀에게 건넸다.

“그래도 생각은 있으신가 보네요. 잘 생각하셨어요. 그리고 이번 일은 절대···.”

“절대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라는 말씀이죠?”

“그래. 이 늙은이가 우리 집안을 위해 나선 일이야. 그러니 나를 봐서라도 시연이에게는 말하지 않고 조용히 넘어가 줬으면 좋겠군.”

“알겠습니다. 용무가 끝나셨으면 그럼 바빠서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나는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며 카페에서 빠져나와 곧장 나의 법정대리인인 전태민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주폭 삼인방 사건때부터 나를 도와주던 상당히 유능한 변호사였다.

Rrrr

“네. 전태민입니다.”

“변호사님. 저 마동수입니다. 퇴근 시간에 전화 드려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무슨 일로 전화를 하셨습니까?”

“혹시 상속포기각서에 대해 아십니까?”

“네. 물론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상속포기각서는 왜···.”

“자세한 건 나중에 말씀드릴 테니까 제 이메일로 상속포기각서 양식을 좀 보내 주십시오.”

“그거면 됩니까?”

“네.”

“알겠습니다. 그럼 바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전태민 변호사와 통화를 마친 나는 곧장 근처에 있는 상속포기각서를 출력하기 위해 PC방으로 향했다.

부잣집 남자 주인공과 가난한 여자 주인공의 로맨스. 우리나라 드라마의 단골 소재다. 그리고 남자 주인공 집안에서 여자 주인공을 만나 두 사람이 헤어지도록 종용하는 장면은 식상할 정도로 자주 나온다.

나는 그걸 보면서 항상 의문점이 들었다. 그냥 남자 주인공에게 말하면 될 일을 왜 바보같이 혼자서 속으로 끙끙 앓고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 비슷한 일이 내게 생길 줄이야!

나도 약속은 지킬 생각이다. 절대 이번 일을 시연이에게 이야기할 생각이 없다. 대신 상속포기각서를 따로 작성해 윤 사장님에게 전달할 생각이다. 과연 그 양반이 내가 이런 일을 겪은 걸 알게 된다면 어떤 반응을 벌써부터 궁금해졌다.

============================ 작품 후기 ============================

우리 동수는 평범하지 않습니다.

비련의 여주인공처럼 혼자 끙끙 앓지 않습니다.

고자질은 동수의 특기 중 하나입니다. ㅎㅎㅎ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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