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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가 전부는 아니야-259화 (259/424)

00259  소제목 추후 결정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

“휴···.”

동수가 나가자 윤승태 사장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솔직히 그동안 막내 제수씨가 아주 마음에 들었던 건 아니다. 그리고 가족모임 때마다 아내의 아픈 곳을 찔러서 가끔은 불쾌할 때도 있었다. 집안의 맏이로서 분란을 일으킬 수 없다는 생각에 내색을 못 했을 따름이다. 참다못해 화를 내고 싶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마음씨 착한 아내가 그러지 못하게 말리곤 했다.

얄밉긴 해도 막내 제수씨에게는 미안한 것도 고마운 것도 많았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 애비 없는 자식이라고 손가락질당할까 봐 정말 엄하게 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내 녀석은, 그것도 의사라는 녀석이 8살이나 어린 세상 물정 모르는 제수씨를 임신시켰다.

그 사실을 듣고 자신이 동생을 잘못 키웠다는 생각에 많이 부끄럽고, 제수씨 집안에 면목이 없었다. 노발대발하며 화를 내는 그녀의 아버지를 찾아가 고개를 숙인 것도 큰형으로서의 죄송한 마음 때문이었다.

그리고 아들이 없는 집안에 아들을 그것도 둘씩이나 낳아준 제수씨가 정말 고마웠다.

윤승태 사장은 아내를 정말 사랑한다. 그리고 하나밖에 없는 시연이를 누구보다 아낀다.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가족이지만 고민이 없는 건 아니었다.

아무리 본인이 상관이 없어도 집안 어른들은 손녀보다 손자를 원했다. 장남으로서 홀어머니의 소원을 들어드리지 못한 건 정말 죄송한 일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첫째 동생도 연달아 딸만 낳자 어머니의 근심은 더욱 커져갔다. 그런 와중에 막내 제수씨가 아들을 낳은 것이다. 집안의 근심이 완전히 사라졌으니 그녀는 윤승태 사장에게도 은인이자 복덩어리였다.

그래서 좀 거슬리고 가끔은 불쾌한 일을 겪어도 어머니의 근심을 해결해준 막내 제수씨에게 화를 낼 수는 없었다. 그건 아내도 마찬가지였다. 맏며느리로서 본분을 다하지 못한 것에 대해 항상 죄책감을 가졌던 그녀라서 막내 동서가 과한 유세를 떨어도 고마운 마음에 묵묵히 참고 견뎌냈다.

그런데 동수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젠 더 이상 그녀의 방종을 용납할 수 없다. 동수가 굳이 그에게 거짓말할 이유가 없으니 ‘사실이라면’이 아니라 ‘사실’이다. 고모와 제수씨가 다른 사람도 아니고 동수에게 그런 짓을 했다는 게 더더욱 그를 화나게 만들었다.

어쩌면 그에게도 책임이 없다고 하긴 어려웠다. 그동안 제수씨가 버릇없이 굴 때 따끔하게 혼냈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어머니께 손자를 안겨드리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그녀의 행동을 방관했고, 아무도 제지하는 사람이 없자 겁이 없어진 제수씨가 더더욱 기세가 등등해져 오늘과 같은 일을 벌였을지도 모른다.

Rrrr

- 네 여보.

고민을 마친 윤승태 사장은 우선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집안일이니 당연히 그녀와 먼저 상의를 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저녁은 먹었어?”

- 시연이가 일찍 와서 같이 밥 먹었어요. 요즘 동수가 회사일 때문에 바빠서 데이트를 못 한다고 맨날 집에 일찍 들어와요.

“이그. 이제 대학교 2학년인데 친구는 안 만나고? 지금부터 그렇게 동수한테 목매달면 곤란한 데 말이야.”

- 그러고 싶어도 못 그러잖아요. 당신 딸이 동수 덕분에 팔자에도 없는 기부 천사 된 거 잊었어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알아봐서 뭘 하지를 못한다나 봐요. 그리고 시연이가 수업 듣는 강의는 우리 딸 얼굴 보려는 남학생들로 강의실이 꽉꽉 찬대요. 그러니 친구들과 마음놓고 놀 수나 있겠어요?

“이거 동수 녀석이 일부러 이렇게 만든 거 아니야? 시연이 놀지도 못하게 하려고.”

- 호호호. 설마 그렇겠어요? 그리고 우리 딸이 사람들에게 많이 사랑받아서 좋아요. 품 안에 자식인 줄 알았는데 그렇게 기특한 일도 할 줄 알고, 이제 정말 다 컸다 싶어 마음이 든든해요.

“그것만 그렇겠어? 시연이 덕분에 책도 잘나갈 거 아니야?”

노하원이 경영하는 길벗출판사는 요즘 들어 큰 호황을 맞고 있었다.

처음엔 윤 스포츠센터 VIP 고객들과의 두터운 친분을 이용해 꽤 많은 일거리를 가져왔다. 하지만 야심 차게 준비했던 책들이 거의 대부분 크게 재미를 보지 못하면서 출판사는 제자리걸음이었다.

다행히 그녀의 인맥이 워낙 방대해 일거리는 끊이지 않았고 그 덕분에 적자는 간신히 면하고 있었다. 직원들에게 제때 월급을 주는 것만 해도 예전 사장에 비해 크게 나아진 점이지만 남편에게 큰소리 빵빵치고 시작했던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자 마음이 조급해졌었다.

경험이 많았다면 장기적으로 보고 조급하게 굴지 않았을 텐데, 난생처음 해보는 경영이었고 그러다 보니 내가 괜한 일을 벌인 건 아닌가 노심초사할 때가 많았다.

그 와중에도 꾸준히 팔리던 ‘그에게 내 마음을 담아 보낸다.’의 판매량이 점점 줄어들면서 자칫 적자로 돌아설 수도 있는 상황. 그때 길벗 출판사 입장에서는 기적같은 일이 벌어졌다.

바로 시연의 TV 광고 출연이 굉장한 호응을 얻으면서 그녀의 책도 날개 돋친 듯 팔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얼마 전 나갔던 공익광고 느낌의 두 번째 광고는 대중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왔고 책 또한 미친 듯이 팔리면서 순식간에 각종 온·오프라인 서점의 베스트셀러 1위 자리를 차지했다.

‘그에게 내 마음을 담아 보낸다.’의 선전은 비단 해당 책의 판매량 증가만 가져온 게 아니었다. 그동안 길벗출판사에 냉담했던 서점들이 화해의 제스쳐로 다른 책들을 소비자들의 관심을 많이 받을 수 있는 위치로 옮겨 놓으면서, 그것들의 판매량도 갑자기 늘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적자는커녕 꽤 큰 재미를 보기 시작하자 노하원은 그제야 남편에게 길벗출판사의 선전을 은근히 자랑했었다.

- 호호호. 그거야 당연한 거죠. 조만간 우리 딸이 쓴 로맨스 소설이 판매될 예정이니 우리 길벗출판사도 지금보다 훨씬 잘나가게 될 거예요.

“좋겠네. 그런데 너무 시연이에게만 의존하는 거 아니야? 경영자에게 수익의 다각화는 매우 중요해.”

- 저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출판업계는 조금 다르더라고요. 다양한 책들을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명 대박 책이 하나씩 나와주지 않는 이상 어려워요. 그런 대박 책이 나와줘야 그동안 외면받았던 다른 책들도 함께 조명을 받거든요.

“오! 당신이 그렇게 말하니 정말 멋진 경영인이 된 것 같은데.”

아내와 사업이야기를 하게 될 줄은 몰랐던 윤승태 사장은 최근 그녀의 변화가 낯설면서도 새로워서 좋았다.

- 그럼 지금까지는 별로 안 멋진 경영인이었단 말이에요?

“아··· 아니지. 당신은 항상 멋지고 아름다워.”

- 그렇죠? 그런데 더 대단한 게 뭔지 알아요? 아까 낮에 정말 엄청난 계약을 하나 했거든요.

“그게 뭔데?”

- 시연이 책의 교정본을 본 방송사에서 그 내용을 토대로 로맨스드라마를 만들고 싶다고 연락이 왔어요.

“뭐? 그 책 시연이와 동수 이야기 아니야?”

- 맞아요.

“그게 드라마까지 나올 정도로 대단한 내용이야?”

생각도 못 한 아내의 말에 윤승태 사장도 어안이 벙벙했다.

- 시연이가 저를 닮아서 글쓰는 재주가 뛰어나요. 그리고 로맨틱 코미디 느낌의 발랄한 느낌이 드라마로 딱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대뜸 계약부터 한 거야?”

- 아니요. 잘 알아보고 했어요. 이용대 변호사님이 많이 도와줬거든요.

이용대 변호사는 윤 스포츠센터 고문 변호사다.

“그 친구가? 이거 안 되겠군. 윤 스포츠센터 일은 안 하고 남의 일을 그렇게 하다니 말이야.”

- 어머 지금 남이라고 했어요? 제가 당신 남이에요?

“아··· 아니. 그게 아니고. 하하하. 잘했다고. 잘했어. 그런데 정말 우리 딸 대단하네. 책이 나오기도 전에 드라마 제작이 결정되고 말이야.”

- 그게 전부 우리 마 서방 덕분이에요.

“우리 딸이 똘똘해서 그렇지 그게 무슨 동수 덕분이야.”

- 마 서방이 시연이를 멋지게 이미지 메이킹해줘서 이런 관심을 받게 된 거잖아요. 물론 우리 딸이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잘 쓴, 정말 재미있는 책이긴 해요. 하지만 광고로 유명해지지 않았다면 방송국에서 시연이 책에 관심을 두기나 했겠어요? 사실 윤 스포츠센터도 마 서방 덕 많이 보고 있잖아요. 그래요 안 그래요?

“그래. 맞아. 인정할 건 해야지. 복덩어린지는 몰라도 확실히 능력은 있어. 그런데 말이야 여보.”

- 아, 맞다! 할 말이 있어서 전화한 거였죠. 그런데 그게 마 서방과 관련된 일이에요?

“응. 오늘 동수가 고모와 작은 제수씨를 만났데.”

- 네에? 고모님과 동서가 왜요?

“그게 말이야. 동수가 조금 전에 찾아와서 말했는데···.”

윤승태 사장은 조금 전 동수가 찾아와서 했던 이야기를 그대로 아내에게 전했다. 그녀 입장에서도 화가 날 일이었지만, 나직한 한숨만 쉴 뿐 남편의 말이 끝날 때까지 조용히 듣기만 했다.

- 정말 동서가 마 서방에게 그랬단 말이에요?

노하원은 이야기가 완전히 끝나자 그제야 남편에게 질문을 했다.

“사실이겠지. 설마 동수가 없는 이야기를 지어서 내게 했겠어?”

- 휴우···. 마 서방이 우리를 정말 어떻게 생각할지.

“걱정하지 마. 그런 걸로 우리를 오해할 녀석은 아니잖아.”

- 그래도 정말 마 서방에게는 미안하네요. 그래서 당신은 어쩌고 싶어요? 뭔가 원하는 게 있으니 제게 전화를 했겠죠?

“그동안은 당신이 나를 말려서 참고 살았는데 더는 안 그러려고. 우리가 도현이 때문에 그동안 너무 오냐오냐하며 대했던 것 같아. 지금 바로 안 잡으면 동수에서 끝나지 않고 동수 부모님에게까지 행패를 부릴 수 있어. 당신도 느꼈잖아. 막내 제수씨가 갈수록 막무가내로 변하고 있다는 거.”

말은 안 해서 그렇지 그녀가 막내 동서에게 받았던 스트레스는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많았다. 그동안 맏며느리라서 아들 못 낳은 죄인이라서 조용히 살았는데, 남편 말처럼 그런 행동이 지금의 사달을 불러일으켰다는 생각이 들었다.

- 알았어요. 어머님께 죄송하지만, 저도 당신 뜻에 따를게요.

“그런 말 하지 마. 당신이 내게 시집 온 이후로 우리 집안이 얼마나 잘 풀렸는데. 그리고 당신이 동생들 뒷바라지를 얼마나 잘했는데. 만약 두 녀석이 그 은혜를 모른다면 짐승이나 마찬가지지. 이번 일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당신은 너무 신경 쓰지 마.”

- 그래요. 당신이 어머님 마음 크게 상하지 않게 잘 해결해주세요.

“어머니가 마음이 상해도 이번 일은 어쩔 수 없어.”

아무리 효자 소리 듣는 윤승태 사장이지만 이번 일은 전적으로 아내 편이었다. 요즘 세상에 아들딸이 뭐가 그렇게 중요하다고, 아내는 집안에서 죄인 아닌 죄인 취급을 받았다.

그동안 많이 참았다. 하지만 이젠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가 서운해하신다고 이번 일은 확실히 짚고 넘어갈 생각이다.

============================ 작품 후기 ============================

오늘 밤 가팔환초 무박 종주를 하러 갑니다. 이 글을 보실쯤이면 이미 산으로 이동중이겠군요. 대략 40km 정도 되는 등산코스인데 종주코스로 나름 유명합니다. 고생을 왜 사서하는 지 모르겠지만 어느 순간 등산이 좋아서 이러고 다닙니다. ㅎㅎ

이미 작년에 영남알프스 태극종주를 무박으로 다녀온 적이 있어서 크게 걱정은 안 되지만 얼마전에 내린 눈이 약간 신경 쓰이긴 하네요. 혹시 몰라 내일 분량은 예약 걸어 놓고 갑니다.

와! 아직도 제 글이 쿠폰베스트 순위권에 있습니다. ^^

이건 정말 예상못한 일이네요. 진짜 진짜 감사합니다. ㅠㅜ

연중한 글이 다시 관심 받는 게 쉽지 않은 일이던데 그래도 꾸준히 쓴 보람이 있습니다. ㅎㅎ 열심히 쓸게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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