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63 소제목 추후 결정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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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rrr
- 네. 마동수입니다.
“이봐요.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뻔뻔해요.”
친정에 도착한 임자령은 아이들을 재우고 동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 겪고 있는 곤란의 근본적인 원인은 자신에게 있었지만, 그녀는 그걸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오히려 약속을 어겨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든 동수에 대한 원망만 가득했다.
- 누구십니까?
“허 참. 기가 막혀서. 몇 번 통화했으면 전화번호 정도는 저장해둬야 하는 거 아닌가요?”
- 누구 신데 다짜고짜 전화를 걸어서 막말이십니까? 저를 아는 분인지 모르겠지만, 중요한 사람이 아니면 따로 번호를 저장해두지 않아서 말입니다. 죄송합니다.
수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동수의 목소리는 사람을 놀리는 것처럼 능글거렸다. 임자령은 그런 그의 목소리에 분통이 터졌다.
“아니 뭐라고요? 중요한 사람이 아니면 번호를 저장해두지 않아요? 정말 어이가 없어서 원···. 이봐요. 인제 보니 정말 무례한 사람이었네요.”
- 누군지 밝히지도 않고 자꾸 제게 막말을 하시니 더 이상 통화할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이만 전화 끊겠습니다. 찰칵!
“이봐···. 여보세요. 여··· 보세요. 뭐야. 정말 끊은 거야. 뭐 이런 인간이 다 있어.”
Rrrr
임자령은 동수가 정말 전화를 끊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일부러 그녀를 놀리는 건지 아니면 정말 누군지 모르는 건지 알 수 없지만, 이대로는 억울해서 잠을 못 잘 것 같아 다시 전화를 걸었다.
- 네. 마동수입니다.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어! 대체 예의를 어디다가 팔아 버렸길래···.”
- ··· 찰칵!
“여보세요? 여보세요. 어머머머. 이 인간 좀 봐. 누가 이기나 두고 보자.”
Rrrr
- 아, 진짜 짜증 나네. 애! 너 누군데 자꾸 전화질이야! 죽어볼래. 응!
기세 좋게 전화를 걸었지만, 동수의 예상치 못한 막말에 임자령은 순간 주눅이 들었다.
“나··· 나 시연이 작은 엄마예요.”
- 아! 작은어머님. 죄송합니다. 전 그런 줄도 모르고. 기분 나쁘셨다면 죄송합니다. 요즘 자꾸 짜증 나게 하는 장난 전화가 많이 걸려와서요.
“그··· 그럴 수도 있죠. 그런데 말이에요. 사람이 어쩜 그래요. 제가 시연이에게는 저 만난 이야기 하지 말아 달라고 했잖아요.”
주눅이 들어도 따질 건 따지는 그녀였다.
- 안 했는데요.
“안 해요? 안 했는데 큰 아주버님께서 어떻게 알아요? 그게 말이 돼요?”
- 진짜 안 했습니다!
“그럼 큰 아주버님께서 그쪽이랑 저랑 만난 일을 어떻게 알고 있어요. 설마 저나 고모님이 이야기했다고 말하려는 건 아니죠?”
- 혹시 큰 아주버님이라면 윤승태 사장님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당연하죠. 제가 그분 말고 큰 아주버님이라고 부를 사람이 누가 있어요.”
- 시연이 한테는 이야기 안 했지만, 아버님에게는 이야기했습니다.
“무··· 뭐라고요? 아니 왜요?”
- 왜라니요? 당연한 거 아닙니까? 생각해보니 상속하는 주체자가 누굽니까? 바로 아버님 아닙니까. 그러니 상속포기각서를 고모할머님이나 작은어머님에게 드리는 것보다 아버님에게 드리는 게 가장 확실한 방법이, 제가 윤 스포츠센터에 관심이 없다는 걸 증명할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뭐가 잘못됐나요?
어리숙한척하며 할 말 다하는 동수가 얄미웠지만, 따지고 보면 틀린 말은 아니었다.
“사람이 어쩜 이리도 눈치가 없는지. 알았어요. 됐어요. 이만 끊어요.”
***
“큭큭큭. 약올라 죽을 거다.”
시연이 작은어머니와의 통화를 마친 나는, 그제야 속이 후련해지는 것 같았다. 내가 닭대가리도 아니고 몇 번이나 들은 목소리를 모를 리 없다.
“누군데 그렇게 음흉하게 웃어요?”
내가 엄청 괴롭히는(?) 바람이 지쳐서 잠이 들었던 시연이가, 졸린 눈으로 거실로 나오며 물었다.
“친구.”
“제가 모르는 친구예요?”
“응. 별로 안 친한 친구. 진짜 짜증 나는 친구라서 좀 약 올렸거든. 흐흐”
***
뜬눈으로 밤을 새운 윤승룡은 점심시간을 이용해 임자령과 약속을 잡았다.
“술은 좀 깼어요?”
그녀는 남편이 술을 깨면 이성을 되찾으리라 믿었다. 다른 건 몰라도 두 아들에게는 끔찍한 사람이니 절대로 극단적인 선택은 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
“어제 제게 했던 말과 행동들은 기억나고요?”
“술을 마셨던 거지 필름이 끊긴 건 아니었어.”
“그래도 술을 깨고 보니 미안하죠?”
“아니. 술을 깨고 보니 더욱 확실해졌어. 이거 받아.”
술을 마셨던 어제보다 지금 윤승룡의 얼굴이 더욱 차가웠다.
그는 가방을 열어 임자령에게 서류봉투 하나를 건넸다.
“이게 뭔데요?”
“당신이 동수 그 친구에게 상속포기각서를 작성하게 만들었다면서? 서류 좋아하는 것 같아서 나도 서류로 준비해왔어.”
“협의 이혼··· 합···의서···. 여보! 이게 대체 뭐예요?”
“뭐긴 뭐야. 이혼 합의서지. 내가 어제 이야기했잖아. 갈라서자고.”
“지금 정말 제정신으로 말하는 거예요? 아무리 내가 잘못을 했다고 해도 당신이 어떻게 내게 이럴 수가 있어요. 그래요. 저는 그렇다고 쳐요. 그럼 애들은요. 당신, 애들은 생각해봤어요? 부모의 이혼이 아이들에게 얼마나 큰 충격을 줄지 생각해봤느냐고요.”
“생각해봤어. 하지만 예전과 다르잖아. 요즘은 이혼이 흔한 세상이야. 아이들도 충분히 이해할 거야. 따로 살더라도 내 아이들이 아닌 게 되는 건 아니잖아. 내가 녀석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것만 보여주면 된다고 믿어. 괜히 마음 안 맞는데 같이 살면서 하루가 멀다하고 싸우는 모습을 보이는 것보단 말이야.”
술에서 깨면 생각을 고쳐먹을 거라 생각했는데 남편은 어제보다 더욱 냉정하게 변해있었다.
‘이게 아닌데. 이럴 수는 없는데.’
계속 이런 생각이 머릿속에 맴돌았지만, 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아··· 안 싸우면 되잖아요.”
“어떻게 안 싸워. 당신은 내게 만족하지 못하는데. 당신 돈 좋아하잖아. 나는 돈이 필요 없어.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 그동안 우리가 모은 재산. 전부 당신이 가져.”
“여보. 정말 왜 이래요. 이건 정말 당신답지 않아요.”
“나 다운 게 어떤 건데? 부모 이상으로 나를 돌봐주신 형님의 뒤통수를 때리는 와이프를 보면서도 참고 사는 게 나 다운 거야? 그런 모습을 기대했다면 미안하지만 꿈 깨. 절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아.”
“여··· 여보. 이러지 말아요. 우리 다시 생각해봐요. 내··· 내가 잘못했으니까 제발 다시 생각해봐요. 여보. 네? 흑흑···”
아무리 영악한 그녀라도 남편의 지금 행동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남편은 이미 두 사람의 이혼을 기정사실로 여기고 있는 것 같았다.
어제는 술에 취해서 홧김에 하는 소리일 것이라고 자위했다. 그런데 오늘 그의 모습을 보니 절대 술김으로 하는 소리가 아니었다. 씨알도 먹히지 않을 것 같은 단호한 모습에 절망감이 들었고 눈에서 저절로 눈물이 흘렀다.
“울지마. 왜 울어. 당신 좋아하는 돈을 준다고 하니까 좋아서 우는 거야?”
“흑흑. 다··· 당···신 어떻게 제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어요. 좋아서 우느냐니요. 제가 아무리 미워도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어요. 그래도 당신 나 사랑하잖아요. 안 그래요?”
“아니. 난 이제 당신에게 지쳤어. 이제 정말 그만하자. 서류는 놓고 갈게. 최대한 빨리 작성해서 보내줬으면 좋겠어. 소송을 걸어도 소용없을 거야. 나는 형님에게 부탁해서라도 당신과 이혼을 진행할 거니까.”
“아! 제··· 제발요. 제발. 여보. 제발요.”
임자령이 아무리 울면서 빌어도 윤승룡은 요지부동이었다. 그는 울고 있는 아내의 얼굴을 차갑게 바라보다 자리에서 일어나 카페를 나섰다.
일주일 후.
임자령의 얼굴은 말도 안 되게 초췌하게 변했다. 아무리 남편의 마음을 돌려보려고 애썼지만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친정도 그녀에게 편하지 않았다. 그녀의 아버지는 일을 이 지경까지 만든 딸을 나무랄 뿐이었다. 언니와 여동생은 자신의 불행을 통쾌해 하는 것 같았다. 그동안 남편이 돈 잘 번다고 두 사람을 무시했던 게 이런 식으로 돌아왔다.
마음 붙일 곳이 없으니 가슴이 답답해졌다.
그때 항상 푸근한 웃음으로 그녀를 다독여주던 한 사람이 떠올랐다. 그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 사람이라면 자신을 도와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람이 그녀를 도와줄 이유는 아무것도 없었지만,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무작정 집에 찾아갔다.
띵동.
- 누구세요.
“형님. 저예요. 둘째.”
임자령이 찾아간 사람은 다름 아닌 노하원. 시연이의 어머니였다.
============================ 작품 후기 ============================
주변 인물이야기가 너무 길어져서 죄송합니다. 이번 이야기는 내일 마무리 짓도록 하겠습니다.
필요해서 넣은 에피소드인데 뭔가 좀 어색합니다. ㅠㅜ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