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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가 전부는 아니야-264화 (264/424)

00264  소제목 추후 결정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임자령에게 일주일은 정말 지옥 같은 시간이었다. 친가족조차 그녀를 외면하며 따뜻한 말 한마디 없이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기만 하자 점점 더 고립되어갔다.

생각이 많았다. 어떻게 보면 짧은 일주일이었지만, 아무도 대화를 해주지 않으니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처음 임신 사실을 알고 남편의 가족을 만났을 때 가장 따뜻하게 맞이해줬던 사람이 노하원이었다. 결혼 후에도 한결같았다. 첫째인 도현이를 낳았을 때도 집안에 아들이 생겼다며 눈물까지 흘리며 기뻐해 줬다. 친정엄마보다 더욱 극진히 산후조리를 도와줬고 명절이면 애 보라며 거의 일도 못 하게 했었다.

그런 그녀를 임자령은 왜 그렇게 못살게 굴었는지 스스로도 이해가지 않았다.

그냥 질투였던 것 같다. 아름답고 똑똑하고 현명하며 우아한. 같은 여자가 봐도 정말 멋진 노하원의 모습에, 항상 주목받길 원했던 못난 열등감이 폭발했었던 모양이었다. 차라리 ‘나도 형님처럼 저렇게 멋진 여자가 되고 싶다. 꼭 본받아야지.’라고 마음 편하게 생각했으면 지금과 같은 곤란함은 겪지 않았을 거다.

“동서. 얼굴이 왜 이렇게 안됐어? 어떡해. 반쪽이 다 되었네. 일단 들어와.”

문전박대는 당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노하원은 아니었다.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임자령을 반갑게 맞아줬다.

그 모습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큰 형님인 노하원은 이렇듯 한결같은 사람이었다. 감히 자신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맑고 순수했다. 그런데 항상 욕심 많고 영악했던 그녀 입장에서는 그런 모습이 가식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제야 확실히 원래 저런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형님. 흑흑···. 죄송해요. 제가 잘못했어요. 용서해주세요.”

임자령은 거실에 들어서자마자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눈물을 흘리며 용서를 빌었다.

“도··· 동서. 갑자기 왜 이래.”

“형님. 그동안 제가 정말 잘못했어요. 형님이 누구보다 좋으신 분이라는 거 잘 알고 있었는데, 제가 이쁨 받고 싶어서 못되게 굴었어요. 정말, 정말 죄송해요.”

“아니. 동서. 그게 뭐 그렇게 큰 잘못이라고 이렇게 대성통곡을 해. 일단 일어나. 일어나서 이야기하자. 눈물 그치고. 응?”

“제가 그렇게 못되게 굴었는데 쉽게 용서가 되지 않을 거라는 거 잘 알아요. 하지만 형님. 이제부터라도 정말 잘할 테니 한 번만 저를 용서해주세요. 네? 형님.”

“호호호”

“혀··· 형님.”

임자령은 어떻게든 용서를 받고 싶어 참회의 눈물을 흘리고 있는데, 노하원이 갑자기 웃음을 터트리자 깜짝 놀랐다. 혹시라도 그동안 참았던 설움 때문에 통쾌해서 비웃는 건 아닌지 덜컥 겁이 났다.

“호호호. 미안. 웃어서 미안. 그런데 어떡해. 난 동서가 너무 귀여운 걸.”

“네···?”

“나한테도 동서랑 비슷한 나이의 여동생이 있어. 얼굴도 동서처럼 예쁘고 성격도 비슷해. 동서가 내게 했던 행동? 동생을 통해서 많이 겪어 봐서 그런지 아무렇지도 않았어. 그래 나도 사람이니까 완전히 아무렇지도 않은 건 아니다. 가끔은 내 마음을 몰라주는 것 같아 서운하긴 했지. 하지만 그게 다야. 그냥 내 동생 같아. 아, 투정부리는구나. 아, 컨디션이 안 좋은가 보구나. 이렇게 생각하면 이해 못 할 것도 아니고.”

“하지만 제가 우리 도현이를 가지고 좀 지나치게 유세를 떤 것도 있고···.”

“에이. 그런 건 유세 떨어도 돼.”

“네에?”

“나나 첫째 동서나 우리가 동서에게 얼마나 고마워하는 줄 알아? 그동안 아들 못 낳았다고 집안에서 얼마나 눈치 줬는데. 시연이 아빠랑 큰 서방님이 아무리 괜찮다고 해도 어른들 마음은 그게 아니니까. 그런데 동서가 아들을 그것도 두 명이나 낳아줬잖아. 그때부터 어른들도 별말씀 안 하시잖아. 동서 유세? 솔직히 말해 어른들 눈치에 비하면 완전히 애들 재롱이야.”

“재롱요?”

임자령은 생각지도 못한 말에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그럼. 재롱이지. 동서가 오기 전까지 심지어 무슨 이야기까지 나왔는지 알아?”

“아니요.”

“씨받이를 들이자더라.”

시연의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가세가 급격히 기울었지만, 한때는 꽤 큰 문중까지 거느린 명망있는 집안이었다. 그러다 보니 집안 어른입네 하면서 씨받이처럼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꺼내는 사람도 종종 있었다.

“네? 시··· 씨받이를요? 대체 누가···.”

“황당하지? 나도 정말 기가 막혀서 말이 안 나왔어. 내가 시연이 아빠를 아무리 사랑해도 씨받이는 절대 인정할 수 없었어. 정말 헤어질 각오까지 하고 있었어. 동서가 인사 올 때가 그런 이야기가 오고 갈 때였어. 그런데 속도위반이라잖아. 갑자기 다들 기다려보자는 쪽으로 분위기가 바뀌었어.”

“그럼 만약 도현이가 안 나왔으면···.”

“그래. 도현이가 안 나왔으면 시연이 아빠랑 나는 헤어졌을지도 몰라.”

“그럴 리가요. 아주버님이 어떤 분인데요.”

“나도 시연이 아빠를 믿어. 하지만 사람 일은 모르는 거잖아. 어쨌든. 동서 덕분에 씨받이 이야기는 완전히 들어가버렸어. 여전히 셋째가 아니라 장남에게도 아들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어른도 있었지만, 시연이 아빠는 들은 척도 안 했어. 도현이가 있어서야.”

“아···.”

지금까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이야기에 임자령은 같은 여자로서 서글픔을 느꼈다.

“인사 왔을 때 내가 동서를 따뜻하게 대한 것도, 산후조리를 열심히 도왔던 것도, 명절에 도현이 돌보라며 일을 못 하게 한 것도 어떻게 보면 고마움에 대한 표시였어.”

“그건 아니에요. 형님은 제가 그러지 않았어도 잘해주셨을 거에요. 작은 형님이 형님 말이라면 껌뻑 죽는 것도 그만큼 작은 형님에게 잘하셨기 때문이잖아요.”

“아···. 동서 몰랐구나. 첫째 동서가 내 말을 잘 듣는 건 내가 엄청나게 군기를 잡아서 그래. 원래 경찰이었잖아. 좀 건방지더라고. 그래서 시집살이 좀 시켰지. 그렇게 일 년 정도 고생시키니까 그제야 나긋나긋해지더라.”

“군기를 잡으셨다고요? 저··· 정말인가요?”

“호호호. 농담이지. 덩치를 봐라. 그리고 무술만 5단이래. 내가 첫째 동서를 어떻게 이겨. 좀 부려 먹고 싶었는데 무섭잖아. 맞기 싫어서 잘해준 거야.”

“네에? 호호호. 전 형님이 이렇게 재미있는 분인지 오늘 처음 알았어요.”

“그런데 동서. 무슨 일 있어? 얼굴이 왜 그렇게 반쪽이 됐어. 예쁜 얼굴 다 망가지겠다.”

“혀··· 형님. 흑흑. 이제 저 얼굴이 어떻게 되든 아무 상관 없게 됐어요.”

자신의 처지를 잠시 잊고 웃음을 짓던 임자령은 그제야 이곳에 온 목적을 깨닫고 노하원의 품에 안겨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아니 그게 갑자기 무슨 소리야?”

“도현이 아빠가···. 도현이 아빠가 저보고 갈라서재요.”

“뭐? 작은 서방님이 왜? 설마 서방님에게 다른 여자라도 생겼어?”

“아니요. 그 사람이 어디 그럴 위인인가요? 그게 아니라···. 실은···.”

“뭔데? 뭔데 그렇게 뜸을 들여?”

“형님도 아실 거예요. 제가 좀 미쳤나 봐요. 얼마 전에 마 서방을 불러서···.”

“아···. 그 이야기. 들었지. 동서가 좀 엉뚱한 일을 저지르긴 했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혼이라니. 서방님 그렇게 안 봤는데, 사람이 왜 그렇게 성급해.”

역시 노하원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다행히 그녀는 크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런 모습에 임자령은 희망을 가졌다.

“그러게요. 흑흑. 형님. 제가 정말 미쳤었나 봐요. 저 좀 도와주세요. 형님. 제가 정말 정말 앞으로 형님에게 잘할게요. 우리 도현이 아빠 마음 좀 돌려주세요. 네?”

“글쎄···. 내가 말한다고 서방님이 들으실까?”

“분명히 들을 거예요. 도현이 아빠가 큰 아주버님이랑 형님 말은 하늘처럼 받드는 사람이에요. 그러니 형님. 저 좀 살려주세요.”

마음 같아서는 인연을 끊자고 했던 윤승태 사장의 말을 취소해달라고 부탁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러기에는 너무 염치가 없었다.

“알았어. 내가 작은 서방님하고 이야기해볼게. 그러니 울지마. 그만 뚝. 동서 말처럼 하늘처럼 받들지는 몰라도 내가 서방님 의대 뒷바라지한 게 얼만데, 무시하진 않겠지.”

“정말요? 정말 해주시는 건가요?”

“그래. 그리고 동서도 이제 철 좀 들어라. 대체 무슨 생각으로 마 서방을 만났어. 쯧쯧.”

“죄송해요. 정말 입이 열 개라도 드릴 말씀이 없어요. 주제넘었고, 마 서방에게도 상처를 준 것 같아서 마음이 아파요. 꼭 만나서 사과할 생각이에요.”

“내 말은 그게 아니라. 동서가 사람을 잘못 봤다는 거야.”

“네? 그게 무슨 말씀인지···.”

“내가 우리 예비 사위 욕하는 것 같아서 자세한 말은 못하겠고. 그냥 여우 같은 면이 있어. 외모보고 쉽게 봤다가 큰코다쳐. 이번 일처럼. 다행히 자기 사람에게는 한없이 따뜻하니까 서운해도 마 서방하고는 잘 지내는 게 좋을 거야.”

“잠깐 겪어 봤는데 쉬운 사람은 아니었어요.”

지금 그녀가 겪고 있는 고초가 전부 동수로 인한 거라는 건 어렴풋이 눈치채고 있었다. 물론 가장 큰 원인은 자신에게 있기 때문에 딱히 원망스럽지는 않았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무서워서 원망할 마음도 생기지 않았다.

물론 노하원 앞에서 무섭다는 말은 할 수 없어, 쉬운 사람은 아니라고 돌려 말했다.

“그렇게 돌려 말하지 않아도 돼. 우리 사위지만 좀 얄미울 때가 있거든. 그런데 시연이가 워낙 좋아하고, 마 서방도 시연이에게 워낙 잘하니까. 능력도 좀 있고. D&Y 피트니스 센터랑 아이 두(I DO)도 전부 마 서방 머리에서 나온 거잖아. 시연이 아빠가 그러는데 잔머리 하나는 대한민국에서 최고일지도 모른대, 글쎄. 호호호.”

뭔가 뒷담화를 하는 것처럼 말하던 노하원은 어느새 동수를 칭찬하고 있었다. 동수에 대해 말하면서 눈을 반짝이는 게 누가 봐도 그를 아끼는 모습이었다. 조용히 지켜보고 있자니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임자령은 노하원의 이런 모습을 처음 보았다. 아니. 그동안은 그녀에 대해 질투하기 바빠 이런 식의 인간적인 대화를 나눌 기회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사위를 아끼는 장모의 모습을 보니 아들밖에 없는 자신이 왠지 씁쓸했다. 만약, 정말 만약 노하원이 남편의 마음을 돌린다면 그때는 딸을 가지기 위해 노력해봐야겠다고 조용히 다짐했다.

============================ 작품 후기 ============================

임자령은 셋째 며느리 맞습니다. 이전회에서 임자령이 둘째라고 한 건 둘째 동서라는 의미입니다. 좀 이상한가요? 차라리 '형님. 도현이 엄마예요'가 더 자연스러울까요?

혹시 임자령이 완전히 쫓겨나길 바라신 분이 있다면 죄송합니다. 아무리 그래도 바람핀것도 아닌데 이혼은 과한 것 같아서 이정도에서 마무리 지었습니다.

이 에피가 왜 나왔는지는 다음 회에 이유가 나올겁니다. 사실 대단한 건 아니고, 동수가 맡은 일을 해결할 수 있는 약간의 실마리가 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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