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70 소제목 추후 결정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전 꼭 성공할 거라고 생각해요. 팀장님을 믿거든요.”
“저도 두 사람에게 확신을 주고 싶은데, 이번 일은 그러기 쉽지 않아요.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거든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후에는 오직 하늘의 뜻을 기다린다. 결국은 운이 따라야 한다는 말씀이네요.”
“네. 100% 제 의도대로 돌아간다고 해도 과연 결과도 생각처럼 나올지는 장담하기 힘듭니다. 열심히 노력했는데 기대한 성과를 거두지 못해 낙담할 수도 있습니다.”
“그거 무서워서 손 놓고 기다릴 수는 없죠. 뭐든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팀장님 말씀처럼 일단 최선부터 다해야죠.”
서라씨, 미래씨 두 사람 모두 결의가 대단해 보였다.
“그래요. 정말 열심히 한번 해봅시다. 우선 서라씨는 아까 이야기한 것처럼 그동안 포에버마트의 박연하 전무로부터 피해를 입은 직원들을 최대한 빨리 찾아주세요.”
“지금까지 박연하 전무에게 당한 모든 피해자를 찾습니까?”
“어렵겠지만 우선은 퇴사한 직원들 위주로 찾아주세요. 여전히 와룡그룹 소속이라면 증언하는 게 쉽지 않을 겁니다. 오히려 박연하 전무 뒷조사를 한다고 알려질 수도 있어요. 퇴사한 직원들도 일단 명단만 확보하세요. 좀 더 지켜보다가 확실하다 싶은 사람에게만 증언을 녹취할 생각이니까요.”
박연하 전무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모르는 사람이 갑자기 그녀에 대해 안 좋은 증언을 해달라고 경계심이 드는 게 당연하다. 더군다나 계속해서 와룡그룹 소속으로 회사를 다니고 있다면 오너의 친손녀에 대해 나쁜 이야기를 하는 건 보통 각오 없이는 어렵다.
“알겠습니다. 팀장님.”
“전 뭘 하면 될까요?”
“미래씨는 주특기를 살려야죠.”
“제게 주특기가 있었어요?”
“그럼요. 무한 긍정, 친화력, 성실. 이런 게 미래씨 장점이자 주특기잖아요. 그걸로 서울에 있는 포에버마트 전 지점을 조사해주세요.”
“네. 할게요.”
서울에 있는 포에버마트 지점만 20개 가까이 된다. 하루에 한 곳만 조사해도 20여 일이 걸린다. 그러나 무한 긍정 추미래씨답게 무조건 하겠다며 자신감 있게 대답했다.
“지점이 20여 갠데 할 수 있겠어요?”
“네에? 그··· 그렇게나 많아요? 그래도 할 수는 있어요. 단지··· 시간이 좀 오래 걸리겠네요. 그런데 팀장님. 전 뭘 조사하면 되나요?”
“그냥 매장 분위기, 직원들에 대한 느낌. 이런 것들을 조사해주시면 됩니다. 그러다가 이건 특이하다 싶은 게 있으면 따로 체크해 주시고요. 돌아다니다가 혹시라도 박연하 전무를 만나면 뭘하고 돌아다니는지도 좀 봐주세요. 아마 대체 뭘 하라는 건지 막연할 겁니다.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가 될 수도 있어요. 그래서 성실한 미래씨가 아니라면 하기 힘들어요.”
이렇게 설명하고 있는 나도, 내가 좀 어처구니없이 느껴졌다. 대체 뭘 찾으라는 건지···.
한때는 3-마트와 1 ~ 2위를 다투던 포에버마트가 지금은 엘마트에 밀려 대형 할인 마트 업계에서 3위까지 밀려났다. 재계 서열 2위인 와룡그룹이 밀어주고 있는데도 말이다.
이건 뭔가 내가 모르는 문제가 있다는 의미다. 누군가가 차분히 시간을 두고 살펴봐야 하는데, 내가 생각할 때 이런 일에는 미래씨만한 적임자가 없었다.
“넵! 팀장님이 저를 이렇게 믿어주시는데 반드시 해내겠습니다.”
“그렇게 부담을 가질 필요는 없어요. 그냥 우리보다 잘나가는 마트는 어떤 시스템으로 돌아가는지 공부한다는 생각으로 편안하게 조사해봐요. 다행히 지금 포에버마트는 많이 어수선한 상황이거든요. 뭔가 나오긴 나올 겁니다.”
“네. 팀장님. 사소한 거라도 절대 놓치지 않겠어요.”
포에버마트는 경영진이 최근에 대거 교체되었다. 그리고 임명되자마자 내가 싼 똥을 치우느라 꽤 고생하고 있다. 지금처럼 어수선할 때라면 뭔가 나오긴 나올 것 같다.
내가 싼 똥이란 바로 용역비리 사건을 말한다. 아쉽게도 3-마트는 이번 용역비리와 연관이 없었지만, 엘마트와 포에버마트는 언론의 집중포화를 맞으며 그야말로 ‘개’고생 중이다.
물론 우리 동지마트도 용역비리 사건의 중심에 있었다. 그러나 고현호 이사가 자신의 재산을 털어 피해자를 보상해줬고, 시연이의 광고까지 큰 효과를 보면서 논란의 중심에서 비켜날 수 있었다.
처음부터 모든 걸 인정하고 피해자에게 보상부터 먼저 한 우리와 달리, 엘마트와 포에버마트는 끝까지 오리발을 내밀다가 대중들의 엄청난 비난에 시달려야 했다. 덕분에 어부지리처럼 3-마트의 시장 점유율만 더욱 높아졌다.
내가 박연하 전무를 타깃으로 잡은 것도 포에버마트가 용역비리의 비난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금 시점에서 제대로 정비도 못 한 채 한 번 더 타격을 입는다면 아무리 와룡그룹이 뒤에 버티고 있다고 해도 꽤 아플 거다.
한때 유행했던 코믹 시리즈 중에 이런 말도 있었다.
‘일본에서 제일 잔인한 사람의 이름은? 깐 데 또 까.’
상대의 약점을 물고 늘어지는 것. 치사해 보여도 싸움이 원래 그렇다. 더군다나 상대가 골리앗이고 내가 다윗인 모양새인데 상대방을 배려해줄 여유 따위는 당연히 없다.
“그럼 나는 뭐를 해야 하나···. 흠···. 동영상을 촬영하려면 가짜 손님을 투입해야 하는데 믿을만한 사람을 어디서 구하나.”
“그건 제가 할 수 있습니다. 팀장님.”
“뭐? 윤권이 네가? 에이. 넌 덩치가 커서 안 돼. 금방 눈에 띄어. 몇 번만 왔다 갔다 해도 금방 알아차릴걸.”
“그건 저도 압니다. 저 말고 제 친구입니다.”
“윤권아. 이거 애들 소꿉장난 아닌 거 알지?”
아무리 뜬금없기로서니 이런 상황에서 헛소리할 녀석이 아니라는 건 안다. 그래도 혹시 몰라 한 번 더 확인했다.
“물론입니다.”
“믿을만한 녀석이야?”
“네. 제가 대신 목숨을 내놓을 수 있을 정도입니다.”
“아, 이 자식! 또 사극 톤 나오네. 내가 그런 말투 쓰지 말라고 했지. 목숨을 내놓긴 무슨 목숨을 내놓아. 넌 부모님은 생각 안 해? 좀 그렇게 극단적인 말 하지 말라고 했어, 안 했어!”
“아···. 그··· 그러니까 그만큼 믿을만하다는 말씀을 드리려고 했습니다. 혹시 제 말이 못 미더우시면 상수 형님에게 물어보셔도 됩니다. 상수 형님도 꽤 아끼는 친구입니다.”
“그래? 그 ‘상수’라는 사람이 내 동생 상수를 말하는 거 맞지?”
“당연하죠. 그 친구랑 저랑 상수 형님이랑 얼마나 친했는데요.”
운동선수라 털털해 보여도 상수는 사람을 만날 때 굉장히 까다롭다. 넉살이 좋아 두루두루 잘 지내긴 하지만 자기가 속을 내줄 만큼 친하게 지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래서 윤권이도 동생이 소개해줬을 때 두말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게다가 사극톤으로 말하는 과장화법을 내가 싫어하긴 해도 대신 목숨을 내놓을 수 있다는 건 그만큼 윤권이가 그만큼 믿는 친구라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래. 알았어. 믿을게. 그런데 무슨 일을 해? 상수도 안다는 건 같이 유도한 친구?”
“같은 대학 체육교육과 출신이긴 한데 종목은 달랐어요. 그 친구는 태권도를 했거든요. 그래서 겉으로 봤을 땐 덩치도 호리호리해요. 지금은 사설탐정을 하고 있습니다.”
“흥신소?”
“흥신소가 아니라 사설탐정입니다.”
“나 참. 엎어치나 메치나 그게 그거지.”
“다릅니다. 그 친구는 남의 불륜현장이나 덮치는 그런 흥신소 사람들과 다릅니다. 없어진 사람을 찾아주기도 하고, 억울하게 누명을 쓴 사람의 누명을 벗겨주는 일도 합니다. 원래 특채로 경찰이 됐었는데 사고를 치는 바람에 옷을 벗고 나왔습니다. 오해하실까 봐 미리 말씀드리는데 불의를 보고 못 참아서 그만둔 거지 절대 나쁜 짓을 저지른 건 아닙니다.”
내가 좀 깐깐하게 나가자 윤권이는 친구가 경찰을 그만둔 사정까지 자세히 설명했다.
특채로 들어가 2년간 뺑뺑이를 돌다가 형사로 발령. 그런데 발령 난 곳의 형사과장이 술자리에서 여순경 하나를 성추행하는 모습을 보고 분개해서 들이받아 버린 거다. 그 모습에 화가 난 선배들이 덤벼들자 그 선배들마저 초전박살 내버렸다.
이유야 어쨌든 하극상.
성추행 사건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고 성추행을 하던 형사과장에게 폭행한 사실만 주목하는 경찰에 환멸을 느낀 그는 3개월 정직이라는 징계에 반발하며 과감하게 사표를 던져버렸다.
그런데 여기서 재미있는 건 그때 그 여순경과 친구가 눈이 맞아 둘이서 같이 사설탐정 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전직 경찰이라는 프리미엄과 성실함 덕분인지 그럭저럭 밥을 먹고 살 형편은 되었고, 두 사람은 그렇게 알콩달콩 경찰에서 하지 못했던 형사놀이를 하며 재미있게 있다고 한다.
어디선가 한 번은 들었을 법할 만큼 뻔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래서 더 믿음이 갔다.
“알았어. 그래. 일단 만나보고 결정하자. 어려운 일이니까 보수는 최대한 넉넉하게 챙겨줄 거야. 그러니 면접 보고 싶으면 최대한 빨리 오라고 전해.”
“알겠습니다. 팀장님. 그리고 제 말 믿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직 합격시킨 건 아니니까 그렇게 좋아하지 마.”
“그럼요. 하지만 보시면 마음에 들 겁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지금 바로 전화하겠습니다.”
Rrrr
“응. 나다. 다름이 아니라 너 일 좀 하나 해볼래? 뭐? 아니 불륜현장은 무슨. 불륜 저지를 여자친구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그게 아니라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일. 우리가 지정해주는 한 사람을 따라다니면서 그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카메라에 담는 일이야. 무고한 사람이냐고? 당연히 아니지. 아주 나쁜 사람이야. 그러니까 그건 걱정하지 마. 뭐? 지금 당장 온다고? 잠시만···. 팀장님. 친구가 지금 온다는데요?”
“오케이. 오라고 해.”
============================ 작품 후기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