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72 소제목 추후 결정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크게 보면 우리 회사는 서치펌(search firm)의 일종이에요. 그리고 민간 소개업자들을 헤드헌터라고 부르는 데 보통은 저처럼 서치펌에 소속되어 있죠. 물론 개인적으로 활동하는 사람도 있긴 해요.”
시연이는 헤드헌터에 대해 궁금한 게 많은지 오소연을 만나자마자 이것저것 질문을 던졌다. 내가 시연이에게 헤드헌터를 만나기로 했는데 같이 가자고 말했더니, 태어나서 헤드헌터는 처음 본다며 신기해하며 뛸 듯이 좋아했던 그녀다.
“서치펌요? 로펌(low firm)과 비슷한 개념인가 보군요.”
“그렇죠. 이런 쪽 회사는 컴퍼니(company)라고 부르지 않고 펌(firm)이라고 해요. 거의 비슷한 의미지만 펌은 사무소나 소규모 회사를 지칭하는 경우가 많죠.”
“미국에서는 서치펌이 굉장히 활성화 된 것 같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낯선 것 같아요. 말만 들었지 선배님처럼 진짜 헤드헌터는 처음 뵙거든요.”
“역사가 다르니까요. 미국에서 헤드헌터의 역사는 대공황이 일어난 1929년부터 시작되었어. 그때 처음 실업이 사회문제로 대두 되었거든. 그리고 점차 활동영역이 세분화 되면서 지금은 변호사·의사·회계사 심지어 공무원 채용까지 헤드헌터에게 의뢰하고 있어. 반면 한국은 1980년대 처음 도입되었어. 하지만 그때만 하더라도 대부분 지금 직장이 평생 직장이라는 생각이 강했기 때문에 큰 인기는 없었지. 그러다가 IMF 사태 이후 한국도 실업이 사회문제로 대두 되었잖아. 그걸 계기로 서치펌이 크게 각광받기 시작했어.”
확실히 전문가답게 설명이 상세했다. 그녀의 대답에 시연이의 눈빛은 더욱 초롱초롱 빛났다.
“왠지 미국와 우리나라가 다른 듯 닮았네요.”
“그래. 실업 문제가 사회문제로 대두 되면서 각광 받았다는 점에서는 그렇게 볼 수 있지. 사실 알바X, 잡코리X, 사람X, 인크루X 이런 회사들도 IMF 이후 유명세를 떨치고 있잖아.”
“그런 취업포탈 서비스 사이트도 서치펌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음···. 약간 애매해. 넓은 의미로 본다면 그렇게 볼 수 있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서치펌은 보다 전문적인 인력을 소개해주는 거야. 서치펌의 활동영역을 기준으로 볼 때 중역·임원급을 주대상으로 하는 executive search, 부장급 이하의 과장과 대리급을 대상으로 하는 middle search, 신입사원 또는 3년 이하의 경력자를 중개해 주는 junior search 등으로 구분할 수 있어. 사실 취업포탈 서비스 사이트는 아르바이트가 대부분이고 좀 더 영역을 넓힌다고 해도 기껏 주니어 서치 정도 수준이야.”
“아! 그럼 선배님이 하는 일은 훨씬 전문적이겠네요.”
“그렇지. 취업포탈 사이트의 경우는 구직자들이 자신의 이력서를 올리고 그 이력서에 따라 회사를 연결해주는 수동적인 형태라면, 우리는 의뢰인이 원하는 사람을 직접 찾아다녀. 전문적이고 책임감도 많이 따라. 필요한 경우에는 이직에 관심이 없더라도 우리가 설득하는 경우도 있어. 훨씬 적극적이지.”
“그럼 우리 동수씨는 부장급 이하의 직급이니까 미들 서치라고 할 수 있는 건가요?”
“꼭 그렇진 않아. 지금 선배님의 직급은 동지그룹 계열사 팀장이지만, 우리에게 의뢰한 회사는 중역급 직책을 제시했어. 사실상 최고급 인력이라고 할 수 있지.”
“와! 우리 동수씨가 그렇게 높은 평가를 받고 있어요?”
오소연의 설명에 시연이는 자기 일처럼 기뻐하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녀의 눈빛에는 자랑스러움이 역력했다. 내가 이걸 노리고 시연이를 이 자리에 부른 거다. 오소연은 지금 내 의도에 충실히 따라주고 있었다.
“물론이지. 지금 서치펌 업계에서 선배님은 엄청난 상종가야. 동지랜드부터 D&Y 피트니스 센터 그리고 동지마트까지. 선배님의 손을 거친 기업은 모두 큰 발전을 이뤘어. 게임 업계 말고는 근래에 이런 성과를 거둔 사람은 전무하다고 할 정도야. 오죽하면 미다스의 손으로 불리겠어요.”
“와! 미다스의 손. 선배님이 그 말씀을 하시니까 내 일처럼 기뻐요. 역시 제가 남자보는 눈은 있는 것 같아요. 헤헤.”
“동감! 시연이 네가 책으로 ‘이 남자 임자있는 사람이다.’라고 선언하지 않았다면 아마 선 자리도 꽤 들어왔을걸. 남자는 역시 능력이잖아.”
오소연은 그 말을 하면서 나를 보며 눈을 찡긋거렸다. 그녀도 내가 시연이를 이곳에 데려온 이유를 눈치챈 듯했다.
아니지. 오소연이 먼저 시연이를 데리고 오라고 했으니, 이런 식으로 나에게 잘 보이고 싶었던 모양이다. 좀 영악해 보이긴 하지만,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그러게요. 나도 우리 동수씨처럼 직업적으로 성공했으면 좋겠는데 아직 학생이니···.”
“어머. 그건 아니다. 시연이 너도 이미 상종가를 치고 있으면서 그래.”
“네에? 제가 뭘요?”
“헤드헌팅업이 허용되는 직종에는 기관장·최고경영자나 고위관리자 같은 전문 경영인도 있지만 물리학자·화학자·수학자·통계학자 같은 학자나 작가와 창작·공연예술가 등도 포함되거든. 시연이 너는 이미 인기 에세이 작가잖아. 어머님이 운영하는 출판사와 같이 일하는 게 아니었다면 벌써 여기저기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갔을 거야.”
“정말이요? 우와. 아쉽다. 나도 우리 동수씨처럼 헤드헌팅 한 번 당해봤으면 좋겠다.”
“원한다면 내가 해줄게. 지금 네 인기라면 우리나라 최고의 출판사에 억대 계약금을 받고 출판 계약을 맺을 수 있도록 도와줄 수도 있어.”
“헉! 정말이요? 음···. 에이. 그래도 엄마를 버릴 순 없어요. 흑. 아쉽다.”
“호호호. 나중에라도 생각이 바꾸면 연락해. 이건 내 명함.”
“와! 명함도 주시는 건가요. 동수씨. 봤죠. 선배님이 제게 관심을 보이는 거. 동수씨 만큼은 아니지만, 저도 능력 있는 여자라고요.”
나만큼이 아니라 나 이상이다. 남들은 자신을 너무 과대평가해서 문제인데, 시연이는 자신을 너무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그녀가 쓴 책과 그동안 동지마트 광고를 통해 얻은 이미지의 파급력을 생각하면 시연이의 가치는 나와는 비교도 하기 힘들 정도로 대단하다.
“그래. 그 명함 잘 간직하고 있다가 어머님이 시연이 너를 너무 박대한다 싶을 때 전화해.”
“호호호. 그럴까 봐요. 아, 좋다. 동수씨에게 어울리는 여자가 되어가는 것 같아서요. 그런데 선배님. 그렇다면 우리 동수씨가 지금 다른 회사로 옮기면 그 회사 중역이 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럼. 큰 대기업이야 힘들겠지. 하지만 콕 찍어서 동수 선배님을 원한다는 회사 중에 가장 큰 곳은 우리나라에서 100위 권 안에 들어. 지금 선배님 나이가 서른하나잖아. 서른하나에 100대 대기업 이사급이 된다는 건 엄청난 거지.”
맙소사! 중역 제안이 들어왔다고 해서 어디 중견기업이겠거니 했는데 100대 대기업이라니!
시연이 앞에서 나를 띄어주기 위해 과장하는 건가 싶어 오소연을 쳐다봤지만, 그녀의 눈빛에는 진심이 담겨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런 기업에서 대체 무슨 생각으로 내게 그런 큰 자리를 제안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100대 대기업? 거기 인사담장자 머리에 총이라도 맞은 거 아닙니까?”
“호호호. 선배님도 참. 설마 선배님을 스카우트하기 위해 온 자리에서 제가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하겠어요? 지금 그 회사 얼마 전에 세대교체가 일어난 곳이에요. 새로운 피가 필요하죠. 그런 와중에 선배님이 눈에 들어온 거죠. 물론 나이를 생각하면 차장이나 부장급도 대단한 거죠. 그런데 선배님이 고현호 이사의 최측근이잖아요. 웬만한 직급으로 관심이나 가지겠어요?”
“그래서 제게 이사자리를 제시한 거다?”
“그럼요. 선배님은 지금 자신을 너무 과소평가하고 계신 것 같아요. 제가 아까 이야기했잖아요. 미다스의 손으로 불리고 있다고. 덕분에 몸값이 하루에 다르게 폭등하고 있어요. 부장급 이하 자리는 이미 제 선에서 모두 커트했고요. 제가 많이 보는 건 그 회사의 장래성 그리고 연봉과 스톡옵션이에요. 혹시 몰라서 제가 자료를 뽑아 왔어요. 한번 보세요. 이걸 보셔야 선배님도 자신이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지 제대로 아실 것 같아요.”
시연이보고 자신을 과소평가한다고 했는데, 내가 그 짝이었던 모양이었다.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조건들이라 머리가 어질했다. 솔직히 내가 만약 로또에 당첨되지 않았다면 충분히 혹했을 것 같다.
오수연이 건넨 파일에 담긴 숫자들은 그만큼 충격적이었다.
지금 회사에서 받는 연봉이 성과급 포함해서 1억 원 조금 넘는다. 2010년인 올해 100대 대기업 평균 연봉이 6,800만 원 정도 된다고 들었다. 보통 사람들의 시선에서 보면 1억 원은 엄청난 연봉임은 틀림없다.
우리 동지그룹은 우리나라에서 다섯 손가락에 드는 대기업이니 평균 연봉도 당연히 높다. 올해 마케팅부 신입 사원 초봉이 5,500만 원이고, 본사 과장급 연봉이 1억 2,000만 원 ~ 1억 5,000만 원 정도 한다고 들었다. 나야 입사한 지 5년도 안 되는 햇병아리기에 같은 과장급이라고 해도 연봉이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그렇다고 해도 대한민국에서 고작 서른하나의 나이에 억대 연봉을 돌파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잘나가는 ‘사’자 돌림의 의사나 변호사도 지금 내 나이대에서는 내 연봉의 절반도 못 받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그녀가 건넨 파일에 적힌 최소 연봉이 2억 원이었다. 연봉만 그런 게 아니라 스톡옵션이 걸린 경우도 꽤 많았다. 회사를 어떻게 키우느냐에 따라 수억에서 수십억 많게는 수백억 원의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게 바로 스톡옵션이다.
솔직히 말해 내가 고현호 이사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반대급부를 제시받은 건 하나도 없다.
아! 있긴 있다.
동지 푸드쿡 포항 독점권. 우리 부모님 노후를 생각했을 때 꽤 괜찮은 조건이다. 하지만 그게 다다. 특별히 연봉을 많이 받는 것도 아니고 초특급 승진을 하는 것도 아니다. 물론 벌써 팀장이니 초특급 승진이긴 하지만 고현호 이사가 힘써준 결과는 아니었다.
정작 내게 도움을 준거라고는 지리산 연수원에 발령났던 나를 동지마트로 이끌어 준 게 전부다. 만약 후계자 경쟁에서 성공하면 내게 어떤 자리를 주겠다고 약속한 것도 없다. 그러니 최악의 경우 이러다 나중에 토사구팽 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와! 이게 정물 우리 동수씨의 시장 가치란 말이에요?”
옆에서 나와 함께 서류를 보던 시연이가 놀란 눈으로 말했다.
“그럼. 내가 괜히 미다스의 손이라고 말한 게 아니잖아. 선배님 나이를 생각하면 조건이 좀 과하긴 하지. 사실 그 밑으로 들어온 조건도 많았어. 그런 건 내 선에서 다 잘라냈어. 그렇다고 해도 최소 2억 원이면 아마 지금 받으시는 연봉의 적어도 두 배는 될 거야. 그렇죠? 선배님.”
“네. 대충 그 정도는 될 겁니다.”
“정말요? 그럼 동수씨는 억대 연봉자인 거네요? 진짜 대단하다.”
“하하하. 대··· 대단하긴. 남들 버는 만큼 버는 거지. 크흠···.”
“호호호. 선배님. 그렇게 쑥스러워하지 않으셔도 돼요. 그 정도면 또래에서 최소 상위 1% 이상이니까요. 저는 언제쯤 선배님 연봉을 받을 수 있을지. 그런데 어떻게 마음에 드는 회사는 있으세요?”
못 먹는 감 찔러나 보자는 속셈일까? 오소연은 두 눈을 반짝이며 나를 바라봤다.
“저도 한번은 들어봤음 직한 전도유망한 회사들도 있네요. 이 회사들이 정말 나를 원하는 겁니까?”
“그럼요! 콕 찍어서 선배님을 원하는 회사도 있었고, 우리가 추려준 후보군 중에 선배님을 선택한 회사도 있어요.”
“그런데 말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조건이 너무 과하지 않습니까? 솔직히 실감이 안 납니다.”
“고현호 이사와 연관관계가 있다는 것 때문에 조건을 크게 부른 건 사실이에요. 그리고 지금까지 선배님이 한 번도 실패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꽤 큰 메리트고요.”
“음···. 나를 무슨 행운의 여신···. 아니지. 내가 여자는 아니니, 나를 행운의 부적 정도로 생각한다는 말처럼 들리는군요.”
“솔직히 그런 회사들도 꽤 있어요. 하지만 선배님의 능력에 주목한 회사도 꽤 있어요.”
합리적일 것 같은 기업의 오너들이 더 미신을 잘 믿는 경우가 많다. 아닌 경우도 많다고 했지만, 이 인간이 언제까지 성공할지 눈 빠지게 지켜보는 곳으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고현호 이사라면 내가 실패를 한다고 해도 믿고 기다려 줄 사람이다. 그런 사실에 생각이 미치자 잠시라도 혹했던 마음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조건은 정말 혹할만 하네요. 하지만 신뢰를 저버릴 만큼의 조건은 아니네요.”
“역시. 저도 선배님이 거절할 줄 알았어요. 그래도 오늘 제 목적은 모두 달성했네요. 시연이 책 사인도 받고, 선배님과 미팅도 했으니 말이죠. 혹시라도 더 좋은 조건이 있으면 연락 드려도 되죠?”
“물론입니다. 사람 일은 모르는 거니까요.”
“네. 감사해요. 그런데 선배님을 직접 보니까 말이죠. 왠지 선배님은 저의 좋은 고객이 될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드네요.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호호호.”
“좋은 고객이 되려면 후계자 경쟁에서 이겨야 할 텐데요? 우리가 제일 불리하다고 안 하셨나요?”
“그냥 느낌이 그래요. 제가 헤드헌터로 오래 활동한 건 아니지만 감은 좋은 편이거든요. 왠지 모르지만 꼭 성공하실 것 같아요. 성공하면 저 잊지 마시고 많이 애용해주세요. 그동안 괜찮은 인재 많이 물색해놓을게요.”
“하하하. 말씀이라도 감사합니다. 정말 그렇게 되면 네트워크 브래인에 먼저 연락드리죠.”
“감사해요. 선배님.”
============================ 작품 후기 ============================
삼천포로 빠졌습니다. ㅠ
잠깐 언급하려던 이야기가 생각보다 길어졌습니다.
얼마전 기사를 보니 2014년 우리나라 100대 대기업 평균 연봉이 7,000만원이 넘었다더군요. 삼성이나 SK의 경우는 평균 1억 원을 돌파했고요.
아무리 그래도 평균 연봉이 1억 원이라니 정말 대단합니다. 뭔가 웃픈 느낌? ㅠㅜ
지금 소설 배경은 2010년입니다. 주인공이나 동지그룹 연봉이 좀 많은 편이긴 하지만, 마케팅부의 특수성을 생각해 일부러 그렇게 잡았습니다.
내일부터는 박연하 전부 에피가 시작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