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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가 전부는 아니야-273화 (273/424)

00273  소제목 추후 결정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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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수를 만나고 나온 여순희는 이번 일에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고 다짐했다.

사실 천성기와 여순희가 운영하고 있는 탐정사무실은 최근 들어 재정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사무실 살림을 도맡아 관리하고 있는 그녀가 거기에 대해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천성기만 모르고 있을 뿐이었다.

여순희는 천성기를 사랑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부채의식도 있었다. 그녀만 아니었다면 그는 지금도 가끔 그리워하는 형사 생활을 원 없이 하고 있었을 것이다.

자신을 성추행하던 형사 과장은 지금 생각해도 소름 끼친다. 게슴츠레한 눈이 충혈된 채 바라보던 그 모습은 절대 잊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다른 곳도 아니고 다른 직장동료들이 보는 앞에서 그런 짓을 한다는 게 그녀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그리고 경찰이라는 사람들이 그런 모습을 보면서 모른척했다는 사실에 큰 실망감을 느꼈었다.

어떻게 보면 천성기는 그녀에게 구세주나 다름없다. 형사 과장을 비롯해 범인과 격투를 종종 벌여야 하는 형사들을 박살 내는 모습을 보며 얼마나 심장이 두근거렸는지 모른다. 다른 사람들이 많이 취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겠지만, 그날의 천성기는 그녀의 심장에 깊이 새겨질 만큼 영웅적이었다.

하지만 역시 세상은 불공평했다. 여순희를 성추행했던 형사 과장은 그녀의 증언에도 불구하고 가벼운 경고 정도로 징계가 끝이었지만, 천성기는 상당히 중징계에 속하는 정직 처분을 받았다.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하늘 같은 선배 형사를 두들겨 팬 사건이다. 그 누구도 그와 함께 일하려 하지 않아 예전부터 꿈꾸던 형사 생활은 제대로 시작도 못 해보고 접어야 했다.

징계에 반발한 천성기가 경찰을 그만뒀을 때 누구보다 마음 아파했던 사람이 여순희였다. 그래서 탐정사무소를 개업한다는 소식에 어렵게 시작한 경찰을 그만두고 그에게로 달려갔다. 심장이 시켜서 한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은혜를 갚아야 한다는 생각도 있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연인이 되었다.

그런데 사람 좋은 천성기의 단점이 지나친 정의감과  부족한 경제개념이었다. 의뢰인의 처지가 불쌍하면 의뢰비를 받기는커녕 오히려 자신이 나서서 도와주고, 가끔은 의뢰인이 더 나쁜 놈이라며 의뢰를 망쳐놓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성실하게 일해서 돈을 벌어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에 지나지 않았다. 게다가 그렇게 피해를 본 의뢰자들이 안 좋은 소문을 퍼트리면서 그나마 찾아오던 고객들마저 발길이 끊어지게 되면서 사무실 경비도 제대로 내지 못하는 처지에 이르고 말았다.

때마침 천성기의 친구 나윤권에게 연락이 온건 가뭄 뒤에 내린 단비처럼 반가운 소식이었다. 다른 곳도 아니고 대기업인 동지그룹과 관련된 일이라고 하니 더더욱 그랬다.

연락을 받고 곧바로 동지마트를 찾아가려다가 혹시나 싶어 의뢰자인 마동수에 대해 알아봤다. 그녀가 도움을 받고 있는 채팅방에 ‘동지그룹 마동수에 대해 아는 사람’이라고 올렸는데 운이 좋았는지 아직 경찰 생활을 하고 있는 동기가 그를 알고 있었다.

동기는 윤시연의 팬이었다. 자연스럽게 그녀의 팬클럽에 가입하게 되었고, 저절로 피앙세인 마동수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윤시연의 작은아버지가 서초 경찰서장인 것도, 마동수의 둘도 없이 절친한 친구가 최근 젊은 경찰들이 가장 존경하는 최광우 경정이라는 소식도 들었다.

동기로부터 그 소식을 알게 된 여순희는, 마동수의 신뢰만 받는다면 어쩌면 천성기와 그녀가 경찰을 그만둘 수밖에 없게 만든 그때 그 형사 과장을 곤란하게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계산적인 속내도 가졌다.

마동수의 의뢰 자체는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그에게 들은 박연하 전무라는 사람은 누가 봐도 인성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사람이었다. 돈도 벌고 의미도 있는 일이었다.

단지 그녀가 우리나라 재계서열 2위인 와룡그룹 장남의 첫째 딸이라는 사실이 문제였다. 자칫 실수라도 한다면 정말 걷잡을 수 없는 보복을 당할지도 모른다. 천성기와 여순희 정도는 쥐도 새도 모르게 제거할 수 있을 정도로 힘 있는 가문이었다.

그러나 위험부담이 있는 만큼 보상 또한 짭짤했다. 착수금이 무려 5,000만 원이었다. 역시 대기업다웠다. 어떻게 보면 두 사람의 위험수당까지 포함된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착수금 1억 원에 성공 보너스 1억 원이라는 엄청난 돈이 걸린 일을 포기할 순 없었다. 그 돈이면 천성기가 좋아하는 탐정 사무소를 몇 년은 더 운영할 수 있다.

“오빠. 혹시 내가 나서서 기분 상했어?”

동지마트에서 나온 여순희는 조용히 그녀의 뒤를 따르던 천성기를 돌아보며 말을 걸었다.

“아니. 기분이 왜 상해. 사실 그동안 내가 물불 안 가리는 통에 순희 네가 고생 많이 했잖아.”

“칫. 내게 고생하는 걸 알고 있었어?”

“그럼. 당연히 알지. 내가 아무리 멍청해도 요즘 사무실 형편이 어렵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어. 그래서 나도 생각이 많았어. 널 먹여 살리려면 일을 그만두고 공사장이라도 나가야 하나, 아니면 태권도 사범 알바라도 뛰어야 하나 고민했거든.”

“먹여 살리긴 누굴 먹여 살려. 같이 벌면 되지. 다른 건 몰라도 공사장은 생각도 말아. 거긴 돈은 잘 줘도 몸 축나는 일이야. 난 오빠가 돈 때문에 다치는 거 싫어.”

“미안해. 내가 능력이 좋았으면 네가 이런 고생을 안 해도 될 텐데.”

“오빠! 그런 약한 소리 좀 하지 마. 나는 고생을 하든 말든 오빠랑만 같이 있으면 돼! 그러니까 기죽지 마! 오빠가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게 내겐 제일 마음 아픈 일이야. 항상 당당하게! 알았지?”

천성기의 어깨가 처지자 여순희는 방긋 웃으며 그의 힘을 북돋웠다.

“그래? 그런데 순희야. 이번 일 정말 괜찮겠어?”

“뭐가?”

“겉으로 보기에는 쉬워 보여도 우리가 상대하는 사람이 보통 사람이 아니야. 옛날로 따지면 귀족이야. 귀족도 그냥 귀족이 아니고 우리 정도는 지나가는 개미 취급할 정도로 엄청나게 힘 있는 귀족이라고. 자칫 정체가 탄로 나면 정말 위험할 수도 있는 일이야.”

“알아. 마동수 팀장님이 착수금으로 무려 5,000만 원을 준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 오빠가 상수라는 분의 친한 후배라서? 아니면 윤권이 오빠 친구라서? 아니지. 그만큼 위험하기 때문이지.”

“난 네가 위험해지는 게 싫어.”

“그래서 그렇게 시무룩해 있었던 거야? 내가 걱정돼서? 하지만 오빠. 난 어린 애가 아니야. 나도 한때는 경찰이었다고. 멍청하게 그 망할 형사 과장에게 한 대 먹이지도 못했었지만 나도 한때 경찰이었다고.”

“수··· 순희야. 갑자기 그때 일을 꺼내서 뭐하려고.”

평소답지 않은 여순희의 모습에 천성기는 당황했다.

“나, 이 일 꼭 성공할 거야. 그래서 반드시 마동수 팀장님에게 잘 볼일 거야.”

“잘 보여서 뭐하려고?”

“잘 보여서 나도 빽이라는 거 한 번 만들어 보려고. 오빠도 친구가 올려준 글 봤지? 마동수 팀장님 약혼녀 작은아버지가 윤승호 서장님인거. 게다가 광수대 최광우 대장님이 절친이래. 그것만 그래? 재벌 2세인 고현호 이사의 왼팔이라잖아. 친해지면 우리 억울한 사연 좀 풀어주시지 않을까? 우린 이렇게 고생하는데 그 자식은 얼마 전에 총경으로 승진해서 어디 경찰서 서장이 됐다더라.”

“그래도 너무 위험하잖아.”

“내가 위험하면 오빠가 지켜줄 거잖아. 아니야? 오빠는 범인 때려잡는 형사들도 때려눕힌 사람이잖아. ”

여순희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바라보는데, 천성기는 그녀 앞에서 자신 없다는 소리를 할 수 없었다.

“그럼! 나만 믿어! 내가 무슨 일이 있어도 너 하나만은 꼭 지킬게. 그런데 순희야.”

“응?”

“혹시 마 팀장님에게 잘 보이고 싶은 게 다른 이유가 있는···.”

여자친구가 다른 남자에게 잘 보이고 싶다는 말에 천성기는 괜한 자격지심이 생겨 소심하게 물었다. 평소에는 남자다운 그였지만, 사랑 앞에서는 약한 남자였다.

“오빠!”

“으··· 응?”

“오빠는 나를 그렇게 몰라? 내겐 오빠밖에 없어. 그렇게 곰같이 생긴 남자를 내가 왜?”

“아니. 그··· 그래도 능력이 있으니까.”

“오빠도 능력 있거든. 돈 잘 벌어야 능력인가? 난 오빠처럼 정의감 투철한 사람이 좋다고. 부하 직원이 곤란한 지경에 처하든 말든 모른척하던 그런 인간들 말고. 이 세상에서 내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는 남자는 오빠밖에 없어. 그러니 다시는 그런 못난 소리 하지 마! 알았어?”

“내게 네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들어? 나도 그런데.”

“그러니까 우리는 천생연분이라는 거야. 호호호.”

다음날부터 천성기와 여순희는 본격적으로 박연하 전무에 대해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녀에 대한 전반적인 정보는 이미 마동수가 건네준 자료로 충분했다. 지금 두 사람에 필요한 건 그녀의 동선.

그런데 며칠을 따라다녀도 딱히 정해진 동선은 없었다. 그냥 자기 내키는 대로 돌아다니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성격이 히스테리컬하든 어쨌든 박연하 전무가 이뤄낸 성과는 진짜였다. 그게 직원들을 쥐어짜서 이뤄낸 결과라도 말이다. 그만큼 많이 돌아다녔고, 가는 곳마다 평지풍파가 일어났다. 직원들 입에서 곡소리가 났지만 덕분에 포에버마트의 전체적인 평가는 높아졌다.

“오늘은 어땠어?”

박연하 전무의 뒤를 열심히 따라다니던 여순희가 대기하고 있던 차로 돌아오자 천성기가 걱정스레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어휴. 말도 마. 진짜 오빠 앞에서 이런 말을 하기 그렇지만 진짜 미친년이야. 이것 좀 봐.”

여순희는 그렇게 말하면서 자신이 찍어온 동영상을 천성기에게 보여줬다.

[쓸모없는 것들. 여긴 또 왜 이 모양이야. 이건 손님이 오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대체 몸에 머리가 달려있는 이유가 뭐야. 밥 먹으려고? 숨 쉬려고? 어휴. 한심해. 생각하라고 있는 머리를 가지고 맨날 돼지처럼 처먹기만 하는 데 사용하니 학습이 될 리가 없지.]

영상 속에서 박연하 전무는 이런 막말을 던지며 매장을 완전히 뒤엎고 있었다.

“와! 이거 정말 정신병자네. 그런데 영상이 좀 짧다.”

“응. 아직은 조심스러워서 함부로 찍기 힘들어서 잠깐만 촬영한 거야. 게다가 얼굴이 제대로 안 나와서 쓸모가 없어. 이렇게 되면 본인이 아니라고 하면 그만이거든. 좀 더 밀착하고 싶은···.”

“그건 안돼. 시간이 걸려도 안전이 최고야. 내가 이야기했지. 첫째도 안전, 둘째도 안전이라고.”

“알았어. 오빠. 명심할게. 그래도 대강 동선은 그려지는 것 같아. 미친년처럼 중구난방으로 널뛰기하는 것 같은데 명품 매장들은 빠짐없이 돌더라고. 뭔가 분위기도 위태로워 보이는 게 조만간 뭔가 큰 건이 터질 것 같기도 하고. 옆에서 지켜보는 내가 다 조마조마하다니까.”

“네가 가져온 영상만 봐도 심한데 더한 일이 생길 것 같다고?”

“그건 약과야. 내가 지켜본 것 중에는 더 심한 일도 있었어. 솔직히 오빠가 현장에 안 나간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분명 거기 있었으면 사고 몇 번 쳤을 것 같아.”

“그 정도야? 솔직히 난 아까 그 영상을 보고도 욱했는데.”

“그 봐! 그래서 내가 한다고 그런 거잖아. 한번은 글쎄 여기저기 먼지 닦은 장갑을 거기 일하는 직원 혀로 핥게 하더라니까. 보는 내가 치가 떨리더라.”

여순희는 생각만해도 끔찍하다는 듯 몸을 잘게 떨었다.

“무··· 뭐라고. 뭐 그런 미친···.”

“그러니까 오빠는 그냥 여기서 내가 안전하게 돌아오길 기다려줘. 현장은 내가 최선을 다해서 돌아다닐 테니까.”

============================ 작품 후기 ============================

솔직히 현실에선 박연하 전무 같은 사람을 본적은 없습니다.

대신 군대에선 많이 봤죠. 인사과에서 근무하다보니 병사들이 사고친 경위서를 자주 접했는데 관물함 뒤집는 건 애교고, 변기 청소 솔을 입에 물도록 강요하는 인간도 있었습니다.

진짜 구타를 안해도 사람 스트레스 주는 방법은 정말 많더군요. 가끔 느끼는 거지만 드라마보다 현실이 더 막장인 경우가 많습니다.

요며칠 글이 안 써져서 꽤 고민이 많았습니다. 그렇게 고민하다 내린 결론은 그냥 편하게 생각하자는 거였습니다. 제 글이 볼만하면 계속 보는 거고 별로면 떠나는 거고. 제 깜냥이 그정돈데 어쩌겠습니까. ㅠㅜ 그냥 꾸준히 읽어주시는 독자님들을 위해 완결까지 열심히 쓰는게 최고겠죠.

꾸준히 쓰다보면 언젠가 완결되는 날이 오리라 믿으며 열심히 쓰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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