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또가 전부는 아니야-274화 (274/424)

00274  소제목 추후 결정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너 며칠 전에 헤드헌터 만났다면서?”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고현호 이사가 호출하길래 가봤더니 오소연을 만난 이야기가 나왔다.

“어! 그걸 이사님이 어떻게 아십니까? 설마 저 스토킹하시는 겁니까?”

그가 그럴 리가 없다는 건 당연히 알고 있다. 그래도 속으로 조금 뜨끔해서 장난스럽게 반문했다.

“야, 인마! 네가 무슨 엄청난 미녀라도 되냐? 내가 널 스토킹하게. 제수씨라면 모를까 내가 머리에 총을 맞지 않은 이상···.”

“어라. 우리 시연이라면 스토킹을 할 수 있다는 말씀이세요? 어허 이것 참. 아직 얼굴도 못 본 형수님이지만 만나면 꼭 일려야겠군요.”

“안돼! 우리 자기 질투심이 얼마나 무서운데. 그러지 마. 내 얼굴에 손톱자국이 날지도 몰라.”

“하하하. 갑자기 이사님 얼굴에 손톱자국 난 모습이 보고 싶어지는데요. 그런데 진짜 제가 헤드헌터 만난 건 어떻게 아셨데요. 며칠 전에 진짜 만났거든요. 대학 후밴데 시연이가 요즘 헤드헌터 쪽에 관심을 보여서 같이 만나서 그쪽 계통 이야기를 좀 듣고 왔어요.”

“그랬어? 아니 누가 그러더라고. 우연히 인더가든에서 마 팀장을 봤다고.”

역시 세상은 좁다. 만약 단 둘이 만났으면 구설수에 올랐을지도 모를 일이다.

“절 아는 사람이었습니까? 그럼 아는 척하지 그랬답니까.”

“아니 네가 아니라 헤드헌터와 약간 안면이 있다고 그러더라.”

“그런데 어떻게 저를 알고···,”

“제수씨가 있었잖아. 제수씨야 TV 광고를 통해 워낙 유명해졌고, 제수씨와 다정하게 대화를 나눌 남자는 마 팀장밖에 없잖아. 그걸 보고 내게 전화를 했더라고. 마 팀장 나랑 결별하는 거냐고. 그럴 거면 자기한테 보내라고 말이야.”

“와···. 세상 정말 좁네요. 혹시나 했는데 그런 식으로 알아보는 사람도 있고.”

“근데 솔직히 말해봐. 그냥 제수씨가 서치펌을 궁금해서 만난 건 아니지? 설사 그렇다고 해도 요즘 떠오르는 신성인 마동수를 헤드헌터가 그냥 보냈을 리는 없을 것 같은데.”

아무것도 모르는 척 어수룩한 모습을 보이지만 나 이상으로 눈치가 빠른 사람이 바로 고현호 이사다.

“제가 떠오르는 신성인 건 알고 계셨어요?”

“당연한 거 아니야. 오죽했으면 두 형님이 마 팀장을 찍어 내려고 임시 이사회까지 소집했겠어.”

“그럼 저한테 잘하세요. 후배 만났더니 그 친구가 제게 요즘 제 몸값이 어떤지 슬쩍 알려주긴 했어요. 연봉이나 조건 보고 솔직히 좀 혹하긴 하던데요.”

“내가 얼마나 잘하는 데 그래. 솔직히 내가 아니었으면 마 팀장이 지금처럼 떠오르는 신성이 될 수 있었겠어? 내가 마 팀장 잠재력을 알아보고 열심히 서포트 했기 때문에 지금 이 자리에 오른 거라고.”

내가 좀 잘하라고 구박하자 고현호 이사는 오히려 나를 보며 큰소리를 떵떵 쳤다.

사실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고현호 이사가 아니었다면 아무리 계열사라고 해도 회사 하나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권한을 주지는 않았을 거다. 솔직히 서른하나에 이런 막강한 권한을 휘두를 수 있는 사람이 우리나라에서 재벌 2세 말고는 아마 찾아보기 힘들 거다.

누가 보면 우리 두 사람이 이직문제로 싸우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은 서로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한 장난에 가까웠다. 어떻게 보면 고현호 이사와 있으면 이럴 수 있다는 게 내가 그와 함께하는 가장 큰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이제 돈은 충분히 있다. 뻘짓만 하지 않는다면 자자손손 부유하게 살 수 있는 돈이다. 하지만 괜찮은 그것도 아주 괜찮은 직장상사는 돈으로 구하기 어렵다. 연봉을 2억 원을 주든 3억 원을 주든 그 근무 환경이 예전에 내가 있던 팀과 별 차이 없다면 거긴 내게 지옥이나 마찬가지다.

“그럼요. 다 이사님 덕분이죠. 암요.”

“뭐야. 갑자기 그렇게 인정해버리면 재미없잖아. 그런데 그 헤드헌터가 보여준 조건은 어땠어? 연봉이 좀 많이 준다고 그래?”

아닌척하고 있지만, 헤드헌터를 만났다는 게 은근히 신경 쓰이긴 했나 보다.

“그럼요. 최소 지금 연봉 두 배. 거기에 스톡옵션은 기본. 직급도 이사.”

“뭐? 이사? 와. 다른 건 몰라도 내가 이사직을 줄 수는 없는데. 나도 이제 겨우 이사인데 마 팀장을 이사로 올려줄 수는 없잖아.”

“그럼 연봉이랑 스톡옵션은 맞춰주실 수 있고요?”

“연봉은 못 올려줘도 법인카드 한도는 올려줄게. 마음껏 써. 그리고 스톡옵션은···. 동지마트 주식 샀을 거 아니야? 그거면 충분히 재미 봤을 거 같은데. 앞으로도 계속 오를 거니까 계속 가지고 있으면 대박일걸. 합병에 성공하면 최소 10배 이상 오른다. 어때? 나 괜찮은 직장상사지 않아? 하하하.”

뻔뻔한 사람 같으니. 이게 고현호 이사의 매력이긴 하다.

“헐···. 뭐 그렇다고 치죠.”

“그런데 동지 푸드쿡 매장은 언제 오픈할 거야? 마 팀장이 하겠다면 언제든 할 수 있게 도와줄 수 있는데 말이야.”

“그게···.”

“왜? 별로 안 내켜?”

“아니요. 아니죠. 포항이 대도시라고는 할 수 없어도 푸드쿡 매장 하나 독점으로 운영할 수 있으면 정말 좋은 조건이죠. 땅 짚고 헤엄치기나 마찬가지라고나 할까.”

“그런데 뭐가 문제야?”

“아버지께서 아직 회사에 다니셔서 말입니다. 정년 퇴임이 내년입니다.”

“그럼 어머님은? 매니저 두고 관리만 하면 되는 일인데 어머님께서 하셔도 될 텐데.”

“그게요. 큼···.”

“왜? 어디 아프신 거야?”

“음···. 좀 비슷하다고 할 수 있죠. 조리가 필요하시거든요.”

“뭐? 그런 걸 왜 이야기 안 해? 요양이 필요하면 서울로 모셔와. 내가 우리나라 최고 의사를 붙여 드릴 테니까. 나 재벌 2세거든. 그런 쪽으로 인맥이 좀 된다고.”

말하기 민망해서 주저하고 있는데 고현호 이사는 진심으로 걱정이 되는지 당장에라도 서울에 있는 병원에 전화를 걸 기세였다. 호들갑스러운 모습이긴 해도 뭔가 좀 짠했다. 그리고 고맙기도 했다. 내가 이래서 고현호 이사를 떠날 수가 없는 거다.

“아니요. 괜찮습니다. 사실은···. 흐흠···.”

“사실은 뭐? 갑자기 왜 그래?”

“그게요. 웃으시면 안 됩니다! 사실 몇 달 전에 출산을 하셨습니다.”

“뭐? 추울산? 누가? 마 팀장 숨겨둔 애가 있었어? 그래서 어머님이 몰래 아기를 키우는 거야? 제수씨 모르게?”

이게 무슨 큰일 날 소리를.

“이사님! 누구 혼사길 막히게 할 일 있습니까? 그게 아니라 제 친모께서 직접 아이를 낳으셨다는 이야기입니다. 얼마 전에 제 동생이. 그러니까 둘째 동생이 세상에 빛을 봤습니다. 크흠···”

정확히 두 달 전 모두의 걱정을 한몸에 받고 계셨던 어머니가 다행히도 건강한 아기를 낳으셨다. 그것도 4.5kg에 달하는 엄청난 우량아를.

그토록 딸을 원하셨지만 다행히도 아들이었다. 솔직히 조카인 마수리야 제수씨를 닮아서 귀엽지만 아버지와 어머니 유전자로는 예쁜 딸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냥 초음파 검사에서 성별을 알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딸일 거라 확신하며 여자아이용 용품들만 사는 바람에 서른 살 어린 불쌍한 내 동생은 블링블링 핑크빛 옷을 입고 부모님의 보살핌을 받고 있는 중이다.

이름은 수자 돌림으로 마강수라고 지었다.

“에? 그··· 그거 지금 나 웃으라고 하는 말 아니지?”

“제가 왜 그런 걸로 농담을 하겠습니까? 남사스럽게 시리.”

“풉! 푸···.”

“어어. 이사님! 웃으면 안 된다고 했을 텐데요.”

“크크크. 미안. 아···. 진짜 안 웃으려고 했는데 이게 안 웃을 수가 없네. 크크크. 그래서 지금 어머님은 산후조리 중이신 거야?”

“산후조리는 끝났는데 나이가 있으셔서 조심하는 중입니다.”

“그럼 아버님께서 정년퇴임 하시기 전까지는 운영하기 힘들겠네? 좀 아까운데. 요즘 우리 동지마트 덕분에 푸드쿡도 상종가잖아. 지금 같을 때 오픈하면 자리잡기 정말 좋을 텐데.”

“그럴까요?”

내년에나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말을 들으니 귀가 솔깃해진다.

“그럼. 당연하지. 내년이 되면 시장 상황이 어떻게 될지도 모르잖아. 그리고 지방은 서울과 달라서 비슷한 성격의 다른 레스토랑이 생기기 전에 선점하는 게 유리하다고 마케팅팀에서 그러던데.”

“아···. 그렇네요. 지방은 서울보다 보수적이라 서울에서 성공한 아이템이 내려온다고 해도 무조건 대박을 터트리는 건 아니거든요. 특히 식당은 더더욱 그렇죠.”

“그래. 그래서 아쉽다는 거야.”

“그럼 할게요.”

“어떻게? 아버님은 회사 다니시고 어머님은 동생 돌봐야 한다면서.”

“어머니 명의로 가게를 오픈하고 믿을만한 매니저를 붙이면 되지 않을까요? 그리고 어머니는 마지막에 결산만 하는 걸로. 아니면 보모 한 명 구하면 되겠죠. 어머니께서 워낙 활동적이시라 안 그래도 요즘 좀 근질근질하다고 하셨거든요.”

“그럼 그렇게 해. 내가 푸드쿡에 연락해 둘 테니까.”

“넵! 감사합니다. 이사님.”

“감사는 무슨. 우리 사이에. 그럼 마 팀장, 다른 회사로 옮기는 거 아니지?”

“네?”

“하하하. 농담이야. 사실 처음에 마 팀장이 헤드헌터를 만났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땐 가슴이 철렁했다니까. 내가 요즘 마 팀장을 많이 의지하잖아.”

“확실한 건 동지마트가 성공하든 실패하든 이번 일이 마무리할 때까지는 붙어 있을 거라는 이야기입니다.”

“성공하면 떠나고 싶어도 억울해서 못 떠날걸? 곧바로 월드 베리어스 클럽(World Various Club)과 합작해서 중국에 진출할 거고. 그 프로젝트만 성공하면 아마 마 팀장은 최연소 중역이 될 수도 있어. 그 기회를 차버릴 수는 없잖아.”

“그건 그렇네요. 그런데 제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이사님이 포에버마트를 인수하지 못하면 말짱 도루묵인 거 아시죠?”

“이번엔 확실하게 준비하고 있어. 지난번 같은 실수는 없을 거야. 나도 두 번 망신당하긴 싫어서 내가 아는 모든 라인을 풀 가동 중이야. 그러니 걱정하지 마. 포에버마트를 흔들기만 성공한다면 꼭 우리가 인수할 수 있도록 만들 테니까.”

============================ 작품 후기 ============================

제가 잠시 주인공 어머니가 임신한 걸 잊고 있었더군요.

이건 확실하게 짚고 넘어거야 할 것 같아 이런 식으로 언급하게 되었습니다. 다음 스토리 진행을 기대하셔던 분들에게는 정말 죄송합니다. ㅠㅜ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