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78 소제목 추후 결정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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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에버마트 분당점은 분당구 서현동 서당 사거리에 자리잡고 있다. 이곳 뒤편 작은 산이 있는데 원래는 그린벨트 지역이었다. 그러나 와룡그룹이 줄기차게 그린벨트 해제를 요청한 덕분에 일부 지역을 상업지구로 개발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곳이 포에버 명품 아웃렛이었다.
대형 할인 마트와 함께 운영하는 아웃렛 매장이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의문의 시선이 많았다. 그러나 박연하 전무의 집요하리만치 끔찍한 노력(?) 덕분에 아웃렛 매장은 기대 이상으로 빠른 속도로 고객들의 호응을 얻을 수 있었다.
아직은 완전히 안정화 단계에 접어든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박연하 전무는 포에버마트 본사 다음으로 포에버마트 분당점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천성기와 여순희는 그녀의 그런 동선을 파악하고 행동 개시 장소를 포에버마트 분당점으로 정했다.
오전 11시.
박연하 전무가 본점에서 아침 업무를 마치고 포에버마트 분당점에 도착하는 시간이다. 두 사람은 포에버마트가 있는 곳에서 1km 정도 거리에 떨어진 곳에 자동차를 주차하고, 시간 차를 두고 매장에 들어섰다. 혹시라도 모를 의심을 최소화하기 위해서였다.
오전 11시 20분
천성기는 빵빠X 아이스크림을 사서 뚜껑을 열고 혀를 살짝살짝 돌리며 맛을 보기 시작했다. 하얀 블라우스에 확실한 자국을 만들기 위해 일부러 초코맛을 골랐다.
이제 곧 지하의 사무실에서 간단한 용무를 본 박연하 전무가 매장 점검을 위해 올라올 시간이 되었다. 이날을 위해 몇 번이나 시뮬레이션을 돌릴 만큼 정성을 들였다.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며 지하에서 올라오는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B2층, B1층, 1층.
노란불이 깜빡이며 엘리베이터가 도착했음을 알렸다.
천성기는 아이스크림을 향해 고개를 숙이며 시선은 정면으로 향했다. 목표물을 잘못 조준하면 낭패다. 박연하 전무는 다행히 수행원을 앞이 아니라 뒤에 달고 다녀 아이스크림을 묻히는 일 자체는 그렇게 어렵지 않을 거라 예상했다.
11시 22분
문이 열렸다.
예상처럼 문 맨 앞에서는 박연하 전무가 거만한 얼굴로 서 있었다. 이제 저 재수 없는 낯짝에 아이스크림만 묻히면 된다.
앞에 있는 사람을 못 본 것처럼 고개를 숙이고 한 걸음 나아갔다. 이제 정말 팔만 뻗으면 된다.
‘침착하자. 천성기.’
그는 그렇게 주문을 외우며 팔을 들었다.
그런데···.
옆에 서 있던 거대한 체구의 아줌마가 아이스크림을 들고 있는 그의 오른손을 툭 치며 엘리베이터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 충격에 콘 아이스크림은 과자 부분만 남긴 채 바닥으로 떨어졌다.
‘빌어먹을 돼지 아줌마!’
속으로 욕을 해봐야 이미 늦었다. 아이스크림은 이미 바닥에 떨어졌고, 인제 와서 과자만 남은 부분을 앞으로 내밀어 봐야 이상한 취급만 당하게 생겼다.
아이스크림 묻히기 계획은 실패다. 하지만 여기서 물러설 순 없었다. 천성기는 순간 기지를 발휘해 왼발을 들어 아이스크림을 밟았다.
“어이쿠!”
그는 짧은 비명을 외치며 앞으로 허우적거렸다. 그러고 넘어지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면서 점점 더 박연하 전무에게 다가갔다. 너무나도 자연스러워 보여 누구도 그가 일부러 그런 행동을 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수행원이 놀란 눈을 하며 그를 제지하려고 했지만, 뒤에서 나서기에는 너무 늦었다.
부지직!! 투드득!!
천성기는 넘어지면서 손을 뻗어 박연하 이사의 블라우스를 잡아챘다. 그의 우악스러운 손에 의해 블라우스가 찢어지면서 목 위까지 단단하게 잠갔던 단추들마저 뜯어져 바닥에 떨어지고 말았다. 그녀의 하얀 속살이 속옷과 함께 그대로 드러났고 깜짝 놀란 박연하 이사는 황급히 두 손으로 가슴을 가리며 그 자리에 주저앉아버렸다.
“이··· 이게 대체 무슨 짓입니까?”
“아이쿠. 죄송합니다.”
여자 수행원이 재빨리 자신의 재킷을 벗어 박연하 전무에게 건네는 사이 남자 수행원이 인상을 쓰며 천성기에게 따졌지만, 그는 별일 아닌 듯 태연한 표정을 지으며 얄밉게 사과했다.
“뭐라고? 공손하게 사과해도 부족할 판에 아이쿠 죄송합니다? 뭐 이딴 자식이 다 있어!”
“뭐? 이딴 자식? 사과했으면 됐지 그럼 어떻게 할까? 응?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 내가 죽을죄라도 졌어? 여기서 무릎 꿇고 사죄라도 할까?”
“나원···. 네··· 네가 무슨 짓을 했는데 이렇게 뻔뻔하게 나오는 거야! 이게 얼마짜리 옷인 줄이나 알아? 네 주제에 살 수나 있을 것 같아!”
수행원이 건네준 재킷으로 가슴을 가리고 여유를 찾은 박연하 전무는 천성기의 뻔뻔한 행태에 화가 나서 언성을 높이며 그에게 따졌다. 그러나 천성기는 여전히 안하무인처럼 행동했다.
그 모습에 더욱 화가 난 그녀가 트레이닝복 차림의 천성기를 무시하는 발언을 했고, 천성기는 옳다구나 하는 표정으로 눈을 반짝였다.
“뭐? 얼마짜리 옷? 블라우스가 블라우스지 그게 얼마나 한다고 사람을 우습게 봐. 그러는 넌, 지금 내가 입고 있는 이 트레이닝복이 어떤 건지 알고나 하는 소리야? 프랑스 장인이 한 올 한 올 정성을 다해 지은 명품이라고!”
“명품 같은 소리 하고 앉아있네. 어디서 거지 같은 옷을 입고 와서는···.”
“대체 그 블라우스가 얼만데? 얼만데 그렇게 난리야. 내가 물어줄게. 물어주면 될 거 아니야. 그리고 내가 일부러 그랬어? 응? 저기 아줌마가 사람 팔을 치는 바람에 아이스크림이 바닥에 떨어졌고, 난 거기에 미끄러진 피해자일 뿐이라고. 그러니 사과는 내가 아니라 저 아줌마에게 받아야 하는 것 아니야? CCTV로 확인해봐! CCTV로 확인하고 잘잘못을 가리자고.”
“이것들이 정말 뭐하자는 거야. 이거 설마 저 뚱땡이랑 너랑 짜고 일부러 이러는 거 아니야?”
“뭐래? 이 여자가 정말 사람을 어떻게 보고. 고작 옷 하나 찢어졌다고 사람을 이렇게 무시해도 되는 거야.”
“내가 고작 옷 하나 찢어졌다고 이러는 것 같아?”
“아니면 뭔데? 속살이 좀 드러났다고 이 난리인 거야? 별로 볼 것도 없더만···.”
“무··· 뭐? 너··· 너 지금 무··· 뭐라고 그랬어? 보··· 볼 게 없어? 네가 뭘 봤는데? 뭘 봤다고 그딴 소리야!”
“풉! 너도 발끈하는 걸 보니 알긴 아는구나. 별로 볼 게 없다는 걸. 솔직히 치마를 입어야 여자냐. 최소한 등과 가슴은 구분이 되어야 여자지.”
“이··· 이···. 이··· 이 자식이 정말.”
“전무님. 보는 사람이 많습니다. 여기서 이러시면 부회장님께서 불편해하실지도 모릅니다.”
제대로 콤플렉스를 건드리는 바람에 박연하 전무는 이성을 잃을 정도로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변했고, 그 모습에 한 발짝 뒤로 물러나 있던 남자 수행원이 황급히 다가와 귓속말을 했다.
그의 말에 폭발할 것 같았던 그녀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엘리베이터 옆 비상구를 이용해 자리를 떠났다.
‘아! 여기서 끝나면 안 되는데.’
“어이! 이봐! 말하다 말고 대체 어딜 가! 말하던 건 계속 해야지.”
“그만하시죠. 돌발적인 사고로 일어난 일이라 더 이상은 문제 삼지 않겠습니다. 그러니 여기까지만 하세요. 당신 같은 사람이 함부로 대할 분이 아닙니다.”
박연하 전무가 이상을 차리고 자리를 떠나자 천성기는 아쉬운 마음에 그녀의 등을 향해 이죽거렸다. 그러자 그에게 남자 수행원이 다가와 차분한 목소리로 위협 아닌 위협을 했다.
술에 취해있었다고 해도 다섯 명이 넘는 선배 형사들을 박살 낸 사람이 천성기다. 그런 그가 남자 수행원의 위협에 주눅이 들 리가 없다. 그러나 여기서 더 진상을 부린다고 이미 사라진 박연하 전무가 다시 돌아올 것도 아니었다.
물러나야 할 때는 물러날 줄 알아야 하는 법.
천성기는 아쉬운 마음을 감추고 조용히 돌아섰다.
띠링!
- 오빠! 다른 여자 속살 봐서 좋아?
매장을 나서자 여순희에게 문자가 왔다. 뭔가 질투가 담긴 내용에 천성기는 당황해서 황급히 답문을 보냈다.
- 속살을 보긴 누가 봐. 안 봤어!
- 흥. 볼 것도 없었다며.
- 헉! 진짜 볼 것도 없어서 그런 거지. 볼 게 없어서 못 봤어.
- 오빠 취향이 풍만한 여자였다니. 난 여태 그걸 몰랐네. 어쩌지 나도 가슴은 작은데. ㅠㅜ
- 무슨 소리야. 나 풍만한 여자 안 좋아해. 왠지 머리 나빠 보여서 싫어. 난 순희 네 가슴이 아담해서 제일 좋아.
- 변태!
- 뭐가 변태야. 내가 내 여자 가슴을 좋아하는 건데.
- 흥! 내 가슴이 왜 오빠 거야?
- 당연히 내 거지. 그걸 여태 몰랐어?
- 호호호. 그런가? 난 왜 그걸 여태 몰랐지. 그런데 오빠. 오늘 수고했어요. 문밖으로 나가는 오빠 어깨가 처진 것 같아서 장난친 거야. 또 기회가 있을 거야. 힘내~ 사랑해~ ♡
- 나도 ~ ♡
정말 삐쳤을까 봐 깜짝 놀랐던 천성기는 마지막 문자를 보며 그제야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축 처졌던 어깨는 금세 펴졌고, 자동차로 향하던 그의 걸음걸이는 탭댄스를 추듯 흥겹게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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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끝나지 않습니다. 다음 편을 기대해주세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