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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가 전부는 아니야-280화 (280/424)

00280  소제목 추후 결정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

박연하 전무를 도발하고 그에 화가 난 그녀가 천성기에게 막말을 퍼붓도록 유도한다. 그리고 그 모습을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던 여순희가 촬영한다.

이게 원래 두 사람의 계획이었다. 하지만 남자 수행원의 개입으로 그 계획은 실패하고 말았다.

여순희는 낙담하는 천성기를 위로해줬지만, 그녀 또한 이번 일이 많이 아쉬웠다. 며칠을 고민하며 시뮬레이션까지 해가며 세웠던 계획이라 더더욱 그랬다. 아쉬움 때문인지 머리가 지끈거렸다.

커피라도 한잔 하면 괜찮을까 싶어 근처에 있는 포에버키친으로 향했다. 포에버키친은 페밀리 레스토랑이기도 하지만 카페도 겸하고 있었다.

“아메리카노 한 잔 주세요.”

“네. 고객님. 사이즈는 뭐로 드릴까요?”

“레귤러로 주세요.”

“주문 확인하겠습니다. 따뜻한 아메리카노 레귤러 사이즈 맞으시죠?”

“네.”

“감사합니다. 계산 도와드리겠습니다. 가격은 3,000원입니다. 주문하신 아메리카노는 잠시 후 옆에서 나오니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주문이 끝나고 카페 직원이 익숙한 손놀림으로 아메리카노를 만들어 건네자 여순희는 커피잔을 들고 포에버키친 입구에 마련해둔 카페 이용고객 전용 테이블에 자리 잡았다.

“휴···. 이제야 좀 살 것 같네. 그런데 이젠 어쩌지. 그냥 모든 걸 운에 맡기고 예전처럼 계속 쫓아다녀야 하나. 마동수 팀장님에게는 잘할 수 있다고 했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네. 우리를 소개해준 윤권 오빠를 생각해서라도 꼭 성공해야 하는데···. 응? 갑자기 뭐지?”

여순희가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앞으로의 일을 걱정하고 있는데, 포에버키친 주변이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 의아한 생각에 시끄러운 곳으로 고개를 돌리자 두 명의 수행원과 함께 이곳을 향해 다가오는 박연하 전무를 발견할 수 있었다.

멀리서부터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으며 등장하는 그녀는 ‘나 지금 상당히 기분 안 좋다.’라고 몸으로 표현하는 듯 살벌한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누가 톡 건드리기만 해도 터질 것 같은 위태로운 모습에 여순희는 본능적으로 카메라의 녹화 버튼을 눌렀다.

핸드백 안에 몰래 감춰둔 카메라기 때문에 절대 들킬 위험은 없었다.

“어서 오십시오. 전무님.”

박연하 전무가 다가오자 포에버키친을 책임지고 있는 매니저가 황급히 다가가 인사를 했다.

“누구?”

“아! 저는 이곳 포에버마트 분당점 포에버키친을 책임지고 있는 매니저 이문수입니다.”

“아···. 매.니.저. 요즘 포에버키친 음식 맛이 변했다고 항의가 많이 들어오고 있는데 매니저는 알고 있었나요?”

“네? 네···. 알고 있었습니다.”

“알고 있었다? 그런데 왜 매니저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는 건가요?”

“그게 그러니까···. 사실 이곳 매니저 역할이라는 게 음식 맛 관리보다는 시설관리를 하는 쪽에 가깝습니다. 음식은 주방장의 고유권한이라고 할 수 있거든요.”

‘제기랄. 내가 분명히 주방장 교체를 하면 안 된다고 이야기를 했건만 자기 마음대로 바꿔놓고 인제 와서 왜 나보고 지랄이야!’

매니저는 속으로 이렇게 외쳤지만, 그 말을 입 밖으로 내뱉을 수는 없었다. 박연하 전무에게 항의했다가 불이익을 받은 직원들에 대한 소문은 그 역시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런 그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책임회피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매니저는 아무런 책임이 없다?”

“그런 뜻이 아니라 매니저 입장에서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음식에 신경을 써달라는 건의밖에 없습니다. 고객들로부터 평이 안 좋다고 주방장에게 몇 번이나 시정을 요구하긴 했는데 주방장이 이런 싸구려 재료로 이 정도 요리를 만드는 것도 기적이라며 오히려 역정을 냈습니다. 예전 주방장은 안 그랬는데 말입니다.”

“어머! 그러니까 음식이 맛없는 건 전부 주방장 잘못이라는 거네요. 죄송해요. 실력 좋은 주방장을 자르고 새로운 주방장을 데려온 사람이 저거든요.”

“네? 아니 제 말은 주방장 실력이 부족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좀 더 대중적인 요리를 만들면 좋겠다 싶어서 드린 말씀입니다.”

“됐습니다.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도 아니고 고급스러운 요리를 내놓아도 소비자가 모르는 데 주방장이 노력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매니저가 황급히 변명하려고 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그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상황이 안 좋았다. 천성기의 도발과 남자 수행원의 퉁명한 행동에 기분이 상한 박연하 전무는, 그가 아닌 누구라도 화풀이할 대상이 필요했다. 하필이면 그녀의 눈에 띈 게 그의 불운이었다.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매니저가 소비자 입맛을 어쩔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난 일단 맛을 보고 싶은데 준비해줄 수 있겠죠?”

아니라고 말하는 박연하 전무의 얼굴은 차가운 겨울바람처럼 냉랭하게 변해있었다.

“물론입니다. 어떤 음식을 준비해드릴까요?”

“가장 잘 팔리는 요리로 다섯 가지만 준비해보세요. 우선 먹고 이야기하죠.”

“알겠습니다. 그럼 전무님께서 식사할 수 있도록 셋팅 준비를 하겠습니다.”

매니저가 눈짓하자 옆에서 대기하고 있던 서빙을 담당하는 여직원이 스푼과 나이프 등 식사에 필요한 집기를 들고 다가왔다. 그리고 두 사람은 눈에 쌍심지를 키고 지켜보는 박연하 전무 앞에서 최대한 조심스럽게 테이블 셋팅을 시작했다.

무사히 모든 준비를 마치고 식전에 먹을 수 있도록 마카다미아를 박연하 전무 앞에 내놓는 순간 그녀의 미간이 보기 싫을 만큼 흉하게 찌푸려졌다.

“이게 뭐죠?”

“네? 아···. 마카다미아를 말씀하시는 거세요? 다른 레스토랑의 경우 식전에 빵을 제공하는 경우가 많은데 빵의 경우 지나친 포만감을 준다는 문제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포에버키친의 경우는 이렇게 고객의 건강까지 생각해서 마카다미아 같은 견과류를 제공합니다.”

“그걸 몰라서 말하는 게 아니잖아요. 왜 이걸 접시에 담지 않고 이렇게 봉지째로 제게 주느냐고요.”

매니저가 꾸중 당하는 모습을 본 여직원이 박연하 전무에게 조금이라도 잘 보이려는 의도로 마카다미아를 봉지째로 건넸다. 평범한 고객이었다면 그런 여직원의 배려에 고마움을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뭔가 꼬투리를 잡으려고 도끼 눈을 하고 바라보던 그녀에게는 좋은 시빗거리였을 뿐이었다.

“네? 그냥 서비스 차원에서···.”

‘전무님에게 잘 보이려고요.’라고 말할 순 없었던 여직원은 당황스러운 마음에 제대로 대답을 하지 못하고 대충 얼버무렸다.

“원래 마카다미아 제공 원칙이 봉지를 개봉해서 접시에 담아 제공하는 거 아닌가요?”

“꼭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아까도 말씀드린 것처럼 어디까지나 서비스차원에서 제공하는 것이기 때문에 굳이 접시에 따로 담아 제공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그게 매뉴얼에도 그렇게 나와 있나요?”

“네? 아··· 아마도 그럴 겁니다.”

“아마도 그럴 거다? 이봐요. 매니저.”

“네. 전무님.”

“우리 포에버키친 서빙 매뉴얼에 마카다미아를 봉지째로 제공해도 괜찮다고 나와 있습니까? 있으면 가져와 보세요.”

“그··· 그게 전무님. 마카다미아를 제공하는 것까지 매뉴얼에 나와있는지는 저도 잘···.”

“그러니까 매니저도 잘 모른다? 그러니 서빙하는 직원도 저따위지. 허접하기 짝이 없어. 서빙의 기본이 안 되어 있잖아. 기본이. 분위기가 이따위니 고객들이 음식 맛을 제대로 느낄 수나 있겠어요. 불편한 곳에서는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맛없게 느껴지는 거라고요. 인제 보니 여기 문제는 요리보다는 매니저와 직원들 문제였어요.”

“아닙니다. 전무님. 우리 직원들은 항상 최선을 다하는 모습으로 손님들을 모시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손님들이 이곳 요리가 맛없다고 불평하는 걸까요?”

“그건···.”

박연하 전무의 질문에 매니저는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솔직히 요리가 맛없는 탓을 왜 자신에게 하는지 억울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여기서 주방장 탓을 할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직원들 서빙 때문이라고 인정하기는 자존심이 상했다.

“됐습니다. 나도 무조건 내 생각을 고집할 생각은 없어요. 일단 음식이 나오면 그걸 맛보고 그때 다시 이야기하죠. 물론 요리 맛을 보나 마나 뻔하겠지만 말이죠.”

“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매니저. 이게 알겠다고 하면 끝날 일인가요? 잘못을 했으면 벌을 받아야죠.”

“그게 무슨···.”

“초등학교 안 나왔어요? 초등학교 선생님이 그러잖아요. 아이들이 잘못하면 무릎 꿇고 손들고 있으라고. 그래도 성인인데 손까지 드는 건 너무하죠? 요리 나올 동안 무릎만 꿇고 있는 걸로 하죠. 두 사람 모두요.”

매니저와 여직원은 생글생글 웃으며 황당한 이야기를 하는 박연하 전무 말이 진담인지 농담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설마 진담일까 싶었지만, 농담이라고 해도 너무 기분 나쁜 농담이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농담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게 문제였다.

“아니 전무님. 지금 무··· 무슨 농담을 그렇게 하십니까?”

“뭐라고요? 누가 지금 농담이라고 했습니까?”

“네?”

“내가 지금 당신들하고 농담 따먹기 할 만큼 한가해 보이나요? 어서 꿇으세요.”

“저··· 전무님!”

생글생글 웃던 박현아 전무의 얼굴은 금세 차갑게 굳어졌다. 황당한 마음에 매니저가 소리쳤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지시를 취소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전무님. 지금 보는 눈이 너무 많습니다. 고정하시죠.”

그 모습을 보다 못한 남자 수행원이 다시금 그녀 앞에 나섰다.

지금 여기는 손님들까지 있는 오픈된 공간이었다. 상황이 너무 안 좋았다. 하지만 그는 박현아 전무의 성격을 제대로 모르고 있었다. 속된 말로 그녀는 지금 머리꼭지가 돌아버린 상황이었다.

할아버지나 아버지가 말리러 오지 않는 이상 아무도 그녀를 막을 수 없었다. 그런 모습을 곁에서 몇 번이나 봐왔던 여자 수행원은 감히 말릴 생각은 하지도 못한 채 두 눈을 질끈 감고 지금 이 상황을 외면해 버렸다.

“넌 빠져.”

“전무님!”

“지금 이 자식이 감히 누굴 보고 명령질이야. 아버지가 보낸 사람이라고 내가 우습게 보이나 본데 넌 장기판에서 아무렇게나 버려지는 졸일 뿐이야. 그냥 소모품이라고 소모품! 내가 마음만 먹으면 너 하나쯤은 쥐도 새도 모르게 날려버릴 수 있어. 알아들어? 그러니 나설 때 안 나설 때 상황을 좀 파악하고 까불라고.”

“전무님!”

“이 자식이 정말. 어이!”

“네. 전무님.”

화가 난 박연하 전무가 고갯짓을 하자 옆에 있던 여자 수행원이 재빨리 대답하며 다가갔다. 지금 여기서 꾸물대다간 무슨 날벼락이 떨어 질도 모를 일이다.

“지금 여기 포에버마트 분당점에 근무하고 있는 경비요원 5명만 불러.”

“알겠습니다. 전무님.”

박연하 전무의 지시에 여자 수행원은 경비팀에 연락해 직원 5명을 호출했다. 잠시 후 5명의 건장한 요원들이 숨을 헐떡이며 긴장된 눈빛으로 포에버키친에 나타났다.

“부르셨습니까. 전무님.”

“그래. 세 사람은 저기 저 새끼 매장 밖으로 쫓아내고 두 사람은 여기 멍청하게 서 있는 두 연놈 바닥에 무릎 꿇혀.”

“네. 전무님.”

그녀의 지시가 의아할 만도 한데, 호출된 다섯 사람은 이런 일이 익숙한지 어떤 질문도 없이 곧장 지시에 따랐다.

“됐습니다. 저는 그냥 혼자 나가겠습니다.”

자신을 내쫓으라고 지시하는 박연하 전무의 말에 남자 수행원도 적잖이 당황했다. 마음만 먹으면 실력도 없이 덩치만 키운 경비 요원 몇 명쯤은 충분히 제압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랬다가는 상황을 더 악화시킬 것 같아 마지막 자존심은 지키며 조용히 매장을 떠났다.

이제 아무도 그녀를 막을 사람은 없었다. 이곳에 방문한 얼마 없는 손님들마저도 분위기에 주눅이 들어 눈치를 보며 조용히 식사에만 집중했다.

덩치 큰 경비요원들의 기세에 겁에 질린 여직원은 눈물을 글썽이며 무릎을 꿇었고, 끝까지 무릎을 꿇지 않으려고 하던 매니저도 그들의 강압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은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강제로 무릎을 꿇은 그는 자존심이 상한 듯 살벌한 눈으로 박연하 전무를 바라봤지만, 그녀는 피식거리는 실소를 보내며 마치 놀러라도 온 것처럼 여유 있는 모습으로 앞에 놓인 마카다미아를 집어 천천히 씹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여순희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황당한 상황에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한편으로는 천성기와 자신이 오늘 일의 발단이 된 것 같아 죄책감마저 들었다. 그래서 더더욱 동영상을 포기할 수 없었다. 어떻게든 오늘 일에 대해 반드시 박연하 전무가 책임지도록 해야겠다는 오기마저 생겼다.

***

‘넌 장기판에서 아무렇게나 버려지는 졸일 뿐이야. 그냥 소모품이라고 소모품! 내가 마음만 먹으면 너 하나쯤은 쥐도 새도 모르게 날려버릴 수 있어. 알아들어?’

박연하 전무의 남자 수행원이었던 진영목은 허탈한 얼굴로 포에버마트 분당점을 빠져나왔다. 표독스러운 얼굴로 차갑게 외치던 그녀의 말이 아직도 그의 귓가에 울리는 것 같았다.

성격에 상당히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는 몇 번이나 들었기 때문에 충분히 각오하고 있었다. 이곳에 오기 전에 수행원으로 지냈던 박호일 와룡그룹 부회장이 힘을 실어준 것도 큰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박연하 전무의 성격은 그가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개차반이었다. 아무리 막간다고 해도 손님들까지 있는 레스토랑에서 그런 미친 짓을 벌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더군다나 경비요원까지 불러서 그녀의 아버지가 보낸 자신을 쫓아내 버리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 한마디로 막가자는 거였다.

아무런 조치도 없이 그냥 나온 건 사람들 보는 눈이 많은 레스토랑에서 경비요원들과 푸닥거리(?)를 해봐야 좋을 게 없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제대로 ‘엿되어’ 보라는 반발심도 분명히 있었다.

솔직히 자신이 할 일은 다 했다. 경비요원까지 동원해서 쫓아내려는 상황에서 더 는 다른 선택을 하기도 어려웠다. 한때 자신이 모셨던 박호일 부회장을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이 들기는 했다. 그러나 그런 미안한 마음보다는 박연하 전무가 괘씸하다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들었다.

포에버마트 분당점 근처에 있는 정자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3호선을 갈아탔을 때만 해도 그런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덜컹거리는 지하철이 압구정역을 지나 한강을 건너고 옥수역 즈음에 도착하자 불같이 치솟았던 마음이 어느 정도 진정이 되었다.

마음이 가라앉자 아무래도 이번 사태가 조용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불안한 예감이 들기 시작했다. 박연하 전무가 낭패를 당하는 거야 그가 알 바가 아니다. 그러나 그를 믿고 이번 일을 맡긴 박호일 부회장까지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사실에 생각이 미치자 그냥 방관하고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Rrrr

그는 곧장 옥수역에서 내려 조용한 곳으로 자리를 이동한 뒤 부회장 비서실에 전화를 걸었다.

“네. 여보세요.”

“팀장님. 저 영목입니다.”

“그래. 영목아. 이 시간에 갑자기 웬 전화를···. 설마 아가씨께서 사고라도 치신 건가?”

“네. 죄송합니다. 제가 상황을 막아보려고 했지만, 경비요원까지 동원해서 저를 쫓아내는 바람에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네가 고작 마트에서 일하는 경비요원을 상대하지 못해서 쫓겨났다고?”

팀장의 말처럼 그룹 로열패밀리를 수행하는 보디가드들은 일반적인 경비요원하고는 차원이 다른 실력을 지니고 있다. 전문적으로 격투기 관련 운동을 했거나 특수부대 출신 인재들 중에서도 고르고 고른 정예요원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게 보는 눈이 많은 레스토랑에서 벌어진 일이라 저도 어떻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거기서 싸움을 하면 더 큰 소동이 벌어질 것 같았습니다.”

“이런! 그럼 지금 거긴 아가씨를 통제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거야?”

“네. 면목없습니다. 제가 판단할 때 지금 상태의 전무님을 통제하려면 최소한 부회장님이 나서셔야 할 것 같습니다.”

“젠장! 넌 이 자식아! 부회장님이 너를 믿고 일을 맡겼으면 제대로···. 아니다. 지금 와서 너를 원망하면 뭐하겠냐. 이런 일을 대비해서 두 번째 대책도 마련해뒀어야 했는데 너무 안일하게 생각한 내 잘못이지. 너 지금 어디야?”

“지하철역입니다.”

옥수역까지 올 동안 보고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려 ‘지하철역’이라는 말만 했다.

“부회장님 지금 회의 중이라서 시간을 못 내셔. 지금 당장 리스크 전담팀을 동원해서 그쪽으로 달려갈 테니 일단 매장 입구에서 대기해.”

“어쩌시려고요?”

“어쩔 수 있나. 안 되면 힘으로라도 제압해야지. 그리고 무리가 따르더라도 거기 있는 손님들도 통제해야 해. 대체 무슨 일인지는 도착해봐야 알겠지만 네가 쫓겨날 정도면 보통 일은 아니라는 거잖아. 이 사실이 언론에 퍼지면 정말 끝장이란 말이야. 무슨 말인지 알아!”

“네. 전무님뿐만 아니라 부회장님까지 곤란하실 수 있다는 말씀이죠.”

그냥 집으로 향하려고 했던 진영목이 옥수역에서 내려 부회장 비서실로 전화한 것도 바로 그 이유에서였다. 박호일 부회장이 지금의 후계자 경쟁에서 상당히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는 건 맞지만, 100% 확정된 건 아니다. 만약에라도 예기치 못한 대형 스캔들이 터진다면 언제든지 낙마할 수 있는 게 그룹 부회장 자리다.

“그래. 내가 전화를 해둘 테니 남은 경비요원을 동원해서 통제부터 하고 있어.”

“설마 제압을 하라는 말씀입니까?”

“아니. 그건 아니지. 지금 상황에서 싸움이 일어나면 정말 곤란해. 일단 빠져나가는 손님이 있는지 그것만 확인해. 그리고 무슨 핑계를 대든 붙잡고 있어. 다른 건 내가 도착한 다음 판단할 테니까.”

“알겠습니다. 팀장님.”

“제길! 제발 우리가 도착할 동안 큰 일이 벌어지지는 않아야 할 텐데.”

***

============================ 작품 후기 ============================

할머님이 돌아가셔서 며칠 연재 쉬겠습니다.

4 ~ 5일 정도는 연재가 힘들 것 같습니다.

억지로 한편 써서 예약해두고 갑니다.

4월에 뵙겠습니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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