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81 소제목 추후 결정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포에버키친 분당점.
콰직! 뽀드득!! 콰지직! 뽀드드득!
이곳의 적막을 깨며 요란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박연하 전무가 마카다미아를 씹는 소리였다. 귀에 거슬리는 마찰음이었지만 이곳을 찾은 손님들조차 그녀에게 뭐라고 항의를 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저···. 전무님. 요리가 모두 준비되었습니다.”
지금 레스토랑 안은 공포 분위기가 연상될 만큼 차갑게 얼어붙었다.
누구 하나 다가가서 박연하 전무에게 말을 걸 생각을 하지 못하자 수석 주방장의 지시를 받은 부주방장이 떨리는 목소리로 요리가 완성되었음을 알렸다.
“음···. 그래요? 그런데 뭘 멍청하게 보고 있나요? 빨리 내오세요. 나는 그쪽처럼 한가한 사람이 아니에요.”
“알겠습니다. 전무님. 요리는 지금 바로 내오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아니요. 잠깐만!”
“네? 왜··· 왜 그러십니까? 전무님.”
재빨리 서빙 준비를 하려던 부주방장은 박연하 전무의 부름에 혹시라도 뭔가 꼬투리를 잡혔나 싶어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뭘 그렇게 놀래요? 누가 그쪽 잡아먹는대요?”
“아··· 아닙니다. 전무님. 제게 뭐라도 시킬 일이 있으십니까?”
“그쪽이 하는 일이 뭐죠?”
“이곳 레스토랑 부주방장입니다.”
“아하. 부주방장님이시구나. 그런데 여기 포에버키친 분당점은 부주방장이 서빙을 하게 되어있나 보죠?”
“그··· 그··· 그건 아닙니다.”
“그런데 왜 부주방장이 서빙 준비를 하려는 거죠?”
“죄송합니다. 전무님.”
“죄송할 것 없어요. 아무리 봐도 여기 레스토랑은 멍청한 매니저 때문인지 뭐하나 제대로 지켜지는 게 없는 걸요. 그래도 명색이 부주방장인데 직접 서빙을 할 수는 없잖아요. 안 그래요?”
“직원이 바쁘면 가끔 서빙을 하기도 해서···.”
“아니죠. 아무리 바빠도 원칙은 지켜져야죠. 이리저리 예외를 인정하다 보니 지금처럼 콩가루 같은 매장이 생기는 겁니다. 부주방장은 그만 돌아가 있어요. 서빙은 저기 두 사람이 하면 되니까.”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이만.”
박연하 전무는 재미있는 장난감을 발견한 어린 아이의 눈빛으로,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매니저와 여종업원을 바라봤다. 부주방장은 그녀 모습이 악마를 보는 것처럼 소름 끼쳤지만, 불편한 자리에서 빠져나갈 수 있다는 생각에 두말하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이제 벌을 받았으니 제대로 할 수 있겠지? 거기 두 사람. 방금 부주방장이 하는 이야기 들었죠. 요리가 모두 준비되어 있다고 하니 얼른 서빙 준비하세요.”
그녀의 말에 20분 넘게 무릎을 꿇고 있던 두 사람은 피가 통하지 않아 감각이 없는 다리를 억지로 이끌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기서 지체를 했다간 지금보다 더한 수모를 겪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다리가 저린 것도 잘 느끼지 못했다.
주방에서 준비된 요리를 캐리어에 담아 홀 안으로 돌아온 두 사람은 수석 주방장이 정성스레 만든 요리를 박연하 전무가 앉아 있는 테이블로 천천히 옮기기 시작했다.
쨍그랑!!
그때 조심스럽게 요리를 옮기던 여종업원이 갑자기 다리에 힘이 풀려 미끄러지면서 앞에 있던 매니저를 밀어버렸다. 그리고 그 충격에 매니저마저 밀려 넘어지면서 파스타와 샐러드가 담긴 접시들이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졌다. 붉은색을 띠고 있던 파스타가 하얀색 바닥에 엎어지자 바닥은 피가 뿌려진 것처럼 처참하게 변했다.
사고를 저지른 여종업원은 이제 공포에 질린 듯 몸을 바들바들 떨며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이곳을 공포분위기로 만든 장본인인 박연하 전무는 그런 여종업원이 아닌 매니저에게 눈길이 가 있었다.
“풉! 갈수록 가관이네요. 레스토랑을 책임지는 매니저가 어떻게 서빙을 하나 제대로 못 해서 이런 요란 법석을 떨다니. 대체 어떻게 매니저가 된 거죠? 낙하산이에요?”
“······”
매니저는 오랫동안 무릎을 꿇고 있어서 다리에 힘이 없어 그런 거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쓸데없는 말대답을 하다가 지금과 같은 수모를 겪었다는 생각에 변명없이 침묵으로 일관했다.
“뭘 그렇게 보고 있어요. 어서 치우지 않고.”
“죄송합니다. 당장 걸레를 가져와서 치우겠습니다.”
“어머! 그걸 걸레로 치우면 먹을 수가 없잖아요. 걸레 말고 손으로 치우세요. 싹싹 끌어 빠짐없이 전부요.”
“네? 아··· 알겠습니다. 전무님.”
걸레로 치우면 먹을 수 없다는 말이 대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녀의 말을 곱씹기에 매니저는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그냥 박연하 전무가 시키는 대로 손으로 파스타를 집어 접시에 옮겨 담았다.
파스타의 소스가 튀어 하얀색 셔츠가 붉게 물들었지만 그런 건 그의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지금의 이 수모를 어떻게든 빨리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바닥에 엎어진 파스타를 소스까지 전부 옮겨 담은 매니저는 접시를 박연하 전무가 앉아 있는 테이블 위로 올려뒀다. 그녀는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먹으세요.”
“네?”
“먹으라고요.”
“무··· 뭘 말입니까?”
뭘 말하는지는 알 것 같았다. 하지만 설마했다. 아무리 그래도 사람이라면 그런 지시를 할 리가 없다는 생각에 다시 한 번 물었다.
“몰라서 물어요? 무능력해, 눈치도 없어, 행동도 굼떠, 이제 귀도 막혀나 보네. 정말 쓸모없는 인간이군. 매니저가 담은 파스타 먹어보라고요. 맛은 봐야 하는데 그걸 내가 먹을 순 없잖아요. 그러니 매니저가 대신 먹어보고 맛이 어떤지 평가해주세요. 자기가 엎은 음식은 자신이 책임져야죠. 안 그래요?”
“바닥에 떨어진 음식입니다. 전무님?”
“그래서 못 먹겠다는 말인가요?”
“전무님! 아무리 그래도 같은 사람끼리 이건 정말 너무하지 않습니까?”
“같은 사람? 누가 같은 사람이라는 거죠? 매니저와 내가? 호호호. 정말 어이가 없어서 웃음밖에 안 나오네요. 어떻게 그쪽이랑 나랑 같다는 거죠? 태생부터 다른데. 대 와룡그룹의 오너를 할아버지로 둔 나와 시키는 일도 제대로 못 하고 빌빌거리며 고작 이런 조그마한 레스토랑에 고용된 매니저가 어떻게 같을 수 있죠. 정말 같다고 생각해요?”
그래 다르다. 태생이 다르다는 건 매니저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대로 그녀의 말을 인정하기에는 그의 자존심이 너무 상했다.
“같습니다. 사람 위에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다 같은 사람이지!”
“호호호호호호호호호호호호호호호. 매니저가 이렇게 세상 물정을 모르는 사람일 줄이야. 내가 사람을 몰라봤네요. 그런데 매니저. 정말 같다고 생각하는 거였어요? 미안하지만 달라···. 아니야, 아니지. 다르지 않지. 틀린 거지. 그쪽과 나는 다르다 못해 틀려요. 나는 맞고, 그쪽은 틀리다고. 그걸 지금까지 몰랐다고 하니 내가 직접 알 게 해줄게요. 거기!”
박연하 전무의 얼굴은 더욱 밝아졌다. 그러나 그러면 그럴수록 그녀의 눈빛은 점점 더 표독스러워졌다. 마치 전설 속의 등장하는 악독한 마녀처럼.
“네. 전무님.”
박연하 전무가 고갯짓을 하자 옆에서 대기하고 있던 경비요원들이 고개를 살짝 숙이며 대답했다.
“먹어요.”
“네?”
“먹이라고요. 저기 저 파스타를 저 인간 목구멍에 처넣으라고요. 무슨 말인지 몰라?”
“아··· 아닙니다. 전무님. 그렇게 하겠습니다.”
대답을 마친 경비요원이 다가가자 매니저는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언제 대기하고 있었던지 다른 경비요원이 다가와 그의 팔을 잡았다. 떨쳐내려고 했지만 상대의 손은 단단한 바위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거 왜 이럽니까. 이러지 마시죠. 같은 사람들끼리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합니까? 제발요. 제발 하지 마세요. 야, 이 새끼들아! 꼭 이렇게까지 해야하냐? 나 정말 가만있지 않을 거야. 큭···. 하··· 하지 말라고. 음··· 읍···읍···.”
매니저는 사정도 하고 협박도 해봤지만, 경비요원들은 요지부동이었다. 아무리 버티려고 해도 건장한 남자 셋이 붙어서 짓누르는 이기긴 힘들었다. 힘이 빠지자 고개는 점점 테이블 가까이 내려갔고 결국은 파스타가 담긴 접시에 얼굴이 처박히는 굴욕을 당했다.
박연하 전무는 마치 극장에서 영화라도 보듯 마카다미아를 팝콘처럼 으그적 으그적 씹고 있었고, 실수로 매니저를 밀어버렸던 여종업원은 죄책감에 펑펑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침통한 표정으로 그 장면을 녹화하고 있던 여순희는 모두의 시선이 매니저를 향해 있는 틈을 타 조용히 레스토랑을 빠져나왔다.
잠시 후 박연하 전무의 수행원이던 진영목이 다른 경비요원들을 데리고 입구를 통제했지만, 이미 그녀는 포에버마트에서 완전히 떠난 후였다. 워낙 경황이 없던 상황이라 그 누구도 여순희가 그곳에 있었다는 걸, 소리소문없이 그곳에서 떠났다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
***
“왜 이렇게 늦게 와. 걱정했잖아.”
“머리가 아파서 커피 한잔 하고 왔지.”
만약을 대비해 여순희가 천성기보다 늦게 합류하기로 했었다. 그런데 약속된 시간이 되어도 그녀가 나타나지 않자 차에서 내려 발을 동동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왜 전화는 안 받아.”
“미안. 전화받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어.”
“왜? 무슨 일 있었어? 응? 무슨 곤란한 일이라도 겪은 거야? 가만···. 순희야. 너 얼굴은 왜 그래? 울었어? 누구야! 누가 널 울린 거야.”
“오빠.”
“그래. 순희야. 말해. 누구야?”
“오빠. 우리 때문인 것 같아.”
“뭐?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우리 때문에 어떤 사람이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았어.”
“그게 무슨 말이야. 알아듣게 좀 설명해봐.”
“우리가 박현아 전무를 긁는 바람에 화가 난 박현아 전무가 엉뚱한 사람에게 화풀이를 하고 있어.”
“얼마나 심하게?”
“지금까지 내가 목격했던 어떤 상황보고 심하게.”
“대체 어느 정도길래?”
“일단 진정하고 이거부터 봐.”
여순희는 벌써부터 흥분하려는 천성기를 진정시키고 자신이 녹화해온 동영상을 그에게 보여줬다. 조용히 영상을 보던 천성기는 매니저와 여직원을 바닥에 무릎 꿇게 하는 장면에서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
“여··· 여기가 어디야? 내가 지금 당장···.”
“진정해.”
“순희야! 우리 때문이라며!”
“나도 알아. 그런데 거긴 순찰요원도 많아. 그 사람들 전부랑 드잡이질할 거야? 그런 다음엔? 그 사람이 모욕당한 건 어떻게 보상할 건데? 오빠가 박연하 전무로부터 그 사람을 구해줬으니 보상 끝이라고 할 거야?”
“그래도 사람이 저렇게···.”
“나도 화가 나. 그런데 오빠. 우리 냉정해지자. 거긴 보는 사람이 많아서 더 이상의 행동은 못 해. 그러니까 매니저와 여종업원 두 사람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사람을 그렇게 함부로 대한 대가를 그 여자가 치를 수 있도록.”
“어떻게?”
“그건 마동수 팀장님과 의논해야지. 이런 동영상이 왜 필요하다고 했는지 모르겠지만, 단순히 협박용으로 필요한 거라면 언론에 터트리자고 설득해야지 않겠어?”
“우리 말을 들어 줄까?”
“나도 몰라. 일단 이야기나 해보자. 그리고 안 들어주면 복사본을 가지고 우리끼리라도 터트리자. 나는 박연하 그 여자가 꼭 몰락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 작품 후기 ============================
아쉬운 부분에서 연재를 끊은게 마음에 걸려, 밤에 조문하는 분이 없을때 틈틈이 써서 올립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격려를 해주신 독자님들. 정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