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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가 전부는 아니야-286화 (286/424)

00286  소제목 추후 결정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어때? 만족해? 물론 아직 완전히 끝난 건 아니야. 공개된 동영상으로 인해 박연하는 그야말로 빼도 박도 못하는 신세가 됐어. 폭행과 상해는 확실해. 강요죄와 공동폭행 교사죄가 인정될지는 두고 봐야 하겠지만, 징역형을 피할 수는 없을 거야.”

박연하 전무에게 사전구속영장이 청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천성기와 여순희를 조용히 만났다.

“네. 팀장님. 마음 같아서는 지금보다 더 큰 곤욕을 치르게 하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재벌가 직계 손(孫)을 감방에 보낼 수 있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죠. 만약 성기씨와 제가 나섰다면 이번과 같은 결과를 얻기 힘들었겠죠. 생각했던 결과는커녕 위협이나 당하지 않으면 다행이었을 거예요.”

천성기에게 한 이야기였지만 좀 더 현실적인 여순희가 수긍하며 대답했다.

“순희씨 예상이 맞을 겁니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불법적인 일도 서슴지 않는 족속들이니까요. 그렇지만 이번에는 꽤 큰 곤욕을 치르게 될 겁니다. 단지 징역형을 사는 게 끝이 아니라 그녀가 책임지던 포에버마트 또한 위태로우니까요. 그룹 내 다른 세력들이 박연하 전무를 가만히 내버려두지는 않을 겁니다. 더군다나 박호일 와룡그룹 부회장까지 입지가 흔들리는 상황이라 그녀를 캐어해줄 사람은 와룡그룹 내에 없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래도 돈이 많은 사람이니까 자신의 죗값을 완전히 치르진 않겠죠. 이번 땅콩 스캔들에서 와룡그룹과 박연하 전무가 보여준 모습은 대한민국이 과연 민주주의 국가가 맞는지 의심이 갈 정도로 뻔뻔했으니까요.”

그녀의 말이 맞다. 사건 당일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직원들 그리고 고객들에게 취한 협박과도 같은 행동들은 누가 봐도 비상식적이었다. 고객들의 소지품을 검사하고, 직원들의 휴대폰을 검열하는 건 북한에서나 일어날법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와룡그룹과 박연자 전무는 그런 일들을 거리낌 없이 저질렀다.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의미였다. 그런 짓을 해도 얼마든지 무마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

하지만 그들은 두 가지를 모르고 있었다. 하나는 세상이 변했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SNS를 통해 사소한 정보까지 순식간에 퍼지는 현실에서, 막대한 금력으로 반드시 전가의 보도가 될 수는 없다. 직원들이야 먹고 살기 위해 더러워도 참아야 했지만, 그곳을 방문한 고객들까지 그런 건 아니라는 걸 잊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나와 동지마트가 개입했다는 사실. 적이 누군지 파악도 못 한 채 덮어놓고 언론을 통제하려고 한다고 해서 그게 제대로 될 리가 없다.

“물론 그렇습니다. 이번 일로 와룡그룹이 망하는 일은 없을 테니까요. 여전히 박연하 전무는 부자로 살겠죠. 돈이 궁할 일은 없으니 말이죠. 그렇지만 순희씨도 아시잖습니까. 돈이 전부가 아니라는 거요. 그렇지 않았다면 성기를 따라 안정적인 경찰직을 박차고 나오진 않았겠죠.”

“후훗. 그렇긴 하죠. 친구들이 다들 미쳤다고 했으니까요. 그런데 그게 박연하와 관련이 있나요?”

“반대의 경우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 여자처럼 권력욕이 많은 사람이 와룡그룹에서 더 이상 할 수 없는 일이 생긴다면, 아무리 돈이 많아도 팔다리가 잘려나간 것처럼 고통스러울 걸요?”

“아······. 그건 그렇겠네요.”

여순희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닐 가능성도 있겠지만, 박연하처럼 탐욕스러운 인간이라면 권력을 마음껏 휘두를 수 없다는 게 교도소에 가는 것보다 더 큰 형벌일 수도 있었다.

“그러니까 성기와 순희씨도 이번 일로 인해 이문수 매니저에게 가지고 있는 죄책감은 털어버리세요.”

“그런데 팀장님.”

“네. 말씀하세요.”

“팀장님은 회사에서 잘 나가시는 분이라 이해를 못 하실지 몰라요. 지금 나이에 대기업 팀장이라면 엄청나게 승승장구하는 거잖아요. 하지만 이문수 매니저님은 달라요. 계속 포에버마트에서 일한다고 해도 편하지 않겠죠. 계속 눈치가 보이는 건 어쩔 수 없을 거고. 회사에서도 그분을 쫓아내려고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으려 할 거예요. 누군가의 눈치를 보고 사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데요.”

“압니다. 저도 고현호 이사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그런 입장이었으니까요.”

““네에? 팀장님이요?””

천성기와 여순희가 이구동성으로 반문했다. 나의 슬픈 암흑기를 모르는 두 사람이니 어쩌면 당연한 반응일지도 몰랐다.

그 당시 조기훈 팀장님을 제외한 팀원 모두가 나를 못 잡아 먹어 안달이었으니, 이번 사태가 진정된다고 해도 이문수 매니저가 어떤 상황에 처할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물론입니다. 포에버 마트도 지금은 보는 눈이 있어서 함부로 대할 수 없겠죠.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사람들의 관심이 사라지면 사소한 실수 하나라도 크게 꼬투리를 잡아 어떻게든 쫓아내려 할 겁니다. 그런 꼬투리를 잡히지 않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해야 할지, 그리고 그 노력이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잘 알고 있습니다.”

“무슨 방법이라도 있는 건가요?”

“네. 걱정하지 마세요. 포에버마트는 우리가 인수할 생각입니다.”

“······ 아. 네에? 포··· 포에버마트를 인수하신다고요? 그럼 설마 포에버마트를 흔들려고 했던 게 전무 인수를 위해서였나요?”

“네.”

“와! 팀장님. 정말 무서운 분이셨네요.”

“기업은 자선사업을 하는 곳이 아니죠. 적자생존의 밀림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먹히느냐 먹느냐의 싸움이죠. 독해야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혹시 후회되십니까?”

“아니요. 그렇진 않아요.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그게 무슨?”

“고향으로 내려가기로 한 결정이요. 우리끼리는 탐정사무소라고 했지만, 사실 흥신소죠. 외국 영화에서 볼 수 있는 그런 멋진 탐정 사무소는 상상도 못 해요. 누가 그러더라고요. 흥신소로 성공하려면 남의 눈에 피눈물을 흘리게 해야 한다고. 그동안은 운이 좋아서 그런 일을 겪지 못했는데, 이번 일을 겪으면서 확실히 깨달았어요. 우리와 맞지 않는다는 것도 알았고요. 그리고 팀장님과는 꼭 같은 편이 되어야겠다는 생각도 했어요.”

기다렸던 대답이 나왔다. 이게 내가 두 사람을 만난 가장 큰 이유였다.

“그럼 제가 제안한 동지 푸드쿡 매니저 일을 받아들이시는 겁니까?”

“네. 사실 좀 고민을 했어요.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이기도 했고. 그런데 윤권 오라버니가 그러더라고요. 팀장님이 다른 건 몰라도 자기 사람에게는 끔찍하다고요. 그 말에 확실하게 결심했어요. 새로운 일이라 좀 두렵긴 하지만,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하하하. 물론입니다. 잘 생각하셨어요.”

“그런데···.”

“왜요? 뭐 궁금한 거라도 있으십니까?”

“정말 매니저로 일하면 우리 두 사람이 살 수 있는 숙소를 제공해주시는 건가요?”

“물론입니다. 숙소뿐만 아니라, 대우도 업계 최고로 해드릴게요.”

내게 중요한 건 돈이 아니라 믿을 수 있는 사람이다. 내가 본 천성기와 여순희라면 그런 투자를 해서라도 잡고 싶었다.

“그래도 초짜인데 그렇게 과분한 대우를···.”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니까요. 우리 부모님이 레스토랑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건 원하지 않거든요. 안락한 노후를 위해 마련한 곳이 애물단지가 되면 곤란하잖아요.”

“그만큼 저희를 좋게 봐주셨다는 건데, 정말 감사해요. 그런데 숙소는 어디로 구하실 건지요?”

천성기는 아무려면 어떤가 하는 표정이었지만, 여순희는 여자라서 그런지 세부적인 사항까지 궁금해했다.

“지곡동에 있는 아파트로 구할 겁니다.”

“지곡동요? 거긴 포스코 직원들만 사는 곳 아니에요?”

“고향이 안강이라고 하더니 알고 계시군요. 예전에는 그랬는데 요즘은 개방됐습니다. 물론 여전히 포스코 직원들이 가장 많이 살고 있긴 하지만요. 싫으시면 다른 아파트로 구해드릴 수도 있습니다.”

“아니에요. 괜찮아요. 지곡동이면 저도 좋아요.”

당연히 그녀가 반길 줄 알았다.

포스코 직원들이 대부분인 지곡동.

이곳은 아파트와 테니스장이나 농구장 같은 각종 편의시설만 있을 뿐 그 흔한 술집조차 찾아보기 힘든 곳이다. 바로 옆에 있는 포항공대 학생을 위해, 맥주를 파는 통나무로 지은 주점이 전부라고 할 수 있다.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그런 재미없는 곳에서 어떻게 살겠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신혼부부나 아이들의 교육을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이곳만큼 좋은 곳을 찾기는 어렵다. 예전에는 정말 포스코 관련 종사자들만 거주할 수 있었는데, 그런 제약이 풀리면서 아파트값도 많이 오르고 있었다.

“그렇죠? 두 사람이 신혼살림으로 살 곳이라 일부러 거기로 정했습니다. 나중에는 아이들 교육도 생각해야 하니까요.”

물론 아파트는 부모님이 사는 곳과 아주 가까운 곳으로 구할 생각이다.

“시··· 신혼살림요?”

“그럼 결혼은 안 하실 생각이셨습니까? 성기야. 순희씨 고향으로 내려가는데 결혼 안 해?”

“아···아뇨. 당연히 해야죠. 그런데 원래는 열심히 일해서 같이 돈을 모아 결혼할 생각이어서···.”

“그럼 잘됐네. 내가 구해주는 아파트에 신혼살림을 차려도 되잖아. 아직 결혼도 안 했으니 당분간은 아파트에 성기 혼자 살고, 순희씨는 안강에서 출퇴근하다가 자연스럽게 합쳐도 되고.”

“아···. 하하하. 그렇게 하면 되는 거군요. 수··· 순희야 우리 결혼할까?”

“뭐야? 너! 그럼 아직 프러포즈도 안 해놓고 안강에 따라갈 생각이었어?”

“··· 하하. 그게 어쩌다 보니.”

“그럼 설마 지금 이게 프러포즈는 아니지? 땍! 그럼 못써. 이렇게 얼렁뚱땅 이라니. 지금 당장 반지라서 사서 정식으로 해!”

“네?”

“너 인마. 그러는 거 아니다. 순희씨가 너 하나 믿고 경찰까지 그만뒀는데, 프러포즈는 정식으로 해야 할 것 아니야. 자! 여기 보너스”

“네? 보너스요? 성공보너스는 이미 받았는데요?”

“이번 일이 기대 이상으로 너무나도 잘 풀렸잖아. 그래서 주는 금일봉이라고 생각해. 부담스러우면 매니저로 일하기로 해서 주는 계약금이라고 해도 좋고. 이 돈이면 괜찮은 결혼반지도 살 수 있을 거야.”

내 말에 천성기가 얼굴을 붉혔다. 여순희도 부끄러워하는 것 같았지만, 싫어하는 기색은 아니었다. 오랜만에 오지랖이 발동했다.

한편으로는 솔직히 이렇게 해서라도 확실히 내 사람을 만들어 놓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감사합니다. 팀장님. 이 은혜 죽어도 잊지 않겠습니다.”

“됐거든. 고맙게 생각하면 죽지 말고 살아서 두고두고 갚아!”

“그럼요. 열심히 해서 푸드쿡 포항점을 전국 최고의 매장으로 만들겠습니다.”

천성기는 그렇게 약속하며 자리를 떠났고, 여순희는 내가 고마운 듯 가볍게 목 인사를 하고 그를 따라갔다.

***

“이봐! 육 팀장. 마동수 손 좀 보라는 건 어떻게 되고 있어?”

고정호 전무가 얼굴을 찡그리며 육은지 팀장에게 물었다.

“곧 실행에 옮기겠습니다. 그게 좀 조심스러운 일이라서 최대한 은밀하게 진행 중입니다.”

“조심스러운 것도 좋지만, 너무 뜸을 들이다 보면 밥이 탈 수도 있어. 지금 와룡그룹이 심상치 않거든.”

“네? 그게 무슨 말씀인지 잘 이해가 안 갑니다. 전무님.”

“하필이면 지금 와룡그룹과 포에버마트가 흔들리고 있잖아. 만약 동지마트가 포에버마트를 인수라도 한다면 어떻게 되겠어? 그렇게 되면 동지마트는 엘마트를 위협할 정도의 규모가 된단 말이야. 아무래도 찝찝해. 확신할 수는 없지만, 이번 일 마동수가 개입된 것 같은 느낌이 자꾸 든단 말이야.”

아무리 폭급한 성격이라고 해도 고정호 전무는 서울대와 와튼스쿨을 나온 엘리트였다. 기본적으로 명석한 사람이라는 의미였다.

“설마 아무리 마동수 팀장이라고 해도 와룡그룹까지 흔들 능력이 있겠습니까?”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하긴 해. 하지만 우연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영 마음에 걸려. 설사 의도하지 않았다고 해도, 미다스의 손이라고까지 불리는 녀석이야. 운을 부른다는 평까지 듣고 있으니까. 운이든 실력이든 재수없는 건 마찬가지야. 현호에게서 하루라도 빨리 그 녀석을 떼어나고 싶어.”

“알겠습니다. 좀 더 서두르겠습니다. 전무님.”

============================ 작품 후기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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