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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가 전부는 아니야-287화 (287/424)

00287  소제목 추후 결정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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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명 땅콩 스캔들.

이 사건의 여파는 포에버키친이나 포에버마트를 넘어서서 모기업인 와룡그룹까지 흔들리게 만들 정도로 어마어마했다.

박연하 전무가 처음부터 모든 것을 책임지고 자신의 자리에서 물러나겠다고 했으면 여론이 이 지경까지 나빠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온갖 협박에 각종 증거인멸 시도까지, 법마저도 무시하는 그들의 행동은 대중들의 엄청난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이 같은 현상을 학자들은 땅콩 신드롬 또는 땅콩 증후군 명명하며 상당히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오늘은 항간에 많이 회자되고 있는 땅콩 증후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서울 OO대학교 사회과학건물의 한 강의실에서 백발에 뿔테 안경을 쓴 점잖게 생긴 노교수가 칠판에 큰 글씨로 땅콩 증후군이라고 쓰고는 강의를 시작했다.

최근 들어 워낙 많은 이슈가 되고 있는 사건이기 때문에 수업을 듣는 학생들도 눈을 반짝이며 강의에 집중했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대기업의 횡포는 항상 있어 왔습니다. 그런데 왜 하필 일명 땅콩 스캔들로 불리는 이번 사건만 이렇게 크게 이슈가 되었을까요?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최근 땅콩 스캔들이라는 말만큼 유행하고 있는 단어가 바로 ‘갑질’입니다. 사람들은 박연하 전무의 행동을 ‘갑질’이라며 부르며 비난하고 있죠. 그런데 갑질이 대체 뭘까요? 거기 노란 재킷을 입은 여학생. 갑질이 뭐라고 생각해요?”

“갑을관계에서의 ‘갑’에 어떤 행동을 뜻하는 접미사인 ‘질’을 붙여 만든 단어로, 권력의 우위에 있는 갑이 권리관계에서 약자인 을에게 하는 부당 행위를 통칭해서 이르는 말입니다.”

이런 상황이 익숙한지 노교수의 지적을 받은 여학생은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대답했다.

“그렇군요. 저도 헷갈렸는데 친절한 설명 감사합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인 예도 들어볼 수 있을까요? 음···. 거기 흰색 뿔테 남학생 대답해볼까요?”

“가장 대표적인 갑질이 아까 교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박연하 전무 행동입니다. 직원들을 대등한 인간관계로 보지 않고 하인이나 노예로 생각하고 함부로 대하는 겁니다. 그 외에도 욕설이나 반말 그리고 선물이나 향응 요구도 대표적인 갑질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요. 얼마 전 국회에서 열린 재벌·대기업의 불공정·횡포 피해 사례 발표회에서는 ‘자식뻘인 영업 담당에게 욕설과 협박, 갈취에 시달린 후유증으로 정신병원에서 공황장애라는 진단을 받았다.’, ‘명절 때마다 떡값과 지점 회식비 등 각종 명목의 돈을 요구받았다.’라는 증언도 나왔습니다. 사실 비일비재한 일이죠. 단지 박연하 전무 덕분에 재조명되고 있을 뿐. 심지어는 벌초에 불려가거나 직장 상사 아들 방학 숙제 때문에 곤충채집을 하러 다니는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와···.””

곤충채집 이야기까지 나오자 학생들도 어처구니가 없었는지 일제히 탄성을 질렀다.

“땅콩 스캔들이 비자금이나 탈세, 불법 상속, 불공정거래 같은 대기업이 저지르는 수많은 범죄보다 국민들이 더욱 분노하는 이유가 바로 갑질이기 때문입니다. 비자금, 탈세, 불법 상속. 물론 나쁜 일입니다. 하지만 피해자가 사람은 아닙니다. 대신 갑질이 피해자는 ‘을’이죠. 여기서 을은 저도 될 수 있고, 여러분도 될 수 있습니다. 누.구.나. 될 수 있기 때문에 대중들은 동병상련을 느끼며 분노하는 겁니다.”

노교수는 ‘누구나’ 라는 단어를 유난히 강조했다.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본 또는 겪어본 일이기 때문에 대중들은 이문수 매니저와 여직원의 불행에 예민하게 굴었다.

“자신에게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는 위기의식 같은 건가요?”

“그렇다고도 볼 수 있죠. 피해자가 사람이라서 분노한 것도 있지만, 피해자가 언제든 자신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더 예민하게 구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성폭행 기사가 나면 가장 분노하는 사람이 딸 가진 부모입니다. 자신의 딸이 피해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아들만 있는 집이라면 ‘안타까운 일이네.’라고 생각하며 말았을 겁니다. 남의 집 이야기니까요. 대중들, 지금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갑’보다는 ‘을’의 위치에 있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철저하게 ‘을’이었던 이문수 매니저와 여직원에게 감정이입을 한 겁니다.”

“교수님. 교수님은 대중들에 대해 너무 냉소적인 것 같습니다. 저는 지금 보여주는 대중들의 반응이 불의에 대한 저항의식이라고 생각하는데요.”

노교수의 설명에 한 학생이 반론을 제기했다.

“학생의 말을 틀렸다고 하기는 어렵군요. 물론 그런 사람들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 한국을 생각해 봅시다. 비자금, 탈세, 불법 증여. 대한민국의 대기업이라면 마치 통과의례처럼 저지르는 범죄에 대해 국민들 대부분은 무관심했습니다. 일부 의식있는 사람들만이 관심을 가지고 질타할 뿐이죠. 이번 땅콩 스캔들의 반의반 정도의 관심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지금 대대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와룡그룹에 대한 불매운동을 보세요.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아니죠. 단군 이래로 대기업에 대해 지금처럼 대대적이고 체계적인 불매운동이 일어난 걸 본 적이 있습니까?”

“불매운동이 아주 없었던 아니었습니다.”

학생이 다시 반론을 제기했지만 아까와 달리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그렇죠. 불매운동은 있었죠. 하지만 지금처럼 대대적이고 광범위한 불매운동이 일어난 적은 단언컨대 없습니다. 이런 정도 규모의 불매운동은 선진국에서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기이한 현상입니다. 지금껏 수많은 재벌 2세들이 사회기사면을 장식했습니다. 음주운전, 마약, 연예인 스캔들, 성폭행 등등. 그런 범죄들에 대해 대중들이 분노하고 불매운동을 벌인 적이 있습니까?”

“아니요.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제야 노교수의 말을 완전히 이해했는지 학생은 얼굴을 붉히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도 대답했다.

“네. 안타깝지만 없습니다. 인권유린은 땅콩 스캔들이나 성폭행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피해자의 겪게 되는 고통을 생각하면 성폭행이 더 심각한 범죄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대중들은 재벌 2세들이 저질렀던 그런 범죄에 대해서 분노하긴 했어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지는 않았습니다. 땅콩 스캔들은 다릅니다. 포에버마트뿐만 아니라 와룡그룹 전체를 대상으로 불매운동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들불 번지듯 걷잡을 수 없이 빠르게 말입니다. 이렇게까지 대중들이 분노하는 이유를 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아까 강조하신 것처럼 누구나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인 건가요?”

“학자들 사이에서도 여러 가지 의견이 나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설득력 있는 게 바로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위기의식 때문이라는 겁니다. 어떻게 보면 2008년에 있었던 광우병 시위도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누구라도 미국에서 수입되는 소고기를 먹고 광우병에 걸릴 수 있다는 공포심이 대중들을 일으켜 세운 거죠. 거기에 이번 땅콩 스캔들로 인한 불매운동은 광우병 시위와 같은 공포심에 한 가지가 더 추가 됐습니다. 그게 뭔지 아는 학생 있습니까?”

노교수가 천천히 강의실을 둘러봤지만 그의 질문에 손을 드는 학생은 아무도 없었다.

“아무도 없군요. 바로 카타르시스라는 겁니다. 매니저와 여직원을 무릎 꿇게 만들었던 재수 없으리만치 당당했던 박연하 전무의 몰락. 불매운동이 커지면 커질수록 그녀의 몰락은 더욱 가속화 되고 있습니다. 대중들의 그녀의 몰락에, 불행에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더욱 열심히 불매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지난 2008년에 있었던 광우병 시위보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와룡그룹에 대한 불매운동이 훨씬 더 큰 파급력을 가지는 거죠.”

그가 옅은 미소를 지으며 차분히 설명하자 조용히 강의를 듣던 학생들이 하나둘씩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설득력이 있는 논리였다. 그게 아니고는 지금 대한민국을 강타하고 있는 와룡그룹에 대한 불매운동을 설명할 길이 없었다.

노교수의 설명처럼 와룡그룹에 대한 불매운동은 엄청난 파급력을 가지며 와룡그룹을 뒤흔들고 있었다. 정치적 논리나 이념이 아닌 순수한 목적의 불매운동이 이처럼 크게 확산되고 있는 것에 대해 외신마저 엄청난 관심을 보일 정도로 엄청난 규모였다.

심지어 표심을 의식한 상당수 여야 국회의원마저 합심해서 포에버마트를 규탄하고 불매운동을 지지하는 바람에, 와룡그룹은 바람 앞에 촛불처럼 위태롭게 흔들렸다.

***

“휴···. 답답해 미치겠다. 그 미친년 때문에 이게 무슨 생고생이냐. 아! 짜증 나.”

박경태 와룡그룹 회장의 막내아들인 박호철 이사는, 최근 와룡그룹이 겪고 있는 일련의 사태 때문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그의 나이는 고현호 이사와 동갑인 37살. 박경태 회장의 셋째 부인이 낳은 아들이라서 박연하 전무와 크게 나이 차이가 나지 않는 삼촌이기도 했다.

셋째 부인이라고 해도 정식으로 결혼을 해서 태어난 그이기에 당당한 후계자 후보였고, 그래서 제일 큰 형인 박호일 부회장이나 나이 차이가 거의 없는 조카인 박연하 전무와는 사이가 안 좋았다.

그래서 원래라면 두 사람의 불행에 기뻐하는 게 정상이다. 하지만 두 사람이 저지른 사태가 와룡그룹의 위기까지 불러오자, 마냥 기뻐할 수도 없었다. 거기다 아버지인 박경태 회장이 하루가 멀다하고 이사회를 소집해 해결책을 내놓으라고 닦달을 하는 바람에 스트레스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또 술이야.”

“······어. 왔어? 고맙다. 늦게 연락했는데 이렇게 나와주고.”

혼자서 술을 마시던 박호철 이사는, 최근 들어 친하게 지내고 있는 친구의 등장에 반색을 했다. 둘 다 재벌 2세이고, 후계자 후보이긴 하지만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공통점 덕분에 서로 많이 위로가 되어주던 친구였다.

“친구 사이에 고맙긴. 그런데 너무 술만 마시는 거 아니야? 그러다 몸 버려. 적당히 마셔.”

“그러고 싶은데, 노땅이 오늘도 달달 볶아서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 제길. 정신병자 같은 년 하나 때문에 이게 정말 무슨 고생인지. 원.”

“야. 그래도 조카보고 미친년은 좀 심하지 않아?”

“뭐 어때. 솔직히 미친년 맞잖아. 나도 딱히 의식있는 인간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밑에 사람을 그렇게까지 개무시하지는 않는다. 어휴. 진짜 또라이도 아니고. 동영상을 보는 내 얼굴이 다 화끈거리더라. 내가 와룡그룹 직계라는 게 처음으로 부끄러웠다니까.”

“그러게. 네 조카가 좀 심하긴 했어. 그런데 정말 어떡하냐. 와룡그룹 불매운동이 진정 기미가 안 보여서.”

“나도 걱정이다. 누가 그러더라. 서울의 봄 이후 최대 규모의 시위라고. 광우병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정말 이러다 우리 그룹 망하는 건 아닌지 몰라.”

“절대 안 망해. 걱정하지 마.”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지금 우리 그룹 매출이 반의반 토막이 날 지경이라고. 무슨 방법이 없을까? 현호야.”

박호철 이사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친구의 이름을 불렀다.

현호.

그는 와룡그룹의 셋째 아들이자 이번 불매운동 배후의 수장이라고 할 수 있는 고현호 이사였다.

============================ 작품 후기 ============================

불매운동의 규모를 어떻게 설명할까 고민하다가 대학 강의 에피소드를 가져왔습니다. 불매운동이 어느정도로 일어나고 있는지 감이 오시나요?

감히 서울의 봄과 비교해서 죄송합니다. 그만큼 불매운동이 엄청난 규모로 일어나고 있다는 비유법입니다. 모 막장드라마에서 나왔던 '육이오 난리는 난리도 아니다.'라는 말과 비슷한?

살짝 무능력해보였던 고현호 이사의 등장.

그동안 너무 동수만 부려먹었는데 처음으로 밥값 좀 해야겠죠? ㅎㅎ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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