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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가 전부는 아니야-294화 (294/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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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살짝 의도만 한 거죠. 그런 걸 제 마음대로 컨트롤 할 수 있었다면, 제가 동지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겠어요? 회사 차려서 그 회사로 대박을 쳤겠죠.”

“하여간 말은···.”

“그런데 방송국에서는 언제 연락이 왔대요? 어제 저녁에 전화 통화할 때는 그런 이야기 없었는데.”

“오늘 아침에 방송국에 일하는 후배에게 연락이 왔더라. 시연이 연예인 시킬 생각 없느냐고.”

“그래서요?”

“그래서는. 그건 내가 결정할 게 아니니, 시연이에게 물어본다고 했지. 그런데 시연이는 관심이 없는 것 같더라. 딱 잘라 거절하더라고.”

“역시 그렇죠?”

살짝 조마조마하긴 했다. 시연이가 아무리 생각이 깊다고 해도, 이제 겨우 스물한 살이다. 화려한 연예계 생활, 한 번쯤은 동경할 수도 있는 나이다. 만약 그녀가 연예인을 하고 싶다면 막을 수도 막아서도 안 되지만, 그쪽으로는 발을 디디지 않았으면 하는 게 솔직한 내 심정이다.

“시연이가 그러더라. 남자 주인공이 동수 너면 생각해보겠다고. 그건 안 하겠다는 소리나 마찬가지 아니야? 네 얼굴로 연예인은 불가능하니까.”

“왜요? 뭐··· 이만하면 그럭저럭··· 좀 평범하죠? 하하하.”

“좀? 많이 평범하지. 키가 큰 거 말고는 내세울 게 없잖아.”

“뭔가 슬픈 말인데, 반박할 수가 없어서 더 슬픈데요?”

“싱거운 녀석 같으니라고. 아무튼, 땅콩 스캔들의 배후가 너라고 자랑하러 온 건 아닐 테고, 여기 온 목적이 정확하게 뭐야?”

“그게요, 아버님. D&Y 피트니스 센터 필리핀 프로젝트는 아무래도 접어야 할 것 같습니다. 대충 들어보니 생각보다 필리핀 상황도 안 좋더라고요. 때마침 더 좋은 기회가 생기기도 했고요.”

“더 좋은 기회?”

“네. 혹시 월드 베리어스 클럽(World Various Club)이라고 들어보셨습니까?”

“알지. 요즘 세계적으로 제일 잘 나가는 대형할인마트잖아. 명품 아웃렛하고 할인마트를 결합했는데, 그게 그렇게 대박이 났다면서? 사람들 심리가 참 희한해. 물건 싸게 파는 곳에서 명품을 찾다니 말이야.”

“사람들의 허영심을 정말 잘 자극한 거죠. 저도 보고 배우고 싶을 만큼요.”

“아서라. 땅콩 스캔들까지 일으킨 놈이 거기서 더 배웠다가 무슨 큰 사고를 치려고? 대한민국을 들었다 놨다 한 걸로 충분하거든! 그런데 거기가 왜?”

“거기랑 우리랑 합작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정확하게 누구를 말하는 거야?”

“당연히 D&Y 피트니스 센터죠.”

“월드 베리어스 클럽이 D&Y 피트니스 센터에 관심을 가진다고? 대형할인마트가 스포츠센터에까지 관심을 가질 이유가 있어?”

“음···.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D&Y 피트니스 센터는 부수적이고, 그들이 진짜 관심을 가지는 건 ‘아이두’입니다. 최근 월드 베리어스 클럽에서 중국 시장 진출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중국에는 여러 대형할인마트들이 진출해 있는 상황이죠. 명품 아웃렛 말고도 뭔가 확실하게 내세울 게 필요한데···.”

“그게 아이두다?”

“그렇죠.”

“하긴. 중국이 우리나라 이상으로 자식들 교육에 관심이 많으니까. 그럴 만도 하겠군.”

딱히 자세한 설명을 하지 않아도 월드 베리어스 클럽이 아이두를 필요로 하는 이유를 눈치채셨다.

“네. 중국에서는 한류열풍이 여전히 대단하다는 것도 장점이죠.”

“그럼 그들이 원하는 건 D&Y 피트니스 센터가 아니라 아이두라는 거잖아. 이거 자존심 상하는데. 우리 윤 스포츠센터가 끼워팔기로 팔리는 느낌이야.”

쉽게 동의를 하리라고 생각했는데, 윤 사장님의 표정이 그리 탐탁지 않아 보였다.

“그런 생각을 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아이두에 대한 아이디어는 제가 냈지만, 그걸 돌아가게 만드는 커리큘럼은 온전히 윤 스포츠센터의 작품이잖아요. 아이두 때문이라고 해도 어린이 스포츠 분야에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건 순전히 윤 스포츠센터의 힘이니까요. 그걸 무기로 D&Y 피트니스 센터가 세계 시장에 진출하는 게 나쁜 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무기는 휘두르라고 있는 겁니다. 장점을 굳이 포기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요.”

“윤 스포츠센터의 장점? 어린이 스포츠 커리큘럼이 우리의 장점이라고? 대체 언제부터?”

“윤 스포츠센터가 명실공히 대한민국 최고의 스포츠센터라는 건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그런 거죠. 세계적으로 봤을 때는 그냥 풋내기일 뿐입니다. ‘우린 한국에서 최고였으니까 세계에서도 통할 거다.’ 라는 식의 막무가내는 절대 통하지 않습니다. 이제 윤 스포츠센터나 D&Y 피트니스 센터는 한국에서 성공한 방식을 버리고 세계 시장에 통할 만한 걸 내놓아야 합니다. 저는 그게 어린이 스포츠 분야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학계에서도 상당한 관심을 보이고 있지 않습니까?”

과거에도 어린이 스포츠 분야는 있었다. 그렇지만 그동안은 아이들이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는 게 전부였다. 아이두처럼 교육과 스포츠를 체계적으로 접목하려는 시도는 거의 없었다.

처음엔 그냥 그럴싸하게 만들어 부자들의 지갑을 열도록 하는 게 목적이었다. 그런데 내가 우리나라 최고라고 불리는 윤 스포츠센터 연구진들을 너무 얕봤다. 그들은 진심으로 교육과 스포츠가 접목된 제대로 된 커리큘럼을 만들었고, 아이두를 통해 그 효과를 입증했다.

겨우 1년이었지만 새로운 커리큘럼의 탁월함에 스포츠, 의료, 아동발달학 등 다양한 전문 분야에서 아이두 교육방식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월드 베리어스 클럽도 바로 그 점에 주목한 것이다.

이미 넘칠 만큼 넘친 성인 스포츠센터 시장보다는 아직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있는 어린이 스포츠 분야가 훨씬 더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그들의 생각이었고, 나 또한 그 생각에 동감했다.

동아시아가 특별히 극성스러운 편이지만, 선진국 대부분도 자녀 교육에는 큰 관심을 보인다. 그리고 아이들을 볼보는 게 어려운 건 세계 어디서나 똑같다. 그런 그들에게 아이두의 커리큘럼의 사막의 오아시스가 될 수도 있다.

이런 먹음직스러운 미끼를 포기하는 건 바보짓이나 똑같다. 정면 승부가 어렵다면 자신의 강점을 찾아 그걸로 틈새시장을 공략하는 게 가장 현명한 방법이다.

“그래서 아이두를 미끼로 세계 시장을 공략하자는 뜻이야?”

“그렇죠. 중국 시장은 그 가능성을 알아볼 수 있는 중요한 전초기지가 될 겁니다.”

“그래. 무슨 말인지 알겠어. 가끔은 포기가 빨라야 할 때도 있지. 필리핀 시장 진출 상황은 나도 보고를 받긴 했어. 여러 가지로 문제가 많다고 하더라. 특히 뒤늦게 들어온 미꾸라지 녀석 때문에 프로젝트팀 분위기가 말도 아니라고?”

“네. 저도 직접 겪어본 게 아니라 정확하게 말씀드리긴 어렵습니다만, 조기훈 팀장도 아버님과 같은 이야기를 하더군요. 권 과장이라는 사람이 문제가 많긴 많은 모양입니다.”

“그럼 어떻게 할 거야? 필리핀 시장을 포기하고 곧바로 중국시장에 진출을 준비하는 건가?”

“아니요.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습니다. 사실 월드 베리어스 클럽과 제휴 이야기가 오고 가고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극소수밖에 안 됩니다. 그리고 D&Y 피트니스 센터 프로젝트를 책임지고 있는 사람이 고현호 이사나 저도 아니고요. 여기서 월드 베리어스 클럽과 제휴를 확정해버리면 죽 쒀서 개 주는 꼴밖에 안 됩니다.”

세계 1위의 대형할인마트와 제휴해서 중국 스포츠센터 시장에 진출한다는 건 D&Y 피트니스 센터의 성공확률이 굉장히 높아지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D&Y 피트니스 센터의 해외진출 성공은 포에버마트 인수 이상으로 엄청난 업적이다. 그걸 다른 사람에게 넘길 생각은 전혀 없다.

“쯧. 그럼 결국 나보고 시간을 벌어달라는 소리를 하려고 온 거였군.”

“하하하. 따지고 보면 그렇게 되네요. 아버님이 말씀하신 그 미꾸라지 한 마리를 빼고 전부 포에버마트 인수준비 위원회에 투입할 생각이거든요.”

“그럼 결국 필리핀 프로젝트팀은 알짜가 다 빠져가는 셈이니, 속빈 강정이 되겠구먼.”

“네. 그래서 미리 양해의 말씀을 드리려고 온 겁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됐어. 죄송할 것까지야. 어차피 더 좋은 기회를 얻어서 온 거잖아. 그럼 당연히 기다릴 용의가 있지. 그럼 나는 그동안 미꾸라지에게 제대로 일 못한다고 시비나 걸면 되겠군, 그래.”

“그래주시면 정말 감사하죠. 사실 그게 아버님의 최고 특기 아닙니까? 어휴···. 제가 그동안 아버님에게 들볶인 걸 생각하면···”

“뭐라? 사람 들볶는 게 내 특기? 이 녀석이! 너부터 먼저 들볶아 주마.”

***

회장님이 주신 권한은 동지그룹에서 뭐든지 하고 싶은 건 다 하게 만들어줬다. 당연히 팀원들을 빼 오는 일도 순조롭게 마무리되었다. 마음 같아서는 양지선 팀장과 이기적 대리를 이리로 발령내서 창고에 처박아두고 싶었지만, 똑같은 놈이 되기 싫어서 참았다.

그리고 팀원이 모인 첫 번째 날 포에버마트 인수 성공을 기원하는 조촐한 회식자리를 만들었다. 오랜만에 보는 팀원들이었지만, 어려운 일을 같이 이겨낸 사이라서 그런지 가족처럼 익숙하고 편했다.

“자. 포에버마트 인수를 위하여!”

““위하여.””

고현호 이사의 선창에 다들 힘차게 건배를 했다. 예전 팀원과 기존의 TF팀원들은 서로 안면이 없었지만, 술 덕분에 금세 서로 친해졌다.

“마 팀장님. 호호호. 정말 고마워요.”

“뭐가?”

“권희태 과장 때문에 정말 회사 다니기 싫었거든요.”

즐거운 회식 분위기에 기분 좋아진 정지영 과장(본사 대리지만, 동지마트로 발령나면서 과장을 달았다.)이 내 앞에 놓인 빈 잔에 술을 따르며 이야기를 걸었다.

“흔쾌히 승낙해줘서 고마워. 계열사로 내려오는 거라서 싫어하진 않을지 걱정했거든.”

“에이. 마 팀장님도 없고, 우리 조 팀장··· 아니지. 우리 조 차장님도 가신다는 데 제가 그 팀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죠. 제가 비록 여자지만, 남자 이상으로 의리가 있는 사람이거든요.”

“고마워. 그런 의미에서 한잔 하자. 건배!”

“건배. 호호호.”

포에버마트 인수준비 위원회는 조기훈 팀장이 계열사 차장으로 발령나면서 실무 책임자를 맡기로 했다. 그리고 김수현 과장은 팀장, 정지영 대리는 과장, 태준호 주임은 대리가 되었다. 그 밖에도 기존의 팀원 중 신당봉 대리가 과장이 되었고, 성윤권, 추미래, 박서라는 비정규직에서 정규직 직원으로 발령났다.

본사 팀원들은 승진은 아니지만 분위기가 엉망이었던 필리핀 프로젝트팀에서 나와서 포에버마트 인수라는 큰 프로젝트를 맡은 것에 기뻐했고, 원래 있던 TF팀원들은 생각지도 못한 빠른 승진에 행복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 덕분에 분위기는 그야말로 화기애애해졌고, 창밖에서는 둥근 달이 우리의 미래를 축복이라도 해주듯 밝게 빛나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가시기 전에 선추코 부탁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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