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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가 전부는 아니야-295화 (295/424)

00295  소제목 추후 결정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본사 팀원들의 합류는 고현호 이사와 나에게 큰 힘이 되었다. 조기훈 차장, 김수현 팀장, 정지영 과장은 원래부터 뛰어난 능력을 갖추고 있었고, 인턴으로 들어와 어리버리했던 태준호 대리도 몇 달 새 충분히 제 몫을 하는 훌륭한 일꾼으로 거듭나 있었다.

동지그룹 마케팅부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엘리트 중의 엘리트들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 속의 경쟁에서 우열이 갈리긴 해도,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능력은 의심할 바 없이 뛰어나다.

더군다나 새롭게 동지마트로 편입한 네 사람은 어려운 프로젝트를 몇 개나 성공시킨, 마케팅부 내에서도 상당히 뛰어난 실력을 인정받는 멤버들이다. 나만큼 잔머리가 뛰어나진 않아도 그런 꼼수를 제외하면, 개개인의 역량은 나와 크게 다를 바 없거나 나보다 더 뛰어나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인재가 한 명도 아니고 갑자기 네 명이나 합류했다는 건 동지마트에 날개를 달아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업무의 효율과 스피드가 달랐고, 일을 믿고 맡길 수 있어 마음의 여유도 생겼다. 얼마 전까지 TF팀을 혼자 이끌어가며 느꼈던 마음의 짐이 한결 가벼워진 덕분이다.

그리고 박서라와 추미래는 새롭게 합류한 본사직원들에게 주눅이 들지 않고, 하나라도 더 배우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 내 마음을 흐뭇하게 했다.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이 된 두 사람과 엘리트 코스를 걸어온 다른 네 사람 사이에 혹시라도 보이지 않는 벽이 생기는 건 아닐까 걱정했지만, 그런 나의 걱정은 그냥 기우에 불과했다.

오히려 어린 두 사람(24살의 박서라와 21살의 추미래) 덕분에 예전 우리 팀보다 분위기가 더 밝고 명랑해졌다.

포에버마트 인수준비 위원회는 실무 책임자인 조기훈 차장 밑에 두 개의 팀을 만들어 운영하기로 했다. 팀장급 멤버가 두 명이니 어쩔 수 없는 측면도 있지만, 효율성을 생각해서라도 팀을 나눌 필요는 있었다.

정지영 과장, 성윤권, 추미래는 나와 같은 팀이 되었다. 윤권이 녀석은 내 보디가드 역할을 같이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팀으로 보낼 수가 없었다.

그리고 김수현 팀장의 팀원은 신당봉 과장, 태준호 대리, 박서라 이렇게 세 사람으로 구성되었다. 신당봉 과장과 태준호 대리는 둘다 성격이 서글서글해서 어딜 가나 잘 지낼 사람들이고, 박서라는 김수현 팀장과 닮은 점이 많아 보여서 보고 배우라는 의미로 같이 붙여뒀다.

“새로운 동료들은 어때?”

팀이 나뉘고 가장 먼저 한 건 팀원들과의 면담이었다. 정지영 과장이야 ‘믿고 맡긴다. 앞으로 잘해보자.’라는 격려면 충분했다. 윤권이야 같이 살고 있는 상황이니 따로 이야기를 나눌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추미래는 다르다. 나이도 가장 어리고, 유일한 고졸 직원이기도 하다. 박서라도 냉정하게 따지면 고졸이긴 해도 다음 학기만 무사히 마치면 어엿한 대졸자가 된다. 그녀는 밝게 웃으며 직장생활을 하고 있지만, 괜스레 마음에 걸렸다.

“그럼요. 다들 막내라도 많이 챙겨주셔서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새로운 일은 재미있고?”

“네. 팀장님. 어려운 게 많긴 하지만 정 과장님하고 태 대리님이 하나하나 친절하게 설명해주셔서 즐겁게 배우고 있어요. 하루하루 실력이 늘어나는 것 같아서 회사 다니는 게 정말 재미있어요.”

“준호가? 그 녀석은 팀도 다른데?”

“아···. 팀은 달라도 같은 사무실에 있기도 하고, 그··· 그리고 막내에서 해방시켜줘서 고맙다면서 여러 가지로 많이 도와주세요.”

요것들 봐라. 말하는 분위기가 뭔가 야릇했다. 추미래가 준호 이야기를 하면서 말을 더듬는 거도 얼굴을 살짝 붉히는 것도 수상해 보였다. 같이 일하게 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눈이 맞은 건가? 아니면 첫눈에 반해 혼자 짝사랑이라도 시작한 건가?

풋풋한 스물한 살 나이의 추미래는 아직 순수함이 많이 남아서 그런지 자기감정을 얼굴에 다 드러냈다. 우리 동지그룹이 사내 연애를 금지하는 것도 아니고, 남의 연애사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게 속 편하다는 게 평소 내 생각이기 때문에 일단은 그냥 모른 척했다.

“녀석이 좀 친절하긴 하지. 예전에 강소현이라는 여자애가 같은 팀에 있었는데, 되게 미인이었거든. 그때도 준호가 많이 도와줬어. 녀석이 후임인데도 불구하고 말이야.”

“태 대리님이요?”

모른 척 넘어가기는 하지만 슬쩍 심술을 부려봤다. 내 말에 추미래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그냥 말이 그렇다는 거지. 강소현이 준호 선임인데, 당연히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야지 않겠어? 녀석이 진짜 신 났나 보네. 이렇게 적극적으로 미래씨 일을 도와주고 말이야.”

“아··· 그래요?”

이번에는 또 안도의 한숨을 쉰다.

흐흐흐. 표정이 금방금방 드러나는 그녀를 놀리는 재미가 쏠쏠했지만, 여기서 더 놀렸다간 눈물이라도 흘릴 것 같아 참기로 했다.

“그런데 미래씨. 이번 포에버마트 인수업무가 끝나면 어떡할 거야.”

“계속 팀장님 밑에서 열심히 일하면 안 되나요?”

“당연히 그래야지. 그런데 이번 일만 잘 마무리하면 본사로 돌아갈 것 같거든.”

“네? 그게 정말인가요? 하지만 동지그룹 본사는 진짜진짜 엘리트들만 근무하는 곳이라고 들었는데요. 제가 따라갈 수 있어요?”

“물론 데려갈 거야. 미래씨는 내 수제자잖아. 게다가 나중에 책을 내려면 미래씨가 지금도 열심히 끄적이고 있는 그 메모장이 필요하다고.”

“저야 감사하지만, 혹시 팀장님에게 누를 끼치는 건 아닐까요?”

“괜찮아. 괜찮긴 한데, 그냥 지금처럼 지내서는 본사에서 살아남기 힘들 거야. 지금보다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해.”

“노력이라면 자신 있어요. 밤잠을 줄여서라도, 코피가 터질 때까지 열심히 노력할게요.”

추미래는 반드시 해내겠다면 두 주먹을 불끈 쥐며 다짐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런 노력 말고, 자기계발이 필요해.”

“어떤 자기계발이요?”

“이런 말, 고깝게 듣지는 말았으면 좋겠어. 그런데 미래씨에게는 필요한 이야기야. 그냥 열심히 일하는 것 말고, 공부를 해야지. 방송통신대학을 다니든, 야간대학을 다니든 뭔가를 배우고 익혀서 전문성을 키워야 해. 그리고 대학 졸업장 간판도 필요하고. 더럽고 아니꼽지만, 실력보다 간판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대한민국이거든. 미래씨가 할 생각이 있다면 내가 최대한 도와줄 생각이야.”

“할게요. 팀장님. 정말 매번 감사드려요. 팀장님 아니었으면 그냥 평범한 비정규직 직원으로 살았을 거예요. 이렇게 빨리 정직원이 된 것도 감사한데 대학 공부까지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다니 어떻게 감사 인사를 드려야할지 모르겠어요. 욕심 내도 괜찮은지 모르겠지만, 할 수 있다면 할게요. 그리고 열심히 해서 팀장님에게 받은 은혜 꼭 갚을게요.”

나도 추미래에게 이렇게 호의를 배푸는 이유를 정확하게 잘 모르겠다. 훌륭한 제자를 둔 스승의 기분이 이럴까? 보는 것 없이 미운 사람이 있고 그냥 자꾸 잘해주고 싶은 사람이 있는데 추미래가 내겐 그런 사람이다.

“그 말 꼭 기억해둘게. 그런데 나중에 후회할지도 몰라. 내가 너무 악랄하게 부려 먹는다고. 하하하”

***

“아직 땅콩 스캔들이 완전히 수습되지 않은 상황에서 협상이 길어져 봐야 와룡그룹만 손해를 봅니다.”

우리 측 협상 책임자는 고현호 이사, 와룡그룹 협상 책임자는 박호준 상무였다.

그러나 두 사람은 금액을 가지고 아웅다웅하는 천박한(?) 싸움에 끼지 않고 다른 곳에서 고상하게 차를 마시며 담화를 나누는 중이다.

당연히 협상은 아랫것들의 몫. 우리는 한 푼이라도 더 깎으려고 노력하고, 저쪽은 한 푼이라도 더 받으려고 노력해야 하는 상황. 그런데 우리에게는 강력한 무기가 하나 있었다. 바로 와룡그룹의 포에버마트 매각금액 마지노선을 이미 알고 있다는 사실.

딱히 서두를 필요가 없었다. 게다가 아직 땅콩 스캔들로 여전히 세상이 시끄러운 덕분에 시간도 우리 편이었다. 그냥 계속 금액을 깎으며 우리가 원하는 액수까지 기다리면 그만이다. 지금 가장 조급한 건 우리가 아니라 와룡그룹이었다.

“땅콩 스캔들이라니요. 말이 너무 심한 것 아니오?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크흠···”

나의 뼈있는 한 마디에 와룡그룹 실무 책임자가 발끈하고 나섰다.

“죄송합니다. 사람들이 하도 땅콩 땅콩 거리길래 저도 모르게 땅콩이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그럼 뭐라고 불러야 할까요? 박연하 전무 사태? 와룡그룹 갑질 사건? 뭐 이런 게 어울리려나요?”

“뭐라고요? 이보세요. 마동수 팀장. 지금 우리를 조롱하는 겁니까?”

“죄송합니다. 우리 마 팀장이 사람은 안 그런데, 말투가 좀 투박합니다. 제가 미리 주의를 줬어야 하는데···. 이봐. 마 팀장. 아무리 그래도 그런 말을 쓰면 되나. 어서 사과드려!”

“죄송합니다. 자꾸 입에 배서. 앞으로는 조심하겠습니다.”

절대 생각 없이 내뱉은 말이 아니다.

지금 나와 조기훈 차장은 서로 짜고 일명 ‘나쁜 경찰 착한 경찰’ 놀이를 하는 중이다.

나쁜 경찰 착한 경찰 전략은 원래 범죄 심문의 한 기법이다.

심문하는 경찰관을 두 명(혹은 두 부류)로 나눈다. 그리고 한 명의 심문관은 범죄자를 심문할 때 강하게 압박하기 시작한다. 마치 이미 범죄자가 저지른 일은 모두 안다는 듯이 말하며 입을 다물고 진술을 거부해도 결국은 소용없을 것이라는 식의 말을 하며 범죄자를 압박하게 된다. 강하게 압박을 하는 경찰관을 보며 범죄자는 역으로 반발심을 가지게 되어 오히려 진술을 더욱 거부하게 된다. 이렇게 범죄자에게 압박감을 주어 진술을 어렵게 만드는 역활을 하는 심문관이 바로 나쁜 경찰의 역할이다.

나쁜 경찰의 주된 목적은 범죄자의 감정적인 면을 자극 시킴과 동시에 그의 반발심을 키워 나쁜 경찰에게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하는 데에 있다. 범죄자가 흡연하는 것을 알아도 나쁜 경찰은 절대 담배를 권하지 않는다. 어쩌면 범죄자에게는 담배를 권하지 않으면서 자신은 그 앞에서 담배를 피우며 심문을 할 수도 있다. 나쁜 경찰의 말투는 강압적으로 권위적이며 범죄자를 자신의 아래로 보는 듯한 태도를 보인다. 나쁜 경찰의 이러한 모든 언어적, 비언어적 행동은 심문을 받는 범죄자에게 반발심을 가지게 하고 절대 진술을 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머릿속에 심게 만든다.

나쁜 경찰이 심문을 한 뒤 마치 범죄자를 어쩔 수 없다는 태도로 자리를 뜨게 되면 새롭게 다른 심문관이 등장하게 된다. 여기 새롭게 등장하는 심문관이 바로 착한 경찰이다. 착한 경찰의 주된 목적은 오직 하나이다. 바로 자신이 심문하는 범죄자에게서 자백진술을 받아내는 것.

그러기 위해 착한 경찰의 역할을 맡은 심문관은 앞서 심문을 했던 나쁜 경찰과는 정반대의 입장을 취한다. 착한 경찰은 매우 부드러운 말투로 범죄자를 대하고 그가 요구하는 사소한 부탁 정도는 아무렇지 않게 들어준다. 가령 범죄자가 담배를 원하는 착한 경찰은 아무런 조건 없이 담배를 건네주기도 한다. 착한 경찰의 말투는 범죄자와 자신이 평등하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권위적이지 않고 어쩌면 마치 친구나 가족과 같은 말투로 대화를 이어나간다. 그러면서 착한경 찰은 나쁜 경찰과 범죄자가 나눈 대화에서 가졌던 범죄자의 반발심에 감정으로 호소할 것이다. 범죄자가 저지른 범죄를 이해하며 피해자들이 겪고 있는 고통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그와 유사한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서 범죄자의 감정에 호소한다.

범죄자가 착한 경찰에게 마음을 열고 진술이 아니더라도 일상적인 대화를 시작하게 되었다면 착한 경찰은 잠시 자리를 뜬다. 여기서 다시 나쁜 경찰이 범죄자를 심문하게 되는데 나쁜 경찰의 태도는 전과 다를 바가 없이 범죄자를 압박하기만 한다. 범죄자는 자신을 옥죄여오는 나쁜 경찰에 대한 반발심을 더욱 키우게 되고 이와 정반대인 착한 경찰을 떠올리게 된다. 나쁜 경찰의 강한 심문을 받은 범죄자는 결국 나쁜 경찰에 대한 반발심으로 이렇게 말할 것이다.

‘당신에게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을 거야. 아까 그 사람을 불러. 그 사람에게 모두 말하겠어.’

협상이니 방식이 약간 달라지겠지만 나와 조기훈 차장도 그런 효과를 노리고 있었다. 처음부터 이렇게 나갈 생각은 없었지만, 저들이 처음부터 너무 고자세로 나왔다. 하루빨리 처리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저렇게 여유를 부리는 모습을 보며, 혹시나 하며 준비했던 전략을 실행에 옮기게 됐다.

“앞으로 말을 조심해 주시오. 모욕을 받아가면서까지 협상을 계속 할 마음은 없소.”

“거참. 하루가 다르게 포에버마트 주가가 똥값으로 떨어지고 있는데, 그놈의 허세는. 우리 말고는 포에버마트 인수할 곳도 별로 없는데 말이야.”

“뭐야? 마동수 팀장. 지금 뭐라고 그런 거요.”

나는 혼잣말을 하는 것처럼 큰 소리로 이야기했다. 사과를 해놓고 그들을 다시 한 번 도발한 것이다. 당연히 가만히 있을 그들이 아니다.

“아···. 그냥 혼잣말이니 신경쓰지 마십시오.”

“허세 어쩌고 했지 않소! 지금 우리가 만만해 보이오? 아무리 흔들려도 동지그룹보다 두 배 이상 더 큰 기업이 우리 와룡그룹이오. 그쪽이 무시할 수 있는 곳이 아니란 말이오.”

“그냥 넘어가시죠. 그냥 혼잣말인데 그렇게 심각하게 반응할 건 없잖습니까?”

“이봐요. 조기훈 차장. 지금 동지그룹의 행동은 우리와 협상을 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도 되겠지요? 분명히 말하는데 우린 절대 저 무뢰한 마동수 팀장이 있는 자리에서 협상을 하지 않을 거요. 알아들었소?”

와룡그룹 협상 대표가 붉으락푸르락한 얼굴로 조기훈 차장에게 항의를 했다.

그런 그의 모습에 나는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동안 저 말이 나오길 기다리며 계속 그를 자극한 것이다.

============================ 작품 후기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편안한 밤 되세요~~

가시는 길에 선추코도 부탁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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