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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가 전부는 아니야-299화 (299/424)

00299  소제목 추후 결정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

Rrrr

“네. 박호준입니다.”

협상 대표로 오늘 협상 준비를 하고 있던 박호준 상무는 휴대전화에 찍힌 고현호 이사의 이름을 보며 찝찝한 기분이 느껴졌다. 조금 이따 만나서 이야기하면 될 일인데, 굳이 전화를 한다는 건 뭔가 급하게 전달해야 할 일이 생겼다는 의미였다.

그렇지 않아도 포에버마트에서 잘린 인사부장의 자살시도 소식에 골치가 아픈 상황이었다.

“ 안녕하십니까. 상무님. 저 고현호입니다.”

“네. 고 이사님. 조금 있으면 만날 건데 무슨 일로 전화를···.”

“ 상무님도 들으셨겠죠? 포에버마트에서 인사부장으로 있었던 봉일구라는 분 때문에 인터넷이 지금 떠들썩하다고 합니다.”

역시나 그 이야기였다. 그걸 빌미로 협상 가격을 낮추려고 한다면, 거절하기가 어려웠다. 지금 이사회에서는 긴급 회의를 하고 있지만, 뾰족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고 들었다. 용역 비리까지 터졌으니, 한시라도 빨리 포에버마트를 파는 게 그나마 지금 기댈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었다.

“네···. 안타까운 일이죠. 생명에 지장이 없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입니다.”

“ 그렇긴 한데, 포에버마트 입장에서는 다행이라고 안도하며 끝내긴 어려울 것 같더군요.”

“그건 그냥 일시적인 현상입니다. 오해로 인해 벌어진 일이니까요. 그 사건은 금방 수습될 거니 용역 비리에 대해서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금방 수습?

고현호 이사는 별일 아닌 것처럼 말하는 박호준 상무의 말에 황당함을 느꼈다. 누굴 바보로 아는 것도 아니고···. 지금 그 사건으로 세상이 온통 떠들썩한데, 강성 단체까지 행동에 나설 것처럼 보이는 상황이 일시적인 현상?

‘미친 놈.’

속에서 욕이 절로 나왔다.

“ 흠···. 그래요? 정말 금방 수습이 가능하십니까?”

“물론입니다. 하루 이틀만 지나면 거짓말처럼 조용해질 겁니다.”

“그거 정말 다행이군요. 그럼 협상은 상황이 완전히 수습된 뒤에 하도록 하시죠.”

“···네?”

박호준 상무는 고현호 이사가 말에 당황했다. 대충 시비를 걸다가 협상에 유리한 고지를 점령할 줄 알았지, 이런 식으로 강경하게 나올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호랑이는 토끼를 사냥할 때도 최선을 다한다고 합니다. 용역 비리 사건 재점화가 상무님이 생각할 땐 사소해 보일지 몰라도, 자칫 쉽게 봤다가 박연하 전무가 했던 실수를 다시 범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지금은 포에버마트 매각 협상보다는 사건 수습에 최선을 다하셔야죠. 괜히 우리 때문에 신경을 분산해서야 되겠습니까?”

박연하 전무가 했던 실수가 결국 땅콩 스캔들이다. 고현호 이사는 상대를 배려한 듯 돌려 말했지만, 사실은 돌직구보다 더 아프게 꼬집었다.

“굳이 그런 것까지 신경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래도 신경이 쓰이네요. 어쨌든, 하루 이틀 후에 상황이 어느 정도 진정되면 그때 다시 협상을 재개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이만 전화 끊겠습니다.”

딸칵!

고현호 이사는 그렇게 자기 할 말만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송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통화 종결음이 박호준 상무에게는 천둥소리보다 크게 들렸다.

“빌어먹을! 뭐야 이게. 그냥 인수가격 낮춰보자고 수작부리는 거 아니었어? 미친!”

상대의 마음이 진심이라는 걸 깨달은 박호준 상무는 애꿎은 휴대폰에다가 신경질적으로 화풀이했다.

“형님. 무슨 일입니까?”

옆에서 통화하는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던 박호철 이사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고현호 이사. 네 친구라고 했지? 어떤 녀석이야?”

“현호요? 좋은 녀석이죠. 저와는 성격적으로 잘 맞고, 이야기도 잘 들어주고. 또···.”

“그런 걸 물은 게 아니야. 세간의 평가는 어떻지?”

“글쎄요···. 아! 예전에 동지그룹 회장님이 현호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고 하더군요. ‘현호가 나를 닮아 독한 구석이 있었다면 동지그룹 후계자는 벌써 녀석이 됐을 거다.’라고요. 조금 우유부단한 성격이라는 평이 많았어요.”

“뭐? 우유부단?”

박호준 상무는 이복동생의 말에 기가 찼다. 이렇게 전격적으로 협상 중단을 선언한 고현호 이사가 우유부단하다는 건, 지나가는 개가 웃을 일이었다.

“네. 같이 어울리는 친구들은 다들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던데요. 착하다, 부드럽다, 배려심이 많다. 대충 이런 평이 많아요. 좋게 말하면 그런 의미지만, 나쁘게 말하면 우유부단하다는 의미가 아닐까요? 그런데 무슨 일로 그러세요?”

“고현호 이사가 협상 중단을 선언했어.”

“네? 갑자기 왜요?”

“용역 비리 사건 다시 불거진 게 마음에 걸린대. 그 사건이 수습되면 협상은 그때 다시 하자고 하더라.”

“네에? 그런 말도 안 되는···. 지금 이사회에서는 우리가 하루빨리 포에버마트 매각하는 것만 눈 빠지게 기다리고 있을 텐데요. 어떻게 하죠, 형님? 제가 현호에게 전화해서 사정해볼까요?”

“전화해서 뭐? 제발 사달라고 빌어보려고? 아서라.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니지. 그룹 사이의 일에 감정으로 호소해봤자 우스운 꼴만 당해.”

협상에서 상대방에게 사정을 한다는 건 오히려 역효과만 볼 수 있다.

“그럼 어쩌려고요. 거절하지 못할 제안을 해야지.”

“무슨 좋은 방법이 있어요?”

“어쩌긴 가격을 후려치는 수밖에. 완전히 철수하면 곤란하니까, 넌 일단 고현호 이사랑 만나서 시간 좀 벌고 있어. 난 그동안 회장님에게 전화해서 구두로라도 허락을 받아 볼 테니.”

“알겠어요. 형님.”

Rrrr

박호철 이사가 사뭇 비장한 얼굴로 고현호 이사를 만나러 나가자, 박호준 상무는 크게 심호흡을 한번 하고 와룡그룹 회장실 직통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 네. 와룡그룹 회장실입니다.

“나, 박호준 상무입니다. 회장님과 급히 통화할 일이 생겼습니다.”

- 무슨 일인지 알 수 있습니까? 상무님.

급하다고 말을 했지만, 전화를 받는 상대는 깐깐하게 무슨 일인지 용무부터 확인했다.

“동지마트와 협상에서 문제가 생겼어요. 그쪽에서 방금 터진 봉일구 전 인사부장 자실미수 사건을 걸고넘어졌는데, 입장이 생각보다 너무 단호합니다. 이대로 협상단을 철수할 분위기라 급히 허락을 얻으려고 전화했습니다.”

- 알겠습니다.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상무님.

상대의 말이 끝나자 송화기를 통해 조용한 클래식 음악이 들려왔다. 전화가 연결되는 그 잠깐의 시간 동안 마음은 더욱 초조해졌다. 용역비리 사건이 갑자기 튀어나오는 바람에 여기서 만약 포에버마트 매각이 실패한다면, 그 책임은 전부 박호준 상무에게 전가될 수도 있는 상황이 되었다.

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처지가 된 그는 초조한 마음에 신경질적으로 입술을 물어뜯었다. 마음이 심란하면 생기는 그의 버릇이었다. 나이가 들면서 고쳤다고 생각했는데, 상황이 이렇게 되자 옛날 버릇이 다시 튀어나왔다. 그만큼 마음이 불안하고 초조하다는 의미였다.

- 그래 나다.

억겁과 같은 기다림이 끝나고 강단 있는 저음의 목소리가 들렸다.

“네. 회장님. 문제가 생겨서 전화드렸습니다.”

- 이야기 들었다. 원하는 게 있으면 일단 말해 보거라.

“난데없는 자살미수 사건으로 그렇지 않아도 안 좋은 그룹 이미지가 더욱 나빠졌습니다. 모든 게 포에버마트 때문입니다. 그런데 동지에서 상황이 악화되자 겁을 먹었는지 협상장에서 철수하겠다고 합니다. 사건이 진정되면 다시 재개하자고 하는데, 지금 당장 진정시킬 마땅한 방안을 이사회에서도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 그래서?

“여론을 진정시키려면 이젠 정말 포에버마트 매각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려면 동지그룹의 마음을 돌려야 하는데, 결국 가격을 지금보다 더 낮춰야 할 것 같습니다.”

- 흠···. 필요하다면 해야겠지. 얼마를 생각하고 있는 거냐?

“원래 처음 계획은 최소 3조 3천억 원이었습니다. 그런데 상황이 바뀌었으니 아무래도 천억 원 정도는 더 손해를 봐야 할 것 같습니다.”

- 하려면 확실하게 해야지. 오늘 당장 인수발표를 하는 조건으로 3조 1천억을 제시하거라. 연하 일도 미적거리다 사건을 키운 게 실수였어. 두 번 다시 그런 실수를 하면 안 돼. 그러니 손해를 더 보더라도 확실하게 마무리할 수 있도록!

“알겠습니다. 회장님. 그 정도 조건이면 동지그룹도 혹할 것 같습니다.”

박경태 회장의 재가를 받은 박호준 상무는 그제야 안도를 했다. 그의 말처럼 박연하 전무의 일은 너무 미적거리다가 오히려 큰 손해를 봤다. 같은 실수를 한 번 더 한다면 그땐 정말 와룡그룹이 휘청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천억 원 아끼려다 더 큰 손해를 본다면 바보 짓이었다. 확실히 와룡그룹 총수다운 스케일이며 선택이었다.

박호준 상무는 박경태 회장과의 통화를 마무리하고 재빨리 동지그룹 대기실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혹시라도 협상단이 철수한 건 아닌지 마음이 급했다.

“정말 믿어보라니까 그러네.”

“호철아. 이건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그리고 공과 사는 분명히 해야지. 아무리 네가 내 친구라도 들어줄 수 있는 부탁이 있고 못 들어주는 부탁이 있어. 한두 푼도 아니고 수조 원이 걸린 일에 사사로운 감정을 개입할 순 없어.”

“그것참. 사사로운 감정에 호소하는 게 아니라, 진짜 조만간 해결될 일이라서 그런 거야. 금방 해결될 일 때문에 협상을 뒤로 미루는 건 시간 낭비잖아.”

“하지만 그건 네 주장일 뿐이야. 확실하게 해결해. 그럼 그때 가서 다시 협상에 임할 게. 그게 아니라면 나도 힘들어. 미안해. 호철아.”

고현호 이사가 머무르는 방 앞에서 노크를 하려는데, 두 사람이 목소리가 들렸다. 누가 봐도 생떼였지만, 협상단이 철수하지 못하도록 시간을 끌고 있는 건 다행이었다. 박호준 상무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노크를 했다.

똑똑똑.

“네. 들어오세요.”

“접니다. 고현호 이사님. 이거 동생이 실례를 하고 있었군요.”

“아···. 박 상무님. 오늘 일은 정말 죄송합니다. 어떻게 보면 직접 얼굴을 보고 말씀을 드렸어야 했는데···.”

“아닙니다. 고 이사님. 그 마음 충분히 이해합니다.”

“혹시 박 상무님도 제 마음을 돌리러 오신 거라면, 죄송하다는 말 말고는 들릴 말이 없습니다.”

고현호 이사는 박호준 상무의 출현에 짐짓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마음을 돌리러 온 건 맞습니다. 그런데 그냥 무작정 사정을 하러 온 건 아닙니다. 솔직하게 말하리다. 지금 우리 와룡그룹? 위기 맞습니다. 오늘 아침 용역비리 뉴스는 엎친 데 덮친 거나 마찬가집니다. 그래서 이 자리에서 한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합니다. 포에버마트 3조 1천억 원에 팔겠습니다.”

“3조 1천억이요?”

“단, 조건이 있습니다. 협상을 마무리하고, 포에버마트 매각을 오늘 저녁에 발표하는 겁니다. 물론 오늘 모든 계약을 마무리짓는 건 불가능하겠지만, 언론 발표만 오늘 해준다면 방금 말한 그 가격에 포에버마트를 넘기겠습니다. 어떻습니까?”

드디어 기다렸던 이야기가 나왔다. 마동수 팀장이 했던 상황이 그대로 재연되고 있었다.

박호철 이사가 자신의 방에 찾아와 생떼를 부릴 때부터 시간을 끌고 있다는 걸 느꼈다. 그래서 일부러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설렁설렁 말상대를 해주고 있었다.

용역비리 사건이 다시 불거진 게 부담이 되었지만, 예상보다 2천억 원을 더 아낄 수 있는 걸 생각하면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는 위험이었다.

고현호 이사는 생각에 잠긴 척 잠시 턱을 쓰다듬었다. 박호준 상무와 박호철 이사가 자신을 뚫어지라 바라보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잠시 후 생각하는 척(?)을 모두 끝낸 그가 고개를 들고 두 사람을 바라봤다. 두 사람의 눈에는 긴장감이 가득해 보였다.

“3조 1천억. 좋습니다. 상황이 바뀌어서 좀 불안하지만, 감수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하하하. 잘 생각했습니다. 고 이사님. 원래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아니겠습니까? 그럼 곧바로 협상단을 불러 협상을 진행하도록 하시죠.”

============================ 작품 후기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포에버마트 회생 에피소드는 좀 더 빨리 진행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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