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05 소제목 추후 결정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모두 동작 그만. 지금 전화를 마지막으로 오늘 상담은 마무리한다. 나머지 상담은 동지마트 고객 상담실에서 일단 대신하기로 했다. 그래 봐야 지금은 계획만 잡아놓고 DJ마트 프로젝트는 접수는 한 달 후에 시작한다는 원론적인 이야기겠지만, 그래도 여러분이 일도 안 하고 온종일 전화통만 붙들고 있는 것보단 낫겠지.”
DJ마트 프로젝트를 성공하려면 팀의 모든 역량을 집중해도 부족할 판인데 몰려오는 전화 상담에 정작 해야 할 일은 손도 못 대고 있었다. 이러다 될 일도 안 되겠다 싶은 위기감 들어, 응암슈퍼 유동훈 사장을 만난 다음 날, 출근하자마자 고현호 사장과 담판을 지었다.
지금 당장 뾰족한 해결책이 없는 우리로서는 원론적인 설명뿐이라고 해도, 동지마트 상담팀이 DJ마트 프로젝트에 관해 설명하는 게 가장 효율적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다행히 상담부서에 문의 결과, 포에버마트가 우리 동지마트와 합병돼 상담원이 많이 늘어난 덕분에 이번 일을 충분히 소화할 수 있다는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만세!”
방금 상담을 마쳤는지 짧은 휴식을 취하고 있던 정지영 과장이 가장 먼저 환호를 보냈다. 다른 사람들 얼굴에도 화색이 도는 걸 보니, 그들도 온종일 전화통만 붙들고 있는 게 상당히 고역이었던 모양이다.
“좋아할 거 없어. 본격적인 일은 이제부터 시작이니까. 전화 상담 마무리되는 대로 전부 회의실에 모이도록 해.”
잠시 후 추미래를 마지막으로 모든 상담을 마친 직원들이 회의실로 모이자, 나는 우선 DJ마트의 예능 TV 출연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했다. 간간이 세부내용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사람은 있었지만, 표정 자체는 다들 긍정적이었다.
“러브 하우스와 비슷한 포맷이라···. 정말 좋은데요?”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꼭 러브 하우스 포맷이 아니라도, 예능 TV에 출연만 할 수 있다면 그게 뭐가 됐던 효과는 충분히 볼 수 있을 거예요.”
“그래. TV에 출연하는 자체만으로도 효과는 어느 정도 볼 수 있을 거야. 하지만 이왕이면 제대로 이슈를 몰고 와야 하지 않겠어? 그러려면 화제성이 있는 콘셉트가 필요해. 대중들이 한 번 흥미를 느끼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우리가 따로 힘을 들이지 않더라도 알아서 굴러갈 거야. 그래서 처음이 중요해. 처음 가게가 대중들의 관심을 제대로 받을 수 있어야 그다음 가게도 기대심리로 계속 보게 되지 않겠어?”
“그럼 첫 번째 가게 선정이 매우 중요하겠네요?”
“그렇지. 그래서 나는 이번 프로젝트의 첫 번째 가게로 응암슈퍼를 선정했어.”
“응암슈퍼요?”
“그래.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어. 그렇다고 친분 때문에 생각 없이 그곳을 선정한 건 아니야.”
“당연히 그렇겠죠. 수조 원이 들어간 포에버마트 인수의 성공적인 발걸음을 위한 첫 삽인데, 팀장님이 허투루 생각 없이 가게를 선정하진 않았을 거라 믿어요.”
혹시나 오해할까 사족처럼 추가 설명을 남겼는데, 정지영 과장이 내 선택을 지지해줘서 고마웠다. 김수현 팀장의 팀을 비롯해 ‘조기훈 차장과 아이들’이라고 할 수 있는 우리 멤버들의 최고 장점이 바로 서로에 대한 신뢰였다.
“그렇게 생각해주니 고마워. 슈퍼 규모도 적당하고, 3-마트가 들어서면서 매출에 상당한 타격을 입었다는 것도 꽤 매력적인 스토리가 될 거야. 우리는 SSM뿐만 아니라 대형할인마트와의 경쟁에서도 어느 정도 선전할 수 있는 동네슈퍼를 목표로 해야 해. 한국처럼 좁은 땅덩어리에서 대형할인마트가 전혀 영향을 끼치지 않는 동네슈퍼는 거의 없다고 봐야지. 그리고 그런 곳이 우리 DJ마트 프로젝트에 신청할 리도 없어.”
“흠···. 대형할인마트와의 경쟁에서도 선전한다? 동네슈퍼는 근접성에서 유리한 측면이 있으니 불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다른 변수가 없다면 한번 해볼 만할 것 같아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변수가 하나 있어.”
“그게 뭔데요?”
“응암슈퍼에서 100미터 떨어진 곳에 프리데이가 생긴다고 하더라. 아직 반년 정도의 시간은 있지만, 우리에게 좋은 소식은 아니지.”
“프리데이가요? 그건 정말 골치 아픈 소식인데요. 걔들은 무슨 할 일이 없어 3-마트 근처에 슈퍼를 차린대요?”
“내가 그놈들 속을 어떻게 알겠어. 어쨌든 돈이 된다고 판단한 거 아니겠어? 다른 곳도 아니고 3-마트가 제 살 깎기 같은 바보짓을 할 리가 없잖아.”
“방법은 있으세요?”
“찾아봐야지. 그래도 우리에게 유리한 건 있어. 걔들은 새로 짓고 있는 건물에 프리데이를 입주할 계획이기 때문에 빨라도 몇 달은 걸려. 대신 우리는 기존에 있는 응암슈퍼를 리뉴얼해서 사용하면 되잖아. 시기적으로 우리 DJ마트가 훨씬 빨라.”
“호호호. 왠지 기분 좋은 징조인데요? D&Y 피트니스 클럽 첫 번째 부지를 선정할 때 느낌이랑 비슷하잖아요.”
정지영 과장의 말처럼 상당히 비슷한 측면이 있긴 하다.
목동에 대형스포츠센터를 설립할 계획은 우리가 아니라 가야그룹이 먼저 발표했었다. 그리고 그들의 신공법으로 건축 기한을 단축시킬 수 있다는 발표까지 하는 바람에, 당시 우리 팀은 상당한 위기에 처했다.
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당시 미래백화점 철거부지를 재빨리 인수했고, 간단한 리노베이션만 거쳐 가야그룹보다 빠르게 D&Y 피트니스 센터를 오픈할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죽을뻔한 위기를 겪기도 했지만, 그런 고생 덕분에 가야그룹을 완전히 누르고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그래. 생각하기 나름이야. 그러니 정 과장 말처럼 긍정적으로 생각하자고.”
“그렇죠? 역시 제가 좀 긍정적이긴 해요. 호호호. 그런데 팀장님. 이러니저러니 해도 가장 중요한 건 역시 방송이잖아요. DJ마트 프로젝트가 확실히 방송에 탈 수 있는 건가요?”
“무조건 되게 해야지. 아까도 이야기했잖아. 수조 원이 들어간 프로젝트라고. 안 되면 그룹 역량을 총동원해서라도 가능하게 만들 거야. 그러니 그 문제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말자. 우리는 그냥 방송이 나간다고 가정하고 거기에 맞춰 모든 일을 준비하면 돼.”
***
“안녕하십니까. 최 국장님.”
KBC 예능국 최 국장이 약속장소에 나타나자, 그를 기다리고 있던 김학수 부장이 공손하게 인사를 건넸다.
“미안해요. 김 부장. 내가 조금 늦었습니다. 많이 기다렸습니까?”
“아닙니다. 그렇게 오래 기다리지 않았으니 마음 쓰지 마십시오. 국장님 바쁘신 거야 세상 사람이 다 아는 일 아닙니까?”
“허허허. 세상이 다 알 정도로 바쁜 건 아닙니다. 저보다야 우리 예능국 피디들이 바쁘죠. MBS 방송국이 요즘 하는 프로그램마다 대박을 쳐서 우리가 좀 난처한 입장에 처했어요.”
“저는 개인적으로 KBC 예능이 저랑 잘 맞는 것 같아서 그런지, MBS의 선전이 의외였습니다.”
“이런···. 만약 우리 예능이 김 부장에게 정말 잘 맞았다면, 그건 김 부장 취향이 꽤 ‘노땅’이라는 의미인데.”
“네? ‘노땅’이요?”
“그래요 ‘노땅’ 사람들이 그럽디다. MBS는 신선한 데 비해, 우리 KBC는 좀 고리타분한 편이라더군요.”
“고리타분요? 그건 절대 아닙니다. MBS의 프로그램들이 독특해서 잠깐 독자들의 흥미를 끌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KBC처럼 꾸준한 사랑을 받기는 힘들 겁니다. KBC는 전통의 프로그램이잖아요. 그러니 한 달 정도만 참고 기다리면 예전처럼 시청자들이 돌아올 겁니다.”
“김 부장. MBS에 밀리는 걸 그렇게 좋게 포장할 필요는 없습니다.”
“국장님도 제 성격 알지 않습니까? 저는 아닌 건 아니라고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저도 MBS 예능을 봤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하는 웃음 포인트는 대부분 남을 비하하거나, 골탕먹이거나, 배신하는 것과 같이 뭔가 좀 비인간적입니다. 처음에야 그런 모습을 신선하게 받아들일지 몰라도, 그런 포맷이 반복되면 시청자들은 금방 피로감을 느낍니다. 저는 그 기간을 많이 잡으면 한 달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김학수 부장은 정말로 그렇게 판단했었다. 그가 다른 방송국을 놔두고 굳이 KBC를 선택한 것도 그들의 그런 전통성과 올드함이 좋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신동엽의 러브하우스’ KBC 프로그램이라 처음부터 다른 선택지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정말 그렇게 생각했단 말입니까?”
“네. 물론 제 견해가 무조건 옳다고 말씀드리긴 어렵습니다. 하지만 제 판단은 그랬습니다. 잠시 피자나 파스타에 빠질 수는 있겠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의 주식은 결국 밥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KBC 프로그램은 그런 ‘밥’과 같은 존재라고 생각했습니다.”
최 국장은 김학수 부장의 말에 혼란감을 느꼈다. 비록 그가 예능의 전문가는 아니지만, 미디어 마케팅 분야에서는 한국 최고라는 평가를 받는 사람이다. 아무리 예능국에서 오랜 생활을 한 최 국장이라고 해도 그의 조언을 무시하기는 어려웠다.
“KBC가 ‘밥’같은 존재라고요? 표현은 정말 멋진데, 이미 상당수 프로그램을 개편하기로 결정을 해서···.”
“안 됩니다. 프로그램 개편이라니요? 설마 포맷까지 MBS를 따라 하려는 생각은 아니겠죠?”
“휴···. 어쩔 수가 없어요. 이사회에서 노골적으로 그런 요구를 해왔거든요. 아무래도 인기있는 몇몇 프로그램을 제외하고 대대적인 개편에 들어갈 것 같아요.”
“이사회까지 개입이라···. 국장님. 지금 상황에서 이런 말씀드리기 죄송하지만, 어차피 프로그램을 개편할 거라면 제가 제안하는 포맷을 사용해볼 생각은 없으십니까?”
“김 부장이 새로 개편될 프로그램을 제안한다고요? 대체 어떤···?”
“요즘 SSM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 동지마트는 그런 사회적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동네 슈퍼와 제휴해서 DJ슈퍼를 운영할 계획입니다.”
“DJ슈퍼는 SSM과 어떻게 다르길래 사회적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될 수 있다는 말입니까?”
“운영체제부터가 다릅니다. 그리고···.”
최 국장이 관심을 보이자, 김학수 부장은 자신이 준비해온 자료까지 건네면서 DJ슈퍼 프로젝트와 시범마트에 대해 설명을 시작했다.
“결국은 저들의 독특함을 따라 하지 말고, 전혀 다르게 복고풍으로 나가자는 의미인가요?”
“그렇습니다. 국장님. 지금 저들을 따라 해봤자 이인자에서 벗어나기는 어렵습니다. 다른 방송국을 따라 한다는 조롱도 피하기 어렵겠죠. 그럴 바에는 KBC의 원래 강점을 최대한 살리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흠··· 확실히 흥미가 동하는 제안이네요. 그런데 김 부장. 미안하지만, 이사회를 설득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에요.”
“국장님만 확실하게 지지해주신다면 이사회는 설득할 수 있습니다. 국장님도 눈치채셨겠지만, 제가 제안한 프로그램은 사실상 DJ마트의 간접광고나 다름없습니다. 그러니 프로젝트 성공을 위해 그룹 차원에서 나서줄 겁니다.”
“좋습니다. 안 그래도 MBS를 따라 하기가 찜찜했는데, 차라리 잘 됐습니다. 이사회 마음만 돌려준다면 최대한 빨리 방송편성을 받을 수 있도록 힘쓰리다.”
============================ 작품 후기 ============================
와. 생각보다 많은 독자님들이 생일을 축하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요 몇년 사이 가장 즐거웠던 생일을 보낸 것 같습니다.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