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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가 전부는 아니야-308화 (308/424)

00308  소제목 추후 결정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DJ마트 프로젝트는 아무 차질없이 차곡차곡 진행되었다. 그리고 DJ마트의 방송 출연도 별다른 어려움 없이 결정됐다. 김학수 부장의 역량에 동지그룹이 대놓고 지원을 하는데, 실패하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물론 어느 정도의 반대급부는 제공해야 했다. 자체적으로도 꽤 매력적인 프로그램이지만, 이번 KBC 예능 개편에 바로 끼워 넣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서 그룹 수뇌부는 KBC 이사회를 설득하는 카드로 급행료를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여기서 급행료란 뒷돈이 아니라 광고비를 의미한다. 방송국의 가장 큰 수입은 뭐니뭐니해도 광고다. 시청률이 중요한 이유도 결국은 광고 수익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이런 방송국의 생리를 생각했을 때, 검증되지 않은 프로그램을 내보내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은 역시 광고 수익의 보장이다.

우리 동지그룹은 일명 ‘미션 임파서블, 동네 슈퍼를 살려라.’로 명명된 이번 예능 프로그램의 안정성을 위해 앞으로 2달간 방송 앞뒤에 들어가는 모든 광고를 지원하기로 약속했다. 그리고 2달 후 시청률이 부진할 곧바로 종영하는 것에 합의했다.

솔직히 상당히 불리한 계약 조건이다. 예능이 나가는 시간대는 광고비용이 상당히 비싼 편이다. 그런데 한두 편도 아니고 프로그램 앞뒤에 들어가는 모든 광고를 두 달간 지원하기로 했으니, 금액만 따져도 수십억 원에 이르는 거액이다.

하지만 한때는 6조 원에 가까운 돈을 들여도 인수할 수 없었던 포에버마트를 온갖 꼼수를 동원해 3조 1천억 원에 사들인 게 우리다. 그런 성과를 생각한다면 수십억 원 정도는 별다른 어려움 없이 지원받을 수 있는 금액이다.

게다가 만약 ‘미션 임파서블, 동네 슈퍼를 살려라.’ 가 성공만 한다면 오히려 수백, 수천억 원 이상의 광고 효과를 얻을 수도 있으니, 시작도 하기 전에 광고비를 아까워할 필요는 없었다.

혹시나 걸림돌이 될 수 있었던 정부 또한 ‘미션 임파서블, 동네 슈퍼를 살려라.’ 에 대해 긍정적이었다. 단순히 긍정적인 입장만 표명한 게 아니라, 정부에서 만든 공익광고로 우리를 지원해주기로 약속할 만큼 적극적이었다.

정부까지 이렇게 나오니 DJ마트 프로젝트는 어떤 걸림돌도 없이 순풍을 탄 듯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방송은 화요일 11시로 결정되었다. 경쟁이 치열한 요일이 아니라서 무난한 재미만 줘도 어느 정도 시청률은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과 대신 주말 오후에 비해 화제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는 단점이 함께 있는 시간대였다.

MC도 정해졌다. 비슷한 포맷의 러브하우스는 신동엽이 진행했지만, 우리 프로그램은 이경구를 메인 MC로 선택했다. 아류라는 비아냥을 듣지 않기 위해서는 차별성이 필요했고, 그러면서도 비슷한 네임벨류의 진행자를 찾다 보니 이경구 말고는 다른 대안이 없었다.

그리고 드디어 DJ마트 응암점(응암슈퍼)의 첫 촬영이 시작되었다. 어느 정도의 확신은 있지만, 긴장이 되는 건 어떻게 할 수 없었다.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촬영장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시연이가 조용히 내 오른손을 잡아줬다. 따뜻한 그녀의 체온 덕분에 떨리는 마음이 조금씩 진정이 되었다.

시연이도 이번 방송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응원차 함께 하기로 했다. 내게는 행운의 여신이나 다름없는 그녀가 같이 가주면 반드시 성공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일부러 동행을 부탁했다.

이른 아침이라서 차는 그리 막히지 않았다. 큰 도로 옆 주차장에 차를 세운 후 심호흡을 한번 하고 촬영장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시연이가 조용히 다가와 팔짱을 꼈다. 멀리서 따뜻한 가을 햇살이 우리 두 사람을 반겼다.

촬영 소문이 퍼졌는지 DJ마트 응암점 앞에는 많은 사람들이 구경나와 있었다.

“사람이 엄청 많네요. 안에는 어떻게 들어갈 생각이에요?”

엄청난 인파를 보고 시연이가 걱정스레 물었다.

“괜찮아. 저기 뒤편에 가게 안으로 들어가는 후문이 따로 있어. 거기로 들어가면 돼.”

“아···. 다 와 가니까 왜 제가 다 긴장이 될까요?”

“그런가? 나는 시연이 네 덕분인지 이제 긴장이 거의 다 풀렸는데. 같이 와줘서 고마워.”

“당연히 와야죠. 저의 멋진 약혼자에게 아주 중요한 일인데, 제가 같이 응원해야지 않겠어요! 그런데 동수씨. 역시 제가 같이 있으니까 힘이 나죠?”

“물론이지. 너무 약발이 잘 받아서 다른 힘까지 불쑥불쑥 솟는 게 문제지만 말이야.”

“어휴···. 짐승. 어제도 그렇게 절 괴롭혀놓고는 요.”

“그런데 어쩌지. 또 괴롭히고 싶은데.”

“히잉. 그래도 지금은 안 되잖아요. 이따 끝나고 집에 가면···.”

시연이의 얼굴이 붉게 변했지만, 나의 장난스러운 요구를 거절하지는 않았다. 가끔은 먼저 유혹해 나를 깜짝 놀라게 할 때도 있다. 그러면서도 수줍은 듯 붉어지는 얼굴을 보면 견딜 수 없을 만큼 사랑스럽다.

“하하하. 약속했다. 아···. 오늘 촬영은 최대한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 우리 시연이랑 집에서 좋은 시간 보내게.”

“동수씨. 조금만 살살 이야기해요. 사람들이 듣겠어요.”

나는 그렇게 시연이에게 장난을 치며 긴장을 완전히 떨쳐냈다.

그런데 가게 후문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예기치 못한 사람을 만났다. 바로 나의 첫사랑이었던 미정이었다. 그녀와의 인연으로 알 게 된 곳이기에 혹시나 서로 마주치는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그렇지만 그날이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다.

처음 일 년은 의식적으로 피했고, 그 이후에는 우연이라도 마주친 적이 없었던 그녀. 예전에는 참 예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많이 늙어 보였다. 유모차를 잡고 있는 미정이의 옆에서는 아들로 보이는 꼬마가 그녀의 치맛자락을 꼭 잡고 있었다.

한때 내가 사랑했던 여자가 누군가의 아내가 되고 아이 엄마가 됐다는 사실이 기분을 참 묘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모른척하기도 이상해 살짝 목례를 하고 그녀를 지나쳐 가던 길을 계속 갔다.

“누구 아는 사람이에요?”

내가 인사 하는 걸 느꼈는지 시연이가 궁금한 얼굴로 물었다.

“응. 예전 동아리 친구.”

그냥 솔직하게 예전 내 첫사랑이라고 이야기할까 고민했지만, 그냥 단편적인 사실만 전했다.

“그럼 이야기라도 나누지 그랬어요?”

“같은 대학도 아니고. 그냥 신촌 연합 동아리였거든. 그래서 그렇게 안 친해. 모른척하기도 그래서 가볍게 인사만 한 거야.”

“친구라면서요?”

“친구? 그냥 동갑이라 친구라고 한 거지. 냉정하게 말하면 그냥 동아리 동기지. 그런데 예전에는 꽤 고왔던 것 같은데, 지금 보니 아줌마 다 됐다.”

“그래도 전 부러운 걸요.”

“뭐? 뭐가 부러워?”

“저도 아까 그분처럼 얼른 동수씨 아이를 가지고 싶어요.”

“뭐? 그럼 이따 집에 가서 한 번 만들어 볼까?”

“정말요? 정말 그럴까요?”

시연이는 농담이 아닌 듯 똘망똘망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헉!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잊고 있었다. 혼수로 아기를 만들어 보겠다는 그녀였는데 내가 잠시 방심했다.

“하하하. 농담이야. 농담. 나도 그러고 싶은데, 진짜 그랬다간 아버님에게 다리 몽둥이가 부러질지도 몰라. 게다가 우리 시연이는 이제 유명인이잖아. 공인으로서 사회적 모범을 보여야지 않겠어? 속도위반은 곤란해.”

“아···. 아쉽다. 빨리 결혼하고 싶은데. 그런데 동수씨.”

“응? 왜?”

“저, 잘하면 생각보다 빨리 아나운서가 될 수 있을 것 같기도 해요.”

“뭐? 어떻게?”

이제 대학교 2학년인 그녀가 벌써 아나운서가 되는 건 불가능하다. 그런데 갑자기 아나운서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니,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제가 올해부터 아나운서 준비를 하고 있잖아요. 스터디도 만들어서 같이 공부하고요.”

“그래. 좀 더 놀 거 놀고 준비하라고 해도 네가 고집을 피웠잖아.”

“가을 학기에 조기 졸업하고 바로 취직하려면 지금부터 준비해야 해요. 아무튼, 제 꿈이 아나운서라는 걸 어떻게 알았는지 KBC에서 연락이 왔더라고요.”

“뭐라고 연락이 왔어?”

“아나운서 인턴사원을 뽑는 데 지원할 생각이 없느냐고 그러던데요?”

“인턴? 경험 삼아 해보는 건 괜찮겠지. 그런데 그걸로 아나운서가 되는 건 아니잖아.”

“네. 저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특채처럼 뽑아 트레이닝 과정을 거친 다음에 결격 사유가 없다면 정식 아나운서로 발령이 내준다고 그랬어요.”

시연이의 설명을 듣는 데 뭔가 좀 이상했다.

솔직히 말하면 시연이의 상품성을 본 KBC가 재빠르게 스카우트를 하려는 움직임이 아닐까 의심이 들었다. 유명 작가에 잘나가는 CF 모델이기도 한 그녀. 인지도만 따지만 웬만한 유명 아나운서를 능가한다.

최근 들어 아나테이너라는 신조어가 생길 만큼 아나운서의 활동영역이 넓어졌고, 그래서 방송국은 자사 아나운서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인지도가 높다는 건 그만큼 활용가치가 높다는 걸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얼마 전 KBC로부터 이번 프로그램의 보조 MC로 시연이를 써보고 싶다는 제안을 받았었다. 아무리 보조라고 해도 동지마트 광고 모델이 ‘미션 임파서블, 동네 슈퍼를 살려라.’의 MC로 나오는 건 너무 노골적인 것 같아 그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했었다.

그런데 갑자기 시연이게, 아무리 인턴이라고 해도 아나운서 시험을 제안했다고 하니 의심이 들 수밖에 없었다.

“시연이 네 생각은 어떤데?”

“한번 해보고 싶기도 해요.”

“그렇게 되면 대학 생활을 제대로 즐길 수 없을지도 몰라. 마음 편하게 해외여행 다녀오는 것도 지난번이 마지막일 수도 있고.”

“합격해도 실제로 인턴을 시작하는 건 내년 봄부터니까 아직 여유는 있어요. 그리고 해외여행은 앞으로도 기회가 있을 거예요. 해외여행이 정말 좋긴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동수씨랑 오래 떨어져 있고 싶지는 않거든요.”

시연이가 기대에 찬 얼굴로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내가 먼저 하지 말라고 말릴 수는 없었다.

의도는 불순해 보여도, 그렇다고 불쾌한 건 아니었다. 시연이의 가능성을 보고 다른 방송사보다 먼저 손을 내밀었다고 생각한다면, 오히려 고맙게 생각할 수도 있는 일이다. 결국, 생각하기 나름이었다.

“인턴 시작한다고 해도 학교에서 무조건 수업을 빼주고 그러진 않을 거 아니야? 4학년 1학기야 관례상 리포트로 대신하겠지만, 3학년일 때는 학교 공부에 인턴까지 정말 힘들 수도 있어. 그래도 괜찮아?”

알아서 충분히 고민했겠지만, 혹시나 싶어 한 번 더 확인했다. 그러나 시연이의 눈빛은 흔들림이 없었다.

“네. 각오하고 있어요. 그런데 동수씨. 정말 잘 됐어요.”

“뭐가?”

“올해 초부터 미리미리 공부해두길요. 아무리 기회가 좋아도 준비가 안 되어 있었으면 말짱 도루묵이잖아요.”

“시험이 언제지?”

“11월 중순이요.”

“그럼 정말 얼마 안 남았네. 합격할 자신은 있고?”

“지금까지 열심히 해왔어요. 그리고 남은 한 달여 시간도 열심히 해야죠. 후회가 남지 않도록. 합격하면 좋겠지만, 떨어져도 괜찮아요. 나중에 진짜 아나운서 시험을 위한 좋은 경험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역시 무한 긍정 윤시연다운 대답이었다.

“그런데 시연아. 지금도 계속 아나운서가 되고 싶어? 넌 이미 유명한 작가고, 사랑받는 CF 모델이잖아. 그걸 직업으로 해도 자유롭고 괜찮을 것 같은데?”

“제가 꿈꿨던 게 아니라 그건 얻어걸린 거잖아요. 운으로 된 일에 안주하고 싶진 않아요. 그보다 힘든 일이라도 제가 꿈꿔왔던 일이니까 후회를 하게 되더라도 일단 부딪혀 보고 싶어요. 안 하고 후회하느니 하고 후회하는 게 나을 것 같아요. 미련은 안 생기잖아요.”

“와···. 우리 시연이 그런 생각도 다 하고, 기특한데?”

“이게 다 동수씨 닮아서 그래요?”

“뭐? 나를? 그건 아닌 것 같은데.”

“왜요? 이젠 자산이 1,000억 원이 넘는 대단한 부자가 됐잖아요. 그런데도 그런 행운은 요행이라면서 계속 직장생활을 하는 동수씨를 보니까 저도 그 모습을 닮고 싶어졌어요.”

내 재산 상황을 모두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 시연이었다. 그러나 내가 직장생활을 계속하는 건 그녀의 생각처럼 그렇게 거창한 이유가 아니었다.

그나마 지금 하는 일이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고, 시연이 앞에서 하는 일 없이 놀고먹는 한심한 남자는 되고 싶지 않았다는 것도 큰 이유 중 하나였다. 물론 이 일을 하면서 가끔은 보람도 느낀다. 포에버마트에서 비정규직으로 일 하다가 동지마트와 합병되면서 정직원이 된 어떤 아주머니가 내 손을 잡으며 고맙다고 말할 때나, 예전에 받았던 호의를 다시 갚을 수 있는 오늘 같은 날은 나 자신이 조금은 기특하기도 하다.

딱히 대단한 이유가 아니었지만, 사심 없이 나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그녀의 순수한 눈망울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뿌듯해져 말없이 조용히 웃음만 지었다.

============================ 작품 후기 ============================

살짝 지루한 감이 있죠? ㅠㅜ

이제 진짜 동지마트 에피소드가 끝나갑니다. 아자아자!! ㅎ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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