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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가 전부는 아니야-309화 (309/424)

00309  소제목 추후 결정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모든 촬영이 끝났고 기다리던 첫 방송이 나갔다. 방송 전 가족과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 하늘이 무너져도 ‘미션 임파서블, 동네 슈퍼를 살려라.’는 반드시 보라며 강요 아닌 강요를 해놨다. 그리고 나는 시연이 집에 찾아가 시연이 가족들과 함께 프로그램을 시청했다.

“하여간··· 귀신 같은 놈.”

첫회 방송이 끝나자 윤 사장님이 혀를 차며 시청 소감(?)을 말씀하셨다. 물론 표현은 이렇게 투박해도 그게 은근한 칭찬일 걸 나는 잘 안다.

“하하하. 재미있는데 괜히 심술부리시는 거죠? 아버님.”

“재미있기는 무슨.”

“호호호. 당신은 왜 또 마 서방에게 시비세요? 저는 재미있기만 한데.”

“그렇죠, 어머님? 역시 어머님은 저랑 뭔가 통하신다니까요.”

“그럼. 재미있었어. 감동적이고, 훈훈하고, 뭉클하잖아. 저기 나오는 사장님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까 내 마음이 다 따뜻해져.”

“여보. 그런 걸로 속지 마. 감동? 훈훈? 뭉클? 알고 보면 다 상술이야, 상술.”

“어머. 여보. 마 서방이 회사를 위해서 열심히 일한 것 가지고 상술이라니요. 그럼 윤 스포츠센터 직원들이 고객 한 명을 더 확보하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것도 상술이고, 우리 출판사 직원들이 책 한 권을 더 팔려고 노력하는 것도 전부 상술이겠네요?”

“크흠···. 그거랑 이거랑은 다르지.”

“그게 어떻게 달라요. 다들 자기가 속한 회사를 위해 열심히 일하는 건데. 저 같으면 기특하다고 보너스라도 챙겨줄 것 같아요. 당신은 윤 스포츠센터 직원들이 열심히 상담해서 회원을 한 명 더 받으면 상술이라고 혼내실 건가요?”

“흠흠···. 그건··· 당연히 아니지.”

사회에서는 호랑이 같은 윤 사장님이지만, 집에서는 어머님에게 꼼짝도 못 하는 전형적인 애처가의 모습이다. 호랑이 같은 우리 엄마가 조용하고 차분하신 우리 아버지에게 꼼짝도 못 하는 것과 비슷하면서도 뭔가 느낌이 다르다.

“어쨌든, 반응이 나쁘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계속 긴장하고 있었는데, 마음이 놓이네요.”

내 말에 옆에 있던 시연이가 말없이 싱긋 웃으며 내 손을 토닥여줬다.

“그냥 괜찮다 정도가 아닌 것 같은데? 최근 들어 대기업의 동네 상권 문제가 굉장한 이슈가 되고 있었잖아. 이런 상황에서 재계서열 5위의 동지마트가 다른 재벌들과 완전히 차별화된 상생의 길을 걷는다? 아마 조용히 넘어가지는 않을 거야. 아까 보니까 방송 전에 공익광고도 나왔잖아. 그건 정부에서도 협조적이라는 의미거든. 그렇지?”

“네. 우리가 별다른 요청도 안 했는데, 그쪽에서 먼저 공익광고를 넣어주겠다고 제안했어요.”

“그 봐. 솔직히 노골적이진 않아도 냉정하게 따지면 DJ마트에 대한 간접광고 프로그램인데도 정부에서 협조적이면 호랑이 등에 날개를 단 거나 마찬가지지. 언론만 잘 이용하면 대박도 어렵지 않을걸. 그런데 동수 저 녀석이 어떤 녀석이야? 이제 긴장이 풀리는 것 같다고 엄살을 피우지만, 사실은 언론을 이용할 준비는 이미 완벽하게 끝내놨을 거야.”

“윽···. 역시 아버님은 너무 예리하세요.”

“어머···. 그럼 이번 일도 전부 우리 마 서방 아이디어야?”

“아니요. 그건 아니에요. 러브하우스 포맷을 생각해낸 사람은 제가 아니라 동지그룹 본사 마케팅의 김학수 부장이라고, 고현호 사장의 오른팔이라는 평가를 받는 양반입니다.”

“김학수 부장? 미디어 마케팅에서는 세계적으로도 알아준다는 그 친구?”

“어라. 우리 김 부장을 아세요?”

“워낙 유명하고 유능한 친구니까 당연히 알지. 어쩐지 일 처리가 깔끔하다고 했더니, 역시 김학수 부장다워.”

“와···. 아버님. 진짜 너무 하신다.”

“내가 뭘?”

“아까는 귀신 같은 놈이니 상술이니 하시며 구박하셔 놓고, 김학수 부장 작품이라니까 그렇게 말을 바꾸세요?”

“흠흠. 내가 그랬던가?”

“저도 들었어요. 그러니까 시치미 뗄 생각은 하지 마세요.”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오늘 방송을 보니 동지마트는 조만간 정상궤도에 오를 것 같고, 이대로 가면 엘마트도 금방 넘어설 것 같은데. 그럼 월드 베리어스 클럽과의 제휴는 언제 시작되는 거야?”

윤 사장님은 민망한지 말을 돌리면서도 굉장히 정확한 지적을 하셨다.

엘마트의 총 지점 수는 133개. 과거 포에버마트의 총 지점 수는 121개. 그리고 원래 동지마트가 가지고 있던 지점은 총 10개. 포에버마트가 동지마트에 합병되었으니 엘마트와 동지마트의 보유지점 차이는 133 대 131이 되었다.

지금은 땅콩 스캔들을 완전히 극복하지 못해 매출 차이가 꽤 나지만, 조만간 동지마트가 정상궤도에 오르게 되면 고작 2개 지점 정도의 차이는 충분히 뒤집을 수 있는 역량을 갖추게 된다.

121개에서 10개가 플러스 됐지만, 그저 그런 지점이 추가된 게 아니다. 하나같이 과거 고진성 회장이 심혈을 기울인 덕분에 전부 알짜배기 지점들이다. 수치적으로만 봐도 일반적인 지점의 2배 가까운 매출을 거두고 있는 우수 지점인 만큼, 동지마트가 엘마트를 따라잡는 건 시간문제라 할 수 있다.

“두 달 생각하고 있습니다. 두 마트의 합병 효과가 나오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다른 직원들도 별 어려움 없이 동지마트를 이끌어갈 수 있을 겁니다.”

“행여나 필리핀 진출이 성공할 가능성은 없고?”

“갑자기 팀원들이 빠져나가는 바람에, 그동안 업무 자체가 올 스톱이었습니다. 들리는 이야기에 따르면 이제 겨우 새로운 팀원들을 뽑았다고 하는데, 피트니스 사업 분야 쪽으로는 생초짜나 다름없는 사람들이 2달 안에 성과를 낼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업무파악을 하는 데만도 1달 이상은 걸릴 걸요?”

“그건 그렇지. 피트니스 사업이 그렇게 호락호락했으면 애초에 동지그룹이 우리 윤 스포츠센터에 합작을 요구하진 않았을 거야.”

“저도 동감합니다. 정말 대단한 능력자를 긴급 투입했다고 해도, 윤 스포츠센터에서 비협조적으로 나올 텐데 뭘 할 수 있겠습니까?”

“이 녀석아! 날 너무 믿지 마. 괜히 심술부릴 수도 있으니까.”

“에이. 바로 옆에 고속철도가 깔렸는데, 포장도 제대로 안 된 시골 길을 이용하실 아버님이 아니시잖아요.”

내가 달리 고속철도라고 표현한 게 아니다. 월드 베리어스 클럽과 합작을 해서 중국시장에 진출하면 땅 짚고 헤엄치기나 다름없는 상황이 되는데, 굳이 어려운 길을 갈 필요는 없었다.

“그게 고속철도인지 아니면 막다른 골목인지 두 달 후면 알 게 되겠지.”

“마 서방···.”

“네. 어머님.”

“설마 우리 마 서방도 시연이 아빠 닮으려는 건 아니지?”

“네?”

“요즘 들어 자꾸 집에서 일 이야기를 하잖아. 나, 섭섭하려고 해.”

“앗! 죄송해요. 어머님. 그렇지 않아도 방송 내용이 괜찮으면 축하하려고, 어머님이 좋아하시는 최고급 와인으로 준비해왔습니다. 방송 때문에 긴장했는지 제가 깜빡했어요. 조금 늦은 시간이지만, 와인은 괜찮으시죠?”

“그럼, 당연하지. 역시 우리 마 서방은 시연이 아빠와 달리 센스가 있단 말이야. 호호호.”

***

< 동지마트, 동네 상권 살리기의 해법을 제시하다.

어젯밤 11시. KBC 방송국에서는 ‘미션 임파서블, 동네 슈퍼를 살려라.’라는 새로운 예능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제작 설명회에서 ‘미션 임파서블, 동네 슈퍼를 살려라.’에 대해 설명을 들은 사람들은 이 프로그램이 새롭게 시작하는 DJ마트 프로젝트의 노골적인 광고가 되는 건 아닐까 우려 섞인 시선으로 바라봤다. 러브하우스 형식을 따왔다고 해도, 리뉴얼 대상이 되는 동네 슈퍼는 DJ마트 가맹점이기 때문에 이런 우려는 충분히 설득력이 있어 보였다.

거기다 방송이 시작되기 전 등장하는 광고들이, 공익광고 하나를 제외하고, 전부 동지그룹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은 우려가 현실이 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꼬투리를 잡으려고 잔뜩 인상을 쓰며 방송을 지켜보던 나는, 이 프로그램의 번뜩이는 기발함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게 과연 탐욕스럽기로 소문난 대기업이 생각해낸 정책이 맞는지 의심이 들었고, 왜 그동안 다른 대기업들은 이런 좋은 정책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욕심만 채우기 바빴는지 원망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형식 자체는 굉장히 단순했다. 낡고 촌스러운 동네 슈퍼를 리뉴얼해 예전보다 깔끔하고 세련되게 바꾸는 게 전부였다. 그러나 그 안에는 약자를 생각하는 강자의 여유와 배려심이 담겨 있었다. 단순한 배려심이 아니라 같이 잘 살아보자는 ‘상생의 도(道)’가 담겨 있었다.

동지마트는 DJ마트 프로젝트를 시행하면서, 동네 슈퍼에 어떤 금전적 부담도 주지 않았다. 그리고 계약 당사자가 원한다면 언제든지 계약을 종료할 수 있다는 자유로움까지 부여했다.

물론 조건이 하나 있긴 했다. 계약기간 동안 동지유통과 동지마트 물류센터에서 공급하는 물품만 판매하면 된다.

여기에 무슨 함정이 숨어 있는 걸까? 기존 유통업체보다 훨씬 비싼 가격으로 물품을 공급해, 해당 동네 슈퍼에 바가지를 씌우려는 의도가 숨어 있는 건 아닐까? 처음 계약 조건을 들었을 때 필자가 처음 했던 의심이었다. 그러나 동지마트가 자신 있게 공개한 계약서에서 어처구니없는 문구를 하나 발견하면서 그런 의심을 지울 수밖에 없었다.

‘기존 공급 업체의 공급가보다 싸게 공급할 것을 약속한다.’

대체 고현호 사장은 무슨 생각으로 이런 시대착오적(?) 정책을 실행했을까? 다른 대기업들은 동네 꼬마 아이들의 코 묻은 돈까지 뜯어내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데, 대체 그는 무슨 의도로, 무슨 자신감으로 이런 말도 안 되는 계약서를 작성했을까? 정부든 기업이든, 어떻게든 서민을 봉으로 생각하고 뜯어먹지 못해 안 달인데 왜 동지마트만이 대세를 거스르는 위험천만(?)한 선택을 한 걸까?

필자는 마감이 다 되어가는데도 불구하고 그 이유를 알기 위해 머리를 싸매고 고민했다. 하지만 아무리 고민해도 고현호 사장의 의도가 이해되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혹시 내가 생각한 대전제가 잘못됐다면, 내가 지금까지 알고 있는 사악한 느낌의 재벌 2세와 고현호 사장이 전혀 다른 부류라면, 어떻게 되는 거지?’ 라는 의문이 들었다.

사실 필자는 그동안 선행을 베풀고 있는 고현호 사장에게 어떤 ‘의도’가 숨어 있다고 생각했다. 용역 비리 피해자들을 위해 개인 재산을 내놓을 때도, 비정규직 직원들 상당수를 정규직으로 전환해줬을 때도 뭔가 음흉한 속내가 숨어 있을 거라 의심했었다.

대기업 총수 자리가 인기투표로 얻을 수 있는 자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후계자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일종의 포퓰리즘이라고 생각하며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봤었다.

하지만 그는 그냥 천성이 착한 사람이었다. 자기 품에 들어온 건 내놓지 않으면서 남이 가진 것에만 관심을 가지는 탐욕스러운 부자가 아니라 다른 사람과 나누며 더불어 살 줄 아는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부자였다.

그런 의미에서 ‘미션 임파서블, 동네 슈퍼를 살려라.’은 자기 배만 채우려는 다른 재벌들에 일침을 가하며 다 함께 잘사는 방안을 제시한, 대단히 상징적이고 의의가 있는 멋진 프로그램이었다.

아무쪼록 DJ마트 프로젝트가 성공하길 바라며, ‘미션 임파서블, 동네 슈퍼를 살려라.’ 또한 시청자들에게 큰 사랑 받길 기원해본다.  - 믿음 신문 논설위원 김석준 위원 >

============================ 작품 후기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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