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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가 전부는 아니야-311화 (311/424)

00311  소제목 추후 결정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고현호 사장의 두 번째 인터뷰 역시 ‘탐사꾼’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낼 정도 엄청난 호응을 이끌어 냈다. 진실과 거짓을 교묘하게 섞어서 대중들에게 감동을 주는 고현호 사장의 인터뷰는 언제 봐도 감탄이 나왔다.

‘탐사꾼’이란 고현호 사장의 인터뷰에서 했던 ‘탐욕스러운 장사꾼’을 줄인 말이지만, 대중들은 ‘탐스럽고 사랑스러운 장사꾼’이라며 뜻을 바꿔 부르며 그의 대한 애정을 표현했다. 그만큼 대중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갔다는 걸 의미했다.

그의 인터뷰 덕분인지 ‘미션 임파서블, 동네 슈퍼를 살려라.’의 시청률도 큰 폭으로 상승했다. 1회 방송 시청률 11.3%에서 2회 방송 시청률 14.4%로 상승했던 시청률은, 고현호 사장의 인터뷰 후 22.1%라는 화요 예능으로는 기적적인 스코어를 기록했다.

이런 시청률 상승은 동지마트뿐만 아니라 동지그룹 전체에 긍정적인 영향을 줬다. 동지그룹 계열사의 광고를 방송 앞뒤로 모두 채워주기로 계약한 것이 오히려 호재로 작용해, 그룹에 대한 대중들의 시선이 매우 긍정적으로 변했다. 그건 곧 상당한 매출 증가를 가져왔고, 한동안 제자리걸음을 하던 주가 또한 크게 상승하면서 그룹 내 고현호 사장의 입지 또한 놀라울 만큼 탄탄해졌다.

하지만 가장 큰 효과를 본 곳은 역시 동지마트였다. 땅콩 스캔들로 급격히 줄었던 구 포에버마트 지점들의 매출이 급상승했고, DJ마트 가맹점이 되기 위한 동네슈퍼들의 문의 전화 때문에 상담센터 직원들은 때아닌 격무에 시달려야 했다.

확실히 방송의 위력은 엄청났다. 원래는 최대 1,000곳 정도의 동네 슈퍼를 가맹점으로 등록하는 게 처음 목표였다. 그러나 방송이 나간 지금은 최소 5,000곳 이상으로 목표를 바꿔야만 했다. 이것도 최소치를 이렇게 잡았을 뿐, 앞으로 얼마나 늘어날지 도저히 예상하기 어려울 만큼 문의전화가 폭주하고 있는 실정이다.

“마동수 팀장님. 저희가 잘못했으니 제발 거래를 재개해주십시오. 미우나 고우나 그래도 같은 계열사 아닙니까?”

역시 사람은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어제는 동지 오피스에서 나를 찾아와 사정하더니 오늘은 동지 바이오에서 찾아왔다. 이들의 마음은 이해가 간다. 포에버마트와 아무런 문제 없이 거래를 잘하고 있었는데, 하루아침에 거래 중단 통보를 받았으니 얼마나 속이 타겠는가?

그렇다고 내가 예전 감정 때문에 이러는 건 아니다. 공급가를 낮추기 위해 오즈생활환경과 독점판매를 약속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물론 독점 계약기간은 짧았고 다음 달이면 계약기 끝나지만, 그걸 친절하게 설명해줄 생각은 없었다.

“뭐라고요? 제가 지금 뭔가 잘못 들은 것 같은데 혹시 ‘미우나 고우나 그래도 같은 계열사’라고 하셨습니까?”

“그럼요. 같은 동지그룹 소속이니 한 식구나 다름없지 않습니까?”

“아하. 한 식구? 아하. 그래서 동지 바이오에서는 다른 대형 할인 마트보다 한 식구인 우리에게 더 비싸게 제품을 공급했군요. 식구니까 만만해서, 그렇죠?”

“그건 저희가 실수를 한 겁니다. 앞으론 절대 그런 일이 없을 겁니다. 제가 약속드립니다.”

“당연히 앞으로도 그럴 일이 없겠죠. 동지마트에서 동지 바이오 제품을 팔 일이 없으니까요. 그러니 굳이 약속해야 한다면 채 차장님이 아니라 제가 해야죠.”

차장인 그가 팀장인 내게 고개를 숙인다는 게 썩 유쾌한 기분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마음이 약해져 쉽게 동지 바이오를 용서해줄 내가 아니다.

“마 팀장님. 무슨 그런 서운한 소리를 하십니까. 고현호 사장님도 인터뷰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더불어 잘살아야 한다고.”

“그러게요. 더불어 잘살아야 하는데 그걸 먼저 마다한 쪽은 동지 바이오였죠? 아마. 아무리 채 차장님이 당시 공급 계약과 무관한 분이라고 해도 동지 바이오가 동지마트를 홀대했던 사실이 사지는 게 아닙니다.”

“그래서 제가 이렇게 사과를 하는 게 아닙니까?”

“죄송하지만, 저라는 인간이 워낙 못돼먹어서요. 상대가 미안하다고 사과한다고, 허허 웃으며 괜찮다고 털어버릴 만큼 배포가 넓지 않습니다. 한 마디로 쪼잔합니다. 저는 절대 우리에게 서운하게 대했던 동지 바이오의 행동을 잊지 않을 겁니다.”

내가 이렇게 행동하는 건 동지마트의 위상이 그만큼 커진 덕분이다. 동지 바이오가 우리보다 잘 나갔던 건 이제 과거의 일이다. 포에버마트를 집어삼킨 동지마트는 이제 동지 바이오를 내려다볼 만큼 덩치가 커졌다.

거기다 사장끼리의 파워에서도 동지 바이오가 밀린다. 조강재 동지 바이오 사장이 아무리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고 해도, 월급쟁이는 월급쟁이일 뿐이다. 그룹의 차기 후계자로 강력하게 부상해버린 고현호 사장을 압박할 힘 따위가 그에게 있을 리가 없다.

“수출까지 합치면 이미 동지 바이오의 매출이 오즈생활환경을 넘어섰습니다. 사실상의 업계 1위 업체와 거래하지 않는다면 동지마트에게도 그리 좋을 건 없습니다. 서운한 감정을 추스르고 합리적으로 생각을 해보세요.”

채 차장은 나의 막무가내에 안 되겠다 싶었는지 은근히 채찍질을 시도했다.

“그걸 동지 바이오가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차장님. 구 포에버마트 지점들이 최근 들어 빠른 속도로 과거 매출을 회복하고 있다는 소식, 혹시 들으셨습니까? 이대로라면 동지마트가 몇 달 안에 엘마트를 누르고 대형 할인 마트 서열 2위로 올라설 겁니다. 조만간 전국적으로 신규 지점을 5곳 정도 더 늘릴 계획이기 때문에, 지점 수에서도 엘마트를 넘어설 거고요. 그런데 말입니다. 대형 할인 마트 순위 2위 업체와 거래가 중단된다고 해도, 동지 바이오가 계속 1위 자리를 유지할 수 있을까요?”

“흐음···.”

나의 협박에 채 차장은 침음성만 내뱉었다. 그러기에 채찍질도 사람 봐가며 해야 한다.

“더 할 말이 없으면 오늘 미팅은 여기까지 하시죠.”

“저희가 어떻게 하면 동지마트의 마음이 풀릴까요?”

“그걸 제게 물어보시면 안 되죠. 다시 말씀드리지만, 우리 동지마트는 아쉬울 게 없습니다. 그럼 오늘 미팅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동지마트가 덩치가 커진 덕분에, 다른 업체와도 공급가격 협상을 다시 해야 하거든요. 죄송합니다. 기회가 되면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나는 조금은 냉정하게 작별인사를 하고, 채 차장을 남겨둔 채 미팅룸을 나섰다.

어제 동지 오피스도 그렇고 오늘 동지 바이오도 그렇고, 그들의 행동을 보면 솔직히 좀 어이가 없었다. 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미안하다.’ 사과 한마디로 지난 과오를 덮으려는 걸까?

최소한 새로운 협상 카드는 들고 사과하러 올 거라 믿었던 내가 너무 순진했던 모양이다.

***

“어떻게 됐어?”

배운규 동지 바이오 영업부장이 채 차장을 보며 다급히 물었다. 동지 바이오를 지금의 위치로 올린 일등공신으로 불릴 만큼 노련한 그였지만, 동지마트의 거래 중지 통보에 마음이 많이 조급해져 있었다.

“씨알도 안 먹히던데요.”

“젠장. 그럴 줄 알았어. 협상장에 누가 나오디? 마동수 그 녀석이지?”

“네. 부장님. 동지그룹에서 가장 핫한 인물이라더니 헛소문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사정도 해보고 협박을 해봐도 통하질 않습니다. 아쉬울 게 없다면서 뻔뻔하게 나오는데 마땅한 방법이 안 떠오르더군요.”

“그럴 거야. 전에 잠깐 이야기를 나눠봤는데, 만만한 녀석이 아니었어. 그래서 내가 사장님에게 말했거든. 동지마트가 심상치 않으니 웬만하면 요구조건 들어주자고.”

“그런데 안 된다고 하셨습니까? 이상하네요. 사장님이 부장님 말씀은 들어주시잖아요.”

“어쩔 수 없었어. 후계자 싸움이라는 정치적 논리가 개입했거든. 그리고 나도 설마 동지마트가 포에버마트를 인수할 줄 알았나. 그걸 알았으면 정치적 논리고 나발이고 무조건 우겼겠지.”

배운규 부장은 그때 좀 더 우기지 못한 게 정말 아쉬웠다. 그렇다고 여기서 물러날 순 없었다. 조만간 무난히 업계 2위로 올라설 거라는 평가받는 곳이 동지마트다. 그리고 단지 동지마트가 끝이 아니다. DJ마트의 성장 속도까지 생각하면 언젠간 3-마트를 넘어설지도 모른다.

그런 곳을 포기한다는 건, 곧 국내 시장의 1/3 이상을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렇게 되면 오즈생환경은 물론이고 업계 3위인 예경보다 뒤처질 가능성이 높다. 그건 곧 동지 바이오의 몰락을 의미한다. 절대 이대로 물러날 수 없었다.

“정말 강경하던데 방법이 있을까요?”

“채 차장 생각은 어떤데? 그냥 동지 바이오라면 무조건 안 된다는 그런 분위기였어?”

“질문의 의도가 잘 이해가 안 갑니다.”

“그러니까 동지 바이오라면 치를 떨 정도로 원한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느냐고.”

“음···. 그게 참 묘했습니다. 처음엔 그냥 우리와 거래하기 싫어서 생떼를 쓰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마지막에 나눴던 대화가 마음에 걸리더군요.”

“무슨 대화였는데?”

“제가 그랬거든요. 우리가 어떻게 하면 동지마트의 마음이 풀리겠느냐고.”

“그랬더니?”

“저는 마 팀장이 ‘어떻게 하든 동지 바이오와는 거래할 생각이 없습니다.’라고 말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걸 제게 물어보시면 안 되죠. 다시 말씀드리지만, 우리 동지마트는 아쉬울 게 없습니다.’라고 하더군요. 그러고는 바쁘다고 나가버려서 더 자세한 대화를 나누지는 못했습니다.”

“흠···. 묘하다. 묘해.”

“그렇죠? 무슨 의미일까요?”

“쯧쯧쯧. 내가 멍청했군. 바보야, 바보. 영업부장이라는 놈이 이렇게 아둔할 수가···”

배운규 부장은 그제야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듯 머리를 치며 자책했다.

“네? 부장님. 갑자기 왜···?”

“예를 들어서 말이야. 채 차장 네가 길을 가는데, 갑자기 취객이 다가와 다짜고짜 때렸어. 어떻게 할 거야?”

“흠···. 병원에 가서 진단서를 끊고 경찰에 고소해야겠죠?”

“그런데 그 취객이 다음날 술을 깨고 맨손으로 나타나 잘못했다고 사과를 해. 용서하고 합의해줄 거야?”

“당연히 안 되죠. 치료비에 피해보상비까지 받아야 합의를 해주든 말든 하죠. 그냥 쉽게 용서해주면 그것도 버릇 됩니다.”

“그렇지? 그런데 우린 동지마트에 맨손으로 가서 사과만 한 꼴이잖아. 나라도 안 봐주겠다. 안 그래?”

“아···. 그럼 어쩌죠? 접대라고 해야 하나요? 아니면 뒷돈이라도?”

“이런. 채 차장도 다 됐군. 그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다니. 접대? 뒷돈? 그런 게 통할 위인이 아니야.”

“그럼요?”

“방법은 하나밖에 없어. 3-마트보다 더 싸게 물건을 공급해주면 돼.”

“네? 하지만 그럼 3-마트에서 가만있지 않을 텐데요?”

업계 최고인 만큼 최고의 대우를 원하는 곳이 3-마트다. 만약 동지마트의 마음을 돌리려다가 3-마트와의 관계가 어긋난다면, 차리리 가만있느니만 못한 결과가 된다.

“조건을 걸어야지. 싸게 공급하는 대신 판매가는 3-마트와 맞춰달라고. 동지마트 입장에서는 이윤을 극대화하는 거니까 나쁠 게 없잖아.”

“그런데 그 조건이면 정말 마 팀장이 마음을 돌릴까요?”

“일단 할 수 있는 건 해봐야지. 내가 본 마동수 팀장이라면 우리 제안을 거절하지는 않을 거야.”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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