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14 소제목 추후 결정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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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야. 미래야!”
“시연아. 미안. 내가 많이 늦었지.”
오랜만에 미래와 만나기로 한 시연.
미래는 그녀의 약혼자인 동수 때문에 알게 되었지만, 오랜 친구처럼 금세 허물없는 친구사이가 됐다. 서로가 왜 이렇게 친근해졌는지는 두 사람도 정확하게 알진 못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두 사람은 굉장히 다른 삶을 살았다. 엄청난 부잣집 딸로 태어나 부족함 없이 잘 자랐고, 명문대학에서도 수석 자리를 놓치지 않을 만큼 수재이기도 한 시연. 그리고 어려운 집안 형편으로 고등학교만 겨우 졸업하고 취업 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던 미래.
이렇듯 상반된 삶을 살아왔지만 두 사람 사이의 공통점이 있다면 밝은 성격이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꼽으라면 동수에 대한 무한 신뢰.
신뢰에 대한 근원이 시연은 동수에 대한 애정, 미래는 동수에 대한 존경으로 약간 다르긴 해도, 동수는 두 사람에게는 언제나 즐거운 대화거리였다.
“아니야. 네가 늦을 것 같다고 다음에 만나자는 걸 내가 기다린다고 한 거잖아. 그런데 얼굴이 왜 이렇게 초췌하게 변했어? 일이 많이 힘들었어?”
“응! 진짜, 진짜 힘들었어. 예전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이라고 많이 봐줬는데, 이젠 그런 것도 없이 마구마구 몰아붙여.”
“혹시 우리 동수씨가?”
“꼭 팀장님만 그런 건 아니야. 차장님도, 김 팀장님도, 정 과장님도 모두 열정적이시잖아. 가끔은 토나올 정도로 힘들 때도 있을 정도였어.”
“그 정도로 힘들었어?”
친구의 투정에 시연의 얼굴이 걱정스레 변했다.
“힘들긴 한데, 그런데 희한하게 즐거워. 맡은 업무를 하나하나 해낼 때마다 내가 성장하는 기분이 들거든.”
“그렇담 정말 다행이다. 그래도 오늘은 생각보다 빨리 끝났네?”
“응. 이번에 새롭게 시작한 프로젝트 준비가 오늘 끝났거든. 그래서 빨리 마칠 수 있었어.”
“그래도 동수씨는 아직이겠지?”
“그렇지, 뭐. 내일 사장님에게 보고해야 한다고 열심히 보고서 작성하고 계시더라. 죄송해서 남아있으려고 했는데, 당장 퇴근하라고 억지로 보내시더라.”
“칫! 요즘 보면 동수씨 혼자 동지마트 일을 다 하는 것 같아. 얼굴 보기가 왜 이렇게 힘든지. 미래 네가 부럽다. 넌 그래도 매일 동수씨 얼굴 볼 수 있으니까.”
“내가 팀장님을 존경하긴 하지만, 매일 보고 싶은 얼굴은 아니거든!”
“헤헤. 이상하네. 나는 매일 봐도 또 보고 싶던데.”
미래의 구박에 시연이 민망한 웃음을 지었다.
“그거야 네가 열렬히, 절실히, 간절히 사랑하는 님이니까 그런 거지. 그런데 솔직히 팀장님이 동지마트 일을 전부 다 한다는 건 틀린 말이 아닌 것 같아.”
“진짜?”
“진짜야. 내가 옆에서 항상 지켜보고 있잖아. 솔직히 원래도 팀장님을 존경했지만, 요즘 들어서는 경외감까지 들어. 사람 맞나 싶을 때도 있다니까.”
“사람은 맞지. 그러니까 나랑 약혼한 거잖아.”
“어이구. 너도 팀장님이랑 같이 일해봐야 내 심정을 이해할 거야. 어떻게 보면 일종의 천재야. 머릿속에 백과사전이라도 들어가 있는지 아이디어가 끊임없이 튀어나와. 처음엔 내가 신입이라서 그런 줄 알았어. 왜 그런 거 있잖아. 나중에 보면 별것 아닌데 초짜일 땐 대단해 보이는 그런 선배들의 노하우 같은 거.”
“맞아. 나도 그런 비슷한 경험이 있었어. 대학 신입생 때 선배와 지금 선배가 느낌이 달라. 분명 같은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그래. 나도 우리 팀장님이 대단해 보이는 이유가 그런 거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아니더라. 그냥 내 깜냥으로 측정할 수 없는 사람이었어.”
“아···! 궁금하다. 우리 동수씨가 회사에서 얼마나 멋질지.”
“있잖아. 이건 확실한 건 아닌데. 귀 좀 줘봐.”
시은이 궁금해하자 미래는 잠시 고민을 하다가 갑자기 목소리를 낮췄다. 마치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하려는 듯 은밀한 모습이었다.
“뭔데 그래?”
“어디까지나 내 추측인데. 우리 동지마트가 포에버마트를 인수했잖아.”
“그랬지. 우연히 일어난 땅콩 스캔들 아니었으면 어려웠을 거라 그러더라.”
“다들 그렇게 생각하지? 그런데 내가 볼 땐, 땅콩 스캔들도 팀장님이 의도한 것 같아.”
“뭐어? 에이. 설마. 네가 아무리 우리 동수씨에게 경외감을 느낀다고 해도 땅콩 스캔들을···.”
“쉿!”
시은은 생각지도 못한 황당한 이야기에 목소리 톤이 살짝 올랐고, 미래는 그런 그녀를 보며 재빨리 검지를 입술에 가져다 대며 주의를 줬다.
“미안. 나도 모르게 흥분해나 봐.”
“그래. 황당하겠지. 나도 처음엔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황당했어. 그런데 뭔가 계속 이상하더라니까. 가까이서 지켜본 사람만 알 수 있는 그런 묘한 위화감 같은 게 있었어. 땅콩 스캔들이 터지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포에버마트 인수 준비를 하시더라니까. 그리고 다른 기업이 인수전에 끼어들기 전에 진짜 합병해버렸잖아. 미리 알고 있지 않은 이상 이렇게 자연스러우면서도 빠르게 진행하기는 어려웠을걸?”
“서··· 설마.”
“그렇겠지? 아무리 팀장님이라도 설마 그런 것까지 의도하셨겠어? 그렇다고 DJ마트 프로젝트는 진짜잖아. 그건 정말 팀장님 머리에서 나온 거거든.”
“헤헷. 그 이야긴 나도 들었어.”
친구의 계속된 칭찬에 시연의 어깨가 으쓱해졌다.
특히 DJ마트 프로젝트는 동수가 시연에게 실망감을 주기 싫어 고심 끝에 만들어낸 프로젝트였다. 나중에 그 고백을 듣고 얼마나 가슴이 뭉클하던지. 하지만 미래에게 그런 내색까진 하지 않았다. 그런 걸로 질투할 친구가 아니라는 건 알지만 두 사람 사이의 사랑 이야기를 굳이 떠벌리고 싶지 않았다.
최근 시연이 쓴 동수와의 러브스토리가 담긴 소설 ‘여우 같은 남자, 강아지 같은 여자’가 큰 사랑을 얻으면서 너무 지나친 관심을 받았다. 소설이 유명해지자 두 사람이 조용히 사랑을 키웠던 추억의 장소가 더는 두 사람만의 공간이 아니게 되어버린 것이다.
동수는 일시적인 현상일 뿐 사람들의 관심은 차츰 줄어들게 될 거라며 시연을 위로했지만 아쉬운 마음이 쉽게 가시질 않았다. 그제야 두 사람의 추억을 두 사람만의 추억으로 남겨둘 줄도 알아야 한다는 걸 깨닫고, 삶의 방식을 조금 바꾸기로 마음 먹었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야. 새롭게 준비하고 있는 프로젝트는 더 대단할지도 몰라. 정지영 과장님은 이번 프로젝트가 우리나라 온라인 쇼핑몰 시장에 핵폭탄이 터지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하셨어.”
“대체 뭐길래 그렇게 표현이 과격해?”
“일명 방방곡곡 프로젝트라고 부르지.”
“방방곡곡 프로젝트?”
“살짝 이름이 촌스럽긴 한데 의외로 그것만큼 잘 어울리는 이름이 없어. 그게 뭐냐면 시연아···.”
미래는 이번 프로젝트의 일원이라는데 큰 자부심을 느끼며, 자랑스럽게 방방곡곡에 대해 설명을 시작했다. 그녀가 회사 일을 함부로 떠버릴 만큼 입이 가벼운 사람은 아니지만, 상대가 시연이기 때문에 마음 놓고 이야기할 수 있었다.
사실은 미래가 이야기하기 싫어도 시연에게 자랑하라며 동수가 은근히 부추길 때가 더 많았다. 동수야 시연에게 잘난 남자이고 싶어서 그런 거였지만 아직 순진한 미래는 그런 사실은 전혀 모른 채 충실히 그의 의도를 따라주고 있는 중이었다.
“아···. 역시 우리 동수씨네. 진짜 내 남자지만 멋지다.”
방방곡곡 프로젝트에 대해 모든 설명을 들은 시연은 가슴이 뿌듯해짐을 느꼈다.
“인정. 일할 때의 팀장님은 누가 뭐래도 최고야. 솔직히 난 그동안 운이 없는 편이라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아니었어. 팀장님을 만나서 같은 팀에서 일하게 된 건 내 생에 최고의 행운 같아. 꼭 뭐랄까? 훗날 전설이 되는 현장에 있는 기분이랄까?”
“으···. 갑자기 질투 난다. 나도 그 현장에 있고 싶어. 칫!”
“넌 전설의 연인이잖아. 난 그게 더 부러운데?”
“후훗. 내가 남자 보는 눈이 좀 있잖아. 중학생 때 보고 내 남자로 찜 할 정도로 멋졌어. 우리 동수씨는···.”
“어이구. 어련하겠어? 그런데 시연아. 너 정말 남자 보는 눈이 있는 거야?”
“당연하지! 동수씨가 내 남자가 된 거 보면 몰라?”
“그런가?”
요즘 들어 준호가 은근히 신경 쓰이는 미래는, 남자보는 눈이 있다며 큰소리를 빵빵 치는 시연의 말에 혹했다.
“왜? 요즘 누가 생겼어?”
“응? 누가 생긴 건 아니고···. 있지. 너도 태준호 대리님 알지?”
“알지! 우리 동수씨랑 같은 팀에 있었잖아. 너 설마 태 대리님한테 관심 있는 거야?”
“글쎄다. 나도 내 마음이 헷갈려. 이 사람이 순진한 건지 능숙한 건지도 헷갈리고.”
“뭐 때문에 능숙하다고 생각이 드는지 모르겠지만 동수씨 말로는···.”
“팀장님이 뭐라고 하셨는데? 빨리빨리 좀 말해봐.”
어떻게 보면 미래가 가장 믿는 사람이 동수였다. 그래서인지 준호에 대한 동수의 평가가 궁금해서 시연을 재초했다.
“어라···. 우리 미래가 안 하던 짓을 다 하네. 진짜 태 대리님에게 마음이 있긴 있구나?”
“그··· 그런가? 아··· 나도 모르겠다.”
“우리 동수씨가 그랬어. 태 대리님의 장점은 순수함에서 나오는 근면, 성실이라고.”
“순수?”
“그래. 그러니까 능숙하다는 네 생각은 오해일 거야. 순수한 돌직구가 가끔 능숙함으로 오해될 수도 있어.”
“진짜?”
“그렇지. 내가 당사자잖아.”
“어? 그럼 너도 팀장님이 열심히 따라다니셨던 거야?”
“아니. 반대야. 내가 우리 동수씨를 열심히 따라다녔지. 하지만 맹세하는데 난 내 마음속에 동수씨 말고 다른 남자를 품어 본적이 한 번도 없었어. 그때가 첫사랑이었고, 그 마음으로 노력해서 동수씨의 마음을 얻은 거야.”
“와···. 말도 안 돼!”
미래는 동수를 따라다녔다는 시연의 말에 어이가 없었다.
“응? 뭐가?”
“객관적으로 팀장님이 멋진 남자라는 건 인정해. 하지만 시연이 네가 팀장님에게 꿀릴 게 뭐가 있다고. 공부 잘해, 글 잘 써, 얼굴까지 예쁜 이 시대 최고의 신붓감인데.”
“그건 또 무슨 말이야?”
“몰랐어? 사람들이 널 보고 그렇게 불러. 객관적으로도 윤시연은 뛰어나다는 뜻이야. 너야 둔해서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나도 팀장님을 존경하지만 시연이 네가 팀장님과 비교해서 절대 부족한 사람이 아니야. 자신감을 가져.”
“우와···! 친구야! 고마워. 역시 너밖에 없다.”
“고마워할 필요 없어. 사실을 말했을 뿐이니까.”
“히힛. 그래도 고마워. 그런데 미래야!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잖아.”
“그럼?”
“태 대리님 마음을 받아 줄지 말지. 그게 중요하지!”
“뭐? 이야기가 왜 그렇게 흘러? 태 대리님이 내게 고백했다는 말을 한 적은 없는데.”
“네가 아까 그랬잖아. 우리 동수씨도 나를 열심히 따라다녔느냐며? 그렇다는 건 태 대리님이 미래 너를 열심히 따라다니고 있다는 이야기잖아.”
“그··· 그런가?”
“그렇지! 미래야. 겁먹지 말고, 고민이 되면 일단 한 번 만나봐. 동수씨가 그랬어. 인턴으로 신입이 두 명 들어왔는데, 그때 무슨 일이 생겨서 둘 중 한 명만 선택해서 동수씨가 데려가야 했나 봐.”
“그래서 태 대리님이 선택된 거야?”
“그렇지. 내가 못 미더우면, 동수씨를 믿어봐. 둘 중의 한 명이라고 해도, 네가 그렇게 경외심까지 가지며 존경하는 사람이 선택한 남자가 태 대리님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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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쉬어가는 회차입니다.
일명 주인공 신격화 하기.. ㅎㅎ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