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18 소제목 추후 결정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오늘 사회를 맡은 동지마트 마동수 팀장입니다. 그럼 지금부터 한국 물류의 메카가 될 동지마트 온라인 전용 첨단 물류센터 기공식을 거행하겠습니다.”
돈이 많이 든다고 투덜거렸지만 고현호 사장의 행동력은 전광석화처럼 빨랐다. 특히 이번 방방곡곡 프로젝트 성공의 가장 키포인트가 될 수 있는 새로운 물류센터 건립 건은,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을 만큼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고대성 회장과 어떻게 담판을 지었는지 모르지만 동지그룹이 소유하고 있던 회덕 분기점과 회덕역 사이의 알짜배기 땅을 우리 물류 센터의 부지로 할당받고, 2010년이 다 가기도 전에 기공식을 시작할 수 있었다.
우리가 사전에 열심히 홍보한 덕분인지 이번 기공식에는 수많은 기자들이 몰려와 취재경쟁을 펼쳤다. 그 덕분에 나 또한 그들이 터트리는 플래시에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하고 행사를 진행해야 했다.
“먼저 국민의례가 있겠습니다. 단상에 계신 귀빈 여러분께서는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정면에 있는 태극기를 향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국민의례로 시작된 기공식은 내빈소개, 경과보고, 기념사, 축사 그리고 기념시삽을 끝으로 마무리됐다. 이번 행사에는 고진성 부회장은 물론이고 국회 산업통상자원 위원회 회장인 거물 정치인과 전경련 회장까지 직접 참석해, 이번 프로젝트에 대한 기대를 드러냈다.
DJ마트 프로젝트가 영세 상인과의 상생정책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새로운 고용 창출 효과까지 거둘 수 있다는 사실에 정부는 상당히 고무적인 입장을 보였다. 온라인 전용 첨단 물류센터가 이렇게 빨리 착공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도 정치권의 협조 덕분이었다.
완공까지 6개월 정도의 기간을 예상되는 이번 공사가 마무리되면 대한민국의 중급규모 이상의 대부분 도시는 당일 배송이 가능하게 된다.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만한 물류 대혁명이 코앞으로 다가온 것이다.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우찬 형님.”
“잘 부탁은···. 나야말로 고마워. 진짜 동수, 네 덕분에 요즘 들어 아주 승승장구하고 있다. 하하하.”
“제 덕분이라니요. 이게 전부 형님이 능력이 있으니까 그런 거죠. 저는 그냥 추천했을 뿐 그 이후의 결정은 우리 고현호 사장님께서 하시거든요. 사장님이 형님을 좋게 안 봤으면 공사 계약을 못 했을 겁니다. 그러니 저한테 고마워하지 않으셔도 돼요.”
행사가 마무리되고 귀빈들과 기자들이 모두 돌아갔다. 할 일이 모두 끝나자 나는 내 생명의 은인이기도 한 우찬 형님에게 다가가 인사를 나눴다.
그는 이번 공사의 책임자였다. 예전에 우찬 형님이 나를 구해줬을 때, 나는 두고두고 그 은혜를 갚겠다고 결심했었다. 그리고 그 결심을 지금도 열심히 지키고 있는 중이다. 이번 공사뿐만 아니라 우리 동지마트의 새로운 지점에 대한 시공도 모두 우찬 형님을 통해 미래건설에 맡겼다.
우찬 형님은 동지마트와의 대형 계약을 따낸 능력을 인정받아 과장에서 차장으로 승진했다. 37살의 젊은 나이로 우리나라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대형 건설사의 차장이 되었으니 승승장구라는 표현이 틀리진 않았다.
사실 우찬 형님이 민망할까 봐 돌려 말했지만, 내가 단지 추천만 해준 건 아니었다. 그냥 대놓고 고현호 사장에게 이야기했었다. ‘제 생명의 은인인 사람입니다. 그러니 웬만하면 공사를 미래건설에 맡겼으면 좋겠어요.’라고 말이다.
내 말은 들은 고현호 사장의 반응도 나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래? 마 팀장 생명의 은인이면 내게도 생명의 은인이나 마찬가지잖아. 게다가 다른 곳도 아니고 미래 건설이면 공사를 믿고 맡길 수도 있고. 난 괜찮으니 마 팀장이 알아서 해.’
그 후 동지마트 관련 공사는 별다른 논의 없이 모두 미래 건설에 맡기기로 했다. 그렇다고 이런 사정을 우찬 형님에게 말하면서 ‘형님. 제 덕분에 승진하신 겁니다.’라며 생색을 낼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억지로 뭔가를 만들 생각은 없다. 그냥 이번 일처럼 어차피 건설사가 필요하다면 미래 건설을 이용하면 된다. 이렇게 나는 그냥 앞으로도 영원히 계속해서 우찬 형님에게 은혜를 갚아나갈 생각이다.
“오···. 백 차장. 지금 이야기 나누고 있는 분이 혹시 마동수 팀장님이신가?”
내가 우찬 형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사이, 땅땅한 체형의 한 중년 남자가 우리에게 다가와 알은 척을 했다.
“이사님. 아직 안 가셨습니까?”
“이제 여기 공사 책임은 우리 미래건설이 져야 하는데 기공식이 끝났다고 먼저 갈 수야 있나? 끝까지 모든 마무리가 되는 걸 확인하고 가도 늦지 않아. 그런데 백 차장. 옆에 계신 분을 소개해줘야지 않겠나?”
“아··· 죄송합니다. 마 팀장. 이분은 우리 미래건설 박 이사님 십니다. 이사님. 조금 전에 말씀하신 것처럼 이쪽은 동지마트 마동수 팀장입니다. 서로 인사 나누시죠.”
“하하하. 반갑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마동수 팀장님을 꼭 뵙고 싶었는데 이렇게 우.연.히. 만나게 되는군요.”
우연이라고 강조하는 그의 말이 전혀 우연처럼 들리지 않는 건 왜일까? 하지만 우찬 형님의 직장상사에게 실례를 범할 수는 없었다.
“안녕하십니까. 동지마트의 마동수 팀장이라고 합니다.”
“실례인 줄 알면서도 조금 전에 두 분이 이야기 나누는 모습을 조용히 지켜봤습니다. 정말 절친해 보이더군요. 원래 친분이 있는 건 알고 있었지만 지금 보니 꼭 친형제 같아 보였습니다.”
“아···! 그렇게 보이셨습니까? 그렇다면 잘 보셨습니다. 제가 우찬 형님, 아니 백 차장님을 참 좋아합니다. 이리저리 도움을 받은 것도 있고, 그래서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있죠.”
“오호. 그래요? 인제 보니 우리 백 차장의 인맥이 굉장했군요.”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백 차장이 다 좋은데 성격이 좀 강직해서 그런지 정치력이 부족했어요. 마 팀장님도 아시겠지만 직장인이 회사에서 성공하려면 정치도 할 줄 알아야 하거든요. 그런 면이 부족해서 아쉬웠는데 인제 보니 그게 아니었어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동지그룹 후계자로 강력하게 부상하고 있는 고현호 사장님의 최측근이 바로 마동수 팀장님 아닙니까? 역시 백 차장이 동지마트와의 건설계약을 따오는 이유가 있었어요. 하하하.”
“뭔가 오해를 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동지그룹 본사도 아니고 고작 계열사 팀장인 제가 무슨 힘이 있다고요. 동지마트와 미래건설 사이의 계약은 저와 상관없는, 순수하게 백 차장님 능력 덕분에 가능한 알이었습니다.”
“허허허. 그랬었군요. 백 차장 능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제가 이런 실수를 하다니···. 죄송합니다. 마 팀장님. 미안하네, 백 차장.”
“아닙니다. 이사님.”
“아니지, 아니야. 실수를 했으면 사과를 하는 게 맞지. 마 팀장님. 오늘은 시간이 늦었으니, 다음에 저와 식사 한번 하시죠. 사과의 뜻으로 밥 한 끼 사겠습니다. 연락은 백 차장을 통해 드리겠습니다.”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그의 얼굴에는 전혀 미안한 모습이 담겨있지 않았다. 사과가 아니라 통보하는 느낌에 가까웠다.
“사과라니요. 당치도 않습니다. 그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니요. 그럴 수 없죠. 저의 명백한 실수인데 그냥 넘어가면 제 마음이 불편합니다. 백 차장!”
“네. 이사님.”
“오늘은 일이 있어서 어쩔 수 없고, 조만간 마 팀장님과 식사 약속 꼭 잡아 주게나.”
“아··· 알겠습니다. 이사님.”
우찬 형님은 내 얼굴을 힐끔 보더니, 내가 슬며시 눈짓하자 마지 못해서 박 이사의 제안을 승낙했다.
“하하하. 고맙네, 백 차장. 그럼, 마 팀장님. 다음에 뵙겠습니다”
“네. 그러시죠. 다음에 뵙겠습니다, 박 이사님.”
잠깐의 만남이었지만 박 이사라는 사람은 본인의 말처럼 정치를 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우찬 형님을 이용해 나와의 식사 약속을 잡는 것만 봐도 충분했다. 힘이 어떻게 흐르는지 파악하고 그걸 자기에게 유리한 쪽으로 이용할 줄 아는 그런 부류다. 좀 재수 없지만 저런 종류의 인간을 함부로 대했다가는 괜히 피곤한 일만 생긴다.
나야 괜찮지만 우찬 형님이 문제다. 그는 이미 우찬 형님을 은근히 압박하면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보여줬다. 그렇다고 무작정 휘둘릴 생각은 없었다. 일단은 내게 원하는 게 뭔지 만나보고, 그 후에 대처해도 늦지 않다.
“휘유···. 뭔가 참 재미있는 사람이군요. 박 이사라는 양반.”
“그렇지? 여러모로 나랑 그리 맞는 성격은 아니지만 말이야. 미안해, 동수야. 괜히 나 때문에 귀찮은 만남까지 해야 하고.”
“아니에요. 괜찮으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저런 부류의 사람을 알아두는 것도 괜찮아요. 생떼를 쓰려고 저를 보자고 하는 건 아닐 테고, 밥 산다니까 거하게 한 번 얻어먹어 보죠, 뭐. 하하하. 그런데 왠지 일부러 접근한 기분이 들던데요.”
“휴···. 아마 일부러 접근했을 거야.”
“왜요? 혹시 회사에서 무슨 일이라도 있으세요?”
“일이라기보다는···. 박 이사 그 양반 너랑 나랑 친한 거 이미 알고 있어. 그러면서도 저렇게 시치미를 떼고 있는 거야.”
“왜요? 대체 뭐 때문에···?”
“아까 박 이사가 그랬잖아. 고현호 사장의 최측근이 동수 너라고. 내가 너랑 친하고 박 이사는 내 직장상사니까, 나를 이용해 네 덕을 보고 싶은가 보더라. 나 참 어이가 없어서.”
“그래서 박 이사가 형님 많이 괴롭혀요?”
“괴롭히다기 보다는 귀찮게 굴지. 동수 너에 대해 이것저것 묻기도 하고. 아무튼 잘 나가는 동생 덕분에 내가 좀 괴롭다. 하하하. 아··· 이건 그냥 농담이야. 좀 귀찮기만 하지 그 양반이 날 어떻게 할 수 있는 건 아니거든. 난 처음부터 시공이 내 전문이고, 그쪽 일을 망치지 않은 이상 내가 회사에서 잘릴 일은 없어. 그러니 내 걱정은 안 해도 돼.”
“그래요? 그럼 다행이고요. 아무튼 형님. 조만간 박 이사와 이야기해서 괜찮은 시간 알려주세요.”
“그래도 괜찮아? 우리 중에 제일 바쁜 게 동수 너 같은데?”
“이제 바쁜 건 거의 끝나서 괜찮아요.”
“그래 알았어. 우리 그날 박 이사 제대로 뜯어먹어 보자.”
“그럴까요? 하하하. 그럼, 형님. 연락 주세요. 그리고 다시 한 번 차장 승진 축하드려요.”
나는 감사하는 마음에 도와 드린 건데 그게 우찬 형님에게 좋은 영향만 주는 건 아니었다. 승진은 했지만 박 이사 같은 작자들이 나타나, 하이에나처럼 뭔가 뜯어 먹을 게 없나 기웃거리는 모습을 보니 과연 내가 잘한 건지 의문이 들었다.
차라리 예전처럼 누구의 도움도 없이 자신의 힘으로 당당하게 직장을 다니던 그 생활이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그런 후회였다. 은혜를 갚는답시고 우찬 형님이 먼저 요청도 한 것도 아닌데 너무 내 멋대로 군건 아닌가 하는 그런 후회도 들었다. 역시 사람 일이란 마음 먹은 대로 되지 않는 모양이다.
그래서 그런지 기뻐야 할 기공식 행사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이 좀 씁쓸했다.
============================ 작품 후기 ============================
살짝 고민하고 넣은 에피소드입니다.
요 며칠 우울하다보니 스토리가 이렇게 흘러갔을 수도 있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