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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가 전부는 아니야-323화 (323/424)

00323  소제목 추후 결정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나? 내가 안 나설 건데.”

“네? 그럼요? 서··· 설마 저요? 안 됩니다. 대장님. 저도 훈련받느라 힘 다 빠졌다고요. 그리고 힘이 넘친다고 해도, 저렇게 많은 놈들은 무리에요.”

“당연히 무리지. 왕 경사 네 한계가 깍두기 세 명이잖아. 나도 사람 봐가며 시키거든.”

“휴우··· 그럼요?”

행여나 자신이 나가서 싸워야 하는 건 아닌지 긴장하고 있던 왕 경사는, 광우의 말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저기 내리네. 운전석에서 내리는 덩치.”

“오···! 덩치 보니까 어디 맞고 다닐 몸은 아닌 것 같네요.”

“그렇지? 유도선수 출신에 따로 훈련도 받은 녀석이야.”

“선출요? 어쩐지. 기도가 달라 보이긴 하네요. 그런데 아무리 선출이라도 떼로 덤비면 힘들 텐데요. 사방에서 날아오는 주먹 막는 건, 웬만한 경험 없이는 힘들잖아요.”

“경험이 없으면 배우면 되지. 지금이 좋은 기회잖아.”

“네?”

“원래 애들은 맞으면서 크는 거야. 내 친구 보디가드인데 이럴 때 실력 좀 키워놓으면 좋잖아.”

남의 일처럼 말하며 ‘씨익’ 웃는 광우의 모습에 왕 경사는 소름이 끼쳤다. 그리고 난데없이 실전경험을 해야 할 윤권에게 명복을 빌었다.

“어! 실장님. 누구 만나러 가는 길이었나 봅니다. 저기 두 놈 보이십니까?”

“나도 보고 있어.”

“그런데 좀 정신이 이상한 놈들 같습니다. 이 추위에 민소매라니요. 또라이도 아니고···”

운전자의 말에도 말총머리 사내는 묵묵히 두 사람을 지켜봤다. 둘 다 190cm 정도 되는 덩치에 발걸음이 경쾌한 게 그리 호락호락해 보이지는 않았다. 특히 민소매를 입고 녀석은 겉으로만 봐도 꽤 강해 보였다. 그렇지만 자신보다는 부족해 보였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감이 좋지 않았다. 저절로 민소매보다 한발 앞서 걷는 사내에게 고개가 돌아갔다. 별다른 기세가 느껴지지 않는 남자였다. 그냥 덩치만 큰 바보이거나 아니면 자신이 절대 감당할 수 없는 고수···.

“아니겠지. 태어나서 지금까지 한 번도 그런 고수를 만나본 적이 없는데 갑자기 여기 나타날 리가 없잖아.”

그는 왠지 좋지 않은 예감을 애써 누르며 고개를 저었다.

“네?”

“아니야. 두 명이 추가된다고 달라질 게 있겠어? 준비하라고 해.”

“당연하죠. 우리 애들뿐만 아니라 실장님도 계신 데 무슨 문제가 생기겠습니까.”

광우는 헐레벌떡 차에서 내리는 동수와 윤권에게 웃으며 다가갔다.

“이야. 호텔 뷔페가 담긴 밥차는 안 오고 엉뚱한 놈들만 끌고 왔네. 어떻게 된 거야?”

침착함을 되찾았다고 해도 가슴 한켠이 불안했던 동수는, 이런 긴박한 상황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광우를 보고서야 완전히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글쎄. 나도 몰라. 뭐하는 놈들인지는.”

“하여간 사고뭉치라니까. 어떻게 허구한 날 사건을 몰고 다니냐. 예나 지금이나 인간이 달라지지를 않아.”

“인마. 사람이 변하면 죽는댔어. 그리고 이번엔 진짜 위험했다고! 내 차 봐라. 다 찌그러졌어. 아우. 저 차가 어떤 찬데.”

“어떤 차긴. 서민 코스프레 하는 차지. 어어어. 성윤권! 너는 왜 이리로 와?”

“저요? 헤헤헤. 형님 몸 쓰시는데 제가 방해할 수는 없잖아요.”

긴장하고 있었던 건 윤권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이야 어떤 상황이 닥치더라도 몸 하나 정도는 빼낼 수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동수였다. 일반인치고는 운동으로 다져져 있다고 해도 민간인은 민간인. 만에 하나 광우를 만나지 못했다면 그런 동수를 데리고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이제 광우를 만났으니 안심이었다. 그냥 그의 뒤에 서서 광우의 환상적인 격투기 솜씨만 구경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갑자기 그가 윤권을 불러 세웠다.

“누가? 내가 몸을 써? 꿈도 야무지다. 너 이 녀석! 소 잡는 칼로 닭 잡는 거 봤어?”

“그··· 그럼요?”

반문하는 윤권. 그러나 그 또한 자신의 운명을 예감했다.

“모른 척하기는. 그동안 내가 가르쳐 준 걸 얼마나 열심히 네 것으로 만들었는지 테스트해야지. 일명 숙제검사.”

“광우 형님. 그러기에는 사람이 너무 많지 않습니까?”

“그렇게 안 많을 거야. 마침 저쪽 애들도 내리네. 하나, 둘, 셋···. 총 열두 명. 어라. 한 명은 너보다 쎌 것 같기도 하다. 이거 재미있겠는데.”

까만색 승용차에서 우르르 내리는 일당들을 보던 광우의 눈빛이 재미난 장난감을 본 것처럼 반짝였다.

“네? 저보다 쎌 것 같다고요? 그럼 저 안 싸워도 되는 거죠. 한 명도 못 이기는데 열두 명을 어떻게 감당합니까?”

“괜찮아. 보아하니 저 말총머리 녀석은 나설 것 같지가 않아. 그럼 할만하잖아. 몇 대 얻어맞겠지만 열한 명 정도는 상대할 수 있을 거야.”

“큭···! 팀장님.”

윤권은 최후의 수단으로 동수를 불렀다. 그러나 사선을 뚫고(?) 여기까지 온 동지답지 않게 고개를 돌려 그의 부름을 외면했다.

“이놈이! 동수 찾지 말고 얼른 앞으로 안 나가?”

“네. 형님.”

마지막 희망까지 사라진 윤권은 광우의 윽박에 고개를 떨구고 위풍당당하게 서 있는 열한 명의 무리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뭐지? 실장님. 저 녀석들 제정신이 아닌가 봅니다. 죽기 살기로 네 명이 전부 덤벼도 불가능한데 고작 한 명만 나서네요. 너무 무서워서 정신줄을 놓은 걸까요?”

“대화라도 하고 싶은 건가 보지. 어이! 거기 뒤에 숨어 있는 마동수 팀장님!”

***

“어이! 거기 뒤에 숨어 있는 마동수 팀장님!”

광우 뒤에서 조용히 싸움 구경을 하려는데 말총머리가 날 도발한다. 하지만 내게는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광우가 있다. 꿀릴 게 없으니 적당히 도발에 넘어가 줘도 된다.

한 가지 걸리는 게 있다면 나를 ‘마동수 팀장’으로 불렀다는 사실이다. 그런다는 건 개인적인 원한이 아니라 회사의 누군가가 개입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어쨌든 나로서도 대화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왜 불러. 말총머리.”

“치사하게 뒤에 숨지 말고 남자답게 앞으로 나오시죠.”

“치사하게 떼로 덤비는 게 누군데 그래. 생긴 것도 기집애처럼 머리를 기르더니, 하는 짓도 기집애처럼 치사하네.”

딱히 여성을 비하할 생각은 없다. 나 나름대로 저놈을 도발하는 중이다.

“개자식이! 야 이 존만아. 뭐가 어쩌고 어째? 뒈지고 싶냐?”

“아니. 살고 싶은데 말총머리!”

“저 새끼가 끝까지···. 너 그렇게 계속 겁 없이 까불면 눈만 뜨고 살아가는 수가 있다.”

“오호라. 목숨은 붙여놓으라고 했나 보지?”

“그래···. 가··· 갑자기 그게 무슨 개소리야?”

“아닌 척하기는. 뻔하잖아. 내가 좀 삶을 익사팅하게 살고 있긴 한데 그렇다고 너희 같은 깡패 새끼들하고 원한 산적은 없거든. 그럼 뻔하잖아. 누군가의 사주를 받았다는 거지. 안 그래?”

“깡패 아니거든!”

몸만 쓰는 놈이라서 그런지 기대 이상으로 단순하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이 정도 대화만 나눠도 얻어 낼 수 있는 정보는 많다.

“광우야. 깡패 아니란다.”

“하여간 잔머리는···. 회사원 말고 경찰을 하지 그랬냐?”

“그러기에는 내 성적이 좀 안 됐잖아. 경찰대 가려면 서울대 갈 실력은 돼야 했다고.”

“지금이라도 안 늦었어. 경찰 간부 시험 봐. 내가 도와줄게.”

“사양한다. 난 이미 타성에 젖었어. 경찰 박봉으로는 못 살지. 흐흐흐.”

“아쉽네. 경철 됐으면 내가 열심히 굴려 주려고 했는데. 그런데 이번엔 꽤 높은 사람들 눈 밖에 났나 봐? 깡패 아니면 이런 쪽으로 꽤 전문적인 놈들이라는 건데 저런 새끼들을 움직이려면 돈이 한두 푼 드는 게 아니거든. 하여간 너도 참···. 남들 원한 사는 쪽으로는 재주가 탁월한 것 같아. 그래서 네 생각엔 누구 벌인 일 같아?”

그러게 말이다. 왜 이렇게 나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지. 난 정말 착실하게 열심히 살았을 뿐이다.

“음···. 둘 중 하나같은데?”

“하나는 동지그룹 고현호 사장 형들일 테고. 다른 하나는?”

“오! 짜식. 이렇게 산골짜기에 쳐박혀 있어도 내 소식에는 관심을 가지고 있었구나.”

“모르고 싶어도 네가 워낙 떠들썩하잖아. 잔머리로 동지그룹 후계 구도를 흔들어 놨으니 너도 참 대단한 놈이다.”

“부러우면 나랑 같이 일할래? 너만 온다면 내 전 재산에서 딱 반을 떼 줄 수 있어.”

농담이 아니라 진심이다. 동지마트의 주가가 하루가 다르게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는 덕분에 내 재산은 이미 천억 원을 훌쩍 넘어버렸다. 거기에 반이면 최소 오백억 원이 넘는 엄청난 거금이지만 광우의 가치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만큼 특별하다.

“나도 사양한다. 난 나쁜 놈들 때려잡는 게 천직이야. 그런데 다른 하나는 누구야? 그쪽은 나도 상상이 안 가는데.”

“확률은 희박하지만 와룡그룹일 수도 있어.”

“와룡그룹? 거기가 왜? 너너너··· 설마?”

“쉿! 자세한 건 나중에.”

“아··· 완전 개또라이 같은 녀석! 하하하. 미친놈 같으니라고. 너 인마 조심해. 그러다 나한테 잡히는 수가 있어.”

“헉. 뭐 그렇게 살벌한 소리를 해. 그냥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한 거지 범법행위는 없었거든! 그리고 앞으로도 없을 거고.”

“그래. 현명한 생각이다. 앞으로도 그 생각은 잊지 말도록 해. 내가 봐도 넌 좀 사기꾼 기질이 있거든. 그렇게 머리만 믿으며 살다 보면 어느 순간 법을 어기고 싶은 유혹에 빠질 수도 있어. 지금은 아니라고 해도 분명히 생길 거야. 그게 쉽거든. 조금만 법을 어기면 세상이 편해지니까. 만약 그런 유혹이 생기면 나를 생각해. 내 별명이 뭔지 알지?”

“네 별명이 한두 개···. 서··· 설마 고··· 고자 요정?”

“그래. 난 나쁜 놈은 친구고 뭐고 안 봐줘. 그러니까 제수씨랑 오래오래 사랑하고 싶으면 절대 법은 어기지 마라, 동수야. 그럼 내가 영원히 좋은 친구로 남아주마.”

농담 같은 진담에 모골이 송연해졌다. 광우 저 자식은 분명 그러고도 남을 녀석이다.

솔직히 지금까지 내가 합법과 편법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한 건 사실이다. 그럴 때마다 고민했다. 조금만 법을 어기면 일이 훨씬 편해지는 데, 그런 짓을 한다고 걸릴 확률도 거의 없는데, 그냥 ‘확 저질러 버릴까?’ 이런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니다.

지금까지는 그런 유혹이 생길 때마다 시연이를 생각하며 잘 견뎠는데, 이젠 그러지 말아야 할 확실한 이유가 생겼다. 나는 절.대.로. 고자가 되고 싶지 않다.

“당연하지! 난 법과 질서를 사랑하는 대한민국 건아라고.”

큰소리를 치는 내 말이 좀 과장되고 어색했을까? 광우가 어이없다는 듯 나를 보며 피식 웃었다.

“어이···! 이봐. 마 팀장 나리. 이제 상의는 다 끝났나? 괜히 시간을 끌려고 하는 거라면 정말 가만 안 둘 거야.”

아차차! 잠시 저 말총머리를 잊고 있었다. 광우가 곁에 있으니 마음이 너무 편안해져 지금이 어떤 상황인지 깜빡했다. 그런데 저 녀석도 참 웃긴 놈이다. 대체 뭐 때문에 우리가 상의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 걸까?

“뭐야? 아직 안 싸운 거야?”

“뭐?”

“그놈 참. 기집애처럼 뭐가 그리 말이 많아! 말은 그만하고 이제 좀 싸우지?”

“저저저저··· 저 자식이. 진짜···. 뭣들 해! 저 정신 나간 새끼 당장 이리로 안 끌고 오고!”

============================ 작품 후기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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