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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가 전부는 아니야-324화 (324/424)

00324  소제목 추후 결정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

말총머리의 지시에 턱수염을 잔뜩 기른 남자가 가장 먼저 윤권을 향해 달렸다. 성난 코뿔소가 연상되는 맹렬한 기세였다.

상대의 돌진을 바라보던 윤권의 자세가 묘하게 변했다. 마치 리듬을 타듯 좌우로 건들거렸다.

“뭐야? 제 왜 저래?”

“훈련 효과야.”

“네가 가르친 게, 저렇게 요상한 자세야?”

“저거 말고도 몇 가지 더 있긴 하지만 가장 기본이 되는 건 저 자세지. 아직은 수련단계라 건들거리는 것처럼 보여도 능숙해지면 움직임이 거의 없어져. 그때가 되면 진정 고수라고 할 수 있지.”

“저렇게 동작을 취하면 고수가 될 수 있는 거야?”

고수가 될 수 있다는 말에 귀가 솔깃해진 동수가 물었다.

“으휴···. 아서라. 저게 무슨 동작인지도 모르는 녀석이 고수 타령을 해?”

“왜? 지금 저 동작이 유명한 자세야?”

“권투 동작이잖아. 더킹, 위빙. 당연히 모르겠지?”

“··· 권투야 당연히 보지. 그런데 더킹? 위빙? 그런 말도 있었어?”

“권투 보면 선수들이 상하로 좌우로 흐느적거리며 주먹 피하는 거 봤지? 그걸 가지고 더킹, 위빙이라고 하는 거야.”

“아··· 그것도 이름이 있었구나. 저걸 하면 주먹을 보면서 피할 수 있는 거야?”

“이론적으로 주먹으로 보면서 피하는 건 불가능해. 사람이 날아오는 주먹을 보고 거기에 반응해서 몸을 움직이려는 순간 주먹은 이미 도달해 버리거든. 쉽게 설명하면 예측이야. 축구에서 승부차기를 보면 이론적으론 골키퍼가 날아오는 공을 막는 게 불가능하다고 해. 야구에서도 106km가 넘는 공을 눈으로 보고 때리는 건 불가능하고.”

“그게 다 예측이라는 거야?”

“그렇지. 나중에 더욱 익숙해지면 상대의 어깨만 보고도 스트레이트인지 훅인지 어퍼컷인지 알 수 있지만, 그건 나중 일이야. 일단은 상대의 박자와 타이밍에 맞게 몸을 흔들면서 주먹을 피하는 게 먼저야.”

“오···! 그렇게 설명하니까 뭔가 되게 심오해 보인다. 그럼 넌 어때?”

“나? 난 저따위 느린 주먹은 보면서도 피해. 하지만···.”

“하지만?”

“상대가 나라면 걔네들은 주먹을 날릴 기회조차 없을 거야.”

“···”

엄청난 자신감에 동수는 입을 다물었다.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사이 불도저처럼 돌진하던 턱수염 사내가 윤권의 엎어치기에

그대로 바닥에 내리꽂혔다.

“쯧쯧쯧. 약해. 바닥에 내리꽂으면서 어깨에 체중을 실었어야지. 저러면 뼈가 안 부러져서 정신 차리고 다시 덤빈다고. 뼈가 부러지고 살이 터져야 덤빌 생각을 못 하는데, 윤권이 저 녀석은 확실히 마음이 약해.”

“뼈가 부러지고 살이 터진다? 휘유. 어째 좀 무시무시하다.”

아직 이런 일에 익숙하지 않은 동수가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싸움은 기세 싸움이야. 같은 편이 그렇게 당하는 모습을 봐야 저놈들도 겁을 먹고 마음껏 덤비지 못한다고. 저것 봐. 한 놈이 나가떨어졌는데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덤벼들잖아.”

“진짜 그러네. 같은 편이 쓰러졌는데도 신경 쓰는 놈들이 아무도 없어. 그런데 광우야. 유도를 배운 윤권이에게 왜 권투 동작을 가르쳐?”

“무술은 원래 만류귀종(萬流歸宗)이야. 그리고 쉽게 설명하려고 더킹과 위빙이라는 말을 썼지, 회피 동작은 모든 무술의 기본이야. 저 녀석이 하고 있는 동작도 정확하게 말하면 더킹이나 위빙과 조금 달라. 그렇지만 효과는 훨씬 탁월해.”

“···”

광우의 말처럼 턱수염이 바닥으로 나가떨어지는 것과 동시에 십여 명의 사내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윤권에게 달려들었다. 사방에서 둘러싸자 윤권은 바람 앞의 촛불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조금 전까지 여유 있게 대화를 나누던 동수도 긴박한 상황에 눈을 떼지 못했다.

퍽!!

“윽···!”

가장 정면에 있던 남자가 기습적인 주먹을 피하지 못하고 바닥에 쓰려졌다. 동료가 쓰러지자 옆에 있던 두 명이 동시에 달려들었다. 계속 리듬을 타던 윤권이 고개를 가볍게 숙여 오른쪽 남자의 팔을 잡아채 왼쪽으로 집어 던졌다. 두 사람이 널브러졌지만 숫자에서 절대적으로 불리한 건 윤권이었다.

‘동작은 작고, 행동은 빠르게.’

윤권은 광우가 해준 말을 곱씹으며 계속 몸을 움직였다. 아까보다 훨씬 움직임이 잦아졌다. 그 모습을 지켜보단 광우의 눈에 이채가 돌았다.

“죽어. 이 새끼야!”

뒤에서 몽둥이를 들며 한 남자가 달려들었다. 윤권은 오른쪽 다리만 살짝 움직여 몽둥이를 피하고 무릎으로 상대의 배를 찍었다.

“크윽···.”

배를 찍힌 사내가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 모습을 보며 재차 공격하려고 했지만 나머지 사람들이 그를 가만두지 않았다.

“어휴···. 저 자식! 거기선 배가 아니라 거시기를 찍었어야지! 결국은 전투불능된 애들이 하나도 없잖아.”

광우가 답답한 듯 소리치자 동수가 움찔거리며 손으로 아랫도리를 가렸다.

확실히 광우의 지적은 틀리지 않았다. 이미 제일 처음 엎어치기에 당했던 턱수염이 충격을 회복하고 싸움에 가세했다. 두 번째로 널브러졌던 두 명의 남자도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왜? 윤권이가 많이 불리해?”

“저런 식이면 필패지. 전투 불능으로 만들지 않는 이상 저건 그냥 체력 싸움이야. 그럼 절대 혼자서 열 명을 감당할 수 없게 되지. 저 녀석들 봐. 윤권이가 치명상을 입히지 않는다는 걸 알고 더욱 자신감을 가지기 시작했어. 맞는 데는 이골이 난 녀석들이니까 겁 날 리가 있겠어. 일격필살. 그렇게 강조를 했는데도 막상 닥치니까 못하잖아. 이래서 역시 사람은 실전을 겪어 봐야 해.”

동수의 걱정스러운 질문에 광우는 마치 권투 중계하듯 차분히 설명을 해줬다.

“그럼 어쩌지? 다치는 건 아니겠지?”

“다치면 곤란하지. 오늘 온종일 나한테 다시 배워야 하는데. 기다려 봐. 왕 경사!”

“네. 대장님.”

“혹시 모르니까 이 녀석 좀 지키고 있어.”

“오오오오오. 드디어 대장님께서 출동하십니까?”

옆에서 상황을 조용히 주시하던 왕 경사가 또다시 호들갑을 떨었다.

“출동은 무슨. 그냥 조언이나 몇 마디 해주려는 거야.”

광우가 싸움이 일어나는 곳으로 향해 하는 동안 윤권의 상황이 급격히 나빠졌다.

치명적인 공격을 하지 못하는 윤권은 말총머리 패거리들의 어려운 상대가 아니었다. 더군다나 별다른 무기도 없는 맨 주먹이었다. 기껏해야 몇 대 맞으면 그만이었다.

이런 생각으로 겁 없이 덤벼들자 아무리 좋은 리듬을 타고 있던 윤권도 그들의 공세를 막아내지 못했다. 사방에서 들어오는 주먹과 발길질에 금방 손발이 어지러워져 허둥지둥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몽둥이를 들고 덤비다 무릎을 배에 찍혀 주저앉았던 사내가 기회를 엿보며 치명상을 안 길 준비를 했다. 패거리 중 한 명이 몽둥이를 들고 다가오는 그를 발견하고 길을 터줬고, 사내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야구방망이로 스윙하듯 크게 휘둘렀다.

휘익~! 퍽!

“끄윽!”

하지만 짧은 비명을 지르며 쓰러진 건 윤권이 아니라 몽둥이를 든 사내였다. 그는 끔찍한 고통에 거품을 물며 바닥을 미친 듯이 굴렀다.

“끄아아아아악!”

그리고 짧은 텀을 두고 터져 나오는 끔찍한 비명소리. 그 모습을 지켜보던 동수는 턱이 빠진 것처럼 입을 다물지 못했고, 광우는 아쉬운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미안미안. 오랜만이라 강도조절에 실패했어. 원래는 한 개만 깨려고 했는데, 두 개 다 터질 줄은 몰랐네. 쏘리···.”

소울(?)이 담긴 끔찍한 비명에 싸움은 순식간에 멈췄다. 그리고 곧바로 들려오는 광우의 목소리. 나지막했지만 마치 이어폰에서 들리듯 귀에 또렷하게 들렸다.

특히 ‘두 개 다 터졌다.’라는 말은 마치 메아리처럼 귓속을 미친 듯이 맴돌았다.

“감사합니다. 광우 형님.”

위험했던 고비를 넘기자 윤권은 재빨리 광우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고마워할 것 없어. 내가 그렇게 강조를 했는데도, 아직도 동정심을 못 버렸어. 물론 불쌍한 사람에게 동정심을 갖는 건 좋아. 하지만 저것들은 사람들이 아니야. 네가 지켜야 할 동수를 납치해서 고문하려고 하던 악랄한 놈들이라고.”

고문하려고 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광우는 자극적인 표현도 서슴지 않았다.

“고문이요?”

“그래. 아까 못 들었어? 죽이지만 않으면 된다고 했잖아. 그게 무슨 뜻이겠어? 그만큼 생양아치라는 뜻이야. 봐줄 가치조차 없는 놈들을 왜 봐주려고 해. 윤권아. 방금 내가 한 거 봤지?”

“쓰러진 저 남자 말입니까?”

“그래. 이게 바로 기세 싸움이라는 거야. 쓰러진 남자가 중요한 게 아니야. 저놈 패거리에게 공포심을 안겨준 게 중요해. 너랑 나랑 이렇게 수다를 떠는 대도 감히 덤벼들 생각을 못 하잖아. 이게 바로 기세야. 알겠어.”

“넵.”

“그럼 지금부터는 무조건 거시기만 노린다. 발로 걷어차든, 무릎으로 찍든 그건 네 편한 대로 해. 하지만 무조건 거시기야 알겠어?”

“네. 형님.”

“그래. 좋아. 그럼 다시 붙어봐. 내가 뒤에 있다는 걸 명심하고!”

광우는 짧은 충고와 함께 윤권의 등을 두드리며 기를 북돋워 줬다. 다른 어떤 말보다 ‘내가 뒤에 있다는 걸 명심하라.’는 말이 큰 힘이 되었다. 첫 만남에서는 도무지 넘을 수 없는 거대한 벽 같은 광우였지만 같은 편의 그는 천군만마보다 더 든든했다.

심호흡을 크게 한 번 한 윤권은 십여 명의 패거리들을 휙 둘러보고는 자신 있게 한발을 내디뎠다.

============================ 작품 후기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분량이 짧아서 죄송..

'늘린다.', '떼운다.' 이런 반응이 계속 보이는 걸 보니 제 글이 또 늘어지나 봅니다. 실망하셨다면 죄송합니다. 좀 더 분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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