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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가 전부는 아니야-327화 (327/424)

00327  소제목 추후 결정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

“그래도 꼭 조심해서 오세요.”

- 알았어. 근처 도착하면 전화할 게.

“네. 기다릴게요.”

“왜왜. 무슨 일이라니? 진짜 마 서방 차래? 몸 다친 곳은 없고?”

시연이 수심이 가득한 얼굴로 전화를 끊자 노 여사가 걱정스레 물었다.

“응. 동수씨 차 맞대. 다행히 다친 곳은 없는데 대신 윤권 오라버니가 좀 다쳤나 봐.”

“윤권이면 동수 보디가드?”

“네. 아빠. 큰 부상은 아니고 단순한 타박상이래요.”

“크게 다친 게 아니라니 다행이구나. 그 봐라. 그 녀석은 사고뭉치라서 보디가드 한 명은 있어야 한다고 내가 그랬지?”

사실 지난번 납치 사건이 일어났을 때 보디가드 이야기를 가장 먼저 꺼낸 사람이 윤 사장이었다. 겉으론 투덜거려도 누구 못지않게 동수를 아끼는 그였고 그건 ‘사고뭉치’라고 말하면서도 걱정 가득한 그의 얼굴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게요. 고마워요, 아빠. 그런데 대체 무슨 일일까요?”

일단 다친 곳이 없다니 안심이 되긴 했다. 그러다 문득 동수의 말과 뉴스 사이에 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뉴스는 분명 폭력 조직의 경찰 습격 사건이라고 보도했다. 그런데 그 사건 중심에 동수의 차가 있다는 게 아무래도 마음에 걸렸다.

“혹시 마 서방에게 우리가 모르는 비밀이 있는 거 아니야?”

“비밀? 무슨 비밀?”

“대외적인 신분은 회사원이지만 사실은 정부 요원이라든지 그런 거? 그게 아니라면 경찰 습격 사건이 일어나는 곳에 마 서방이 있을 리가 없잖아.”

“엄마! 동수씨가 그런 위험한 일을 하면서 내게 비밀로 할 리가 없거든.”

“이것아! 위험한 일이니까 네게 말을 못하는 것일 수도 있지. 넌 영화도 못 봤어? 가족에게까지 비밀로 해야 하는 게 스파이의 슬픈 운명이라고.”

“어휴···. 요즘 맨날 스파이물 소설만 읽으니까 모든 게 다 그렇게 보이지?”

“호호호. 그런가? 그럼 어쩌니. 이번에 야심 차게 준비하고 있는 소설이 스파이물인데 사장인 내가 제대로 분석을 해줘야지 않겠어? 너도 한 번 읽어볼래? 기왕이면 서평을 남겨줘도 좋고.”

노 여사도 동수가 걱정되지 않는 건 아니었지만 시무룩해 있는 딸을 위해 장난을 치는 중이었다. 다행히 다친 곳은 없다고 해서 그녀도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됐어. 치! 여행 및 로맨스 작가가 스파이물에 무슨 서평이야.”

“같은 장르물인데 뭐가 어때? 그리고 스파이 소설에 빠질 수 없는 게 바로 로맨스라고. 윤시연 작가가 추천하는, 스파이들이 펼치는 아름답고 치명적인 사랑 이야기. 어때 괜찮지 않아?”

“그래도 싫어. 내가 누굴 추천하고 칭찬하는 건 아직 무리야.”

“왜? 너도 재미있다고 했잖아. 재미있다고 서평 남겨주면, 네 팬들이 책을 사줄 테고···”

“그래서 싫다는 거야. 재미는 있지만 내 이름을 걸고 추천해줄 만큼인지는 잘 모르겠어. 왜 그런 거 있잖아. ‘XX 대학 추천 도서, 20대에 반드시 읽어야 할 소설, 죽기 전에 읽어야 할 책.’ 이런 거 난 별로였어. 추천이 자칫 강요가 될 수 있거든. 언젠가 나이가 들어서 정말 내 이름에 책임을 질 수 있을 때, 서평은 그때 생각해볼게.”

“우리 딸이 그런 생각을 다 하다니 참 기특하긴 한데 그거 어째 말투나 논조가 마 서방 닮았다?”

“사실 동수씨가 한 말이 생각났어. 예전에 나보고 서머싯 몸이 마음에 안 든다고 그랬거든.”

“서머싯 몸? 달과 6펜스를 쓴 그 작가? 마 서방은 그 작가가 왜 마음에 안 든대?”

“그 작가가 생전에 세계 10대 소설을 선정했어. 훌륭한 작가니까 그럴 수는 있는데, 문제는 전부 서양 소설이라는 사실이야. 백경, 오만과 편견, 전쟁과 평화, 폭풍의 언덕. 이런 소설이 전부 그 사람이 선정한 세계 10대 소설이거든. 물론 훌륭한 소설이긴 해. 하지만 냉정하게 말해 서양 10대 소설이라고는 할 수 있어도, 세계 10대 소설이라고 하기에는 어렵지. 결국은 서머싯 몸은 자기 이름을 걸고 10개의 소설을 추천했지만, 그와 동시에 잠재된 자신의 백인우월주의도 함께 드러냈어.”

“라고 마 서방이 이야기한 거겠지.”

“헤헷. 맞아. 그래서 자신의 이름을 걸 때는 책임도 따르기 때문에 그만큼 조심해야 한다고 그랬어.”

노 여사의 지적에도 시연은 여전히 해맑은 미소를 지었다.

“어쩐지. 뭔가 궤변스럽지만 논리적으로 반박하긴 어려운 게 딱 마 서방 말투다 싶었어. 그냥 지금과 같은 세계화 시대가 아니니 동양의 소설을 접하기 어려워서 그랬을 수 있잖아. 좀 더 넓은 포용력을 보여도 될 것 같은데?”

“그것도 인정.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윤시연’이라는 이름을 걸고 다른 작가의 책을 누군가에게 추천하기에 나는 너무 어려.”

“아쉽네. 도서출판 길벗의 대표로서 좋은 마케팅 요소를 놓친 것 같아 아쉽지만 엄마로서는 우리 딸이 유명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겸손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아 기특해.”

“미안해, 엄마.”

“아니야. 윤시연님은 우리 출판사의 대표 작가인데 의견을 존중해야지. 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요, 마 서방 빠순이 윤 작가님!”

“저도 잘 부탁드릴게요, 노 사장님.”

“어머! 빠순이라는 말에도 부정 안 하는 거 봐. 내 딸이지만 정말 넌···. 당신 표정이 왜 그래요?

두 사람이 장난스럽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동안에도 윤 사장의 얼굴은 좀처럼 펴질 줄 몰랐다.

“흠··· 두 사람 이야기 이제 끝났어?”

“왜요? 할 말이라도 있어요?”

“응. 뭐 좀 물어보려고. 시연아.”

“네. 아빠.”

“동수가 여기 몇 시쯤 온다고 그랬어?”

“금방 출발한다고 했으니까 한두 시간 안에는 오지 않을까요? 근처에 오면 전화한다고 했어요.”

“그래? 그럼 따로 만나지 말고 여기로 오라고 해라. 이번 일 아빠도 좀 신경이 쓰이는구나.”

“그렇죠? 아빠도 이상하죠?”

“그래. 확인해봐야 알겠지만 만약 저들이 노린 것이 경찰이 아니고 동수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세상에 어느 깡패가 경찰 훈련장을 기습해. 다른 나라는 모르겠다만 우리나라에서는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야. 불 속으로 날아드는 부나방이라면 모를까.”

물론 원한이 있다면 경찰도 공격할 수 있다. 그러나 개인에 대한 보복으로 끝나지 경찰 조직을 타깃으로 잡지는 않는다. 대한민국에서 이런 식으로 공권력에 대해 도전하는 건 자살행위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런 말도 안 되는 사건에, 딱 한 가지만 바꾸면 꽤 그럴듯한 이야기가 된다. 목표를 경찰이 아니라 동수로 바꾸기만 하면 된다.

“그러니까 당신은 저들이 노린 게 사실은 경찰이 아니라 마 서방일 수도 있다는 말씀이에요? 아니 왜요? 우리 마 서방처럼 선량한 사람을 누가 노린다고요.”

“사람의 원한은 예기치 않은 상황에서 생겨. 동수가 착한 성격도 아니고 비슷한 전력(前歷)도 한 번 있잖아. 한번 납치 시도가 있었는데, 두 번 일어나지 말라는 법도 없어.”

“대체 누가 우리 사위를 건드린단 말이에요!”

“흥분할 것까지는 없고. 일단은 동수 말을 들어보자고. 판단은 그 뒤에 해도 늦지 않아.”

***

내 모닝은 사건 조사를 한다고 경찰이 끌고 가서, 어쩔 수 없이 광우가 몰아주는 차로 강남으로 넘어왔다.

조용히 넘어갈 줄 알았던 이번 사태는 방송에 내 차가 출연(?)하면서 꽤 시끄럽게 변해버렸다. 시연이, 부모님, 동생, 친구 등 내 차를 알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이 뉴스를 보고 전화를 걸어 내 안부를 물어오는 바람에 녹음기처럼 계속 같은 말을 반복해야 했다.

그래도 시연이와 데이트할 수 있다는 기대에 피곤함을 견뎠지만, 마지막에 도착한 문자 하나에 그런 나의 꿈도 좌절되었다.

“그러니까 결국 그놈들이 노린 건 자네라 이 말이지.”

“네, 아버님.”

윤 사장님이 보고 싶어한다는 문자에 나는 눈물을 머금고 그녀의 집으로 뛰어 올라가야 했고, 지금까지 한 번도 보지 못한 엄한 모습에 모든 사실을 이실직고하고 말았다.

“그래서 누구라고 생각해?”

“저도 잘······.”

“그래도 동수 자네라면 누군가 추측되는 사람이 있을 것 아닌가?”

어머님과 시연이 앞이라 말은 점잖게 하고 계시지만, 뉘앙스 자체가 굉장히 단호해 둘러대기도 힘들었다.

“그게 저···.”

“왜? 시연이 엄마랑 시연이가 있어서 말하기 힘들어?”

“그건 아닙니다. 한가족인데 말하기 어려울 게 뭐가 있겠습니까? 단지 저도 확신하기는 어려워서요.”

“확실하지 않아도 괜찮으니까 일단 말해 보게.”

“우리 동지그룹 후계자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는 건 아버님도 잘 아실 겁니다.”

“알다 마다. 요즘 들어 고현호 사장이 급부상하는 바람에 후계 구도가 더욱 복잡해졌지 않은가?”

“맞습니다. 제 입으로 이런 말을 하기가 좀 조심스럽긴 합니다만, 최근 헤드헌터 쪽을 중심으로 저에 대한 이상한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무슨 소문? 자네가 미다스의 손이라는 소문?”

역시 윤 사장님도 알고 있는 소문이었다.

“네. 조금 민망하지만 그런 소문이 돌고 있죠.”

“뭐가 민망해. 그만큼 능력이 출중하다는 이야기 아닌가? 나도 자네 능력은 인정해. 고현호 사장이 지금처럼 차기 후계자로 강력하게 부상할 수 있었던 것도 상당 부분 자네의 공이 크다고 알고 있어.”

“그게 어디 제 혼자 힘으로 될 일인가요. 다 같이 노력한 결과죠. 그런데 바로 그 소문이 문제인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들이야 그냥 소문으로 치부해버리겠지만, 고현호 사장의 형님 되는 두 사람은 그냥 넘어가기 어려웠겠죠.”

“흠···. 나 역시도 그렇게 생각해. 지금 상황에서 자넬 눈엣가시처럼 생각할 사람은 고 회장님의 두 아들밖에 없지. 그래서 이제 어쩔 건가? 설마 방송을 통해 정보를 교란한다고 진짜 범인을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광우의 차를 타고 서울로 넘어오면서 우리 둘이 내렸던 결론도 윤 사장님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잡으려고 노력한다면 중간책까지는 잡을 수 있다. 하지만 그래서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 오히려 동지그룹이 관여했다는 소식만 부풀려져 그룹에 불이익만 안겨줄 게 뻔하다.

“설사 잡는다고 해도 그룹 전체로 봤을 때는 좋을 게 없을 겁니다.”

“그럼 앞으로도 계속 불안에 떨며 살 건가?”

“아직 여유가 있으니 저도 생각해볼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당분간은 윤권이와 함께 회사와 집만 오고 갈 겁니다. 설마 도시 한복판에서 절 어떻게 하려는 시도야 있겠습니까?”

“모를 일일세. 다른 곳도 아니고 동지그룹의 차기 총수자리가 걸린 일이야. 그 정도 자리면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걸세.”

“그렇다고 그런 게 무섭다며 숨을 수도 없는 일 아닙니까?”

“그럼 이번 일은 그냥 내게 맡기게.”

“네? 아버님에게요? 무슨 좋은 방법이라도 있으십니까?”

“내가 누군지 잊었나? 나 윤 스포츠센터 사장 윤승태야. 내 가족을 건드린다는 건, 곧 나를 건드리는 것과 똑같아. 이건 나에 대한 모독이라고. 고대성 회장님에게 직접 항의 할 생각일세.”

“고··· 고대성 회장님에게요?”

“윤 스포츠센터 CEO면 충분히 항의할 수 있는 위치야. 만약 내 말을 무시하면 D&Y 피트니스 클럽 계약을 해지하면 그만일세. 내 가족을 위협하는 건 분명한 계약해지 사유거든. 만약 계약해지 사유가 되지 않더라도, 가족을 위험에 빠트리려는 회사와 같이 일할 순 없지.”

나를 바라보며 말하는 윤 사장님의 눈빛은 진심이었다.

순간 울컥하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절대 흉내 낼 수 없는 윤 사장님의 최고 장점이 바로 저런 모습이었다.

나라면 어땠을까? 최소 수백억 원을 손해 볼 수 있는 일을 포기할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나라면 쉽게 포기하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내가 두 형제 중 누군가의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도 했다.

============================ 작품 후기 ============================

윤 사장님이 화가 나셨습니다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독자님에 따라서는 스토리 진행이 드뎌서 답답함을 느낄 수도 있을 겁니다. 제 스타일이 그런지 화끈하고 통쾌한 이야기보다는 소소한 이야기 위주로 진행할 수밖에 없더라고요.제가 요즘 마음이 좀 복잡하다며 핑계를 대고 싶지만 그냥 제 역량의 한계같습니다. ㅠㅜ

그래도 이제 정말 스토리는 거의 종반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모두 화이팅입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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