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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가 전부는 아니야-330화 (330/424)

00330  소제목 추후 결정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당연합니다. 회장님. 그렇지 않아도 장난감이 지겨워져 조만간 치울 생각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

고대성 회장의 말을 오해한 고정호 전무가 다급히 다짐했다. 그러나 그런 다짐에도 안쓰러운 표정으로 말없이 자신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모습은 그의 마음을 초조하게 만들었다. 항상 다정하게 바라보던 이도우 실장이 그의 눈을 피하는 것 때문에 더욱 그랬다.

이상했다. 평소에 자신을 꾸짖던 아버지의 모습이 아니었다. 항상 못마땅한 듯 내려다보며 강압적으로 말하기 일쑤였던 그였는데 오늘은 눈빛이 너무 따뜻했다. 그래서 더 낯설었다. 이런 아버지가 아닌데, 호통을 치셔야 하는데, 그냥 안쓰럽게만 바라보니 마음이 미칠 듯이 불안해졌다.

“역시 그걸로 부족하겠죠. 이제부터 비서실 직원을 모두 남자로 바꾸겠습니다. 그리고 일체 술도 안 마실게요.”

“이미 늦었단다.”

뜻 모를 ‘늦었다.’는 말이 왜 이렇게 가슴이 아플까. 고정호 전무는 황급히 말을 이었다.

“안 늦었습니다. 아버지께서, 아니 회장님께서 원하는 모습으로 바뀌겠습니다. 그러니 회장님.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저를 믿어 주세요.”

“이제 그만하자꾸나.”

“뭘 그만합니까, 아버지! 제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요!”

“대체 마동수 팀장은 왜 건드린 게냐?”

“네? 설마···. 지금 아버지께서 이러시는 게 그깟 놈 때문이었습니까? 겨우 일개 사원 하나 때문에 아들인 저를 내치시려는 겁니까?”

그제야 이유를 눈치챈 고정호 전무의 마음엔 황당함이 가득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일개 직원이었다. 그룹에 널리고 널린 직원 중 한 사람을 건드렸다고 이런 큰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걸 이해할 수 없었다.

“일개 사원이라···. 그 녀석을 일개 사원으로밖에 안 보였다면, 그것 또한 내가 너를 내칠 이유가 되겠구나.”

“일개 사원이 아니면요. 아···! 그럼 형용사 하나를 더 추가하죠. 능력 좀 있는 일개 사원으로요. 하지만 아버지 그 정도 인재는 우리 동지그룹에 널리고 널렸습니다.”

“그 널리고 널린 인재가 나도 못해낸 동지마트를 살려냈다. 물론 그래 봐야 네 말처럼 일개 사원의 범주를 벗어나긴 힘들지. 하지만 그는 윤 스포츠센터 윤승태 사장의 사위다. 설마 윤 스포츠센터가 우리 그룹 입장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는 건 아니겠지?”

“사위지 자식은 아니지 않습니까? 막말로 그 자식이 죽는다고 윤시연이 평생 수절할 것도 아니고요. 결국 여자는 남자에 의존하며 살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곁에 있던 남자가 없어지면 언젠가는 다른 남자를 찾겠죠.”

“그 다른 남자가 혹시 너를 말하는 거냐?”

“네? 그··· 그게. 솔직히 마동수처럼 개뿔 가진 것도 녀석도 차지한 여잔데, 저라도 안 될 게 뭐 있습니까?

이제야 진짜 그의 진심이 나왔다. 안쓰럽게만 바라보던 고대성 회장의 눈빛이 그의 말로 인해 차갑게 돌변했다.

“못난 녀석. 아니길 바랐는데 역시 질투심이었어. 현호의 측근이 아니라 탐나는 여자의 남자여서 이런 짓을 저지른 거야. 그래놓고 기회를 달라고 해? 고작 여자 외모 따위에, 질투심 따위에 이성을 잃고 멍청한 짓을 저지르는 게 너야. 그런 놈에게 어떻게 동지그룹을 맡겨. 금방 말아 먹을 게 뻔한데.”

”크윽···.“

억울한 마음은 가득한데 뭐라고 마땅히 대꾸할 말이 없었다.

“그래도 양심은 있는 모양이구나. 대꾸하지 않는 걸 보니. 이 실장.”

“네. 회장님.”

“오늘부로 고정호 전무는 동지그룹의 모든 자리에서 물러나도록 인사명령을 내도록 해. 그리고 동지 에너지 사장 자리 또한 마찬가지로 물러나며, 관련 주식은 모두 회수 조치한다.”

“아··· 아버지! 동지 에너지는 제가 키운 회사입니다.”

“미친놈. 동지 에너지를 맨땅에서 키워낸 건 네가 아니라 나야. 그리고 동지그룹의 지원 없이 동지 에너지가 성장할 수 있었을 것 같아? 제 혼자 힘으로 아무것도 못 하는 녀석이니 주제 파악을 제대로 할 리가 없지. 쯧쯧쯧. 이 실장. 내가 지시한 내용, 오늘 당장 실행에 옮기도록 해.”

“알겠습니다, 회장님”

“그렇게 다 죽은 꼴로 있지 마, 보기 싫으니까. 동지 에너지를 회수하는 대신 동지 유업을 네게 주마.”

“동지 유업이면 완전 구멍가게 회사 아닙니까?”

동지 유업이면 동종 업계 순위에서 5위에 랭크된 그리 크지 않는 회사였다. 더군다나 고정호 전무는 바로 얼마 전까지 동지그룹의 강력한 후계자 후보였다. 그런 그가 맡기엔 회사가 너무 초라한 건 사실이었다.

“구멍가게? 네 손으로 그런 구멍가게 회사라도 키워 본 적이 있느냐? 그래도 현호가 맡았던 동지랜드나 동지마트보다는 안정된 회사다. 그게 아니라도 네 할아버지와 엄마로부터 물려받은 재산도 꽤 있고. 그 돈으로 투자를 해서 회사를 키우든 아니면 회사를 팔아서 그 돈으로 평생 먹고 살던 그건 네가 알아서 해라. 만약 내게 너를 잘못 봤다고 생각한다면, 동지 유업을 기반으로 고정호만의 새로운 제국을 만들어 증명하면 될 일. 그럼 내가 네게 사죄하마.”

“증명하면 됩니까? 증명하면 제게 다시 기회가 생깁니까?”

“쯧쯧쯧. 못난 녀석. 내가 방금 말했지 않느냐. 고정호만의 제국을 만들어 보라고. 그걸로 이미 내 뜻은 충분히 전달했다고 본다. 나머지는 모두 네가 알아서 판단해라. 그리고 이방은 오늘 안에 정리하도록 하고. 이 실장. 그만 가지.”

고대성 회장은 자기가 할 말을 모두 마치자 미련없이 차갑게 돌아섰다. 두 사람이 떠나자 그의 방에는 육은지 팀장만 남아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왜? 너도 비웃지그래. 이제 고정호 인생은 끝이 났으니 눈치 볼 것 없이 마음껏 비웃으라고.”

“······”

하지만 고정호 전무의 악다구니를 조용히 듣고 있던 그녀의 얼굴에는 어떤 조롱기도 담겨있지 않았다. 그저 천천히 다가가서는 말없이 그를 안아줄 뿐이었다.

“빌어먹을. 지금 네가 나를 동정해? 동정하냐고! 젠장. X병. 씨X. 감히 육변기 주제에 나를 동정해! 내가··· 내가··· 내가··· 빌어먹을.”

예상치 못한 육은지 팀장의 행동에 소리를 질렀지만, 따뜻하게 느껴지는 그녀의 품을 밀어내진 못했다.

***

“큰일 났습니다! 큰일”

다친 곳도 없었지만 주말 내내 시연이의 간호를 받으며 여유작작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다시 출근한 첫날. 차분하게 하루를 시작하고 싶었던 나의 희망은 정적을 깨는 문제적(?) 남자인 태준호 대리의 호들갑에 산산조각 나버렸다.

“뭐! 또 뭐! 대체 뭔 일인데, 준호야? 응? 난 이제 네가 큰일 났다고 하면 심장이 벌렁벌렁 거려.”

“차장님. 그게 말이죠. 고정호 전무가 글쎄 그룹 전무직과 동지 에너지 대표직에서 모두 물러났다고 합니다.”

“뭐어? 누가 어떻게 됐다고? 준호야! 설마 지금 말한 그 사람이 혹시 우리 회장님 첫째 아들을 말하는 건 아니겠지?”

“맞는데요.”

“헐. 갑자기 그 양반이 왜?”

“그건 저도 모르겠는데요. 아무튼 갑자기 요직에서 물러나고, 동지 유업 사장으로 발령 났다고 합니다.”

“으엑? 동지 유업? 기름이 아니라 우유 파는 거기? 헐헐. 말도 안 돼. 그 양반이 대체 무슨 짓을 저질렀길래 그런 말도 안 되는 인사발령이 난 거야. 지금 와서 동지 유업 사장이 된다는 건 후계자 경쟁에서 완전히 밀려났다는 의미나 마찬가지잖아.”

“그러니까요. 그래서 지금까지 고정호 전무를 밀고 있던 그룹 이사나 계열사 사장들이 집단 멘붕에 빠졌다고 합니다.”

한때는 가장 확실한 후계자 후보였던 그가 갑자기 별 볼 일 없는 동지 유업으로 밀려났으니 그를 밀던 사람들이 정신적 충격을 받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믿었던 동아줄이 알고 보니 썩은 줄이었으니 얼마나 충격이 컸을까?

“그럴 만도 하지. 완전히 새된 거 아니야. 그런데 준호야. 이게 대체 왜 큰일이야?”

“네? 이만하면 큰일 아닌가요?”

“야, 인마! 우린 이제 미우나 고우나 고현호 사장님 사람들 아니냐. 그러니 고정호 전무의 실각 소식이 우리에게 좋은 소식이겠어, 아니면 나쁜 소식이겠어?”

“조··· 좋은 소식이죠.”

“그럼 큰일이라고 하지 말고 ‘빅뉴스’라고 해줬으면 좋았잖아. 난 네가 또 ‘큰일’이라고 해서 얼마나 걱정했다고. 아직도 심장이 벌렁벌렁거린다. 이놈의 심장이 장가가기 전까지는 버텨줘야 할 텐데. 어휴···.”

“죄송합니다. 앞으론 좋은 소식일 땐 반드시 ‘빅뉴스’라고 하겠습니다.”

준호 녀석도 이제 이런 상황이 익숙해졌는지 조기훈 차장의 구박에도 여전히 씩씩했다. ‘빅뉴스’나 ‘큰일’이나 그게 그거 같지만, 어쨌든 윗사람이 원하니 아랫사람인 준호는 따를 수밖에.

“그런데 차장님. 이건 빅뉴스가 아니라 큰일 같은데요.”

“뭐? 마 팀장. 큰일이라니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생각해보십시오. 고정호 전무가 밀려난 거지 고정호 측근들이 밀려난 건 아니잖아요. 지금 당장은 맨붕 상태겠지만 피로 맺어진 사이가 아닌 이상 충성심을 기대하긴 어렵죠. 결국은 새로운 줄을 찾아 나설 겁니다. 여기서 괜찮은 인재들을 끌어들이지 못하면 고평호 상무와 세력 차이가 크게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고정호 전무의 실각 소식은 내게는 큰 충격이었다. 이번 인사이동은 나를 노렸던 배후가 그라는 걸 의미하기도 한다.

윤 사장님이 이번 일은 당신께서 담판을 짓겠다고 하셔서 믿고 맡겨두긴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단박에 후계자 경쟁에서 밀려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대체 뭘 어떻게 하셨길래 이런 뜬금포가 터졌는지 도무지 추측이 가지 않았다.

확실한 건 윤 사장님이 강력하게 항의를 했고, 그 항의에 대한 사과로 가장 확실한 카드를 뽑아버렸다는 사실이다. 예상치도 못할 강력한 조치여서 항의한 사람이 오히려 민망해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냥 넋 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이건 그냥 남의 집 불구경이 아니었다. 진짜 싸움을 알리는 총소리였다. 아무리 고현호 사장이 보여준 게 많다고 해도 능력이 전부는 아니다. 아니, 사람을 포섭하는 융화력도 또한 능력이다.

이건 단지 수능시험에서 누가 더 높은 점수를 받느냐를 겨루는 단순한 테스트가 아니다. 경영자에게는 한 번만 봐도 잊지 않는 절대 기억력보다 사람을 다루는 능력이 더 중요하다. 그게 곧 리더십이다. 그리고 인재를 포섭하는 능력도 넓은 의미에서는 리더십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다.

어쩌면 고대성 회장은 이미 새로운 테스트에 들어갔는지도 모른다. 와해 직전에 몰린 고정호 전무의 세력을 누가 더 많이 또는 누가 더 알짜 영입을 해내는지, 그런 음흉한 속내를 가지고 이미 지켜보고 있을 지도···.

============================ 작품 후기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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