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33 소제목 추후 결정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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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호 전무의 낙마 소식은 그룹 전체에 큰 충격을 안겨줬다. 특히 동지 유업이 동지그룹과 분리된다는 소문이 사실로 드러나면서, 온갖 소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많은 사람들을 혼란 속에 빠트렸다.
그리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충격과 혼란이 어느 정도 진정되자, 이제 사람들의 관심은 고정호 전무의 지지세력들이 누구와 손을 잡을지 여부에 쏠렸다. 그만큼 큰 세력을 보유하고 있었고, 그래서 이번 경합의 승리자가 차기 후계자 경쟁에서 매우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소문만 무성할 뿐 실제 빅3라 불리는 동지 에너지, 동지 바이오, 동지 전기 이 세 곳의 계열사와 손을 잡았다고 공식 확인된 후계자 후보는 아무도 없었다. 그저 소문만 무성할 뿐이었다. 오죽하면 동피셜(동지 + 오피셜의 합성어, 스포츠에서 선수 이적 등이 확정됐을 때 ‘오피셜official’ 즉 공식 확정 기사가 뜸.)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질 지경이었다. 그만큼 세 계열사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지대하다는 의미였다.
“어서 오십시오, 고현호 사장님.”
“안녕하십니까, 조강재 사장님.”
그리고 고정호 전무가 동지그룹 전무 자리에서 밀려난 지 열흘이 지났을 무렵, 고현호 사장과 동지 바이오의 조강재 사장이 은밀한 만남을 가졌다.
“솔직히 제게 이리 먼저 연락을 주실 줄은 몰랐습니다.”
“그래요? 혹시 제 연락이 불편하셨습니까?”
“아니요. 그건 절대 아닙니다. 행여 우리 동지 바이오를 껄끄럽게 생각하고 계시지는 않을까 걱정했었습니다.”
“껄끄러울 게 뭐가 있습니까. 과거의 일은 각자 맡은바 입장에서 최선을 다한 것이고, 지금은 예전과 달리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지 않습니까?”
“아···. 그렇게 생각해주시면 정말 감사한 일이죠.”
원래부터 인성 좋기로 소문난 사람이 바로 고현호 사장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과거에 동지 바이오가 동지마트를 무시한 일이 없어지는 건 아니었다. 사소한 원한도 잘 잊지 않는 재벌들의 습성을 잘 알고 있던 조강재 사장은 진심이 느껴지는 그의 따뜻한 말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감사할 일이 아니라 당연한 겁니다. 동지그룹을 위해 평생을 노력하신 분을 껄끄럽게 생각할 만큼 어리석은 사람은 아닙니다. 그랬다면 후계자 자리에 도전하지도 않았겠죠.”
“평생을 노력하다니요. 과찬의 말씀입니다.”
“예의상 드리는 말씀이 아닙니다. 별 볼 일 없던 동지 바이오에 입사해서, 사실상 업계 1위나 다름없는 지금의 자리를 차지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셨을지 눈에 선합니다.”
“하하하. 폐업을 앞둔 동지랜드와 동지마트를 기적적으로 살려낸 천재 경영자에게 그런 칭찬을 듣다니 민망합니다.”
“천재 경영자라고요? 그건 정말 과분한 말이에요. 솔직히 제 힘으로 이뤄낸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운이 좋게 아랫사람들을 잘 만나서 이뤄낸 결과들입니다.”
“그건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직원들의 피나는 노력 덕분에 동지 바이오가 지금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냥 숟가락만 얹었을 뿐입니다.”
아직은 친분이 없는 관계. 그렇다고 다짜고짜 본론부터 꺼내기도 어려워, 서로에 대한 칭찬을 늘어놓으며 탐색전 같은 시간을 가졌다.
“이를테면 배운규 부장을 말하는 겁니까?”
“아···. 배 부장을 아십니까?”
“조 사장님에게 관심이 많아 나름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정말 유능하다고 들었습니다. 노련하고 상황판단이 빠르고 배짱도 두둑한, 마치 영업을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고 하더군요.”
어느 정도 탐색전이 끝났다고 생각했을까, 고현호 사장이 ‘관심이 많다.’며 오늘 만남의 목적을 에둘러 표현했다.
“맞습니다. 그렇죠. 그래서 제가 그만큼 의지하는 친구이기도 합니다. 지난번 배 부장의 조언을 듣지 않았다가 큰 낭패를 봐서, 이젠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으려고요. 허허허.”
자신에 대한 칭찬에는 겸양의 모습을 보이던 조강재 사장이었다. 그러나 그가 아끼는 배운규 부장의 칭찬에는 자기 일처럼 기꺼워하며 즐거운 모습을 보였다.
아랫사람에 대한 애정이 느껴지는 모습에 고현호 사장은 마동수 팀장이 왜 동지 바이오를 추천했는지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사람이라면 같이 일해도 좋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큰 낭패요? 무슨 고생을 하셨길래요.”
“올해 중순이었을 겁니다. 동지마트에서 가격 재조정 요청이 들어왔는데, 사실 제가 거절했습니다. 배 부장은 동지마트의 기세가 무섭다면서 요청을 들어주는 게 좋겠다고 했었거든요.”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역시 안목이 있는 사람이군요. 조 사장님이 칭찬하는 이유를 알겠습니다.”
고현호 사장이 농담처럼 대꾸하자 조강재 사장은 빙그레 웃었다
“네. 그 말을 안 듣고 재조정 요청을 캔슬했다가 거래가 전면 중단되는 바람에 큰 고생을 했었죠. 더군다나 동지마트가 생각지도 못한 포에버마트까지 인수하는 바람에 잘못했으면 매출이 반 토막 날 뻔했습니다. 조금만 살살해주셨으면 좋았을걸. 정말 유능한 직원을 두셔서 진땀깨나 흘렸습니다.”
고생담을 늘어놓으면서 은근히 동지마트의 성장을 칭찬하는 조강재 사장 덕분에 분위기는 더욱 화기애애해졌다.
“결국은 해피엔딩이니 이렇게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배운규 부장이 적절한 결단을 내려준 덕분이죠.”
“에이. 그건 아니죠. 배 부장이 그러더군요. 자신의 영업 인생 20년에 정말 적으로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이 둘 있었는데 이번에 한 명 더 생겼다고요.”
“배운규 부장이 그렇게 말했다는 건 굉장한 칭찬 같은데. 대체 누굽니까?”
“누구긴 누굽니까. 당연히 마동수 팀장이죠. 저도 고 사장님에게 관심이 많아서 이리저리 공부를 많이 했습니다. 특히 마동수 팀장의 행적을 살펴보니 정말 탐이 나더군요. 지금 당장에라도 동지 바이오로 데려오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어떻습니까? 그 친구를 제게 주시는 건. 마동수 팀장에게 마케팅을 맡기고 배 부장이 영업을 하면 환상의 복식조가 될 것 같은데···.”
“그건 좀 어려울 것 같습니다. 마 팀장이 할 일이 태산이라서요. 그래도 같이 일할 방법이 아주 없는 건 아닙니다.”
“그래요? 대체 어떡하면 같이 일할 수 있는 겁니까?”
고현호 사장의 말에 조강재 사장이 기대 어린 눈빛으로 은근히 물었다.
“조강재 사장님께서 저와 손을 잡으면 됩니다.”
“아··· 그거 괜찮은 방법이네요. 사실 저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거든요.”
탐색전까지 하면서 뜸을 들이던 사람들답지 않게, 허무할 정도로 빠른 결론이었다. 그만큼 서로에 대해 어느 정도 확신을 하고 만남을 가진 두 사람이었다.
“그렇습니까? 저야 그래 주시면 정말 감사한 일이죠. 그런데 저랑 일하시면 고생문이 훤히 열릴 수도 있습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어차피 함께하기로 했으니 솔직하게 말씀드리죠. 사실 고평호 상무 쪽에서 저를 먼저 찾아왔었습니다.”
“형님이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죠. 동지 바이오는 누가 봐도 탐나는 곳이니까요.”
“아니요. 고평호 상무가 아니라 측근이 찾아왔더군요. 고정호 전무님의 낙마 소식이 퍼진 지 3일째 되는 날이었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지만 결국은 자신들과 손을 잡자는 소리였습니다. 하지만 내키지 않아서 그만뒀습니다.”
“왜 거절했는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어차피 이해관계로 손을 잡았다고 해도, 헤어짐에는 예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함께하기로 한, 제가 모시던 분이 실각했습니다. 물론 저 또한 거창한 충성심이 있는 건 아니라 모든 기반을 포기하고 계속 따라갈 생각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고작 사흘 만에 손바닥 뒤집듯 배를 갈아타고 싶지는 않더군요.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어 죄송하다는 이야기조차 하지 못했을 때거든요.”
“무슨 말씀인지 알 것 같습니다. 남녀 관계를 포함한 모든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죠.”
고현호 사장도 그 말에 동감했다. 그가 동지 전기의 달콤한 제안을 거절했던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였다.
헤어짐에 대한 예의.
문자 하나 달랑 보내 헤어짐을 선언하는 사람. 해고를 통보하는 데 이메일 한 통이 전부인 회사. 그리고 모시던 사람이 낙마하자 기다렸다는 듯 곧바로 배를 갈아타려고 하던 동지 전기.
누군가를 떠나보낼 때 갖춰야 할 최소한의 예의도 지키지 않는 이런 류의 인간들을 고현호 사장은 굉장히 싫어했다.
“네. 열흘밖에 못 기다린 제가 할 말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하하하.”
조강재 사장은 지금 상황이 조금 민망한지 자조적인 웃음을 보였다.
“열흘이면 충분하죠. 사람이 죽은 것도 아니고 말입니다. 특히 조 사장님은 혼자가 아니지 않습니까. 동지 바이오에 몸담고 있는 모든 직원들을 책임지셔야 하는데, 감상에 빠져 있으면 리더로서 실격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열흘을 기다려 연락드린 것도 그 기간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거였습니까? 사실 좀 초조했습니다. 이미 고평호 상무에게는 실망했고, 제가 야심이 아주 없는 사람은 아니라서 중립을 지키기도 싫었거든요. 스스로 그리 못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한 번쯤은 연락을 주시리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동지 바이오가 동지마트와 이미 손잡았다는 확인되지 않은 루머만 돌뿐 정작 기다리는 연락은 오지 않아서 실망하고 있었죠. 제가 먼저 연락을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배 부장이 말려서 하루 더 참은 겁니다. 그런데 그 친구 말을 듣기를 잘했더군요. 이렇게 연락이 왔으니 말입니다.”
“이런 그럴 줄 알았으면 하루이틀 먼저 연락드릴 걸 그랬군요. 사실 저도 초조하기는 마찬가지였거든요. 혹시나 형님이 낚아채 가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불안한 마음으로 기다리다가 때가 되었다 싶어 연락을 드린 겁니다.”
마치 밀당을 하던 남녀가 비로소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뒤늦게 초조했던 속마음을 고백하는 것처럼, 두 사람은 허심탄회하게 모든 걸 드러내 이야기를 나눴다. 이런 대화가 오고 가면서 고현호 사장과 조강재 사장은 비즈니스 관계가 아닌 인간적인 모습까지 끌리게 되었다.
그리고 기꺼운 마음에 반주로 술도 한두 잔 주고받으며 동지 바이오와 동지마트가 지금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비하인드 스토리까지 서로 들려주느라 기간 가는 줄 모르고 늦은 밤까지 이야기를 계속했다.
“하하하. 마동수 팀장 그 친구는 들으면 들을수록 괴짜군요. 그래서 더 매력적이지만 말입니다. 조만간 자리 한 번 마련해주시죠. 배 부장이랑 같이해서, 넷이서 오붓한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때는 제가 제대로 대접하겠습니다.”
“그거 좋습니다. 저도 배운규 부장을 만나고 싶었거든요. 오래 끌 것 뭐 있습니까. 이번 주 금요일에 만나시죠. 마 팀장은 제 말이라면 끔뻑 죽기 때문에 무조건 시간을 비울 겁니다.”
“배 부장도 제 말은 참 잘 듣죠. 그럼 금요일에 뵙도록 하시죠.”
두 사람 말을 가장 안 듣는 사람이 배운규 부장과 마동수 팀장이었지만, 조강재 사장과 고현호 사장은 술기운에 약간의 허세를 부리며 기분 좋게 다음 약속을 기약했다.
그리고 이틀 후 동지그룹 익명 게시판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올라왔다.
<동피셜> 동지 바이오 조강재 사장, 결국 고현호 사장의 품으로.
동지 에너지는 당분간 회장님이 직접 관리. 동지 전기는 고정호 상무와 함께 하기로.
이로써 빅3 모두 거취 결정. 이번 경합은 고현호 사장의 미세한 판정승으로 마무리.
============================ 작품 후기 ============================
이렇게 동지마트 에피소드는 거의 마무리 됐습니다.
중국진출 스토리는 아무리 머리를 짜도 획기적이고 재미있는 이야기가 떠오르지 않아 고민이지만, 더는 뒤로 미루지 못할 것 같군요. ㅠㅜ
살짝 수습의 시간을 가진 후 다다음 편 정도가 되면 D&Y 피트니스의 중국진출이 시작될 겁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