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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가 전부는 아니야-336화 (336/424)

00336  소제목 추후 결정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황홀했던 휴가를 마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우리는 다음 프로젝트를 기다리며 무료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콰광!!

그때 사무실 문을 벌컥 열어젖히고, 문제적 그 사나이 태준호 대리가 등장했다. 다들 이번에는 또 무슨 큰일이 일어난 건가 싶어 긴장한 눈빛으로 사무실 출입문을 향해 눈동자가 몰리는 순간, 녀석의 눈빛에 즐거운 미소가 담기기 시작했다.

“여러분 빅뉴스입니다.”

“빅뉴스? 큰일이 아니라 빅뉴스였어? 어휴···. 너무 비장하게 들어와서 깜짝 놀랐잖아. 그런데 준호야. 뭐가 빅뉴스라는 거야?”

“여러분 놀라지 마세요. 우리 부서 전체가 동지그룹 마케팅부로 복귀합니다.”

태준호 대리의 말이 끝나자 모두의 얼굴에 실망감이 가득했다. 나쁜 소식은 아니지만, 조만간 그리로 발령 날 건 누구나 예상하고 있는 일이었다. 심지어 녀석의 연인인 추미래 마저 고개를 돌려 외면했다.

하지만 모두가 그렇게 눈으로 강력한 레이저 빛을 쏘는 그 와중에도 태준호 대리의 입에 걸린 미소는 사라질 줄 몰랐다.

“태 대리님. 그건 다들 알고 있던 일이잖아요.”

보다 못한 정지영 과장이 한마디 했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닙니다. 동지마트의 모든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이끈 공로로···.”

“공로로?”

“지금 가진 직급 그대로 본사로 복귀한답니다.”

“뭐가 어째? 저 자식이 아침부터 뭘 잘못 먹었나. 그럼 직급을 그대로 가지고 복귀하지 강등돼서 복귀하냐? 왜 자꾸 뻔한 소리를 자꾸 하는·········. 뭐? 너 지금 뭐라고 했어? 직급 그대로 본사로 복귀한다고? 그럼, 그럼 나는 차장인 채로 본사에 입성한단 말이야? 너, 그거 농담 아니지?”

태준호 대리가 한 말의 의미를 뒤늦게 깨달은 조기훈 차장이, 그의 멱살을 쥐어흔들며 재차 확인했다.

본사로 가면 당연히 팀장으로 시작될 줄 알았다. 그런데 갑자기 차장이란다. 팀장과 차장은 한 끗 차이지만 그 차이는 엄청나다. 팀장이 하급 관리자라면 차장은 중간 관리자라고 할 수 있다. 특히나 하나의 부서를 책임질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부여받는다는 점은 팀장과 비교할 수 없는 강점이다.

승진 또한 어렵다. 팀장까지는 어떻게든 달 수 있다. 그러나 차장은 그것보다 열 배는 더 힘들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은 팀장까지만 본사 생활을 하고 승진에 밀려 계열사로 좌천된다.

그런데 그렇게 어려운 차장 승진이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후다닥 결정되어 버렸다.

“켁켁. 차장님. 이건 좀 놓고···. 켁켁.”

“아···! 미안. 네가 갑자기 너무 뜬금없는 소리를 해가지고.”

“뜬금없는 소리 아니에요. 물론 한 가지 꼬리표가 달리긴 했어요.”

“꼬리표? 그게 뭔데?”

“직급 옆에 ‘대우’라는 글자가 붙게 된다고 그러던데요. 차장님의 경우는 차장 대우가 되는 거죠. 다른 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윤권이나 서라씨, 미래씨의 경우에는 평사원 대우 이런 직함이 없으니까 그냥 본사 평사원이 된다고 합니다.”

“그건 중요한 게 아니야. 나도 팀장 대우 달고 몇 달 지내봤는데, 말이 ‘대우’지 팀장하고 다를 바가 없더라. 그리고 어쨌든 간에 진급 확정이라는 의미잖아. 괜히 언제 진급하나 노심초사할 필요도 없고···.”

“그러니까 제가 희소식이라고 그런 거 아닙니까? 그런데 차장님. 갑자기 표정이 왜 그러십니까?”

태준호 대리는 갑자기 묘한 표정을 짓는 조기훈 차장이 이해 가지 않았다.

“허허. 이것 참.”

“혹시 안 좋은 일이라도 생각나신 겁니까?”

“안 좋은 일은 무슨. 그냥 갑자기 허무해서 그런다.”

“허무해요?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이신데요, 차장님. 진급이 확정됐다는 좋은 소식에 왜 허무하신데요?”

“휴······. 너 같은 애송이가 내 마음을 알겠냐? 너야 그저 좋아 죽겠지. 안 그래?”

“뭐······ 좋긴 하죠. 솔직히 우울해 할 일은 아니잖아요. 하하하.”

“그래. 계속 그렇게 좋아해라. 그게 좋은 거다.”

“그렇다고 그렇게 허무해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요. 이것도 어떻게 보면 도박이나 마찬가지라고요. 우린 이렇게 진급이 확정됐지만 고정호 전무와 선이 닿고 있던 누군가는 피눈물을 흘리고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허무해 하는 조기훈 차장의 마음을 알 것 같아 내가 한마디 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 그 또한 진급에 노심초사해야 했던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남들은 줄 서서 빠르게 진급하는 동안에도 그런 쪽에는 딱히 관심을 가지지 않으며 자기 일만 했던 사람이다.

이유야 어쨌든 자신보다 앞서가는 동기가 부러워 보일 때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D&Y 피트니스 센터 프로젝트팀에서 내가 밀리고 권희태 과장이 들어왔을 땐 직장에 대한 회의를 느꼈다고 했었다. 그냥 열심히 일만 해서는 안 된다는 좌절감 비슷한 감정이었으리라.

그런 조기훈 차장이 나의 유혹(?)에 고현호 사장과 함께 하기로 결정했고, 고작 몇 달 만에 차장으로 진급했다. 입사 20년이 되어도 차장을 못 다는 사람이 수두룩한 상황에서 이제 겨우 13년 차인 그가 대우라곤 해도 차장 자리에 오른 것이다.

물론 기쁘겠지만, 한편으로는 진급이 이렇게 쉬운 것이었나 허무함이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나도 비슷한 고민을 한 적이 있었어 그 마음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럴까?”

“그럼요.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지 않습니까. 그리고 작년까지 중립을 지킨 것도 어떻게 보면 잘된 일일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고현호 사장님을 만나 승승장구하게 되었으니까요.”

“그것도 그러네. 예전에 내 동기 하나가 고정호 전무 측 라인으로 붙으면 날 끌어준다고 했었거든.”

“그런데요?”

“딱히 안 내키더라고. 그때 그 자식이 좀 잘난 척했거든. 마치 사람을 내려다보는 기분이라고 해야 하나? 결국은 능력이 아니라 다른 사람 빽으로 잘나간 주제에 날 무시하는 게 재수 없더라고. 그래서 거절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잘한 일이네. 졸지에 실업자 신세 될 뻔했잖아.”

“그러게요. 측근 몇 명은 동지 유업으로 데려가겠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을 거고. 그쪽은 완전히 줄초상 분위기겠네요. 믿고 있던 끈이 하루아침에 떨어졌으니 말이죠.”

“그 자식은 어떻게 됐을까?”

“누구요?”

“왜, 너 밀어내고 대신 우리 프로젝트팀에 들어온 권희태 과장이라는 녀석 말이야.”

어지간히도 밉보였는지 권희태 과장의 이름을 말하는 조기훈 차장의 얼굴에 불쾌함이 가득했다.

“아···. 차장님이 이리로 옮긴 후에 거기 프로젝트팀 책임자가 됐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태 대리. 혹시 권희태 과장에 대한 소문은 뭐 들은 거 없어?”

“그건 저도 잘···. 들리는 소문이 없는 걸 보니 일단 프로젝트는 성공 못 했겠죠.”

“그거야 당연한 거고. D&Y 피트니스 센터 프로젝트를 처음부터 준비하던 핵심 인물들이 전부 여기로 자리를 옮겼는데 그걸 어떻게 성공하나. 그거 말고 다른 소식은 들은 거 없어? 이를테면 프로젝트 실패를 책임지고 지리산 연수원으로 발령이 났다던가 하는 그런 반가운 소식 말이야.”

“그런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는데···. 그래도 모르니 제가 다시 한 번 알아볼까요?”

“아니야. 됐어. 굳이 그렇게까지 해서 알고 싶지는 않아.”

사무실을 뛰쳐나가 당장에라도 여기저기 수소문하고 다닐 것 같은 비장한 모습에 나는 얼른 녀석을 말렸다.

“그래. 굳이 수소문해서 남의 불행을 알아내는 건 좀 그렇다. 자자자! 조금 전에 태준호 대리가 했던 승진 소식 모두 들었지? 이렇게 반가운 소식을 들었는데 그냥 넘어갈 수는 없잖아. 오늘은 전원 축하 회식이다!”

‘“와!!!””

“그런데 차장님. 혹시 차장님이 쏘시는 겁니까? 우리 본사로 발령나서 법인카드 못 쓸 텐데요.”

“뭐? 그··· 그런 거야? 그럼··· 각출하지, 뭐!”

“에이. 그건 아니죠!”

“왜 인마! 나도 월급쟁이라고!”

“그래도 본사 차장인 건데 우리랑 똑같나요. 그 정도면 웬만한 계열사 이사보다 더 낫잖아요. 39살에 이사가 된 거나 마찬가진데 한턱 제대로 내셔야죠!”

“맞아요, 차장님! 대리에서 과장된 거랑 팀장에서 차장된 거는 하늘과 땅 차이죠.”

“그래요. 차장님. 본사 차장님이면 정말 어마어마하게 높은 거잖아요. 그런데 우리 같은 평사원이랑 각출이라니요. 너무 하세요!”

“어휴···. 이런 도둑놈들 같으니. 좋아! 까짓것. 다른 것도 아니고 본사 차장인데 못 쏠건 또 뭐냐. 가자, 가! 오늘은 내가 특별히······.”

“소고기!”

““오예!””

“야, 마 팀장! 내가 언제 소···.”

“자! 퇴근 시간입니다. 갑시다. 가요. 차장님이 소고기 쏘신답니다!”

***

내 이름은 권희태.

나이는 서른다섯이고 올해로 딱 입사 팔 년 차다. 그리고 동지그룹 본사 과장이다. 과장이라도 다 같은 과장이 아니다. 원래 예정대로였다면 나는 지금쯤 팀장으로 승진했어야 했다.

그런데, 그런데···. 대체 뭐가 잘못된 걸까? 내 인생은 이렇게 흘러가면 안 되는 거였다. 이렇게 허무한 결말이 기다리고 있으면 안 됐다.

대한민국 인문계 고등학생이라면 누구나 선망하는 서울대학교 경영학과를 나온 나다. 그리고 재계 서열 5위지만 그 어떤 대기업보다 대우가 좋은 동지그룹 마케팅부에 당당히 입사했다. 경쟁이 치열한 곳이라고 들었지만 누구보다 잘해낼 자신이 있었다. 게다가 서울대학교 경영학과를 나온 대선배가 동지그룹 오너의 첫째 아들이라는 소식을 듣고 나는 하늘이 나를 돕는다고 확신했다.

굳이 먼저 다가갈 필요도 없었다. 낭중지추, 주머니 속에 넣은 뾰족한 송곳은 가만히 있어도 그 끝이 주머니를 뚫고 비어져 나오는 법이다. 그냥 묵묵히 내 할 일만 열심히 하면 언젠가는 알아봐 줄 날이 오리라 믿었다.

그리고 그 기다림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그때부터 나의 승진 속도는 조금씩 빨라지기 시작했다. 사실 동지그룹 인사체계는 꽤 까다로워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쉽게 승진하기는 어렵다. 평사원부터 주임, 대리, 과장, 팀장의 하급 관리자 단계를 거치는 동안 짧게는 1년 길게는 3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원칙대로라면 입사 10년 차는 되어야 팀장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고정호 전무는 그 기간을 2년 정도 앞당길 수 있는 기회를 내게 제공해 주었다. 나로 인해 누군가가 다른 곳으로 쫓겨났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그건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 어차피 세상은 약육강식의 세계다. 먹히느냐, 먹느냐 둘 중 하나만 있으니, 약자를 굳이 동정할 필요는 없다.

그렇게 차지한 내 자리. 쫓겨난 멍청이와 친분이 있었는지 다들 내게 호의적이지 않았다. 그렇지만 상관없었다. 인사기록을 살펴본 결과 전부 학벌이 나보다 못했다. 그런 허접한 인간들이 하는 일을 내가 못할 리는 없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런데, 그런데···.

믿었던 고정훈 전무는 동지 유업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회사로 밀려났고, 지금 내가 받은 건 지리산 연수원 발령장이다. 비웃는 것인지 과장에서 팀장으로 승진까지 시켜줬다. 하지만 거기는 지옥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아무리 프로젝트에를 실패했다고 해도 나 같은 인재를 그런 곳에 보낼 수는 없는 법이다.

절대 그곳에 갈 수는 없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다른 곳에 취직하고 만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서울대 경영학과를 나온 엘리트다. 어디든 다른 대기업에 충분히 취직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처음부터 재계 서열 5위 밖에 안 되는 동지그룹 따위에 오는 게 아니었다.

이번에는 반드시 서열 1위인 사성그룹으로 가고 말리라.

서랍을 열고 봉투를 꺼내서 앞면에 조용히 세 글자를 적었다.

사. 직. 서.

============================ 작품 후기 ============================

서울대라고 해도 프로젝트 실패로 짤린 사람이 다시 대기업에 취직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죠. 현실을 모르는 엑스트라 권희태...

우리 동수는 드디어 본사 팀장이 됐습니다. 그럴 예전에 괴롭히던 이기적은 아직 대리라나 어쨌다나... ㅎ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가시는 길에 선추코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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