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38 소제목 추후 결정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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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이 되었고 이기적 대리도 어느덧 30대 후반이라고 할 수 있는 서른일곱이 되었다. 오는 3월이 되면 입사 11년 차가 되지만 여전히 대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직속상관인 양지선 팀장은 조금만 기다리면 과장으로 승진시켜 주겠다고 했지만, 고정호 전무가 낙마하면서 그럴 가능성도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나름 자신의 심복이라고 해도 이제 그녀는 누굴 챙겨주기는커녕 제 코가 석 자인 상황이 되었다.
“빌어먹을. 본사에 출근하는 것도 이제 얼마 안 남았구나. 이럴 줄 알았으면 양 팀장만 바라보지 말고 내 살길을 찾아야 했어. 쯧쯧쯧.”
믿었던 양지선 팀장에게서 버림받은 거나 마찬가지가 되자, 이기적 대리의 마음은 하루하루 우울하기만 했다. 특히 직장상사로뿐만 아니라 여자로서도 좋아했기에 마음이 더 아팠다. 하지만 마땅한 방법이 없었다. 한 달 안에 어딘가 계열사로 쫓겨날 것이고, 그때부터는 본사 마케팅부와는 완전히 이별이다.
아마 양지선 팀장과도 같이 일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녀는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게 어떻게든 살아남을 여자다. 이기적 대리가 편협하고 이기적인 면이 많아도 기본적으로는 명석한 사람이다. 동지그룹 마케팅부서의 일원이라는 사실만 봐도 충분히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런 그가 자신의 운명을 예측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본사 근무가 한 달밖에 남지 않자 같이 일하던 부하 직원들도 그를 대놓고 무시했다. 그동안 저질러 놓은 짓이 있으니 누굴 원망하지도 못하고, 그저 외롭게 홀로 점심을 먹어야 했다.
식사를 마치고 사무실로 본사 로비의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그때 누군가 그의 옆에 섰다. 누군가 싶어 봤더니 고현호 상무였다.
D&Y 피트니스 클럽은 본사 직영이고, 그곳 책임자로 발령받으면서 사장에서 상무로 직급이 바뀌었다. 여전히 동지마트 사장도 겸직하고 있기 때문에 공식적인 직함만 낮아진 것이지 그의 영향력은 오히려 더 막강해졌다.
“안녕하십니까. 상무님.”
위풍당당하게 서 있는 모습에 절로 위축이 되어 고개를 숙였다.
“아···. 네.”
“어! 이 대리님이네.”
인사만 하고 조용히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려는데 그 옆에서 꿈에서라도 듣기 싫은 목소리가 들렸다. 순간 고개가 돌았고 목소리의 주인공과 눈이 마주쳤다.
마동수였다.
“어. 오··· 오랜만이네, 마 대리.”
“그러게요. 그런데 저 이제 마 대리 아닙니다.”
“뭐? 버··· 벌써 과장 단 거야?”
“아니요. 아직 소식 못 들으셨나 보네요. 저 며칠 전에 팀장 됐습니다. 대우라는 꼬리표를 달긴 했지만 말입니다. 흐흐흐.”
자신은 아직 대린데 6년 후배인 마동수가 벌써 팀장이란다. 게다가 누가 봐도 이죽거리는 모습에 속에서 천불이 났다. 하지만 화를 낼 수는 없었다. 선배라고 해도, 대우라는 꼬리표가 달려 있다고 해도 팀장은 팀장이다. 대리가 팀장에게 화를 내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 그래? 팀장을? 대··· 대단하네. 축하해.”
“감사합니다. 이게 전부 이 대리님 덕분입니다. 그런데 안 타십니까?”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 자연스럽게 올라타는 두 사람. 그러나 이기적 대리는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길 수 없었다.
“아냐. 깜박하고 놓고 온 게 있어서···.”
그렇게 어설픈 변명을 하고 재빨리 등을 돌렸다.
“누구야?”
“예전에 저를 제일 괴롭히던 직장 상사요.”
“뭐? 저놈이 바로 그놈이야? 그런데 아직 대리야?”
“저도 잘 몰라요. 관심이 없어서.”
로비에서 입구로 향하는 동안 이런 대화들이 비수처럼 등 뒤에 꽂혔지만 차마 돌아볼 수 없었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못 들은 척 빠르게 발걸음을 옮기는 게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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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o. 미스터 고
월드 베리어스 클럽(World Various Club)과 D&Y 피트니스 클럽 사이의 제휴를 제안했을 때, 미스터 고가 제게 몇 달 정도의 말미를 달라고 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런데 상당 시일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정확한 확답이 없어 어쩔 수 없이 다른 선택을 해야할 것 같습니다.
저는 미스터 고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믿고 기다리면 금방 좋은 소식을 전해줄 거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사진의 생각은 저와 달랐습니다. 한시가 급한 상황에서 확실하지도 않은 D&Y 피트니스 클럽을 믿고 기다릴 수는 없다고 합니다.
특히 저와 반대되는 세력의 조세핀 스톤 이사가 일본 기업과의 제휴를 추진하면서 일이 굉장히 꼬이게 되었습니다. 지금 현재 일본 기업이 우리 월드 베리어스 클럽과의 제휴에 굉장히 적극적인 자세를 취했고, 그 모습에 상당히 많은 이사진이 긍정적인 입장으로 돌아섰습니다.
제가 회장이라도 지금 상황에서 독단적으로 미스터 고와의 제휴를 주장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매력을 느꼈던 아이 두(I DO) 시스템과 유사한 프로그램을 일본 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것도 제가 이사진을 계속 설득할 수 없는 이유가 됐습니다.
D&Y 피트니스 클럽과 아이 두에 거는 기대가 누구보다 컸던 터라, 이번 이사진들의 반응에 실망을 금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대세를 거스르기에는 힘들군요. 제가 먼저 제안을 해놓고 이렇게 다시 제안을 철회하게 되어 미스터 고에게는 정말 미안합니다.
P.S) 이미 대세는 기울었다고 생각합니다만 일본 기업과의 제휴계약이 체결된 건 아닙니다. 혹시 미스터 고가 아직 우리와의 제휴에 관심이 있다면 실낱같은 희망밖에 남지 않았다고 해도 도전해보는 건 어떻습니까? 그렇다면 미약하나마 제가 도움을 드릴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정말 실낱같은 희망뿐이라 강요하기는 어렵군요. 아무쪼록 미스터 고의 현명한 선택 기다리겠습니다.
From 월드 베리어스 클럽(World Various Club) 회장 더글라스 애리얼리 >
“젠장! 확실해지면 연락하려고 미뤘던 게 오히려 독이 된 꼴이네. 일본 기업은 갑자기 뭐야? 조세핀 스톤 이 여자는 또 뭐고! 대체 이걸 어쩌지···.”
확실하지도 않은데 미리 계약부터 할 수 없어 제휴를 미뤘던 게 화근이었다.
동지마트를 완전히 정상화하고 본격적으로 D&Y 피트니스 클럽 업무에 집중하려는데, 갑자기 날아온 더글라스 애리얼리 회장의 이메일은 아닌 밤중에 홍두깨처럼 난데없었다.
오직 월드 베리어스 클럽과의 제휴만 믿고 D&Y 피트니스 클럽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런데 닭 쫓던 개 신세도 아니고 정작 제휴해야 할 상대는 일본 기업과 협상 중이라고 한다. 아직 계약이 확정된 건 아니지만 더글라스 애리얼리 회장이 이런 이메일을 보내왔다는 건 협상이 거의 성사 직전까지 갔다는 걸 의미한다.
이메일에서 한 그의 말처럼 실낱같은 희망밖에는 상황. 고현호 상무는 생각지도 못한 갑작스런 변수에 머리가 지끈거리며 아팠다.
삐익!
한참을 고민해도 마땅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자 그는 곧바로 비서실을 호출했다.
- 네, 상무님.
“김학수 부장하고 D&Y 피트니스 클럽 기획마케팅부 팀장급 이상 직원들, 회의실로 모이라고 해줘요.”
- 알겠습니다. 상무님.
동지그룹 마케팅부는 1부부터 3부까지 총 세 개 부서가 있다. 각 부서의 수장은 부장급이 그리고 부수장은 차장급 인사가 맡는다. 그런데 계열사에 있던 조기훈 차장이 본사로 이동하면서 여전히 차장 직급을 유지하게 되자 자리가 좀 애매해져 버렸다.
차장 직급인 사람을 팀장에 놓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마케팅부를 하나 더 늘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TF팀 개념을 가진 별도의 마케팅부서를 만들었고, 그 이름을 기획마케팅부라고 명명했다.
동지그룹 역사에서 딱 두 번밖에 없는 희귀한 일이었고, 고대성 회장이 그만큼 고현호 상무에게 힘을 실어줬다는 걸 의미했다.
잠시 후 김학수 부장을 비롯해 조기훈 차장, 마동수 팀장, 김수현 팀장이 모두 그의 사무실에 모이자, 곧바로 더글라스 애리얼리 회장이 보낸 이메일 대해 설명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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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일이 이렇게 되고 말았군요.”
“너무 완벽하게 일을 진행하려던 게 독이 된 셈이네요.”
“모두에게 미안해. 나만 믿고 D&Y 피트니스 클럽을 맡은 건데 일이 이 지경이 돼서 말이야.”
고현호 상무는 더글라스 애리얼리 회장의 이메일을 보여주며 얼굴이 굉장히 시무룩하게 변했다. D&Y 피트니스 클럽 해외진출 프로젝트만 성공적으로 마무리 지으면 그땐 정말 고평호 상무를 누르고 가장 강력한 차기 총수 후보가 될 수 있었다.
그런데 역시 사람 일은 뜻대로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여기서 생각지도 못한 변수가 발생했으니 말이다. 그가 읽어주는 이메일 내용을 들으면서 나조차 이렇게 힘이 빠지는데, 당사자인 그는 오죽할까 싶었다.
“그게 어디 상무님 잘못인가요? 고작 몇 개월도 못 기다려준 월드 베리어스 클럽이 나쁜 거지. 그런데 상무님. 더글라스 애리얼리 회장이라는 사람 정말 상무님과 친분이 있는 사람 맞나요?”
“당연하지. 설마 그런 거로 거짓말을 할까? 그런데 갑자기 그건 왜 물어?”
“지난번 한국 시장 투자 건도 그렇고 이번 일도 그렇고, 결국은 거절만 하고 있잖아요. 차라리 처음부터 희망을 안 줬으면 모를까, 이건 거의 희망 고문 수준이라고요.”
“일부러 그런 건 아니잖아. 특히 이번 일의 경우는 제휴 계약을 하지 않고 뭉그적거린 우리 잘못이 더 커.”
괜히 더글라스 애리얼리 회장을 욕했지만 사실 가장 큰 잘못은 우리에게 있었다. 제휴 협상 소식이 너무 일찍 고정호 전무 측에 알려져 버리면, 권희태 과장이 그 공을 가로채 갈 수도 있다는 생각에 너무 조심한 게 결국은 화근이었다.
“이미 지나간 일 후회해봐야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괜히 서둘렀다가 권희태 과장이 알아채기라도 했다면 죽 쒀서 개 준 꼴밖에 되지 않았을 겁니다. 그러니 잘잘못을 따지기보다 대책 마련이 중요합니다. 어쨌든 D&Y 피트니스 클럽을 맡았는데, 인제 와서 변수가 생겼다고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그건 그렇지. 그래서 갑자기 회의를 소집한 거야. 대책을 세워야 하니까.”
“결국은 둘 중 하나네요.”
“둘 중 하나? 그게 뭔데?”
“완전히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느냐, 아니면 더글라스 애리얼리 회장의 말을 믿고 실낱같은 가능성에 희망을 걸어보느냐.”
“휴······. 어려운 문제군. 실낱같은 가능성이라도 잡아서 성공한다면 다행이지만 만약 실패하면 이번 프로젝트 자체가 엎어질 수도 있어.”
“그렇죠. 하지만 필리핀이 실패한 상황에서 중국 말고는 마땅한 후보지가 없는 것도 생각하셔야 합니다. 타당성 조사부터 해서 새롭게 시작하려면 최소 몇 달은 잡아먹겠죠.”
“어렵군, 어려워. 이번 일을 어쩐다···.”
뭘 선택해도 쉽지 않은 길이었다.
골치 아픈 변수의 등장에 회의실은 잠시 침묵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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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 대리의 본사 생활은 이대로 끝일까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