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39 소제목 추후 결정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저······. 이사님.”
“네. 조 차장님. 무슨 괜찮은 의견이라도 있으십니까?”
“일이 어렵게 된 건 분명합니다. 하지만 굳이 둘 중 하나를 선택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굳이 둘 중 하나를 선택할 필요는 없다···. 그게 무슨 뜻이죠?”
“우리 기획마케팅부 직원들이 제 팀원으로 있을 때도, 둘 중 뭘 선택하는 게 현명할까? 이런 비슷한 고민은 항상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제 선택은 딱 하나였습니다.”
“그게 뭡니까?”
조기훈 차장의 얼굴에는 자신감이 넘쳤고, 그가 했다는 선택은 나조차 궁금했다.
“고민할 게 없습니다. 그냥 둘 다 선택하는 겁니다. D&Y 피트니스 클럽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도 마동수 팀장은 현장에서 철거를 막고, 김수현 팀장은 사무실에서 회장님을 설득할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업무 분담은 동지마트에서도 있었습니다. 김수현 팀장이 동지마트 DNA를 포에버마트에 안정적으로 심는 동안 마동수 팀장은 DJ마트 프로젝트와 방방곡곡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회사에 활력을 불어넣었습니다. 회사 일에 있어서만큼은 정말 절묘한 하모니로 최고의 시너지효과를 내고 있습니다. 그런 믿음직한 콤비가 상무님에게 있는데 굳이 둘 중 하나를 선택할 필요가 있습니까?”
“아··· 그런 방법이 있었군요. 그럼 새로운 후보지 선정과 타당성 조사는 김수현 팀장이, 그리고 실낱같은 가능성이지만 월드 베리어스 클럽과의 제휴는 마동수 팀장이 맡으면 되겠군.”
어라···. 이건 아닌데. 갑자기 이야기가 왜 이렇게 흘러가지?
조기훈 차장의 말은 분명 설득력이 있었다. 하지만 앞서 두 개의 프로젝트와 이번 일은 성격부터가 다르다. 도롱뇽을 살리자고 가짜 시위를 하며 철거를 막은 것도 분명 가능성은 희박했다. 그래도 한국에서의 일이니 일단 들이댈 수라도 있었던 거다.
하지만 이번 일은 다르다. 우리나라도 아니고 미국 회사와 일본 회사 사이의 일이다. 그것도 계약 진전까지 진척된 상황.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라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 있을 정도다. 그런데 그런 어려운 일을 당연하다는 듯 내게 맡기는 모습에 기가 찼다.
“저기··· 잠시만요. 여러분들! 이야기가 왜 갑자기 이렇게 흐르는 건가요? 제일 중요한 건 당사자의 의견이죠. 안 그런가요?”
“그건 아니지. 아마추어처럼 왜 이래, 마 팀장.”
“흑··· 차장님. 다른 사람도 아니고 차장님이 그런 말씀을 하시다니요. 항상 본인 의사가 제일 중요하다면서요!”
평소에 평안감사도 저 싫다면 그만이라고 주장하던 사람이 조기훈 차장이었다.
“그래. 물론 본인 의사가 중요하지. 그렇지만 더 중요한 게 있잖아. 바로 상관의 명령. 직장인이라면 당연히 짊어질 수밖에 없는 멍에라고. 슬픈 현실이지. 흐흐.”
“슬프다면서 그렇게 웃으면 양심에 안 찔리십니까?”
“마 팀장아. 아까 네가 그랬잖아. 방법은 둘 중 하나라고. 완전히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느냐, 아니면 더글라스 애리얼리 회장의 말을 믿고 실낱같은 가능성에 희망을 걸어보느냐. 그런데 실낱같은 가능성이라도 도전할 수 있는 사람이 우리 중에 너 말고 누가 있어?”
“말이 그렇다는 거죠. 이번 일은 저도 막막하다고요.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바다 건너 딴나라 일이라고요. 그걸 제가 무슨 수로요.”
“그것도 그래. 김 팀장은 일본어가 안 되잖아. 그렇다고 팀장급이 아닌 애들한테 이번 일을 맡길 수도 없고. 이래저래 아무리 따져봐도 할 사람은 결국 너밖에 없어.”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하지만 이대로 알았다며 납득하긴 좀 억울했다. 동지마트에서 일하며 여러 가지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하면서 정말 개고생을 했다. 이제 D&Y 피트니스 클럽으로 옮겨오면서 이제 좀 편안하게 가나 싶었는데 갑자기 이게 무슨 날벼락인지 모르겠다.
“그냥 새로운 도전을 해보는 것도 나쁘진 않죠.”
“준비하는데 몇 달이야. 그동안 되든 안 되든 마 팀장이 방법을 한 번 찾아보는 것도 괜찮잖아?”
고현호 상무까지 거드니 나도 더는 버틸 재주가 없었다. 2011년도 작년처럼 빡세게 일하는 수밖에······.
“좋아요. 할게요. 하긴 하는데, 저도 이번 일은 정말 막막하거든요. 그러니까 제발 어떤 기대도 하지 말아주세요. 아무 성과 없이 일본하고 미국만 왔다 갔다 할 수도 있어요. 그러니까 몇 달 해외여행 하는 셈 쳐주세요.”
“걱정하지 마. 이번 일 못 한다고 뭐라 그럴 사람 아무도 없으니까. 그런데 마 팀장.”
“네. 상무님.”
“정말 아무것도 떠오르는 게 없어? 가만히 있어도 막막 꼼수가 떠오르고 그러는 게 마 팀장이잖아.”
그동안 척척 아이디어를 뽑아내니까 내가 엄살이라도 부린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나도 물론 그런 기대에 부응하고 싶다. 하지만 이번 일은 정말 막막했다.
“네. 저···엉말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냥 백지입니다. 제가 국제적으로 놀아본 적이 있어야죠. 동지그룹에 입사한 이래로 지금까지 해외 업무는 한 번도 맡아본 적이 없어요. 완전히 문외한 이라고요."
“외국이라고 다를 거 없어. 말만 통하면 무서울 게 없어. 똑같은 사람이거든.”
그래. 말만 통하면 무서울 게 뭐 있나.
하지만 내가 영어와 일본어를 할 수 있다고 해도, 원어민 수준에는 많이 못 미친다. 화려한 말장난이 내 특기인데 그걸 못한다면, 나는 총 없이 전쟁터에 나가는 병사와 다르지 않다.
“말을 할 줄 아는 거랑 잘하는 거랑은 다르죠.”
“하하하. 마 팀장. 진짜 하기 싫은가 보네.”
내가 못마땅한 듯 자꾸 태클을 걸자 고현호 사장이 개구진 표정으로 웃음을 지었다. 왠지 솔직하게 하기 싫다고 인정하기 싫게 만드는 웃음이었다.
“하기 싫다기보다는, 하고 싶은데 능력이 안 된다는 거죠.”
“음···. 하고 싶은데 능력이 안 된다? 그런데 여기서 마 팀장보다 능력 되는 사람도 없잖아. 난 마 팀장 믿으니까 잘 해봐.”
결국 이렇게 되고 말았다. 믿는다는데 어쩌겠나? 되든 안 되든 최선을 다해보는 수밖에···.
“이미 한다고 했으니까 자꾸 그렇게 부담 주지 마세요. 그래도 최선은 다해볼게요.”
***
“잦은 복통에 쓰라림이 있고 신물이 올라오거나 헛구역질이 난다, 이 말씀이죠?”
“네. 그리고 예전에는 소화가 잘되는 편이었는데 요즘은 체한 듯 입맛이 없고, 속이 더부룩해요. 많이 안 좋은 건가요?”
최근 급격히 몸이 안 좋아진 이기적 대리가 의사에게 자신의 증상을 말하며 조심스레 물었다. 속이 답답하고 힘이 없는 게 혹시나 큰 병은 아닐까 걱정이 됐다.
“소화불량에 복부팽만까지 있다면···. 음······. 너무 걱정하지는 마십시오. 자세한 건 좀 더 정밀검사를 해봐야 알겠지만 지금까지 말씀한 증상으로는 스트레스성 위염일 가능성이 가장 높습니다.”
“스트레스성 위염이요?”
“네. 혹시 최근에 급격한 스트레스를 받은 적이 있습니까?”
의사의 질문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마동수였다. 한때는 자신의 부하 직원이자, 머슴처럼 마음껏 부려 먹던 녀석이었다. 그런데 어느새 직급이 한 단계도 아니고 두 단계나 높아진 직장 상사가 되었다.
얼마 전 우연히 마주쳤을 때, 아랫사람 내려다보듯 깔아보는 그 모습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화병이 날 만큼 억울한 마음에 밥맛이 떨어지고 잠도 오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속 쓰림도 그때부터 생긴 것 같았다.
“··· 있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럼 스트레스성 위염이 맞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하면 나을 수 있습니까?”
“우선 스트레스를 줄이셔야 합니다. 식습관을 비롯한 생활습관도 고치셔야 하고요. 담배나 술 하십니까?”
“네. 둘 다 좋아하는 편입니다.”
“끊거나 힘들면 줄여야 합니다. 자극적이고 기름진 음식도 줄이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면 증상 완화에 도움이 됩니다.”
의사의 설명은 누구나 다 아는 원론적인 이야기였다.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자극적인 음식을 줄이라는 말은 의사가 아니라도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이다. 그런 뻔한 이야기를 들으려고 병원을 찾은 것은 아니었다.
“약 먹으면 해결 안 됩니까?”
“그래 봐야 일시적으로 좋아질 뿐입니다. 근본적인 치료를 하셔야죠. 귀찮다고 생활습관을 고치지 않으면 위궤양이나 심하면 위암으로까지 발전할 수 있는 게 위염입니다.”
“알겠습니다. 일단은 그냥 약이나 지어주세요.”
자신의 병에 큰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는 모습이 안타까워 조언을 계속하려던 의사는 퉁명스러운 이기적 대리의 모습에 말문을 닫아버렸다. 아무리 잔소리해봐야 당사자가 받아들일 생각이 없다면 결국은 소귀에 경 읽기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다년간의 경험상 이럴 땐 그냥 조용히 환자가 해달라는 대로 해주는 게 상책이었다.
“네. 그렇게 하시죠. 접수실로 가시면 간호사가 처방전을 전해줄 겁니다. 그걸 가지고 근처 약국에서 약 지어 드세요. 차도가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일시적으로 완화되는 거지 근본적인 치료는 아니라는 걸 명심하시고요.”
“그건 제가 알아서 합니다.”
마동수 때문에 없던 위염까지 생겼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기적 대리는 의사의 진심 어린 조언마저 고깝게 들렸다. 지금 그의 마음속에는 마동수에 대한 적개심만 가득할 뿐이었다.
Rrrr
약국에서 지어준 약을 신경질적으로 털어 넣고, 쓴맛에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있는데 갑자기 전화가 걸려왔다.
“네. 이기적입니다.”
- 안녕하십니까, 이기적 대리님. 저는 이석근 팀장이라고 합니다.
“됐습니다. 대출 안 받습니다. 끊을게요.”
- 자··· 잠시만. 저는 고평호 상무의 수석비서인 이석근 팀장입니다.
“아··· 저는 또 대출받으라는 전화라고 생각했습니다. 죄송합니다.”
- 하하하. 아닙니다. 대뜸 이름만 말한 제 잘못이죠.
“그런데 무슨 일이시죠?”
광고 전화가 아니라는 걸 알았지만 이기적 대리의 말투는 여전히 시큰둥했다.
어차피 이제 곧 계열사로 내려가야 할 처지. 고평호 상무의 수석비서라고 해도 딱히 별다른 감흥이 느껴지지 않았다.
- 긴히 드릴 말씀이 있는데 혹시 지금 시간 괜찮으십니까?
“시간이요? 이제 곧 점심시간이 끝나가는데요?”
- 이 대리님이 지금 양지선 팀장 밑에서 일하고 있죠? 제가 말해 놓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어디로 가면 될까요?”
상대가 이렇게까지 나오니 내키지 않아도 거절할 방법이 없었다. 이제 곧 계열사로 쫓겨날 신세지만 그렇다고 저런 사람에게 밉보여 좋을 건 없다.
- 본사 정문 왼쪽에 시크릿이라는 카페가 지하에 있습니다. 혹시 아십니까?”
“네. 알고 있습니다.”
- 그럼 거기서 뵙도록 하죠.
잠시 후 약속한 장소에 도착한 이기적 대리는, 날카로운 인상을 가진 비슷한 또래의 남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단정하고 깔끔한 슈트에 흐트러짐 없이 완벽하게 정돈된 머리 스타일이 꼼꼼한 그의 성격을 잘 말해주고 있었다.
그도 이기적 대리를 발견했는지 자리에서 일어나 가볍게 손을 들었다.
“여깁니다. 이기적 대리님.”
“혹시 조금 전에 전화 주신 이석근 팀장님이십니까?”
“네. 제가 이석근입니다. 자리에 앉으시죠. 우선 차부터 한잔 하셔야죠?”
“아닙니다. 속이 안 좋아서 저는 그냥 물만 먹겠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저를 보자고 하셨습니까?”
“전화할때도 느꼈지만 꽤 단도직입적인 성격인가 보군요. 마음에 듭니다. 저도 이리저리 돌려 말하는 걸 별로 좋아하진 않거든요. 혹시 마동수 팀장에 대해서 잘 아십니까?”
“마동수요? 잘 안다면 아는 사이죠. 3년이나 제 밑에서 일했으니까요. 그런데 무슨 일로 그러십니까?”
“요즘 동지그룹에서 가장 핫한 인물 아닙니까? 그래서 좀 알아보려고 하는데, 마동수 팀장과 같이 일했던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더군요.”
처음에는 듣기 싫은 마동수라는 이름을 또다시 듣게 되어 울컥 화가 났다. 그러나 이석근 팀장이 고평호 상무측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생각을 고쳐먹었다.
그가 정확히 왜 마동수에게 관심을 보이는지는 모르겠지만 본능적으로 ‘이건 기회다.’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이기적 대리는 조금 전까지 시큰둥하던 얼굴을 바꾸고 진지한 모습으로 자세를 바로잡았다.
============================ 작품 후기 ============================
죄송합니다. 편수가 중복된 걸 이제 알았습니다. ㅠㅜ 입이 열개라도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앞으로 주의하겠습니다.
급하게 올리느라 어색하게 끊어갑니다. 이럴 때 저축분이 좀 있으면 좋을 텐데... 하루 써서 하루 올리는 하루살이 작가 인생이라..ㅠㅜ
이기적 대리는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포켓모스터 로켓단의 로이같은 캐릭터라고나 할까?
이제 조금 스케일을 키워서 주인공이 해외로 진출합니다. 스토리는 잡아놨는데 얼마나 현실성이 있을지는 저도 아직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좀 더 가다듬어서 개연성 있는 이야기로 만들어보겠습니다.
여러분이 남겨주시는 선추코는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