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40 소제목 추후 결정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이기적 대리의 모습이 달라지자 이석근 팀장의 눈이 이채를 띠었다.
팀장이지만 실제로 마동수는 고작 5년 차,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오는 3월이 되어야 5년 차가 되는 경력으로만 따지면 풋내기나 다를 바 없는 직장인이었다. 짧은 직장 생활만큼이나 그와 같이 회사생활을 한 사람도 그리 많지 않았다. 그리고 그중에 그에 대해 미주알고주알 전부 일러바칠 만큼 사이가 나쁜 사람은 이기적 대리가 거의 유일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런 그에게서 그냥 필요한 정보만 빼내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눈치가 빠른 모습이었다.
“아직 5년 차도 안 된 직원이 본사 팀장이 되는 일은 로열패밀리를 제외하고는 거의 유일하죠, 아마? 그런 사실을 생각하면 핫하다는 평가가 틀린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음··· 밑에 있던 사람이 갑자기 직장 상사가 되었는데 불쾌하지 않습니까?”
“저도 사람인지라 유쾌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능력이 있으면 그만큼 빨리 승진할 수 있는 곳이 사회 아닙니까?”
일부러 의도를 가지고 던진 질문이었지만 이기적 대리는 그 도발에 넘어가지 않았다. 본능적으로 기회를 포착하고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힌 덕분이다.
그만큼이나 이기적 대리에 대한 이석근 팀장의 평가도 달라지고 있었다.
“사실 마동수 팀장이 보여준 능력이 대단하긴 하죠. 그런데 입사 초기부터 그렇게 두각을 보인 겁니까?”
“글쎄요. 그런 걸 이 팀장님이 왜 궁금해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개인적인 호기심이라고 해둡시다.”
“제가 팀장님의 개인적인 호기심을 풀어줄 만큼 한가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럼 고평호 상무님의 개인적인 호기심이라고 생각하셔도 무방합니다.”
비협조적으로 나오자 고평호 상무라는 이름으로 은근히 압박을 가하는 이석근 팀장이었다
“어차피 한 달 안에 계열사로 쫓겨갈 사람입니다. 그런 제게 상무님의 이름은 그리 무겁지 않습니다.”
“계열사라고 해도 상무님이 힘이 미치지 않는 건 아니죠.”
“본사에서 밀려난 직원이 발령받는 계열사는 보통 쭉정이죠. 쓸모가 다한 인물이라는 의미죠. 그런 제가 굳이 아등바등하며 동지에 충성할 이유는 없습니다. 여차하면 회사를 옮길 각오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상무님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럼 동지에 충성할 이유를 만들면 되겠군요.”
“무슨 수로요?”
“과장으로 승진하면 계속 본사에 남아 있을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럼 이 대리에게 고평호 상무님이라는 이름이 무겁게 느껴질까요?”
생각지도 못한 제안에 이기적 대리는 속으로 깜짝 놀랐다. 물론 뭔가 반대 급부를 예상하긴 했다. 하지만 기껏해야 좀 더 괜찮은 계열사로 옮겨주는 정도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갑자기 과장으로 승진이라니······.
아무리 놀란 모습을 감추려고 해도 쉽게 감출 수 없을 만큼 깜짝 제안이었다.
“고··· 고작 풋내기 시절 마동수의 모습을 이야기해주는 대가로는 너무 과분한 제안인데요.”
“그렇죠. 당연히 과분한 제안이죠. With great power comes great responsibility. 스파이더맨에서 나온 대사입니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대체 제게 뭘 원하시는 겁니까?”
“솔직히 말씀드려, 저는 이기적 대리 당신에게 큰 기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오죽 못났으면 부하 직원에게 추월당할까. 아주 눈치 느리고 쓸모없는 놈이라고 생각했었죠. 그런데.”
“······‘
이석근 팀장은 예의 바른 모습을 벗어버린 채 처음으로 자신의 본 모습을 드러냈다. 그 모습에 위축된 이기적 대리는 대꾸도 못 한 채 조용히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런데 생각보다 눈치도 있고, 쓸모가 있어 보여. 나는 마동수가 굉장히 거슬려. 아무리 생각해도 여간내기가 아니거든. 그 자식을 솎아내지 않고서는 고평호 상무님의 후계자 경쟁이 쉽지 않을 것 같단 말이야. 나는 그 일을 이 대리가 해줬으면 좋겠어. 아닌 척했지만 자네에게서 마동수에 대한 적개심이 느껴졌어. 그 적개심을 우리를 위해 사용해볼 생각 없어? 어쨌든 그 녀석을 가장 잘 아는 사람 중 한 사람이잖아.”
“마동수에 대한 견제 그것만 하면 됩니까?”
“아니지, 아니야. 마동수의 몰락. 나는 최종적으로 그걸 바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도 좋아. 단 폭력을 동원하면 안 돼. 할 수 있겠어? 이 대리가 한다고 하면, 그 초라한 대리 직함이 며칠 안에 과장으로 바뀔 거야.”
이석근 팀장의 제안에 심장이 두근두근 떨려왔다. 마동수의 몰락은 그가 가장 바라던 일이었다.
“실패할 수도 있는 일입니다. 제가 일단 과장이 되고 나 몰라라 할 수도 있고요.”
“그건 걱정하지 마. 내가 바보다 아니고 이 대리만 믿고 바라볼 생각은 없어. 자네는 마동수를 견제할 다양한 수단 중 하나야. 그렇다고 대충할 생각은 안 하는 게 좋을 거야. 쓸모없는 것들을 폐기처분하는 게 내 전문분야거든. 궁금하면 실패해보던가.”
“폐기처분이요? 대체 어떤···.”
“그건 상상에 맡기지. 내 제안받아 들일 거야 말 거야?”
달콤한 제안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위험함이 느껴지는 제안이었다.
이 대리는 약자에겐 강하고 강자에겐 약한 전형적인 겁쟁이 소인배였다. 평소의 그라면 이석근 팀장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없던 병이 생길 정도로 마동수에 대한 원망이 커질 대로 커진 상황에서, 그 제안은 달콤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하겠습니다. 마동수의 몰락. 제가 가장 바라던 일이거든요.”
“잘 생각했어, 이 대리. 아니지 이젠 이 과장이라고 해야 하나? 하하하.”
***
정지영 과장, 성윤권, 추미래. 이번에도 이렇게 세 사람이 내가 진행할 팀에 합류했다. 동지마트 프로젝트 때부터 손발을 잘 맞춰왔고 그만큼 익숙한 사람들이라 마음은 편했다.
“서로 모르는 사람도 아니니 인사는 생략할 게. 갑자기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한다고 해서 어안이 벙벙할 거야.”
“호호호. 아니에요. 마 팀장님과 함께 일하면 얼마나 재미있는데요. 이번에는 또 얼마나 스펙타클한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 벌써 기대가 큽니다.”
항상 활기가 넘치는 정지영 과장은 대체 우리가 어떤 프로젝트를 맡은 지 상상도 하지 못한 채 호들갑을 떨었다.
“음···. 정 과장. 이런 말 하기 참 미안하지만 내가 딱 한마디만 할게. 꿈 깨!”
“네? 왜요?”
“정말 말도 안 되게 골치 아픈 일을 떠맡았거든. 그러니까 괜한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좋아. 솔직히 말해 실패할 가능성이 99%야.”
“으엑! 말도 안 돼! 실패할 확률이 99%인 일을 대체 왜 맡은 건데요?”
“월급쟁이가 별수 있어? 까라면 까야지.”
“그런데 팀장님. 그 말도 안 되는 일이 뭔데요?”
“여러분도 잘 알 거야. 원래 D&Y 피트니스 센터가 진출 예정이던 곳이 중국이었잖아.”
“네. 월드 베리어스 클럽과 제휴 예정이라고 단체로 중국어 공부도 시작했잖아요.”
“그런데 그 월드 베리어스 클럽이 지금 우리가 아닌 일본 기업이랑 협상 진행 중이래.”
“협상이 진행 중이라는 건 아직 희망이 있다는 거잖아요?”
역시 긍정적인 마인드의 정지영 과장다운 질문이었다.
“단순히 협상 중이라면 그렇지. 하지만 계약서에 사인을 하기 위해 막판 조율 중이라고 하더라. 말 그대로 성사 직전이지.”
“으악···! 그럼 우린 어떻게 되는 건가요? 다들 월드 베리어스 클럽만 믿고 D&Y 피트니스 센터로 옮겨온 거잖아요. 그리고 성사 직전인 상황에서 우릴 보고 뭘 하라는 건가요?”
“지금 김수현 팀장의 팀에서는 중국이 아닌 새로운 아시아 국가를 물색하기 시작했어. 하지만 타당성 조사만 해도 몇 달은 걸려.”
“그러니 그 시간 동안 우리더라 못 먹는 감이나 찔러 보라는 소린가요?”
“말하자면 그렇지?”
“와···! 우리 상무님 사람 그렇게 안 봤는데 너무 하시네요.”
“상무님이 아니라 차장님 아이디어야.”
“차장님이요? 아, 이런 배신자 같으니라고! 그런데 팀장니···임.”
어려운 일을 지시한 고현호 상무와 조기훈 차장에 대해 분노하던 그녀의 목소리가 갑자기 늘어진다. 뭔가 아쉬운 소리를 할 때 나오는 그녀의 버릇이다.
“뭔데 또?”
“자고로 이런 말이 있었죠.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들어가야 한다.”
“뭐야, 그 뜬금없는 말은?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
“아잉. 오늘따라 왜 이렇게 눈치가 느리실까? 일본기업과 미국기업이 관련되었으면 우리도 일본과 미국을 찾아가야 한다는 소리죠.”
“정 과장. 한 번만 더 코맹맹이 소리 내면 동지마트로 쫓아내 버린다.”
“왜요? 이렇게 말하면 들어주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아요?”
“됐거든! 꿈에서라도 나올까 무섭거든! 그러니까 제발 참아줘. 그리고 일본과 미국, 필요하면 가야지. 하지만 거기서 놀 생각은 안 하는 게 좋을 거야. 아무리 가능성이 없는 일이라도, 이왕 맡았으면 최선을 다해야지. 포기하고 놀 생각은 안 하는 게 좋을 거야.”
“헉! 어떻게 아셨어요?”
과장되게 깜짝 놀라는 표정이 코미디언 뺨칠 정도로 코믹했다. 어째 사람이 갈수록 푼수가 되어 가는지···.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고 일에 집중해. 지금 월드 베리어스 클럽 협상단이 일본에 방문중이라고 하니까, 일단 이번 주 안에 일본에 방문할 생각이야. 일본 기업 이름이 다나카 아크로바틱이래. 정 과장은 출국 전까지 그 회사에 대해 최대한 상세히 알아봐 줘.”
“알겠어요. 팀장님.”
정지영 과장은 나의 지시에 코믹한 얼굴은 온데간데없이 진지하게 대답했다. 평소에는 푼수처럼 지나치게 활기차지만 일이 시작되면 누구보다 적극적이고 성실하게 임하는 그녀다. 그 모습이 바로 내가 그녀를 누구보다 신뢰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리고 미래씨는 이번 주 목요일에 출발할 수 있게 비행기부터 호텔까지 차질없이 예약해두고.”
“네. 팀장님.”
“자! 다들 알다시피 이번 일은 정말 가능성이 1%도 안 되는 어려운 일이야. 그래서 부담스러울 수도 있겠지. 하지만 생각을 좀 바꿔보자. 실패한다고 해도 최선을 다했다면 아무도 뭐라고 할 사람이 없어. 그리고 우리가 실패하더라도 김수현 팀장이 분명 중국보다 더 좋은 나라를 찾아낼 거야. 항상 그래 왔듯 동료를 믿자. 그러니까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며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조금은 마음 편하게 일하자고.”
“저기··· 그런데 팀장님.”
“다른 할 말 있어? 정 과장.”
“혹시요. 만약 이 말도 안 되는 프로젝트를 성공한다면 그땐 일본이나 미국에서 마음 편하게 놀아도 되나요?”
정지영 과장은 역시 끝까지 그녀다웠다.
“하하하. 당연하지. 만약 성공하면 내가 강력하게 주장해서 최고급 스위트룸에서 편안하게 놀 수 있도록 해줄게. 안 되면 내 자비를 털어서라도.”
“정말이죠? 약속하셨어요! 두고보세요. 이번 일 제가 꼭 성공해내고 말 테니까.”
============================ 작품 후기 ============================
요즘 자꾸 왜 이러죠. ㅠㅜ 예약 걸어뒀다고 생각했는데 ㅠㅜ 지금 확인해보니 안 올라가 있었네요. 제가 요즘 좀 정신이 없습니다. 하루 빨리 집나간 멘탈을 되찾아야 할 텐데....
그리고 어제는 정말 죄송했습니다. 아는 분이 따로 연락을 주지 않으셨다면 글을 중복해서 올린 사실을 이제야 알았을 겁니다. ㅠㅜ 오죽 답답했으면 제게 직접 연락을 다 주셨을까요? 대신 10연참을 요구하셨지만 그건 좀... ㅠㅜ ㅎㅎ 혹시 모임에서 뵙게 되면 커피라도 한잔 살게요 ~~ ㅎ
이제 거의 막바지라서 이상한 결말을 내지 않으려고 정말 머리를 짜내고 있습니다.
미국이 일본과 제휴해서 중국에 진출한다. 그 협상을 깨기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 뭘까요? 사실 좀 뻔해서 이미 눈치 채신 분도 있을 겁니다. 혹시 눈치 채셨더라도 조용히 지켜봐주세요.
마동수가 제대로 사고를 칠 예정이거든요.
살짝 지루한 파트일 수 있어, 약간의 스포를 남기는 작가의 꼼수입니다. ㅎㅎㅎ
여러분의 선추코는 작가에게 큰 도움이 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