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41 소제목 추후 결정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다나카 아크로바틱.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스포츠센터라고 보시면 돼요.”
“윤 스포츠센터와 비슷하다고 보면 되는 건가?”
“음···. 비슷하면서도 달라요. 다나카 아크로바틱은 피지컬 피트니스(physical fitness), 즉 밸런스가 잡힌 건강한 신체를 만들어내는 일이 전문인 곳이에요. 가장 전문적이고 궁극적인 헬스클럽이라고 생각하시면 쉬워요. 하지만 윤 스포츠센터는 피지컬 피트니스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운동을 가르치잖아요. 컨트리클럽 같은 골프장도 운영하고요.”
다나카 아크로바틱에 대해 조사를 마친 정지영 과장의 설명이었다.
쉽게 말해 다나카 아크로바틱은 인간의 몸에 집중한 전문적인 헬스클럽이라면 윤 스포츠센터는 종합 레포츠센터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녀가 ‘가장 큰’ 스포츠센터라고 하지 않고 ‘가장 유명한’ 스포츠센터라고 설명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럼 일명 몸짱이 되기 위해서는 다나카 아크로바틱을 다니는 게 가장 효과적이겠네?”
“그렇죠! 오직 인간의 몸을 보다 아름답게 만드는 게 거기 사람들의 궁극적인 목표거든요. 120kg이 넘는 굉장히 비만인 사람들을 고작 석 달 만에 몸짱으로 만들어 내는 바람에 기적의 헬스클럽이라고 불리고 있어요. 그래서 지금 일본에서는 다나카 신드롬이 불릴 만큼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 있어요.”
“다나카? 사람 이름이야?”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해요.”
“뭐야? 그 어중간한 대답은?”
“기계체조 ‘다나카’라는 이름의 기술이 있대요. 고난도 묘기의 하나인데 평행봉에서 끌어안는 자세로 뒤로 두 번 공중제비하는 동안에 몸을 한 번 뒤트는 큰 기술을 부르는 이름이에요. 그걸 처음으로 시도한 사람이 다나카라는 일본 선수래요.”
“우리나라 양학선가 만들어낸 양1, 양2 이런 기술처럼?”
“네. 다나카 아크로바틱 사장은 그 체조선수를 존경하는 마음에 체조 기술 이름의 ‘다나카’를 따왔다고 해요. 사실, 결국은 사람 이름이니까 그게 그거이긴 해요. 그리고 사장 이름은 ‘키사라기 에이지’고요.”
키사라기 에이지? 왠지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이다.
“굉장히 익숙한 이름인데, 기억이 안 나네.”
“호호호. 팀장님이라면 기억하실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용호의권이라고 격투기 게임인데···.”
“아···! 용호의권이랑 킹오브파이터즈에서 나오는 그 몸 좋은 닌자?”
“역시! 그 키사라기 에이지가 맞아요. 본명은 아니고 사장이 그 캐릭터를 좋아해서 이름을 그렇게 바꿨다고 해요.”
체조 선수를 좋아해서 다나카 아크로바틱이라고 스포츠센터 이름을 짓고 게임 캐릭터를 좋아해서 키사라기 에이지라고 자신의 이름을 바꿨다니, 사장이라는 양반이 왠지 오덕후(?)스럽게 느껴졌다.
“평범한 사람은 아닌가 보네.”
“팀장님이 느끼기에도 그렇죠? 일종의 ‘오타쿠’라고 할 수 있어요. 오타쿠가 한 분야에 열중하는 사람을 이르는 말이잖아요. 키사라기 에이지 사장은 몸 만드는 일에 미쳐있어요. 저도 호기심에 그 사람에 대해 검색해봤는데, 어휴···.”
“왜? 그렇게 몸이 끝내줘?”
“아니요. 징그러울 정도로 과해요. 물론 그 정도 노력을 했으니까 일본 최고의 몸짱 트레이너가 됐겠지만요.”
오타쿠. 예전에는 다른 분야의 지식이 부족하고 사교성이 결여된 인물’이라는 부정적 뜻으로 쓰였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부터 점차 의미가 확대되어, ‘특정 취미에 강한 사람’, 단순 팬, 마니아 수준을 넘어선 ‘특정 분야의 전문가’라는 긍정적 의미도 같이 가지게 됐다.
그런 면에서 키사라기 에이지를 오타쿠라고 부르는 건 좋은 뜻에 가깝다. 어쨌든 간에 한 분야에서 최고 전문가가 된다는 건 그만큼 피나는 노력을 기울였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정 과장. 좀 이해가 안 가는 게 있어.”
“그게 뭔데요?”
“다나카 아크로바틱이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스포츠센터라는 건 알겠어. 그런데 그게 월드 베리어스 클럽이 다나카 아크로바틱을 선택한 이유는 아닐 것 같거든. 피지컬 피트니스가 가장 유명한 나라가 미국인데 굳이 아류인 일본 스포츠센터와 제휴할 이유는 없잖아.”
“그렇죠. 단순히 스포츠센터라면 미국에도 유명한 곳이 많죠. 굳이 일본과 제휴할 필요가 없을 만큼요. 그런데 다나카 아크로바틱에는 미국 유명 스포츠센터들이 가지지 못한 특성화 분야가 있어요. 어떻게 보면 월드 베리어스 클럽이 우리에게 관심을 가졌던 아이 두(I DO)와 비슷해요.”
“어린이를 위한 프로그램이 있는 거야?”
“네. 그렇지만 우리의 아이 두와는 확실히 달라요. 다나카 아크로바틱과 윤 스포츠센터의 차이랑 굉장히 유사하죠. 아이 두가 스포츠를 중심이긴 해도 영어를 가르치는 등 종합교육 프로그램이라면, 다나카 아크로바틱에서 운영하는 쇼소는 이름답게 아이들의 성장발달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요.”
“쇼소? 젊고 혈기왕성하다(少壮)는 의미의?”
“아니요. 쇼니 소다치의 줄임말이에요.”
“어린 아이의 성장이라니···. 이름이 어째 촌스럽네. ···아니지. 아이 두를 우리 말로 해석하면 촌스러운 건 마찬가지니 뭐라고 할 처지는 아니네. 그건 그렇다 치고. 그게 왜 월드 베리어스 클럽의 관심을 끌었을까?”
아이의 성장.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그게 아이들을 위한 종합 프로그램이 있는 아이 두만큼 매력적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단순한 성장이 아니라 쇼소는 아이들의 키에 집중하고 있거든요. 전 세계적으로 키에 가장 집착하는 곳이 어딘지 아세요?”
“글쎄다. 우리나라도 좀 집착이 심한 편인 것 같긴 한데.”
전 세계적으로 자신의 키가 작기를 바라는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은 그 정도가 매우 심하다. 180cm가 안 되면 루저라는 말이 나올 정돈데 굳이 다른 설명이 필요할까?
“물론 우리나라도 속해요. 한국, 중국, 일본. 동북아의 이 세 나라가 키에 대해서 가장 집착이 심한 나라래요. 원래 중국은 작은 거인이라고 불렸던 마오쩌둥의 영향 때문인지 키에 대해서 크게 신경 쓰지 않았어요. 하지만 한국과 일본의 영향인지 최근 들어 트랜드가 많이 바뀌었어요. 그만큼 아이들의 키에도 많은 신경을 쓰고 있고요. 그런 분위기에서 아이들의 성장발달에 최적화된 프로그램을 장착한 쇼소의 다나카 아크로바틱은 충분히 매력적이죠.”
“그런 건 미국도 있지 않아?”
“미국도 아이들의 키를 집중적으로 키우는 성장 프로그램이 없는 건 아니지만 대부분 스트레칭 위주에요. 일본만큼 노골적이고 체계적이지 않죠. 쇼소는 성장판 자극부터 근력과 유연성 강화까지 안정적으로 키를 키울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총동원해 응용해요.”
“정말 효과가 있다면 중국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폭발적인 인기를 끌 것 같은데?”
아이의 성장을 위해 한 달에 백만 원이 넘는 성장 호르몬 주사까지 맞히는 세상인데, 그걸 운동으로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다면 반응이 폭발적일 게 분명하다.
“그렇지 않아도 한국 시장 진출도 준비 중이라고 해요. 우선은 중국 시장이 워낙 커서 그쪽에 집중하고 있지만 어느 정도 자리가 잡히면 바로 한국 시장 진출도 시작할 건가 봐요.”
“확실히 가능성은 있어 보이네. 어쩌면 아이 두의 강력한 라이벌이 될지도 모르겠어. 이렇게 되면 아이 두가 가지고 있는 특별함으로 월드 베리어스 클럽 협상단을 설득하려는 건 포기해야겠군.”
“저도 마찬가지 생각이에요. 아무래도 접근 방법을 완전히 바꿔야할 것 같아요.”
“어떻게? 괜찮은 방법이라도 있어?”
“우선 쇼소가 정말 효과가 있는지 그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방법이 있겠죠.”
그녀의 말처럼 쇼소에서 운영하는 키 성장프로그램에 의문점을 제기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긴 하다. 지금은 신드롬이라고 불릴 정도로 대단한 열풍이 일어나고 있지만 만약 부작용과 같은 문제점이 드러난다면 순식간에 사라질 거품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나라도 아닌 곳에서 있을지 없을지도 모를 문제점을 찾는 것도 그것을 언론에 문제 제기하는 것도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설사 문제 제기에 성공한다고 해도 검증 과정에서 그 효과가 과학적으로 증명되기라도 한다면, 오히려 죽 쒀서 개 준 꼴이 된다.
확실하지 않은 일에 도전하기에는 지금 우리 여건이 너무 안 좋다.
“하지만 거긴 일본이야. 한국처럼 여론을 이용하기엔 우리가 가진 기반이 너무 약해. 고작 동지그룹 한국지사가 동지그룹과 똑같은 위세를 떨치는 건 불가능하니까. 혹시 다른 방법은 없어?”
“그것 말고는 저도 당장 떠오르는 방법이 없어요. 조세핀 스톤이라는 여자 이사의 멱살을 잡아 놓고 우리와 제휴하도록 억지로 사인을 하도록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요.”
“일단 스톤 이사를 만나봐야 할 것 같아. 다행히 더글라스 애리얼리 회장이 그녀와의 만남을 주선해준다고 했으니까, 만나서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아봐야지.”
“어휴···. 저는 스톤이라는 성도 마음에 안 들어요. 꼭 샤론 스톤 느낌이 나잖아요. 원초적 본능의 약녀였던 캐서린 트라멜. 왠지 조세핀 스톤도 꼭 그런 여자일 것 같아요. 그게 아니라면 우리와의 계약을 기다리고 있던 월드 베리어스 클럽이 갑자기 다나카 아크로바틱으로 갈아탈 일이 없잖아요.”
“뭐? 같은 건 스톤이라는 성뿐이잖아. 그런데 캐서린 트라멜이라니, 그건 일종의 과대망상이라고. 정 과장.”
“몰라요. 왠지 느낌이 그래요. 분명히 팀장님도 그랬잖아요. 다나카 아크로바틱과의 협상을 주도하는 사람이 조세핀 스톤이라고. 뭔가 찜찜해요. 팀장님도 조심하세요. 여자의 직감은 생각보다 잘 맞거든요. 혹시 알아요. 그 여자가 팀장님을 유혹이라도 할지.”
“하하하. 하여간 엉뚱하기는. 유혹?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다. 모르는 척 넘어가 주고 우리와 계약하면 고생도 안 하고 얼마나 좋아.”
“어머! 팀장님이 그런 말씀 하시면 안 되죠. 윤시연 작가님이 있는데 어떻게 그런 말씀을 하세요. 하여간 남자들은 다 똑같다니까.”
“농담이야, 농담. 정 과장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니까. 내가 시연이를 두고 그럴 리가 없잖아.”
“모르죠. 남자들은 숟가락 들 힘만 있어도 여자 생각을 한다던데요, 뭘.”
“난 안 그래. 그러니까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내일 일본 출장갈 준비나 잘해.”
글쎄다. 원초적 본능을 찍을 당시의 샤론 스톤이 나를 유혹한다면, 아무리 시연이가 있다고 해도 아주 잠깐 마음이 혹하지는 않을까? 솔직히 나도 100% 장담은 못 하겠다.
“네. 그럼 내일 뵐게요. 그리고 팀장님!”
“왜? 또 무슨 이야길 하려고?”
“진짜 조세핀 스톤에게 넘어가시면 안 됩니다!”
집요한 정 과장 같으니라고.
“어휴···. 어서 집에 가서 발 닦고 잠이나 자!”
“호호호. 네. 팀장님은 오늘 좋은 밤 보내시고요.”
“무··· 뭐? 좋은 밤은 갑자기 무슨 소리야?”
“에이. 일본 출장 가면 한국에 언제 올지 모르는데, 윤 작가님과 좋은 밤을 보내셔야죠. 설마 그냥 전화만 하고 주무실 건 아니죠?”
“당연히 만날 거야. 그··· 그렇지만 좋은 밤은 아니고, 그냥 데이트야, 데이트.”
“어머! 제가 뭐라고 했나요? 밥 먹고 이야기하다 보면 밤이 되니까 좋은 밤 보내라고 한 건데···. 설마 야한 상상이라도 하신 거예요?”
“야··· 야한 상상은 무슨. 아니야. 절대. 하하하. 정 과장이 심심해서 일을 더 하고 싶은가 본데, 그럼 나 먼저 퇴근 할게. 수고해. 크흠.”
오늘 밤. 시연이를 밤새도록 괴롭힐 생각이던 나는, 속마음을 들킨 것 같은 민망한 마음에 후다닥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그러나 장난기 많은 정지영 과장의 목소리는 유도미사일처럼 계속해서 내 뒤를 따라왔다.
“내일 토끼 눈처럼 해서 나타나시는 건 아니죠? 윤 작가님 너무 괴롭히시면 안 돼요. 호호호.
============================ 작품 후기 ============================
우와 다들 예리하십니다. 그러고 보니 주인공 캐나다 여행 다녀왔네요. 저도 깜빡했습니다. ㅠㅜ 그리고 사실 이기적 대기는 로이와 비교하기에는 많이 나쁜 놈입니다. 로이 팬분들에게는 대단히 죄송합니다. ㅎㅎㅎ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멘탈이 회복되는 그날까지 화이팅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