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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가 전부는 아니야-343화 (343/424)

00343  소제목 추후 결정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나를 비롯한 우리 팀 전원은 약속 시각보다 2시간 빠른 오후 3시에 조세핀 스톤을 비롯한 월드 베리어스 클럽 협상단의 숙소가 있는 리츠 칼튼 호텔 오사카의 세미나룸에 도착해 면담을 준비했다. 라이벌 회사는 웬만하면 이용하지 않는 게 좋지만 지금 아쉬운 건 우리였다.

앞으로 우리가 헤쳐나갈 길이 얼마나 험난할지 이번 면담으로 결정되기 때문에 팀원들 얼굴에는 긴장감이 역력해 보였다. 심지어 호텔의 유럽풍 실내 장식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던 정지영 과장도, 그런 것 따위에 언제 관심을 가졌느냐는 듯 잔뜩 굳은 얼굴로 열심히 면담을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예상처럼 약속 시각인 4시를 넘어 시계의 분침이 20이라는 숫자에 가까워지도록 그 누구도 우리가 기다리고 있는 세미나룸에 나타나지 않았다.

“휴······. 역시 우리가 달갑지 않은 모양이군. 이 시각까지 안 나타나는 걸 보니까.”

“그래도 너무하네요. 자신들이 몸담고 있는 회사의 회장이 주선해준 만남인데 이렇게 대놓고 홀대를 하다니요. 이건 더글라스 애리얼리 회장까지 무시하는 행동이라고요.”

“바쁜 일이 있었다고 둘러대면 그만이야. 미국에 있는 회장이 일본에 있는 직원까지 일일이 컨트롤할 수는 없으니까.”

“그래도 나타나긴 나타나겠죠?”

“약속은 약속이니 조세핀 스톤 이사 당사자가 아니라도 누군가 나타나겠지. 어떻게 하는지 일단은 두고 보자.”

똑똑똑.

그렇게 시계만 바라보며 30분이라는 시간을 더 기다리자 그제야 문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다들 누군가의 방문을 노심초사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작은 노크에도 모두의 시선이 일제히 문으로 향했다.

밖으로 통하는 문과 가장 가까이 앉아 있던 윤권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문을 열자 그곳에는 낯선 남자 외국인이 서 있었다. 살짝 비웃음을 띠고 있던 그는 눈앞에 거구의 윤권이와 마주치자 순간 놀란 듯 주춤거리는 모습이었다.

[누구 십니까?]

사실 윤권이 녀석 얼굴이 좀 험상궂긴 했다. 그냥 두면 겁을 먹고 도망갈 것 같아, 재빨리 용무를 물었다.

[저······. 여기가 D&Y 피트니스 센터에서 온 분들이 계신 곳 맞습니까?]

[네. 맞습니다. 그런데 누구십니까?]

[안녕하십니까? 저는 월드 베리어스 클럽 협상단의 톰 포스터라고 합니다.]

[아··· 그렇습니까? 안 그래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일단 들어오시죠.]

세미나룸으로 들어오라는 나의 제안에, 톰 포스터는 윤권이의 얼굴을 보며 내키지 않는 표정을 지었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저는 여러분과 면담을 하러 온 게 아니라 미안한 소식을 전하러 왔습니다. 이메일로 연락을 드릴까 하다가 그래도 만나서 직접 이야기를 하는 게 예의일 것 같아서요. 조세핀 스톤 이사님이 갑작스레 컨디션이 안 좋아지셨습니다. 그래서 약속했던 오늘 면담은 다음으로 미뤄야 할 것 같습니다. 미안합니다.]

[조세핀 스톤 이사님이요? 저런. 어쩌다가···. 어디 몸이 많이 안 좋으십니까?]

[아니요. 의사 말로는 하루 이틀 정도 휴식을 취해야 한다고 합니다. 면담은 조세핀 스톤 이사님의 몸 상태가 완전히 회복된 이후에 하는 게 좋을 것 같군요.]

[그럼요. 몸이 안 좋으면 회복이 먼저죠. 어서 쾌차하시길 기원한다고 전해주세요.]

뭐하는 수작인지 대충 감은 왔지만 여기서 화를 내는 건 바보 같은 짓이다. 만약 화를 낸다면 오히려 저들은 그를 핑계로 면담 자체를 없었던 일로 할지도 모른다. 이럴 땐 그냥 인내심을 가지고 참고 또 참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감사합니다. 꼭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그런데 미스터 포스터씨. 면담은 언제쯤 할 수 있을까요?]

[글쎄요. 저도 뭐라고 확답을 해드리긴 어렵습니다. 의사 말로는 하루 이틀이면 된다고 했는데 사람 일이란 원래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으니까요. 일부러 일본까지 오셨는데 뭐라 드릴 말씀이 없군요.]

젠장!

결국은 자기들이 다시 연락을 할 때까지 조용히 기다리고 있으라는 이야기였다. 살짝 욱하는 마음이 생겼지만, 화를 차분히 가라앉혔다. 어쩌면 이런 상황까지도 저들은 이미 예상했을지 모른다.

[어쩔 수 없죠. 사람이 우선 아닙니까. 그럼 조세핀 스톤 이사님이 완전히 쾌차하시면 그때 연락 주십시오. 기다리겠습니다.]

[그··· 그래요? 이거 미안해서···. 일본하고 한국이 그렇게 멀지 않으니 우선 한국에서 기다리시면 저희가 연락을 드리는 방법도 있습니다.]

[그럴 수야 없죠. 기다리겠습니다.]

우리가 한국으로 돌아가면 그 핑계로 안 만나줄 게 뻔한데 그럴 수 없다. 아무리 시간을 끈다고 해도 더글라스 애리얼리 회장의 말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 참고 기다리다 보면 면담을 할 수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보다 단호하게 ‘기다리겠다.’고 의사표현을 했다. 뭔가 아쉬워하는 톰 포스터의 얼굴을 보니 우리가 이렇게 막연하게 기다리겠다고 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모양이었다.

[네. 알겠습니다. 그럼 다시 연락 드리겠습니다. 혹시 연락이 너무 늦어지더라도 저를 원망하시지는 말기 바랍니다.]

재수 없는 자식!

톰 포스터는 자기 뜻대로 일이 되지 않자 은근히 협박하는 말을 잊지 않았다. 그리고는 슬쩍 윤권이 눈치를 보더니 등을 돌려 재빨리 자신의 숙소로 돌아가 버렸다.

“아우 재수 없어!”

“뭐랍니까?”

톰 포스터가 돌아가자 정지영 과장이 분통을 터트렸다. 그 모습에 영어를 못하는 윤권이가 정색하며 물었다. 영어를 못하는 건 추미래도 마찬가지. 너무 신뢰할 수 있는 사람 위주로만 팀원을 뽑았더니 이런 일을 할 때는 약점이 드러났다.

“지금 조세핀 스톤 이사가 아프니까 다시 연락 줄 때까지 무조건 기다리래요.”

“무조건이요? 어디가 많이 아프답니까?”

“그건 몰라요. 우리랑 만나는 게 내키지 않는지 한국으로 돌아가 있으라는 말도 하더라고요. 차라리 대놓고 만나기 싫다고 말을 할 것이지. 이제 어쩔 거예요, 팀장님?”

“기다려야지.”

“그냥 무작정요?”

“면담 준비를 더욱 철저하게 하면서 기다려야지. 쇼소가 지금 일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지만, 그건 우리 아이 두도 마찬가지야. 원래는 두 프로그램 간의 직접 비교는 피하려고 했는데 시간을 주니까 우리도 제대로 준비해줘야지. 요즘 들어 키 크는 운동법이 아무리 중요해도 동북아시아는 결국 공부야. 그건 유교 문화권이 가지는 어쩔 수 없는 숙명이라고. 단순히 신체 건강법이 담긴 프로그램 따위와 정신과 몸을 균형 있게 발전시켜주는 우리 아이 두가 비교되는 건 자존심 상하는 일이라고.”

시간이 없어서 직접 비교는 피하려고 했지만, 시간만 있다면 쇼소에 비해 아이 두가 얼마나 월등한지 충분히 입증할 자신이 있었다.

“와···. 우리 팀장님. 열 받으셨나 봐요?”

“그럼 열 안 받게 생겼어. 알다시피 아이 두는 처음부터 내 아이디어로 만든 거라고. 어떻게 보면 내 자식 같은 느낌이야. 그런데 그런 내 자식이 일본에게 밀렸다는 건 정말 자존심 상하는 일이야. 그리고 ‘왜’라고 조롱받을 만큼 원래 키가 작았던 일본과 중국은 상황이 달라. 물론 키가 안 중요하다는 건 아니지만, 아이 두에 있는 프로그램도 충분히 아이들 성장에 도움이 돼. 키에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스트레스도 안 주고, 동시에 공부까지 함께하는 최고의 교육 프로그램이라고.”

“그건 저도 알죠. 게다가 윤 스포츠센터의 연구진과 우리나라 아동 전문가까지 모여서 더욱 체계적인 프로그램으로 변모했잖아요. 단순히 키 크는 프로그램과 비교당하긴 억울하죠. 그런데 조세핀 스톤 이사가 그 이야길 듣고 마음을 바꿀지는 또 다른 문제 같은데요?”

“바꾸게 만들거야.”

“어떻게요?”

“나도 몰라.”

“네에? 그건 또 무슨 황당한 대답이에요?”

“나도 모르지만 어쨌든 마음을 바꾸게 만들거야. 할 수 있는 방법을 총동원해서라도.”

“그것참 되게 황당한 대답인데요. 그런데 팀장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희한하게 믿음이 가네요. 나, 아무래도 팀장님 빠순인가봐요. 호호호.”

***

- 월드 베리어스 클럽에서 그렇게 나왔다고? 어째, 하는 짓이 좀 치졸하네?

첫 면담이 결렬되고 그 사실을 고현호 상무에게 보고하자 나온 그의 첫 반응이었다.

“면담 시각을 4시로 잡을 때부터 어느 정도 예상은 했습니다.”

- 그래도 기분 나쁘네. 이런 식으로 대접할 줄은 몰랐는데.

“그런데 상무님. 더글라스 애리얼리 회장의 입지가 월드 베리어스 클럽에서 어떻습니까? 원래 꽤 탄탄했던 거로 알고 있는데요.”

조세핀 스톤 이사의 이번 행동을 보며 가장 궁금했던 내용이다. 그래도 회사의 회장이다. 아무리 자유분방한 미국 회사라고 해도 회장의 지시를 무시할 만큼 위계질서가 엉망이지는 않다. 그런데 그들이 내게 보여준 행동은 미국인이라는 걸 감안해도 굉장히 상식 이하였다.

- 그게. 나도 이상하게 알아봤는데 더글라스 애리얼리 회장의 지금 입지가 흔들리고 있는 건 사실이더라고.

“그 양반이 무슨 결정적인 실수라도 한 겁니까?”

월드 베리어스 클럽을 지금의 세계적인 기업으로 키운 게 바로 더글라스 애리얼리 회장이라고 알고 있다. 그런데 그의 입지가 흔들린다? 뭔가 결정적인 실책을 하지 않은 이상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 아니야. 일적으로는 여전히 완벽해. 문제는 그룹 내부야. 애리얼리 회장은 어쨌거나 월급쟁이고 거기 오너는 에저튼 가문이야.

“에저튼 가문이요? 록펠러, 멜런, 듀폰, 핍스 이런 가문처럼요?”

- 이를테면 그런데. 방금 마 팀장이 말한 가문은 미국 4대 가문이잖아. 비교 자체가 불가능해. 그냥 돈 좀 있는 미국의 부자 가문 중 하나라고 생각해. 그 가문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기회 되면 하고. 어쨌든 지금 에저튼의 두 형제가 서로 권력다툼 중이야. 더글라스 애리얼리 회장은 두 사람 중 형이 데려온 사람이고.

그 참. 역시 어딜 가나 돈이 문제였다.

“그럼 조세핀 스톤 이사는 동생 쪽 사람이겠군요?”

- 그렇지. 사실 원래는 형 쪽이 월드 베리어스 클럽 지분을 훨씬 많이 가지고 있었거든. 그러니 월드 베리어스 클럽에 한해서는 권력다툼이 일어날 일이 없었어.

“그런데요?”

- 형이라는 양반이 젊은 여자와 바람을 피웠거든. 그걸 와이프에게 들켜서 이혼했고. 바로 여기서 골치 아픈 일이 생겼어. 와이프에게 준 막대한 위자료 중에 월드 베리어스 클럽의 지분도 포함됐거든. 사실 여기까지도 큰 문제는 아니야. 그런데 남편이 바람 핀 게 끝까지 용서가 안 됐나 봐. 자신이 가지고 있던 지분의 권리를 전부 남편 동생에게 일시 양도해버렸거든. 완전히 엿 먹으라는 행동 아니겠어?

“그러니까 결국 젊은 여자 하나 때문에 이런 사단이 일어난 건가요?”

- 그렇지. 그래서 자고로 남자는 자기 물건 간수를 잘해야 하는 거라니까.

“휴···. 그럼 더글라스 애리얼리 회장도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건가요?”

- 그건 쉽지 않아. 어쨌거나 월드 베리어스 클럽을 키운 건 그 사람 공이 크니까, 함부로 자르진 못해. 이사회 눈치는 봐야 하거든. 하지만 만약 에저튼 가문의 동생이 권력분쟁에서 승리한다면, 어쨌거나 형이 데려온 사람이니 애리얼리 회장의 수족들은 전부 잘라내 버리겠지.

“어쩐지···. 조세핀 스톤 이사도 믿는 구석이 있는 셈이군요.”

- 그러니까 혹시 계속 비협조적으로 나오면 그냥 돌아와. 아무리 그래도 내 사람들이 밖에서 무시당하는 건 못 참아. 중국이 아니라도 분명 무슨 방법이 있을 거야.

하여간 이 양반은··· 가끔 이렇게 오글거리는 말을 잘도 내뱉는 것 같다.

“아니에요. 저도 이제 슬슬 오기가 생겨서 빈손으로 그냥 돌아가긴 싫어졌어요. 최소한 무라도 자르고 돌아갈 테니 기다려보세요.”

- 오··· 그래? 마 팀장이 자를 무라? 한번 기대해 볼게.

“에이. 기대는 마시라니까요. 아무튼 변동사항이 생기면 다시 전화 드리겠습니다. 이만 끊을게요.”

- 하하하. 그래 수고하라고, 마팀장.

============================ 작품 후기 ============================

칼을 갈기 시작한 마 팀장..

마무리를 어떻게 해야할지 살짝 갈팡질팡 중입니다. 역시 마무리가 제일 어려운 듯 해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가기기 전에 선추코 잊지 마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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