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53 소제목 추후 결정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별거 아니라니까. 또라이가 또라이스럽게 사랑 고백을 했을 뿐이야.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니까 정 과장은 신경 안 써도 돼.”
“팀장님은 제가 바본 줄 아세요? 그냥 그 편지 이리 주세요. 일본어는 우리나라랑 어순이 똑같으니까 일본어 사전만 찾아봐도 대충 무슨 말인지 알 수 있어요.”
“정 과장!”
정지영 과장은 황급히 편지를 뺏으려 했고 손을 내밀었고, 나는 그런 그녀를 피해 돌돌 말아 구겨버린 편지지를 입속에 집어넣어 버렸다. 유치한 행동이라는 걸 알지만 그녀도 상처받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이상 더더욱 편지를 보여줄 수 없었다.
“팀장님! 정말 이렇게까지 하실 거예요?”
“미··· 아··· 해.”
정색하는 정지영 과장을 보며 나는 편지가 들어가 발음도 제대로 안 되는 입으로 사과를 했다.
그런데 옆에 있던 직원의 예기치 못한 행동이 나의 이런 노력을 전부 수포로 만들어 버렸다.
(정지영 과장님 되십니까?)
“나요? 그래요. 내가 정지영이에요. 왜요?”
(고객께서는 이미 이런 일이 일어나리라 예상하신 것 같습니다. 만약 정지영 과장님에게 편지가 전해지지 않는다면 저보고 직접 이걸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직원은 그렇게 말하면서 품속에 보관하고 있던 똑같은 모양의 편지를 다시 정지영 과장에게 전했다. 그리고 편지를 전해 받은 그녀는, 내가 말릴 사이도 없이, 곧장 본인의 숙소로 들어가 문을 잠가 버렸다.
쾅쾅쾅! 쾅쾅!
“정지영 과장. 이봐 정 과장. 문 열어. 정 과장! 내가 편지 해석해줄게. 그러니까 문 열자. 응? 정 과장.”
“됐거든요. 그냥 제 손으로 해석할 테니까 팀장님은 볼일 보세요.”
“정말 이럴거야?”
“정말 이럴겁니다.”
“저기. 그럼 저 흉물스러운 꽃상여는 어떡하고?”
“그건 팀장님이 알아서 하세요.”
“당사자가 직접 나와서 지시하기 전까지는 꼼짝달싹할 수 없다는데?”
“그럼 기다리라고 하세요. 편지 해석 끝내면 제가 나가서 지시하죠, 뭐. 그때까지 그 사람이 기다리든 말든 그건 제 알바가 아니라고 전해주세요.”
분위기를 보아하니 정지영 주임은 절대 문을 열어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어휴···”
답답한 마음에 절로 한숨이 나왔다. 그녀에게 편지를 전해준 직원을 날카롭게 째려봤지만, 그는 아주 어려운 임무를 완수한 듯 자랑스럽게 서 있었다.
얄미웠지만 그렇다고 화풀이를 할 수는 없었다. 어쨌거나 그는 자신의 맡은 임무를 최선을 다해 마무리 지은 셈이니까.
문제는 역시나 키사라기 에이지 사장이다. 미친 개또라이 같은 새끼.
내가 자신이 보낸 편지를 구길 거라고 예상했다면, 본인도 상대가 편지 내용을 어떤 의미로 받아들일지 알고 있었다는 게 된다.
그러면서 사랑 타령이라니······. 이 자식은 미쳐도 보통 미친놈이 아니었다.
(저······ 정지영 과장은 이 꽃바구니를 어떻게 하라고 하십니까?)
조심스럽게 다가와 질문을 하는 직원의 표정이 묘했다. 마치 나를 정지영 과장에게 매달리는 남자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다른 남자가 보낸 러브레터를 구겨버렸으니 그런 오해를 할만했다. 그렇지만 여기서 우리 ‘아무 사이도 아닙니다.’라고 변명하기고 우스웠다.
(그건 그쪽이 알아서 하세요. 그런데 오늘 밤엔 안 나올지도 모릅니다.)
내 말에 사람들의 얼굴이 흠칫 굳었다. 무슨 계약을 맺었는지 모르겠지만 뒤에 두 명의 남자들은 여전히 땀을 뻘뻘 흘리며 꽃상여같은 꽃바구니를 계속해서 들고 있었다. ‘꽃바구니는 내려놓고 기다리라더라.’라고 말해줄 수도 있었지만 편지를 건네주며 실실 쪼개고 있던 직원의 얼굴이 생각나, 소심한 심술을 부렸다.
***
편지를 해석하자마자 달려와서 화를 낼 줄 알았던 정 과장이 밤새 잠잠했다. 그래서 어떻게든 다독이고 화를 풀어주려던 나만, 허무하게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혹시라도 편지 해석을 못 한 건 아닐까 하는 기대감이 생겼지만 그러기에 그녀는 너무 명석했다.
동지 호텔에서의 업무 능력을 인정받아 본사 마케팅부로 발령받은 건 정말 하늘에서 별을 따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가끔 엉뚱한 면모를 보여서 불가능에 가까운 확률을 뚫고 들어온 그녀가 단순한 문장의 편지 따위를 해석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그런데도 정지영 과장은 숙소에서 간사이 국제공항으로 이동하는 동안, 편지에 대해 어떤 언급도 하지 않았다. 그냥 조용히 창밖만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팀장님.”
공항에 도착해 티켓팅을 하고 비행기를 기다리는데 정지영 과장이 처음으로 내게 말을 걸었다.
“어··· 그래.”
“잠깐 이야기 좀 하시죠?”
“그··· 그럴까? 저기 조용해 보이네. 저리로 갈까?”
“그러세요.”
나는 이야기하자는 그녀를 공항 안에 있는 조용한 카페로 데리고 갔다.
“무슨 일이야?”
“편지 읽었어요.”
“그··· 그래? 결국 읽었구나. 그런데 생각보다 조용하다?”
“그럼 어떻게 해요? 거기서 화를 내봐야 그 또라이가 원하는 일일 텐데요. 그냥 조용히 한국으로 가는 게 최고예요.”
“그렇지? 그렇다니까. 역시 정 과장은 현명해. 그런 건 그냥 개소리로 취급하는 게 답이야.”
“그런데요. 또라이이긴 하지만 거짓말할 인간처럼 보이지는 않았어요.”
담담한 그녀를 보며 안심하고 있는데, 뒤이어 들려오는 이야기에 나는 화들짝 놀랐다.
“뭐?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그냥 한번 자줄까요?”
“이봐! 정 과장! 할 소리가 있고 안 할 소리가 있어!”
“팀장님도 생각해보세요. 마음 한 번 독하게 먹으면 수백억 아니 수천억 이상의 이득을 얻을 수 있는 일이잖아요. 게다가 이번 프로젝트를 성공하면 상무님은 동지그룹 후계자 제 1순위로 오를 수 있을 거예요. 그 가치는 돈으로 환산하기도 어려워요.”
마치 남의 일처럼 이성적인 논리를 펼치는 정지영 과장을, 나는 물끄러미 바라봤다.
“정 과장.”
퍽!
그리고 강력한 스매시를 날리듯 그녀의 등짝을 사정없이 내리쳤다.
“악! 아파. 팀장님?”
“너, 내가 우스운가 본데, 헛소리 그만하고 한국이나 가자.”
“팀장님 우습게 생각한 적 없는데요.”
나는 나를 부르는 그녀의 팔을 잡아채고 윤권이와 추미래가 기다리는 로비로 끌고 갔다. 그리고 윤권이에게 정지영 과장을 꼭 지킬 것을 지시했다.
“윤권아. 정 과장이 뭐라고 해도 놔두지 마. 지금 저 여자 제 정신이 아니니까.”
“네?”
“그냥 그런 줄 알아. 나 멀리 안 간다. 전화만 잠깐 하고 올게.”
솔직히 키사라기 에이지 사장이 전해준 편지를 읽은 정지영 과장이 무슨 의도로 내게 그런 말을 했는지 알 길은 없다. 너무 어이없는 내용에 충격을 받은 건지, 아니면 그냥 내 생각이 어떤지 떠보고 싶었던 건지, 그것도 아니면 정말 그게 쉬운 일이라고 생각해서 그런 건지 그건 나도 모른다.
하지만 수천억 원이 아니라 수조 원이 걸려 있다고 해도, 해서는 안 되는 일이 있다. 뜬 눈으로 그런 고민을 했을 정지영 과장을 생각하자 울화가 치밀었다.
그러다 문득 아침에 스마트폰으로 읽었던 기사가 떠올랐다.
「‘한국이 독도를 불법 점거하고 있다’는 일본 정부의 일방적인 주장이 머지않은 미래에 일본의 새 중학교 사회과 교과서 실린다고 한다.
일본 문부과학성(교육부)은 6일 교과용 도서 검정조사심의회를 열어 이 같은 중학교 교과서 검정 결과를 확정했다. 사회과의 역사(1종)·공민(3종)·지리(2종) 등 3개 과목 총 6종의 교과서에 독도 관련 기술이 포함된 것으로 확인됐다.
‘한국의 불법 점거’를 명기한 지리 교과서가 2종, 공민 교과서가 3종이다. 역사 교과서의 경우 현행 본에는 적시되지 않았던 한국의 불법 점거 주장이 절반인 들어갔다. 또 독도가 ‘일본 고유의 영토’라는 주장은 현행 역사·공민·지리 교과서 6종 모두에 실렸다.
특히 역사 교과서에는 1905년 일본이 독도를 자국령으로 편입한 사실이 실렸다. 또 에도 시대(1603∼1867) 초기 일본인들이 독도에서 조업했다는 주장과 한국의 ‘이승만 라인’ 설정 등이 상세히 실렸다. 이에 따라 내년부터 일부 일본 중학생은 사회과의 3개 세부 과목에서 반복적으로 ‘한국이 독도를 불법점거하고 있다’고 배우게 된다.
일본 정권은 작년 1월, 근현대사와 관련 ‘정부의 통일된 견해’를 기술하도록 하는 방향으로 교과서 검정 기준을 개정하고, 중·고교 학습지도요령 해설서(교과서 제작의 기준이 되는 지침서)에 ‘독도는 일본 고유영토’, ‘한국의 불법점거’ 등 주장을 명시했다.
또 식민지배와 침략에 대한 가해책임을 완화하거나, 식민통치 정책을 미화하려는 것으로 의심되는 검정 결과도 있었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일부 교과서 검정 신청본에 1923년 간토 대지진때 ‘경찰·군대·자경단에 의해 살해된 조선인이 수천명에 달했다’는 내용이 들어갔지만 검정을 거쳐 ‘수천명이라는 말도 있지만 숫자에 대해서는 통설이 없다’로 수정됐다. 또 조선인 사망자가 230명이었다는 당시의 일본 사법성 발표가 병기됐다.
또 식민지 조선에서의 토지조사 사업에 대해 한 출판사가 쓴 “근대화를 명목으로” 했다는 표현은 검정을 거쳐 “근대화를 목적으로” 했다는 것으로 수정됐다. 문부과학성은 “‘명목’이라고 하면 달리 노리는 바가 있는 것처럼 읽힌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아울러 난징대학살(1937∼1938년)시 일본군이 “다수의 포로와 주민을 살해”했다는 기술은 검정을 거쳐 “포로와 주민을 말려들게 해 다수의 사상자를 냈다”로 변경됐다. “일본군의 만행으로 비난받았다”는 표현을 검정 신청본에 넣었다가 삭제당한 교과서도 있다고 교도통신은 전했다.
교과서 검정 제도는 민간 출판사들이 쓴 교과서에 대해 정부가 적절성을 심사하는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이런 내용을 담은 교과서들이 더욱 늘어날 전망이라고 한다.
- 세상과 소통하는 뉴스 한빛 신문 - 」
처음에는 그냥 역시 일본놈들답게 뻔뻔하다고만 생각했다. 이걸 가지고 일을 벌일 생각은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기업의 이득을 위해 우리의 아픈 과거를 이용한다는 게 내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키사라기 에이지 그 개자식이 사람을 잘 못 건드렸다.
일본이 영토 분쟁을 일으키는 곳은 비단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중국도 마찬가지였다. 일명 센카쿠열도 또는 야오위다오 분쟁이라 불리는 영유권 분쟁이다.
솔직한 말로 누구의 주장이 맞는지는 관심이 없다. 하지만 그걸 잘 이용해서 중국 내 반일 감정을 높여버린다면, 천하의 월드 베리어스 클럽도 다나카 아크로바틱과의 제휴를 다시 생각해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는 아무도 없는 조용한 장소를 찾아 전화기를 꺼냈다. 그리고 이번 일을 허락받기 위해 고현호 상무에게 전화를 걸었다.
============================ 작품 후기 ============================
반일 감정 이용하기. 대충 감이 오시죠? 사실 언론플레이나 이런 건 기존 방식과 큰 차이는 없을 겁니다. 어쨌든 막판이니까 스캐일도 국제적으로 좀 커진다는 게 다를 뿐.
솔직히 이런 예민한 문제를 흥미위주인 제 소설 속에 다루기가 조심스럽습니다. 그래서 반일 감정을 다루더라도 영토분쟁으로만 한정할 생각입니다. 특히 위안부 문제는 건드리지 않을 생각입니다. 주인공이 돈을 벌기 위해, 상처입은 그분들을 건드리는 건 아닌 것 같아서요.
혹시나 몰라 미리 양해말씀 드립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